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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정육의 그림 속 사람여행]  하늘이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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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13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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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육의 그림 속 사람여행]하늘이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조정육  미술칼럼니스트 

▲ 작자미상. ‘대우치수도(大禹治水圖)’(추정). 비단에 색. 26.4×25.8㎝. 국립중앙박물관
영웅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할 때였다. 청계천을 복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대통령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궁창 냄새가 펄펄 나는 죽은 하천을 살려 물길을 터주었으니 대통령이 문제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그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정반대 되는 행보를 취했다. 사대강 사업을 논란 속에 벌이는 모습을 보고 그의 말년이 평탄치 않을 것이라고 예감했다. 물의 속성은 흐르는 것이다. 그 속성을 무시했으니 평탄할 리가 만무하다. 청계천을 흐르게 할 정도로 혜안이 있던 사람이 왜 갑자기 달라졌을까. 사대강은 청계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거대한 물줄기가 아닌가. 정말 강을 맑게 해야겠다는 신념에서 나온 정책이었다면 다른 방법을 썼어야 했다. 어느 경우든 순리를 따르지 않은 행위는 반드시 그 과보를 받게 되어 있다. 퇴임 후 초췌한 모습으로 포토라인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이 자주 목격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모습이 어찌 이명박 전 대통령뿐이겠는가. 역사의 심판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모름지기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자는 자신의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한 후 실행해야 한다. 개인의 실수는 자신의 불행으로 그치지만 공직자의 실수는 수많은 사람을 불행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달리 전 국토의 물길을 전부 터 줘서 대대손손 칭송을 받는 왕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우(禹)임금이다.
   
   ‘대우치수도(大禹治水圖)’(추정)는 중국 하(夏·기원전 2070~기원전 1600)왕조의 시조인 우임금의 치산치수(治山治水)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섬세한 필치나 짜임새 있는 구도 등은 아주 뛰어난 작가의 솜씨로 추측되는데 안타깝게도 작가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 작가의 이름뿐 아니라 작품의 제목도 적혀 있지 않다. 그래서 그림의 내용을 통해 우임금의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으로 추정할 뿐이다.
   
   
   아홉 개 강물을 터서 바다로 흘러들게 하라
   
   그림의 구도는 인물과 바위를 중심으로 X자형으로 펼쳐진다. 바위산 옆에는 잔도가 있고 그 밑으로는 물이 흐르는데 바위 사이에서 요상하게 생긴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 있다. 우측 상단에는 두 사람이 숲에 불을 지르고 있고, 중앙에서 좌측 대각선으로는 열 명의 사람이 밧줄로 묶은 바위를 끌어당기고 있다. 그들 옆에서는 두 명이 곡괭이질을 하고, 우측 하단에서는 두 사람이 도끼로 쓰러진 나무를 찍어내고 있다. 사람들의 모습은 요괴나 도깨비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괴상하다. 몸은 붉은색이나 녹색 또는 남색이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아무렇게나 뻗쳐 있으며 몸에도 듬성듬성 털이 나 있다. 유난히 하얀 눈동자와 이빨도 섬뜩한데 왼쪽 하단의 인물은 눈이 세 개다. 그나마 사람 꼴을 갖춘 인물은 왼쪽 상단에 그려진 칼을 찬 사람이다.
   
   그가 바로 우임금이다. 우임금은 왕관을 쓰고 곤룡포에 녹색 반소매 겉옷을 입었는데 오른손을 번쩍 들고 소리치며 사람들이 일을 잘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당시 우는 임금이 아니라 순임금의 신하였지만 치수에 성공해 천자의 자리를 물려받아 하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왕의 모습으로 그렸다. 우임금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모습을 요괴처럼 그린 이유는 그림의 배경이 되는 시대가 신화 시대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리는 일에 매진하게 된 사연은 ‘서경(書經)’ ‘맹자(孟子)’ ‘사기본기(史記本紀)’ 등 여러 자료에 나온다. ‘서경’의 ‘익직(益稷)’에는 순임금 시절에 “홍수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질펀하여 산과 언덕을 집어삼켜 백성들이 온통 물속에 빠져 있었다”고 적혀 있다. 장마와 홍수는 고질적인 재난이어서 요 임금 때도 9년 동안 장마가 계속되었는데 순임금이 계위한 뒤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당시에 황하가 역류하여 범람하는 문제는 위정자들이 해결해야 할 최고의 난제였다. 백성들은 걸핏하면 범람한 물로 인해 뱀과 용이 득실대는 땅에서 살 수가 없어 높은 산이나 나무 위로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서 순임금은 우에게 홍수를 다스리도록 명하였다.
   
   명을 받은 우는 네 가지 탈것에 의지해 땅을 메우고 수로를 정비했다. 육지는 수레를 타고 다니고, 수로는 배를 타고 다녔으며, 진흙길은 썰매를 타고 다니고, 산길은 바닥에 쇠를 박은 신을 신고 다녔다. 발 디딜 수 있는 곳은 전부 돌아다녔다는 뜻이다. 그는 왼손에는 물바늘과 먹줄을 들고, 오른손에는 그림쇠와 곱자를 들고 다니며 치수에 매달렸다. 그 결과 사계절의 때에 맞춰 아홉 주를 열고, 아홉 길을 뚫었으며, 보를 쌓아 아홉 연못을 만들고 아홉 산에 길을 통하게 했다. 여기서의 아홉은 꼭 아홉 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의미한다. 전 국토를 가지런하게 정비했다는 뜻이다. 우는 자연적인 형세에 따라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게 함으로써 백성들이 땅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 다음 익(益·순임금의 신하)으로 하여금 산과 늪에 불을 질러 태우게 했다. 그러자 금수가 도망가고 뱀과 용은 수초가 우거진 곳으로 추방되었다. ‘대우치수도’의 우측 상단에서 나무를 태우고 있는 두 인물이 그런 상황을 말해준다. 그림 우측 하단에서 두 사람이 도끼로 나무를 찍는 모습 위에는 불을 피해 도망가는 짐승도 등장한다. 우임금은 용문산(龍文山)이 하수(河水)의 물길을 가로막고 있어서 도끼를 가지고 쪼개어 물길을 열었다고 전한다. 그때 우가 쓴 도끼를 석부(石斧)라고 한다. 석부는 ‘대우치수도’에서 두 장정이 쓰고 있는 도끼와 같은 종류다. 스펙터클한 우의 치수 사업은 우 혼자 한 것이 아니었다. 우 못지않게 물길 터주는 데 이골이 난 최강의 전사들이 참여해 한 몸처럼 움직였다. 대규모 토목사업을 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책상물림들의 결정에 따라 졸속으로 시행한 경우와는 판 자체가 달랐다.
   
   이렇게 해서 땅이 비옥해지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우는 백성들에게 벼를 나눠주고 낮고 습한 땅에 심을 수 있게 했다. 농사에 대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후직(后稷)에게는 부족한 식량을 나눠주라고 명하니 식량이 모자라면 남아도는 지역에서 조달해 보충할 수 있었다. 우임금의 치수 덕분에 사람들은 극심한 가뭄과 홍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장자(莊子)’의 ‘추수(秋水)’에는 “우가 치수할 때에는 10년 동안 아홉 번이나 홍수가 졌건마는 바닷물은 그 때문에 더 불어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치수 프로젝트가 성공한 것이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물이 없으면 모든 생명은 살아갈 수가 없다. 물은 없어서도 안 되지만 넘쳐도 문제다. 중요하지만 때로는 목숨까지 앗아가는 물을 잘 다스렸으니 우임금의 공적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위대하다(Great)’는 의미의 ‘대(大)’가 들어간다. ‘대우(大禹)는 그냥 평범한 우임금이 아니라 ‘위대한 임금’이라는 뜻이다.
   
   
▲ 작자미상. ‘하우씨’. 종이에 색. 26×20㎝. 국립중앙도서관

   사람은 우환 가운데 살고 안락 속에서 죽는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고신도(高臣圖)’라는 제목의 책이 소장되어 있다. 1·2권으로 된 이 책은, 제작연대는 알 수 없으나 중국의 역대 제왕과 명현 174명의 초상화와 간단한 이력이 담긴 매우 귀한 책이다. 중국과 조선에서 유행했던 ‘역대군신도상’ 유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신도’는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른 특징이 있다. 초상화 주인공의 이름이 한글로 쓰였다는 것이다. ‘하우씨’도 ‘고신도’에 들어 있는 작품이다. ‘하우씨’는 하나라 우임금의 초상을 오른쪽 측면 8분면으로 그린 다음 왼쪽 상단에 한글로 ‘하우씨’라고 적었다. 그의 얼굴 앞에는 그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하나라 우왕의 성은 사(姒)이고, 이름은 문명(文命)이며 황제의 후예다. 순임금의 선양을 받아 쇠의 덕으로 왕이 되었다. 왕도는 평양에 있었는데 재위 기간은 9년이었고, 수명은 100세였다.”
   
   아주 간단한 내력이다. 이 문장에는 우임금이 치수의 성공으로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장자’의 ‘천하(天下)’에는 우가 치산치수를 할 때 “세찬 비에 머리를 감고 거센 바람에 빗질을 했다(沐甚雨 櫛疾風)”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탄생한 사자성어가 ‘목우즐풍(沐雨櫛風)’이다. 자신이 뜻한 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음을 비유적으로 쓰는 단어다.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데서 먹고 잠잔다는 풍찬노숙(風餐露宿)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말로 ‘개고생’했다는 뜻이다.
   
   우임금의 고생은 신혼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도산(塗山)의 딸에게 장가든 지 4일 만에 치수를 위해 집을 떠나야 했다. 큰일을 맡은 사람에게 신혼의 단꿈 같은 것은 먼 나라 얘기였다. 아들이 태어났는데도 그 아이를 돌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는 범람하는 홍수를 막으려고 8년 동안 분주히 돌아다니다가 ‘세 차례나 자기 집 문 앞을 지나갔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공사(公事)’를 위해 ‘사사(私事)’를 돌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치수를 한 8년 동안 손과 발에는 못이 박이고 얼굴은 시꺼멓게 그을렸다. 그렇게 해서 용문을 뚫고 아홉 갈래의 물줄기를 소통시킬 때는 손발이 부르트고 얼굴이 누렇게 초췌해졌다.
   
   그가 치수를 위해 얼마나 많이 걸어다니며 고생을 했던지 다리에 병이 나서 절뚝거리게 되었다. 절뚝거리는 우의 걸음걸이를 우보(禹步)라고 한다. ‘우임금의 걸음걸이’는 우보(牛步)라고도 부른다. 소걸음처럼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를 일컫는 말이다. 우보는 우가 새의 걸음걸이를 보고 창안한 보법이라고 하여 매우 신령스럽게 여긴다는 해석도 있지만 필자의 견해는 다르다. 두 발의 길이가 맞지 않아 절뚝거리며 걷는 사람이 어찌 빨리 걸을 수 있겠는가. 그저 소의 걸음처럼 느릿느릿 걸을 수밖에 없다. 우보는 우임금이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훈장이다. 후세 사람들은 몸을 돌보지 않고 치수를 이루어낸 우의 뛰어난 공적을 우보신공(禹步神功)이라고 찬양했다.
   
   ‘맹자(孟子)’에는 후세 사람들의 무릎을 치게 하는 명문장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고자하(告子下)’에 나오는 다음 글은 수많은 사람이 다투어 인용한 최고의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이렇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心志)를 괴롭게 하고, 그 살과 뼈를 고달프게 하며, 그 신체와 피부를 주리게 하고, 그 몸을 궁핍하게 하며, 그가 하는 일마다 잘못되고 뒤틀리게 하는데, 이는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격을 강인하게 함으로써 그의 부족한 능력을 키워주려는 것이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이 이 문장을 읽으면 큰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궁핍하게 살고, 재수가 없어서 암 수술까지 받은 줄 알았는데 그게 나를 더 큰 인물로 만들기 위해 단련시키는 과정이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 꼭 살과 뼈가 고달프고 신체와 피부가 주린 고통을 겪어야만 할까? 그냥 큰 어려움 없이 술술 잘 풀리면 좋지 않을까? 현명한 맹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덧붙였다.
   
   “사람은 항상 잘못을 저지른 뒤에 고치게 된다. 마음이 괴롭고 자꾸 생각에 걸려야 분발하며, 남의 안색에서 확인하고 남의 목소리에서 드러나야만 깨닫는 것이다. 안으로는 법도 있는 대신과 보필해 주는 사람이 없고, 밖으로는 적대적인 나라와 외환이 없으면, 이런 나라는 항상 망하게 되어 있다. 결국 사람은 우환 가운데 살고 안락 속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임금이 치수에 성공해 ‘대우’가 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그의 아버지 곤(鯀)의 실패가 큰 교훈이 되었다. 곤은 요임금의 명을 받아 치수를 맡았으나 9년이 지나도록 성과를 내지 못했다. 9년이란 긴 세월이다. 그 긴 세월 동안 실패를 거듭했다는 것은 치수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곤은 강둑이 터지는 대로 막아나갔다. 큰비가 오면 강둑을 더 높이는 것만이 그가 시행한 치수법이었다. 그러나 강둑을 높이는 방법은 백성들만 수고롭게 할 뿐이었고 홍수가 나면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렸다. 결국 곤은 치수의 실패에 대해 단죄를 받고 우산(羽山)으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우임금은 아버지의 실패를 교훈 삼아 치수에 대한 접근방법을 달리했다. 물을 막는 대신 물길을 터주어 바다로 흘러가게 한 것이다. 물의 속성을 제대로 알고 시행한 방법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창수사자(滄水使者)라는 신선이 꿈속에 나타나 천하의 물길을 가르쳐 주었다는 전설까지 생겨났다. 그만큼 우임금의 치수가 위대하다는 방증이다. 우임금의 성공은 그의 아버지 곤이 9년 동안 실패하면서 구축한 빅데이터에 절름발이가 되도록 8년 동안 고군분투한 자신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였다. 17년 동안 ‘살과 뼈가 고달프고 신체와 피부가 주린 고통’을 견뎌냈기에 천하가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절망감이 몰려올 때마다 “나는 충분히 노력했어”라고 자기 정당화를 하면서 중동무이하지 않았다. 대신 실패의 원인을 찾아 개선하고 실행에 옮겼다. 어쩌다 운 좋게 정권을 잡고 나서 편 가르기와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대다수 국민들의 의견을 깔아뭉개는 사람은 절대로 취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야말로 현장에서 온몸으로 박박 기면서 체득한 진리였기 때문이다. ‘하우씨’에는 이런 우의 구구절절한 인생사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하우씨’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 그의 공적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그림의 역할이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자신의 시련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용기야말로 영웅의 용기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웅이라는 말은 자신의 삶을 자기보다 큰 것을 위해 바친 사람을 일컫는다”라고 덧붙였다. 사람은 우환 가운데 살고 안락 속에서 죽는다는 맹자의 말과 함께 되새겨보면 좋을 듯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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