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로빈. 저 멀리 로빈의 관광명소인 성 유페미아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photo 이경민
크로아티아 로빈. 저 멀리 로빈의 관광명소인 성 유페미아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photo 이경민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스트라 반도 서부 연안에 위치한 로빈(Rovinj)으로 짧게 여행을 다녀왔다. 로빈은 북 아드리아해와 맞닿은 작은 해변도시다. 전체 인구수 1만명 남짓한 작은 도시로, 관광업과 수산업이 도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자그레브에서 차로 3시간이면 갈 수 있다.

로빈의 선착장. 로빈은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photo 이경민
로빈의 선착장. 로빈은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photo 이경민

“발칸의 남자라면 라키야(rakija), 담배, 커피 이 세 가지는 필수지!”

종일 밖을 돌아다니다 숙소로 돌아온 내게 숙소의 호스트인 이반 할아버지가 라키야 한 잔을 권했다. 라키야는 과일을 발효해 만든 증류주다. 발칸 지역에서 많이 마시는데 도수가 40~50도에 달한다. 호두, 꿀, 배, 로즈마리, 아니스 같은 향신료 등 담그는 재료에 따라 맛도 효능도 제각각이다.

(좌) 로빈에서 머문 숙소의 호스트 이반-옐레나 부부. 이들은 아들과 며느리, 손주 둘, 그리고 로이라는 이름을 가진 골든리트리버와 함께 한집에 살고 있다. photo 이경민<br/></div>(우) 발효 과일로 만든 증류주 라키야. photo pixabay
(좌) 로빈에서 머문 숙소의 호스트 이반-옐레나 부부. 이들은 아들과 며느리, 손주 둘, 그리고 로이라는 이름을 가진 골든리트리버와 함께 한집에 살고 있다. photo 이경민
(우) 발효 과일로 만든 증류주 라키야. photo pixabay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이 라키야를 즐겨 마신다. 크로아티아에선 이른 아침부터 커피와 라키야 한 잔씩 시켜두고 마시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겨우살이로 담근 라키야는 심혈관과 위에 좋다고 해서 상비약처럼 집에 구비해두고 식후에 한 잔씩 마시기도 한다. 이런 라키야가 코로나19 초기에 민간소독제로 여겨지기도 했다. ‘체내 바이러스를 소독한다’며 틈틈이 라키야를 마시는 사람이 많았고,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기, 사업장에선 아예 사내에 라키야를 비치해 두기도 했다.

(좌)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올드타운의 돌길.<br/></div>(우) 막다른 골목길 끝에 발견한 파란 아드리아해. ⓒphoto 이경민
(좌)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올드타운의 돌길.
(우) 막다른 골목길 끝에 발견한 파란 아드리아해. ⓒphoto 이경민

로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로아티아의 도시다. 도시가 가진 분위기며 뉘앙스가 내가 주로 머무는 자그레브나 두브로브니크와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의 북단이라는 지리적 이유와 과거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도시에는 크로아티아와 이탈리아의 색채가 혼재되어 있다.

로빈 사람들은 크로아티아어와 이탈리아어를 같이 사용한다. 도로 표시판도 이 두 개 언어로 돼있다. 구시가의 중앙에는 성 유페미아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도시 전체가 이 성당을 둘러싼 형상이다. 오래되어 반질반질해진 돌길들을 따라 미로 같은 골목들을 이리저리 걷다보면, 어느 순간 파란 아드리아해를 향해 나있는 막다른 길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좌) 로빈의 명소 성 유페미아 성당을 담을 수 있는 포토존.<br/></div>(우) 여느 때 같았으면 관광객으로 북적였겠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아직은 한산한 로빈의 선착장. ⓒphoto 이경민
(좌) 로빈의 명소 성 유페미아 성당을 담을 수 있는 포토존.
(우) 여느 때 같았으면 관광객으로 북적였겠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아직은 한산한 로빈의 선착장. ⓒphoto 이경민

내가 이곳을 방문한 5월말, 로빈의 올드타운은 썰렁했다. 평소 같았으면 전 세계에서 모인 여행자들로 북적였겠지만, 가게 대부분이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은 상태였다. 관광객을 가득 실은 배가 오가고, 호객행위로 시끌시끌하던 선착장도 썰렁했다.

오랜만에 보는 동양인이 눈에 띄었는지 거리를 걷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어왔다. 사심 없이, 그저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걸어오는 따뜻한 인사였다. 크로아티아에서도 북부 이스트라 반도 사람들은 순박하고 정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코로나19 이후 첫 여행.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해코지를 당하는 것은 아닐지, 긴장하고 위축됐던 마음이 어느새 따뜻하게 풀어지고 있었다.

로빈의 선착장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photo 이경민
로빈의 선착장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photo 이경민

저자 소개

조선일보 영상미디어그룹 사진기자로 다년간 활동했다. 2017년부터 사진스튜디오 '블루모먼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이경민 사진작가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