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국공’ 사태가 뜨겁다. 그것은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다. 비정규직이 문제라면 정규직화하면 되지 않나. 이것이 곧 문재인 대통령의 ‘간단한’ 생각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취임 즉시 인천국제공항으로 달려가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반면 기존 직원이나 취준생 등을 비롯해 많은 사람은 오히려 너무 ‘쉬운’ 정규직화 과정이 공정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밖에도 다양한 찬반 의견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피상적인 주장일 뿐, 사태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마침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인상적인 연구서가 있다. 바로 데이비드 와일의 ‘균열일터’(The Fissured Workplace·2014)이다. 요즘은 일이 회사 안팎으로 이리저리 나뉘어 수행된다. 한마디로 일터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저자는 이런 균열이 왜 일어났고, 그것이 노동조건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해법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따져본다.

20세기의 주된 고용관계는 대기업과 노동자였다. 대기업은 모든 역량을 내부화하고 효율적 관리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도모했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비교적 안정된 고용을 향유했다. 그러나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심화하고 대규모 자본조달이 요구됨에 따라, 금융자본을 비롯한 주주의 이익이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기업들은 핵심역량에 관심과 자원을 집중하며, 그밖의 것은 전면적으로 재평가했다. 비즈니스의 일부로 남을 만한가. 효율성 확보를 위해 구조조정이 필요한가. 아웃소싱을 통해 비용절감이 가능한가. 이런 기준에 따라 수익이 낮은 부분은 매각 혹은 폐기되거나 구조조정을 당했다. 또한 비용절감을 위해 대대적인 아웃소싱이 이루어졌다.

일단 시작된 일터의 균열은 점점 가속화했다. 처음에는 청소나 경비 등이 잘려나갔으나, 절단선이 기업 내부로 점점 더 깊게 파고들었다. 인사, 관리, 회계, 물류 등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침 정보통신 등 기술의 발전은 ‘균열된 채’ 진행되는 작업들을 효과적으로 통합시켜 주었다. 결국 군더더기를 완전히 제거한 가장 기본적인 형태가 균열일터의 모델이 되었다.

오늘날 기업은 이런 균열을 통해 핵심역량만 유지한 채 수익은 극대화하되, 고용과 관련된 부담이나 위험은 털어버렸다. 이제 임금은 단순히 비용일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대기업은 구매자 독점 파워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임금을 결정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임금수준이 하락하고 노동조건이 열악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그런 우려가 두루 현실화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가장 주목할 만한 추세는 약 30년 전부터 시작된 노동자들(화이트칼라, 블루칼라, 중하층 노동자)의 지위와 처우의 하락이다. 그 속도는 점점 더 가속화하다가, 금세기 들어 전속력으로 치닫고 있다.” 임금 및 혜택의 축소, 근로규정 위반, 일방적 해고 등은 흔한 일이 되었다. 그 밑바닥에는 균열일터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하청, 프렌차이즈, 공급사슬(supply chain) 등이 대표적인 균열일터다. 하청은 가장 전형적인 분야다. 더구나 다단계 재하청을 통해 고용관계는 더욱 모호해지며, 위험이나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 역시 흐려진다. 또한 개인이 기업과 계약을 맺어 법적으로 개인사업자가 되는 경우, 모든 부담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다. 트럭 운전사나 택배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브랜드는 소비자의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기업은 브랜드 구축 및 관리에 집중하고, 가맹점이 그밖의 모든 일을 떠맡는 프랜차이즈 방식이 일찍이 대두되었다. 모기업의 자본은 대부분 가맹점에 의존하지만, 수익은 모기업의 몫이 훨씬 더 크다. 이런 방식이 패스트푸드를 넘어 숙박, 청소, 홈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공급사슬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형성된다. 특히 과거에는 글로벌 전자회사들이 모든 기능을 수직적으로 통합시켜 규모의 경제를 도모했다. 하지만 1990년대 디자인 혁명과 기술 혁신으로 인해 규모의 경제는 급속도로 이점을 잃고 말았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글로벌 공급사슬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었다. 그 기수가 애플이다.

일터의 균열화는 악의적인 조치가 아니라 불가피한 변화의 산물이다. 실제로 그것은 수익을 극대화하고 혁신을 일으켜, 기업이나 소비자에게 커다란 혜택을 안겨주기도 한다. 반면 임금 수준을 떨어뜨리고 고용 조건을 악화시켜 중산층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특히 고용에 수반되는 부담이나 위험을 회피하여 ‘사회적 비용’을 말 그대로 사회에 전가시킨다.

오늘날 균열일터에 대한 법적·정책적 대응은 부실하다. 그 이유는 법이나 정책이 전통적 고용모델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용 및 해고, 관리, 훈련, 보수 등에 직접적 책임을 가진 ‘단일’ 고용주를 상정하는 현행 법규는 균열일터에 제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오늘날 그런 고전적 조건에 부합하는 고용주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균열일터에 대응하는 공공정책이 절실하다. 특히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과 정책을 개선하는 일이 절실하다. 최근에 그런 입법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또한 노동조합, 노동자 권익단체, 사용자와 그 연합, 국제기구, 노동자 자신 등 균열일터의 핵심 주체들이 현실을 폭넓게 성찰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입법 절차나 사회적 논의를 건너뛰고 곧바로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라는 행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일류 공기업이 된 것은 독점 이외에도 상당 부분 균열일터 덕분이다. 정규직은 1400명이고, 비정규직이 무려 1만명이다. 이번에 7000명은 자회사 정규직이 되고, 보안검색요원 등 3000명은 직고용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조치는 심각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바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정규직이 세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고급 일자리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 과도한 처우를 조정하는 공공부문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물론 이번의 신규 정규직에게는 현행 처우를 유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곧이어 분출될 차별철폐 요구를 외면할 명분도 없고 방법도 없다.

한편 ‘쉬운’ 정규직화 절차에 대한 공정성 논란은 다소 논쟁적이다. 온통 진입 절차에만 예민하고, 진입 후 노력이나 성장에는 상대적으로 무심한 풍토는 재고되어야 한다. 반면 진짜 불공정한 것은 거대한 규모의 민간부문 비정규직이 소외되었다는 점이다. 문재인식 처방은 혈세(血稅)를 끌어다 쓸 수 있는 공공기관에서나 가능하다. 따라서 그것은 다수를 위한 진정한 공공정책이 아니라 소수를 위한 정치적 특례조치인 것이다.

균열일터에 대응하는 과감한 공공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고 공공부문의 과도한 처우는 고스란히 놔둔 채 공무원 수나 늘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외치는 것은 반개혁적이다. 그것은 공공부문의 철옹성을 도리어 강화시켜 진정한 개혁을 더욱 요원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수혜자에게는 ‘로또’이지만, 국민에게는 청구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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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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