자그레브 츠베트니 광장앞 카페거리에 나와 커피를 즐기는 크로아티아 사람들. ⓒphoto 이경민
자그레브 츠베트니 광장앞 카페거리에 나와 커피를 즐기는 크로아티아 사람들. ⓒphoto 이경민

“Bok! Dobar dan! Kako ste? Bijela kava?”(안녕, 잘 지냈어요? 비엘라카바로 줄까요?)

지난 5월 11일(현지시각)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 폐업했던 카페들이 셧다운 2개월 만에 문을 열었다. 셧다운 이전에 자그레브에서 자주 가던 카페에 들어서니 카페 주인이 날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줬다. 내가 늘 주문하던 메뉴 ‘비엘라카바’도 잊지 않고 있었다. 크로아티아어로 ‘화이트 커피’, 즉 카페라테다.

두브로브니크 로브리예나츠 요새 앞 카페에서 즐기는 ‘비엘라카바’ ⓒphoto 이경민
두브로브니크 로브리예나츠 요새 앞 카페에서 즐기는 ‘비엘라카바’ ⓒphoto 이경민

지난 5월 11일 크로아티아 전역의 셧다운이 해제되고 카페를 포함한 상점들이 문을 열면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거리는 일상으로 돌아간 듯 활기를 되찾았다. 이전까지 스산하기만 했던 자그레브 골목에 커피향이 차오르며 온기가 퍼져 나갔다. 코로나19 격리로 지쳐 있던 사람들은 고작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한껏 멋을 부리고 나왔다. 가장 근사한 옷을 입고 카페 테라스에 앉아 못 다 보낸 봄을 만끽한다.

자그레브 옐라치치 광장 앞 꽃가게들. ⓒphoto 이경민
자그레브 옐라치치 광장 앞 꽃가게들. ⓒphoto 이경민

크로아티아의 카페에 갈 땐 현금을 챙기는 게 좋다. 커피 한 잔의 가격이 높지 않아 현금만 받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곳의 커피 가격은 카페라테 한 잔에 12쿠나, 한국 돈으로 2200원 수준. 한국에서도 커피를 즐겼지만 크로아티아에 오면서 더더욱 커피를 사랑하게 된 데엔 착한 가격도 일조했다. 물론 관광객들에겐 이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을 청구한다.

작업을 위해 두브로브니크에 오래 머물다 보니 올드타운 내에서 자주 가는 카페가 두어 곳 생겼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관광지답게 커피값도 제법 비쌌다. 크로아티아 현지 언어를 조금 배워 주문 정도는 할 수 있게 되면서, 카페에서 더듬더듬 크로아티아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평소보다 낮은 가격의 빌지를 가져다 주기 시작했다.

“오늘은 왜 평소보다 저렴하지? 해피아워 그런 거야?”

“너는 투어리스트 같지는 않고 여기 사는 사람 같아서 현지가격으로 할인을 해 주는 거야.”

자그레브에서 자주 가는 엘리스카페의 직원 페트라. 커피가 정말 맛있다. ⓒphoto 이경민
자그레브에서 자주 가는 엘리스카페의 직원 페트라. 커피가 정말 맛있다. ⓒphoto 이경민

이날 이후 나의 카페 경험은 ‘레벨업’ 됐다. 현금을 깜박하고 갔을 때에도 카페 직원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나중에 시간될 때 가져다 달라며 쿨하게 커피를 내줬다. 한번은 두브로브니크의 한 카페에서 실수로 물잔을 깨버렸다. 깨진 잔을 치우며 한사코 괜찮다고 말하는 직원이 너무 고마워서 테이블 위에 팁과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라는 쪽지를 적어 두고 왔다. 다음에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직원이 내 이름을 묻곤 그날 이후 내가 갈 때마다 “네 자리 비어 있어”라며 챙겨주기도 했다.

주말이면 카페 테라스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곳엔 ‘스피카(spica)’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원래 출퇴근 러시아워를 가리키는 단어지만, 크로아티아에선 조금 특별하게 사용한다. 보고비체바 거리, 츠비에트니 광장, 옐라치치 광장, 트갈치체바 거리에 이르는 2㎞ 남짓한 카페 거리에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정도까지 사람들이 평소보다 한껏 치장하고 나와 커피를 마시는 문화를 일컫는다.

자그레브 돌라츠 시장 앞 카페에서 휴식하고 있는 크로아티아 어르신 ⓒphoto 이경민
자그레브 돌라츠 시장 앞 카페에서 휴식하고 있는 크로아티아 어르신 ⓒphoto 이경민

자그레브 마티체바 거리 카페에 나와 대화하는 사람들 ⓒphoto 이경민
자그레브 마티체바 거리 카페에 나와 대화하는 사람들 ⓒphoto 이경민

크로아티아 사람들에게 카페는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이곳 사람들은 테이크아웃 커피보다 느긋하게 카페에 앉아 예쁜 커피잔에 담긴 커피를 즐기는 걸 선호한다. 대용량 일회용 컵에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바삐 들고 가는 미국식 커피문화가 ‘카페인 섭취’가 목적이라면, 이쪽은 커피와 함께 카페란 공간을 즐기는 데 더 가깝다. 때문에 카페에 오래 앉아있어도 주인이 손님에게 눈치를 주는 일은 거의 없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에게 코로나19로 인해 카페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와의 단절, 혹은 이웃 공동체와의 유대감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카페가 영업을 개시하자마자 동네 사람들이 오랜만에 치장을 하고 자신의 단골 카페에 나온 것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축하하는 축제이기도 한 셈이다.

자그레브 라디체바 거리 ⓒphoto 이경민
자그레브 라디체바 거리 ⓒphoto 이경민

저자 소개

조선일보 영상미디어그룹 사진기자로 다년간 활동했다. 2017년부터 사진스튜디오 '블루모먼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이경민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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