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모스크로 전용이 추진돼 논란을 빚고 있는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photo 셔터스톡
박물관에서 모스크로 전용이 추진돼 논란을 빚고 있는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photo 셔터스톡

에게해에 빠진 지 10여년째다. 신화와 역사가 교차하고, 미(美)와 성(聖)으로서의 자연이 숨 쉬는 곳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때문이겠지만, 아마 한국인에게는 에게해보다 인근 지중해가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질 듯하다. 비슷하게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다른 바다가 지중해와 에게해다. 바다 아래와 위 그리고 주변의 환경·역사·문화·문명이 전혀 다르다. 몇 차례 경험해 보면 사진 한 장만 봐도 어느 바다인지 간단히 알아낼 수 있다.

에게해는 그리스와 터키에 인접한 좁고도 깊은 바다다. 동서 길이가 612㎞로, 지중해의 3900㎞에 비해 63분의 1 크기에 불과하다. 크고 강한 것보다 작지만 깊은 것에 한층 더 눈이 간다. 에게해는 그런 시선에 적합한 곳이다. 고대 그리스가 에게해, 고대 로마가 지중해를 배경으로 성장했다는 점은 너무도 의미심장하다.

만약 로마가 에게해에 인접한 곳이었다면, 반대로 그리스가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땅이었다면 인류의 문화·문명도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대리석 조각상, 신전 하나만 봐도 그리스, 로마 어디에서 창조됐는지 간단히 알아낼 수 있다. 두 바다의 차이를 안다면 두 제국이 창조해낸 문화·문명의 원형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에게해와 지중해의 차이

일몰 풍경은 에게해와 지중해를 비교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부분이다. 일출은 비슷하지만 일몰은 전혀 다르다. 험한 산은 에게해를 이해할 수 있는 첫 번째 단서다. 급경사 바위산과 바다의 조화는 에게해만의 풍경이자 특징이다. 깎아지른 절벽 바로 밑이 푸른빛 크리스털 에게해다. 지중해 주변에도 깎아지른 바위산이 많다. 그러나 주류는 모래나 땅으로 연결된 바다다.

로마의 수도는 7개의 낮은 언덕을 배경으로 한 평지다. 그리스 아테네 신전이 집결된 아크로폴리스는 해발 150m 절벽 바위산에 들어서 있다. 평지에서 보는 것과, 기암절벽에서 경험한 일몰은 전혀 다르다. 수평선에 걸린 태양의 색깔은 물론 주변의 분위기, 새들의 울음소리조차 다르다. 크기에서 오는 차이겠지만, 지중해는 인간의 상상력과 손길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초대형 우주 이벤트’를 위한 공간이다. 에게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고 숨소리, 땀 냄새도 나눌 수 있는 작은 ‘극장용 무대’ 같은 바다다.

‘빛에 반사된 바다의 모습’은 두 바다를 구별하는 분기점 중 하나다. 태양과 수평선에 얽힌 풍경도 다르지만, 태양의 위용을 받쳐주는 바다의 모습이야말로 확실하게 다르다. 지중해는 ‘반짝반짝’, 에게해는 ‘울퉁불퉁’이란 부사가 어울리는 바다다. 지중해에서 펼쳐지는 초대형 이벤트의 주연은 태양이다. 바다 전체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는, 지중해의 주인이기도 하다. 일몰 직전의 바다 전체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감사의 마음을 태양에 전하려는 지중해 전체의 몸짓일지 모르겠다. 살아있다는 것을 자랑하면서 태양에 화답하는 풍경이다. 극장용 무대로서의 에게해는 깊고도 은은한 맛을 내는, 손에 잡히는 공간이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바다 표면에 드리워진 수많은 그림자가 핵심이다. 빛이 옆에서 비치면서 드러난 엷은 흔적이다. 처음엔 그림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랐다. 물살을 가르고 지나간, 뱃길의 일직선 윤곽이란 것을 현지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됐다. 바다 위 ‘울퉁불퉁’한 흔적이 마치 삶의 궤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대형 여객기가 남긴 넓은 흔적, 작은 어선이 만들어낸 좁은 뱃길이 교차한다. 모두 열심히 살았고 나름대로 흔적도 만들었다. 그러나 해가 수평선으로 넘어가면서 크고 작은 흔적도 전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호화 여객선이든 밥벌이 어선이든, 신이 창조해낸 세계에서는 전부 ‘무(無)’로 끝난다. 흥미로운 것은 바다 위 뱃길의 흔적이 하루 단위로 전부 정리된다는 점이다. 다음 날 일출과 함께 크고 작은 그림자 전부가 에게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아야 소피아 내부. 입구에서 중앙 제단까지 거리가 82m에 이른다. ⓒphoto 연합
아야 소피아 내부. 입구에서 중앙 제단까지 거리가 82m에 이른다. ⓒphoto 연합

그리스정교 성당에서 모스크로, 박물관으로 변신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Hagia Sophi)는 에게해 일몰을 지켜볼 수 있는 최고 최적의 공간이다. 에게해를 통틀어 인간이 창조해낸 문화·문명의 정수(精粹)가 아야 소피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정교 대성당으로, 537년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세워졌다. 이후 이슬람이 지배자로 변한 뒤에도 살아남은, 인류 모두의 기억이자 유산이다. 건립 이래 무려 1483년간 현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야 소피아는 ‘성스러운 지혜’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를 기원으로 한 말이다. 지혜만이 아니라, 크기 면에서도 무려 1000년 가까이 세계 최대 실내 건물로 군림해왔다. 1520년 이탈리아의 가톨릭이 아야 소피아를 의식해 조금 더 크게 만든 것이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이다. 실외 건축물로서 1세기 건립 이래 19세기 초까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 곳이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이다. 검투사가 벌인 죽음의 이벤트와 더불어 황제 네로가 기독교도를 처형한 곳이기도 하다. 동에서는 신을 찬미하는 성(聖)의 공간이, 서에서는 기독교 탄압을 위한 피(血)의 무대가 세계 최대 건축물의 역사다.

비잔틴제국은 1453년 멸망한다. 이슬람의 오스만제국이 새로운 주인이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개명된다. 아야 소피아는 곧바로 이슬람 모스크로 재활용된다. 오스만은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용 모델 사원으로 지정한다. 이란·이라크·시리아와 달리 정형화된 모스크 모델이 없던 나라가 오스만이다. 곳곳에 세워진 기존의 그리스정교 성당들이 모스크로 개조된다. 우상을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성당 내 예수와 마리아, 성자에 관한 벽화·모자이크·장식물들도 전부 철거된다. 기존의 대성당에 없던 이슬람의 새로운 건축양식도 하나 추가된다. 뾰족하게 세워진 첨탑, 즉 미나레트(Minaret)이다. 경전 쿠란(Quran)을 전하는 초대형 스피커 타워이자 모스크를 지키는 호위무사로서의 첨탑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기독교 전체의 숨통을 조이는 예리한 창과 칼로 비친다. 아야 소피아는 1931년 새롭게 변신한다. 공화국 터키가 박물관으로 개장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나 이슬람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열린, 문화·문명 그리고 역사의 현장으로 바뀐 셈이다. 21세기 아야 소피아는 이스탄불을 찾은 관광객의 0순위 방문지로 부상한다. 유네스코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종교·인종·민족을 초월한 에게해 최대 명소가 된다.

아야 소피아에 가본 사람이라면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올 것이다. 서쪽으로 통하는 입구에서 중앙 제단이 놓인 동쪽 끝까지의 거리가 무려 82m에 달한다. 폭은 73m, 초대형 돔형이 들어선 지붕까지의 높이도 55m에 달한다. 중간에 기둥이나 장애물이 없이 하나로 뻥 뚫린 개방형 건축물이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출발점이 된 도시다. 이탈리아인이 ‘피렌체 두오모(Duomo di Firenze)’라 부르는 대성당은 도시 한복판을 지키는 르네상스 걸작 건축물로 통한다. 천재 건축가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가 1463년 완성한 것으로 무게를 밖으로 분산시킨 초대형 돔 지붕에 관한 일화가 유명하다. 받침대가 없는 상황에서, 잘못하다가는 그대로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것이 돔형 지붕이다. 따라서 두오모를 만들어낸 브루넬레스키가 얼마나 대단한 건축학자인지에 관한 얘기는 르네상스 역사의 단골메뉴 중 하나다. 그러나 아야 소피아의 돔 지붕을 본다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한계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아야 소피아보다 ‘무려’ 900년 이상 늦게 탄생한 것이 브루넬레스키 지붕이기 때문이다.

케말 파샤의 박물관 전용 지침 뒤집어

2020년 전염병하의 여름 날씨와 함께 이스탄불발 뉴스 하나가 유럽 전체를 달구고 있다.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용 문제다. 박물관이 아니라 모스크로 바꾸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현재 터키 법원의 최종판결이 남은 상태로 7월 중순 이전까지 결정될 것이다.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용은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이 주창한 것이다. 지난해 총선거 때 모스크 전용을 공약으로 내세운 인물이 에르도안이다. 이후 어용단체의 헌법 소원이 터키 대법원에 해당하는 국가최고위원회에 전달된다. 이슬람 신자를 위해 박물관이 아닌 모스크로 바꾸는 것이 합법이란 주장이다. 헌법상 공화국인 터키는 정교분리에 입각한 나라다. 50대 이상 한국인이라면 한때 터키가 한국의 모델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듯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5·16군사정변의 주체세력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미래의 모델 중 한 명이 터키의 국부 케말 파샤(Kemal Pasha)다. 정교분리 원칙에 입각해 유럽형 근대화를 단기간에 시행한 인물로, 터키인 대부분이 존경하는 명실상부한 국부다. 1931년 아야 소피아의 박물관 전용도 정교분리에 입각한, 케말 파샤가 내린 결단의 산물이다.

에르도안의 생각은 국부가 내린 결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정교분리가 아니라 정교합치를 주장하는 인물이 에르도안이기 때문이다. 세속화한 터키가 아니라 이슬람으로 재무장한 마호메트의 나라로 가자는 발상이다. 이미 400만으로 추정되는 시리아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쿠란에 명기된 이슬람 형제에 대한 의무에 기초한 것이라 강조한다.

현재 터키 내 찬반여론은 거의 50 대 50이다. 에르도안이 아야 소피아 문제를 꺼낸 것은 너무도 간단하다. 정치적·경제적 실정을 만회하고, 종교를 통해 지지기반을 다지자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유럽 언론은 분석한다. 한국 정치에서도 상식화된 ‘이벤트 쇼’ 소재로서의 아야 소피아인 셈이다. 반대로 이슬람 열혈 신자들로부터의 찬성도 만만치 않다. 주변의 이슬람 국가도 에르도안을 ‘줏대 있는 이슬람 전사’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기독교에 맞서는 성전(聖戰)으로까지 찬미되는 판이다. 아야 소피아 문제는 터키만이 아닌, 세계 기독교권 전체의 반발도 불러일으킨다. 그리스정교의 대부 격인 그리스, 가톨릭권인 유럽과 러시아정교도 모스크 전용에 반대하고 있다. 폼페이 미국 국무장관도 지난 7월 3일 특별성명을 통해 “계속해서 아야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운용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아야 소피아가 갖는 역사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이슬람·기독교 사이의 평화와 화해를 상징하는 공간이란 점에서 박물관 유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스탄불 외곽에 있는 그리스정교 총본부. ⓒphoto 연합
이스탄불 외곽에 있는 그리스정교 총본부. ⓒphoto 연합

초라한 이스탄불 외곽의 그리스정교 총본부

이스탄불의 바르톨로메오스 1세(Bartholomew 1st)는 아야 소피아 문제와 관련해 전 세계의 이목을 받는 인물이다. 전 세계 3억 신자를 가진, 그리스정교의 총주교(Ecumenical Patriarch)다. 로마 바티칸의 교황에 버금가는 위상과 의미를 가진 그리스정교 수장이다. 정교 총본부가 그리스가 아닌 이스탄불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듯하다. 바티칸이 그러하듯 기독교도라면 그리스정교 총본부 방문이 종교적 의무다. 그리스정교 총본부는 이슬람이 지배하기 시작한 1453년 이후 터키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스로 옮기거나 정교 인구가 대부분인 러시아로 갈 수도 있었지만, 과거의 콘스탄티노플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 언젠가 콘스탄티노플이 다시 기독교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신념 때문이다. 이슬람의 관용이기도 하지만 오스만제국도 기독교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았다. 제국 내에 흩어진 수많은 기독교 신자와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그리스정교 총본부 유지를 허락한다.

아야 소피아를 기반으로 했던 그리스정교 총본부는 현재 이스탄불 외곽의 주택지로 옮겨갔다. 1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허름한 공간으로 바티칸에 비하면 판잣집 수준으로 보인다. 기독교도라면 접하는 순간 비통한 심정이 들 것이다. 이슬람 치하에서 얼마나 많은 박해가 있었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제단으로 통하는 성당 중앙문 위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총주교도 있다. 제270대 바르톨로메오스 1세 총주교는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용에 반대한다. 그러나 큰 목소리로 반대의사를 명확하게 나타낼 수는 없다. 종교분쟁이 에게해, 나아가 지구 전체로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정교를 향한 이슬람의 테러가 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총본부에 들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리스정교 신자보다 주변을 지키는 경찰과 보안요원이 더 많다. 총주교는 24시간 암살의 위협에 시달린다.

“에게해가 안 보인다.”

최근 그리스정교 총본부를 찾았을 때 가장 가슴 아프게 느낀 부분이다. 그리스정교는 에게해를 통해 성장한 종교다. 예수 한번 만난 적 없는 사도 바울이 바다를 오가며 개척한 종교가 그리스정교의 원류다. 그러나 이스탄불 외곽으로 떠밀려간 그리스정교 총본부는 주변의 집들로 인해 앞이 꽉 막힌 상태다. 이 글이 나갈 때쯤 아야 소피아의 운명이 변해 있을지 모르겠다. 이벤트성 정치적 욕심 때문에 ‘울퉁불퉁’ 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큰 여객선의 흔적이 작은 어선의 뱃길을 전부 잠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몰과 더불어 전부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일출과 함께 어제의 흔적을 전부 지우고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곳이 에게해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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