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에세이]  팬데믹에 떠밀린 터키 망명자의 눈에 비친 파자르
  • facebook네이버 밴드youtubekakao 플러스친구
  • 검색
  1. 문화/생활
[2610호] 2020.06.01
관련 연재물

[에세이]팬데믹에 떠밀린 터키 망명자의 눈에 비친 파자르

▲ 이스탄불의 전통시장 파자르의 모습. 유명 관광지인 ‘그랜드 바자르’와 달리 터키인들의 삶의 현장이다.
이카로스(icarus) 불사론(不死論)이라고나 할까. 결코 추락하지 않고, 영원히 하늘로 우주로 날아갈 수 있다고 믿는 ‘간이 배 밖에 나온’ 세계관이다. 2020년 한국 신문·방송에 넘쳐나는 비상식·몰상식적 행태가 이런 세계관과 닮았다. 새 깃털 날개를 이용해 하늘 끝까지 오르던 중 바다에 떨어져 죽는 것이 신화 속 이카로스의 운명이다. 아버지 다이달로스(daedalus)는 태양 가까이 갈 경우 깃털을 연결한 아교가 녹아내릴 것이라 경고한다. 아들은 아버지 말을 무시한다. 날개를 단 순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하늘 중심의 태양을 향해 줄기차게 올라가던 중 깃털이 하나둘 풀리면서 아래로 급추락한다.
   
   의문인 것은, 하늘 끝까지 오르려 한 이유다. 왜 이카로스는 난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태양의 정점을 향해 올라갔을까. 지상에서 울려퍼진 사람들의 반응이 가장 큰 이유일 듯하다. 사람들은 창공을 가르는 이카로스의 모습에 혼이 빠진다. 탄성, 박수, 환호가 이어진다. 신이라 외치며 무릎을 꿇고 숭배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이카로스 스스로도 착각에 빠진다. “내가 신인가?” 어느 틈엔가 태양의 신 아폴로에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용비어천가’에 맞춰, 태양을 향해 수직으로 올라간다. 날개를 달기 직전,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뜨거운 태양뿐만 아니라 바다의 습기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바다에 바짝 붙을 경우 무거운 습기로 인해 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뜨거운 태양과 습기 찬 바다 사이의 공간만이 날갯짓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리스 신화는 ‘옛날 옛적 스토리’만이 아닌, 메타포(methapor)로서의 교훈기다. 태양은 신, 바다는 인간을 상징한다. 불멸의 신과 유한한 인간 사이의 상식과 세계관에 맞춰 살아가라는 것이 이카로스의 교훈이다. 극에 치우칠 경우 반드시 화를 입게 된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무책임한 인간의 찬사와 찬미에 빠져든다. 결론은 죽음이다. 애초부터 이카로스 불사론은 없다. 인류 모두에 적용될 보편타당성은 그리스 신화가 인류의 고전으로 정착된 가장 큰 이유다. 시대·역사·인종을 넘어선 영원한 진리다. 이카로스 불사론은 유유상종, 우리끼리 세계관에서 통하는 ‘주술적 주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길 수는 없다.
   
   에게해는 이카로스의 최후를 기억하는 바다다. 태양을 향해 날아가다 추락한 곳이 크레타(Crete)섬에 접한 에게해다. 2500여년 전 신화라고 하지만 이카로스 교훈은 에게해 주변 모두의 기억과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다. 태양과 바다로 나뉜 중간 지점 어딘가를 통해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천벌을 두려워하고, 끼리끼리식 논리나 간사한 인간의 혀에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느리고 투박하며 경계가 불투명하게 보이지만, 결국은 자정작용을 통해 정도(正道)와 순리로 나아가는 것이 에게해 사람들의 인생관이다. 돌고 돌아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허망한 삶, 이카로스처럼 한순간 올라갔다가 추락하는 ‘대박 인생관’과는 다르다. 터키는 이카로스의 교훈을 되새기고 재음미할 수 있는 최고 최적의 무대다.
   
   
▲ 주전자로 커피를 파는 시장 상인.

   ‘그랜드 바자르’와 동네 파자르
   
   코로나19 망명지로 터키에 정착한 지 3개월째다. 전염병 비상상황이 거의 끝나면서 국제선 항공기도 6월 중에 재개될 전망이다. 원래부터 1년에 2개월 이상은 터키에 머물렀기 때문에 ‘망명생활’이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궁하면 통한다.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고 사람들의 모임, 식당 영업도 중단된 상태지만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오감훈련과 체력단련을 위해 가까운 바다나 고대 그리스 유적지에 들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집에서 행하는 복근 강화 요가 체득은 망명생활의 수확 중 하나다. 전체적으로 보면 보통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다. 그러나 단 하나, 그 어떤 방법으로도 채울 수 없는 터키의 정수에 대한 ‘갈증’이 하나 있다. 평소 당연시했지만 바이러스로 인해 사라지는 순간 너무도 귀하게 느껴지는 터키만의 매력, 바로 ‘파자르(Pazar)’다. 영어 바자르(Bazaar)에 해당하는 터키식 시장이다. 주관적 판단이지만, 터키의 매력을 세 가지로 집약하면 고대 유적지, 에게해를 배경으로 한 자연, 그리고 파자르가 떠오른다.
   
   터키를 방문한 한국인이라면 이스탄불 중심에 자리 잡은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부터 찾을 듯하다. 그랜드 바자르는 영어식 표현이다. 원래 터키인들 사이에 통하는 지명은 ‘카팔르차르슈’다. 지붕이 달린 파자르란 의미다. 필자가 즐겨 찾는 파자르는 지붕이 없는 개방형 시장을 의미한다. 대도시 이스탄불이 아닌, 인구 1만명 이하의 시골 마을이 품은 파자르다. 사실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는 관광객을 위한 투어 코스, 즉 성형미인식 공간이라 볼 수 있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곳이기는 하지만, 현지인의 일상과는 무관하다. 보통의 파자르에 비해 가격도 최소 3배 이상 비싸다. 터키인이 들르는 곳은 그랜드 바자르 바깥 쪽, 보스포로스 바다에 인접한 파자르다. 잘 정돈된 그랜드 바자르와 달리, 시끄럽고도 복잡하며 다소 지저분한 곳이다. 슈퍼마켓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 터키인을 위한 삶의 현장이자 무대가 노천 파자르다.
   
   파자르는 1주일 단위로 두 번 열린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화요일과 금요일에 문을 연다. 십자가형 거리를 중심으로 화요일은 채소·과일·고기·곡물 같은 식자재를, 금요일에는 옷·신발·그릇·가구 같은 생활용품들을 거래한다. 전염병 이전 상황이지만, 터키 여행에서 얻은 ‘행운의 선물’이 파자르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중 예기치 않게 발견하는 곳이 파자르다. 보통 파자르는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 한구석에 자리 잡는다. 현지인이 아니면 어디인지 찾기도 어려운 외진 공간이다. 그렇지만 파자르에 관한 특별한 ‘후각’을 갖고 있다면 간단히 찾아낼 수 있다. 채소나 과일을 들고 가는 사람을 3~4명 연거푸 발견한다면 주변 어딘가가 파자르라는 의미다. 추적해 보면, 탁 트인 파자르가 한순간 나타난다.
   
   터키에서 파자르 개장이 허락된 것은 지난 5월 중순부터다. 파자르가 열리기 하루 전 가벼운 희열을 느꼈다. ‘국민학교’라 불리던, 필자의 유년기 학교 운동회 하루 전날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일어나는 즉시 파자르로 달려갔다. 오전 10시인데도 이미 파자르 전체가 분주하다. 파자르는 고객을 위한 공간인 동시에, 파자르에 물건을 팔러온 사람들끼리의 물물교환 현장이기도 하다. 토마토와 오렌지 생산자가 서로 물물교환을 하는 식이다. 미신처럼 느껴지겠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반드시 기(氣)가 생긴다. 크게 보면 좋은 기와 나쁜 기로 나눌 수 있다. 저녁 늦게 탄 지하철은 어둡고도 차가운 기로 채워져 있다. 반대로 파자르에서 접하는 기는 100% 밝고 싱싱하다.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건강한 기가 흘러넘친다.
   
   
▲ 파자르에서 파는 올리브.

   5월 중순부터 다시 열린 파자르
   
   신이 지켜주는 공간이기에 좋은 기가 넘치는지 모르겠다. 모스크는 파자르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일상적 풍경 중 하나다. 하루 5번 기도가 이슬람 신자로서의 의무다. 장사꾼이나 시장 손님들이 파자르에 머무는 동안 곧바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모스크 주변에 파자르를 허용했을 법하다. 흥미로운 것은 종교시설 주변 상업활동에 대한 이슬람의 태도다. 성전 주변 장사꾼에 대한 비난은 예루살렘에 들른 예수의 첫 번째 행적이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예수가 화를 낸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슬람에는 그 같은 비난이 없다. 오히려 기독교와 반대로 비즈니스를 포교활동의 하나로 여기는 종교가 이슬람이다. 모스크 안에서야 금지되겠지만 주변에서의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이슬람권의 비즈니스는 최대의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식 상술과는 다르다. 파자르에서 행해지는 생산자끼리의 물물교환이 이슬람권 고유의 비즈니스 행태다.
   
   파자르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찾은 것은 꿀과 소나무 씨앗, 그리고 레몬이다. 코로나19 격리생활로 인해 이미 1개월 전에 떨어진 필자의 기호품들이다. 레몬즙과 라벤더 꿀, 소나무 씨앗을 섭씨 70도 정도의 물에 넣어 마신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즐기는 비밀 건강식이다. 가능하면 대량으로 구입해서 1년 내내 마시고 싶은데 워낙 귀한 재료라 항상 부족하다. 아침에 마실 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확신이지만, 자연의 깊은 혼이 드리운 최고, 최상의 음료라 믿고 있다. 꿀 속에 잠겨 있는데도 라벤더 꽃향이 코끝을 찌른다. 3㎜ 정도의 작은 소나무 씨앗이지만 10m 높이 소나무에서 뿜어져나오는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 마신 뒤 10분이 지나면 등에서 땀이 배어나온다. 꿀벌 한 마리가 1년 내내 모으는 꿀의 양은 작은 찻잔 12분의 1 정도에 그친다. 라벤더 꿀과 소나무 씨앗 하나하나에 깃든 인간의 정성과 시간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 파자르에서 들꽃을 파는 여성. 한 다발에 200원이다.

   2만~3만원이면 4인가족 일주일 먹거리
   
   화요일 파자르의 핵심은 과일과 채소다. 가격도 엄청 저렴하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특별하다. 보통 수확한 바로 다음 날 파자르에서 판매한다. 고대 로마 역사에 보면 당시 에게해·지중해 물가의 기준이 달걀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달걀 하나 가격을 알면 대략 다른 제품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다. 2000여년 전 달걀 24개가 농부의 하루 일당이었다고 한다. 20세기 후반 이후 대규모 양계농장 덕분에 달걀 가격은 바닥에 떨어진다. 2020년 에게해·지중해·이슬람권의 물가 기준으로 양고기만 한 것도 없을 듯하다. 양의 방목은 이슬람권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 일상적 풍경이다. 억센 풀 때문이겠지만 소고기는 육질이 너무 질기다. 얇게 썰어 먹는 케밥이 이슬람권에서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 돼지고기가 그러하듯 케밥에 익숙한 이슬람권에서는 물가 기준이 양고기다. 터키인이라면 양고기 가격을 통해 파자르 내 다른 식품들의 가격을 어림짐작해 낼 수 있다. 파자르에서의 판매 기준은 1㎏ 단위로 이뤄진다. 과일·채소·허브 모두 ‘1㎏에 얼마’라는 식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에게해 주변 오렌지나 석류의 경우 1㎏당 1000원 정도다. 토마토·사과·오이·호박·시금치·허브 등도 1㎏당 1000~2000원 선이다. 양고기의 경우 갈비뼈 부위 최상품이 1㎏에 1만원 정도다. 과일·채소·양고기를 전부 산다 해도 1주일 단위 4인가족을 기준으로 할 때 2만~3만원 정도면 충분하다.
   
   올리브는 에게해와 지중해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지역 식품의 간판이다. 파자르를 대표하는 고가 식품으로, 김치처럼 버무려 먹는 올리브 보존식품이 일반화돼 있다. 색깔이나 크기에 따라 수십여 종류로 나뉜다. 종류별로 식초·소금과 버무려 판다. 올리브 씨앗을 뺀 뒤 앵두나 견과류를 넣어 팔기도 한다. 나무에 달린 올리브 열매는 설익은 감보다도 더 떫다. 일정 기간 식초나 소금에 재워 둬야 떫은맛이 사라지고 특유의 풍미가 살아난다. 너무 오래 재워 두면 탄력성을 잃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에 꺼내 먹어야 제맛이다. 올리브나무는 마른 황무지 언덕에서도 잘 자라는 전천후 식물로 분류된다. 생존이란 측면에서 보면 맞지만, 인간의 미각을 돋우는 맛과 크기라는 기준에서 보면 달라진다. 2년 전 우연히 올리브 수확에 끼어들어 알게 됐지만, 질적·양적 수준은 전적으로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자연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사람의 지혜로운 손이 개입됐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가지치기와 배수시설이 잘된 곳에서 가꾼 올리브는 맛도 크기도 좋다. 인간의 관심 밖에 난 올리브는 열매도 적고 맛도 엉망이다. 올리브 수확 체험 덕분에, 바닥에 깔린 올리브 하나만 봐도 인간의 정성이 얼마나 배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올리브오일은 올리브를 원료로 한 제품 중 가장 비싸다. 보통 막 수확한 올리브 열매의 약 10배 정도 가격으로 1L에 대략 1만원 정도다. 문제는 올리브오일의 맛이다. 이탈리아산 올리브오일에 비하면 질적 수준이 너무도 낮다. 올리브오일이라고 하면 그냥 맷돌로 갈아 짜면 나오는 것으로 이해한 듯하다. 올리브 열매를 어떤 상태와 온도에서 보관하고 숙성한 뒤 어떤 종류의 올리브들과 함께 짜내는지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 올리브 열매라는 관점에서 보면 에게해 터키 제품이 전 세계 수위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올리브오일에 관한 수백 년 수천 년 노하우로 본다면 이탈리아산을 따라잡기 어렵다.
   
   
   한 다발 200원, 들꽃을 파는 여인들
   
   마지막으로 들꽃을 선물로 받은 것이 언제쯤일까. 적어도 30여년 전 한 세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파자르에 가면 들꽃을 파는 사람이 많다. 손에 쥐기 어려울 정도로 큰 꽃다발이다. 투박하지만, 꿀벌이 꽃 사이에서 윙윙 날아다니는, 에게해 자연을 통째로 담은 꽃다발이다. 말도 잘 안 통하지만 꽃을 파는 터키 여인의 환한 모습 하나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온다. 파자르에 나서기 직전 가족들 모두가 들판으로 나가 모은 꽃이라고 한다. 한 다발에 200원에 불과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름답고도 귀한 축복이다. 왜 유년기 운동회 직전의 흥분이 파자르 하루 전 생각났을까. 하늘이 내려준 자연과 인간을 만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듯하다. 천벌을 무시하고 자화자찬에 빠진 거만한 모습이 아니다. 평화와 여유가 넘치는 겸손한 기운으로 뒤덮인 에게해의 파자르다. 항상 느끼지만, 파자르에 들어서는 순간 엄청난 부자가 된 느낌이다. 돈이 아니라 마음이다. 이카로스 교훈이 살아움직이는 신과 자연, 인간이 어우러진 공간, 바로 터키의 파자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