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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짱 의사의 4개국 어학연수 도전기]  17년 바둑 돌 체면 살리기… 첫 연수 성적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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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13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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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짱 의사의 4개국 어학연수 도전기]17년 바둑 돌 체면 살리기… 첫 연수 성적표는?

리마= 글·사진 김원곤  서울대 흉부외과 명예교수 

▲ 필자가 어학연수 중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종종 방문하는 올리바르공원. 300년 이상된 올리브 고목들이 단단하게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것이 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을 운명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학창 시절 시험 목적 외에 외국어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특히 제2외국어는 할 이유가 없었다. 의대 교수에다 대학병원 의사라는 안정된 조건에서 영어 하나면 충분했다. 2003년 어느 봄날, 내 인생을 바꿀 하나의 생각이 마음 한곳에 내려앉았다. ‘나이 오십인데 더 늦기 전에 외국어 하나 더 배워두면 보람도 있고 혹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즈음 대학과 병원에서 시니어 그룹에 속하다 보니 시간 활용도 자유로웠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일본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스페인어나 발음이 어려운 프랑스어, 중국어는 일찌감치 제외하고 일본어가 그나마 만만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해 6월 마침내 학원 공부를 시작으로 일본어의 첫발을 내디뎠다.
   
   사실상 그것으로 끝이 나야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후인 2005년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 한자문화권의 종주국인 중국어를 공부해 한·중·일 3국의 언어를 같이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는 치기 어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고, 2006년에는 좋아하는 프랑스 와인들의 상표라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프랑스어를, 2007년에는 발음이 쉽다는 소문에 혹해 스페인어까지 넘보게 됐다.
   
   
   가시밭길을 자처하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사실 공부는 누구든지 시작할 수 있다. 문제는 배운 것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하는 것이다. 외국어 공부를 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아 학원 주말반을 다녔다. 오전에 배운 프랑스어가 오후 스페인어 강의실에서 툭 튀어나오는 일은 비일비재했고, 같은 한자를 놓고 한국식, 일본식, 중국식으로 읽을 때도 기억의 실타래가 엉켜 고전했다. 사서 하는 고생도 이런 고생이 없었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매일 일정 시간을 외국어 공부에 할애하는 것은 꽃길을 두고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자며 스스로 타협을 해봤지만 외국어 공부는 잔인해서 전진 아니면 퇴보가 있을 뿐, 유지는 더 힘든 일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한때 외국어를 배웠다는 추억만 남기기는 싫었다. 결국 믿을 것은 끈기였다. 필자는 짧지 않은 인생에서 고무줄이 탱탱해질 정도로 작은 일탈을 수없이 해왔지만 정작 고무줄을 끊지는 않았다. 단적으로 초·중·고 12년 연속 개근상과 우등상의 이력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대학도 만일 개근상 제도만 있었으면 2관왕 수상 이력이 이어졌을 것이다. 이런 나름의 뚝심을 느지막이 시작한 외국어에 쏟았다.
   
   공부에 자극을 주기 위해 ‘학습동기 유발 테크닉’도 써보았다. 외국어 능력 자격증이 아무런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원해서 자격시험을 치렀다. 이왕이면 목표를 높이 잡아보자는 생각으로 1년 동안 3개월 간격으로 각각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고급 자격시험에 도전해 모두 합격하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더구나 그 기간 몸만들기 프로젝트에도 도전, 개인 누드 화보집을 목표로 몸만들기에도 들어갔다. 다이어트하느라 밤늦은 시간 주린 배를 움켜잡고 학원에 가서 젊은 학생들과 강의를 듣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우여곡절 끝에 2011년 3월 중국어 HSK 6급, 7월 일본어 JLPT N1, 11월 프랑스어 DELF B1, 마지막으로 2012년 5월 스페인어 DELE B2에 합격했다. 일본어는 최상위 레벨이고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는 비록 최상위 수준은 아니지만 결코 낮은 수준도 아니다. 물론 몸 화보집 도전 약속도 지켰다.
   
   2019년 8월, 마침내 정년을 맞았다. 일본어를 공부한 시점으로부터 만 16년이 흐른 셈이었다. 그동안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이어왔다는 것이 스스로도 뿌듯했다. 정년 3년 전 어느 날, 아내가 문득 한마디를 던졌다. “3년 후 정년퇴임하면 어학연수를 해 보는 건 어때요?” 어학 공부에 대한 열정을 옆에서 지켜봐 온 터라 “퇴임 기념 선물”이라고 하였다. 당시엔 뜻밖의 제의라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학연수는 즐거운 인생 목표가 됐다. 우리 세대는 학창 시절 어학연수 개념 자체가 없었다. 직장에 매여 있는 동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년 후 여유 시간을 활용해 어학연수를 떠날 수 있다면 그동안 어학 공부에 들인 노력의 체면을 살리는 길이라고 여겼다.
   
   
   체면을 살리는 길
   
   ‘체면을 살리는 길’이라는 표현은 바둑에서 나오는 용어로 필자가 평소 좋아하는 표현이다. 바둑은 수천 년 동아시아의 역사와 함께해 온 만큼 파생 표현이나 격언이 풍부하다. ‘아생연후에 살타’ ‘선작오십가자 필패’ ‘적의 급소가 나의 급소’와 같은 주옥같은 격언은 말할 것도 없고, ‘포석을 구상하다’ ‘끝내기 단계에 돌입했다’처럼 일상용어로도 많이 사용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용어지만 ‘먼저 둔 돌의 체면을 살린다’는 표현은 바둑 해설자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앞서 기울인 노력, 투자, 시간, 생각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필자 역시 과거에 두었던 노력의 돌들에 더욱 큰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 도리요 의리라고 결심을 굳혔다.
   
   4개 외국어를 차례대로 ‘어학연수 3개월, 재충전 3개월’을 반복하는 일명 ‘삼삼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배경이다. 그 과정은 주간조선 2589호 커버스토리를 통해서도 자세하게 소개됐다. 당연히 많은 난관이 예상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점은 4개 외국어를 어떻게 유지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스페인어 연수를 하면서 나머지 외국어를 유지하고 다음 연수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만큼 도전의 가치도 크다. 마침내 지난 3월 2일 출국, 어학연수 대장정의 첫 단추를 끼웠다. 3월 8일 첫 연수지인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 바로 다음 날부터 스페인어 연수를 시작했다. 일대일 개인 수업으로 주 20시간 강좌를 듣기로 했다. 필자의 레벨이 꽤 높아 어학원의 다른 수업은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대일 수업인 만큼 하루 4시간씩 한눈팔 여유 없이 집중해야 했다.
   
   스페인어 연수에 왜 굳이 페루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한 통계에 의하면 현재 세계에서 5억에 가까운 인구가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 스페인어를 제1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국가는 모두 21개국인데, 스페인 본토와 아프리카의 적도기니를 제외하면 나머지 19개국이 모두 중남미에 몰려 있다. 중미와 인근 카리브해에 멕시코를 필두로 과테말라, 니카라과, 도미니카공화국,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쿠바, 파나마, 푸에르토리코를 포함하여 모두 10개국이 있다. 남미에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우루과이, 칠레, 콜롬비아, 파라과이, 페루까지 9개국이 있다.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는 많았지만 안전, 비용, 발음 및 어법의 차이 등을 고려했을 때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 페루를 선택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이다. 첫째, 스페인어가 주요 국제어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오늘날 스페인이 특별한 정치적·경제적 파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과거 대항해 시절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해 점령한 식민지들 덕분에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스페인어는 국제적으로 이탈리아어 정도의 관심을 받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의 스페인어를 가치 있게 만들고 있는 중남미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싶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스페인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경험해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이왕이면 잉카문명의 중심지인 페루에서 스페인어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잉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대 제국이었으나, 콩키스타도르 피사로가 이끄는 불과 수백 명의 스페인 점령군에 유린당한 아픈 역사를 겪었다. 그 역사의 현장에서 스페인어를 배워 보고 싶었다. 두 번째 이유는 조금 현실적이었다. 스페인어 연수 후 어차피 프랑스에서 프랑스어 연수를 할 계획이다 보니 굳이 가까운 나라를 택할 필요는 없었다. 언어 공부는 문화와 사회적 체험도 포함된다. 이왕이면 색다른 환경을 접해 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 지난 3개월간 필자의 충실한 강의실이 되어준 온라인 수업장인 숙소 거실의 모습.

   첫 어학연수 성과는 “만족”
   
   이렇게 시작한 페루 리마에서의 스페인어 수업은 첫 한 주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수업 시작 전 학원 측에 어학연수의 목적이 문법이 아니라 실제 회화 능력 향상이라고 명확하게 밝혔다. 학원 측도 문법 테스트를 거쳐 다양한 주제의 자유토론 형식의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3월 15일 전격적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가비상사태가 발표되고, 국경폐쇄 조처와 함께 의무 사회격리에 들어갔다. 학원도 무기한 전면 폐쇄됐다. 어학연수 대장정의 출발이 완전히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 강좌는 생각지도 못했고 그저 당황스러웠다.
   
   이튿날 국가비상사태 돌입 전 허용된 마지막 몇 시간을 활용해 어학원으로 달려갔다. 당황하기는 어학원도 마찬가지였다. 대안은 온라인 강좌였다. 온라인용 프로그램 설치 경험도 없어 쩔쩔맨 필자는 어학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온라인 강좌로 하다 보니 상당히 효율적이었다. 어차피 일대일 수업이었기 때문에 현장 수업과 다를 바가 없었다. 혹자는 온라인 수업을 굳이 외국에 가서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다. 우선 그날그날 현지 생활과 각종 상황 변화에 따라 주제 선정부터 현장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 강의 내용을 수업 후에 바로 현장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어디서든 스페인어가 들리고 스페인어가 보이는 몰입 환경이 공부 효율을 높여준다. 물론 현장 수업이 가능하기만 하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을 고려해 최대한의 효과를 얻어야 한다. 온라인 어학연수는 초심을 잃지 않고 석 달 넘게 이어 오고 있다. 하루 4시간 수업은 각각 2시간씩 두 명의 강사가 담당하고 있다. 앞 수업은 일관성을 위해 한 강사가 담당하고 두 번째 수업은 다양한 스페인어를 경험하기 위해 강사를 계속 교체했다. 현재 4번째 강사와 수업을 하고 있다. 모두 자유토론이기 때문에 일상에 대한 인사가 긴 대화로 이어지기도 하고 주제를 미리 정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대부분 필자가 주제 선정을 주도하고 있는 편이다. 그동안 음식, 역사, 영화, 원주민 언어, 페루식 스페인어, 페루의 지역 및 문화 특성, 심지어 페루의 동식물, 꽃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그만큼 어휘력과 회화 실력도 늘었다고 자부한다.
   
   초기에는 이론은 많이 알고 있는데 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반복했다. 어떤 경우 너무 기초적인 실수를 해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오랫동안 스페인어를 공부했다고는 하나 실전 경험 부족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였다. 연수를 통해 실전에 강해진 것은 큰 성과이다. 일단 현지인과 어떤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움츠러들지 않게 됐다. 한번은 귀국 항공편 문의로 지역 여행사에 전화를 했다. 당연히 영어가 통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담당 여직원은 스페인어 외에는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2~3개월 전 같았으면 전화를 끊었겠지만, 복잡한 내용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충분히 나눌 수 있었다. 어학연수 성과는 더 이상의 구체적 사례들보다, 쑥스럽지만 최근 어학원 선생님이 필자에게 보낸 수업 평가서를 첨가한다.
   
   
   ‘김원곤 학생과 3개월 이상 수업을 같이해 본 결과 그는 스페인어 회화 능력 향상을 목표로 이곳에 온 계획을 착실히 실행에 옮기고 있는 근면하고 의지가 확고한 학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고국에서 은퇴한 존경받는 흉부외과 의사였는데 평소에 본업인 의학 이외에도 문학과 영화 등 다양한 분야, 특히 어학 공부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수업하는 동안 그의 발전은 확연했습니다. 처음에는 몇몇 기초적인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그런 실수는 없어지고 그동안 함께 다루었던 다양한 주제의 공부를 통해 그의 어휘력과 언어 구사 능력도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그의 호기심과 탐구심을 바탕으로 즉석에서 주제를 정하기도 했습니다만 많은 경우 그가 미리 알고 싶은 주제를 정해서 토론을 해나갔습니다.
   
   그의 탐구열은 일반 스페인어 공부를 떠나 페루 특유의 표현법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졌고 실제 이를 실생활에 활용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국가비상사태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슈퍼마켓, 약국, 식당 등 실생활 현장에서 스페인어를 적극적으로 구사했습니다. 또 오히려 이런 기간을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본인과의 정보 교환을 통해 적극적으로 숙소에서 각종 페루 음식과 칵테일을 만들어 시식, 시음하는 경험을 얻기도 했습니다.
   
   김원곤 학생은 이때까지 경험한 학생 중 가장 다재다능하고 의지가 확고한 학생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본인이 제시한 다양한 형태의 과제에 항상 적극적으로 임하였고, 과제가 다소 까다로운 경우에도 한 번도 부정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책임감 있고(responsible), 헌신적이며(dedicado), 앞서서 주도하고(proactivo), 끈기 있는(constante) 학생이었으며 이 때문에 현재 높은 수준의 스페인어 회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큰 인정과 함께 축하를 받아 마땅합니다. 부디 그가 앞으로의 프랑스어 연수에서도 이번과 같은 성과를 거두길 바랍니다.’
   
   -Erika Aguirre Profesora de Español

   
   
   아직 리마에 머물러 있는 입장에서 향후 어학연수 일정에 약간의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힘든 시기에 그나마 1단계 계획인 스페인어 연수를 무사히 마치고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일주일만 늦게 출발했더라면 페루 입성도 힘들었을 것이다. 2주일 늦었더라면 아예 출국조차 못 했을 것이다. 주간조선 지난 호에 밝힌 것처럼 계획된 페루 일정 3개월을 넘기고, 귀국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코로나19 강타로 페루의 국경은 아직 닫혀 있다. 언제 귀국 항공권을 손에 쥘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상황을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귀국 후 다음 일정인 프랑스어 연수도 원래 계획보다는 늦어지겠지만 확실한 것은 4개국 어학연수 대장정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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