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흐바르 섬에서 여름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 ⓒphoto 이경민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에서 여름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 ⓒphoto 이경민

코로나19로 엄혹한 중에도 어김없이 바캉스의 계절이 돌아왔다. 내가 본 유럽인들은 보통 한 달씩 휴가를 떠난다. ‘연차가 무제한으로 나오나’ 싶을 정도다. 유럽의 공연장과 국립극장들 가운데엔 7월 초중순을 기점으로 상반기의 일정들을 마무리하고 8월말까지 여름휴가 기간을 갖는 곳들도 많다. 이 시기에는 관공서 업무도 보기 어렵다.

처음 이런 여름 바캉스 문화를 경험하면 ‘이 나라 사람들은 일을 하는 건가’ ‘ 이래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나’ 싶었다. 하지만 오후 4시만 돼도 깜깜해지는 유럽의 겨울을 겪어본다면, 유럽 사람들이 왜 그토록 여름휴가를 학수고대하고 온전히 즐기는지 알 수 있다.

많은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최애’ 계절도 역시 여름이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에게 여름은 실컷 일광욕을 하고 초록빛 바다의 시원함을 마음껏 즐기는 계절이다. 북동부 내륙지역에 사는 크로아티아 사람들 가운데엔 아드리아 해안 도시에 여름용 별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자그레브 리브냑 공원에 앉아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 ⓒphoto 이경민
자그레브 리브냑 공원에 앉아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 ⓒphoto 이경민

내가 겪어본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유난히 현재를 중요하게 여긴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도 현재에 충실한 삶을 위해 노력한다. 하루의 생기를 되찾기 위해 매일 아침 집 앞 꽃 파는 수레에서 꽃을 사가는 사람들이 많다. 또 가게의 회전율을 조금 올리겠다고 카페에 오래 앉아 따뜻한 커피를 즐기는 행인을 내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추운 겨울을 지나 다시 돌아온 여름이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일조량이 풍부해지는 여름이 되면 도시 곳곳에서 여름을 만끽하기 위한 크고 작은 축제들이 열린다. 올해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평소보다 다소 위축되긴 했지만, 소박하게나마 여름 축제가 시작되는 분위기다.

수도 자그레브 시내를 걷다보면, 누구나 여가를 즐기며 쉴 수 있도록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공원들과 마주친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인테리어용 전구와 리본, 풍선 등 각종 조형물을 활용해 공원을 아름답고 황홀한 장소로 바꿔 놓았다. 가족과 아이들, 연인과 친구들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한데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내가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그레브 리브냑 공원에서 열린 여름행사 ⓒphoto 이경민
자그레브 리브냑 공원에서 열린 여름행사 ⓒphoto 이경민

어퍼 자그레브 공원에서 아이들을 위해 인형극 공연하고 있다. ⓒphoto 이경민
어퍼 자그레브 공원에서 아이들을 위해 인형극 공연하고 있다. ⓒphoto 이경민

일반적으로 미국보다 유럽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고들 표현한다. 그런데 그런 유럽 국가들 가운데에서도 크로아티아는 느리기로 유명하다. 언젠가 여행 중 들른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4박 5일간 머물던 아담하고 오래된 호텔의 리셉션에서 프론트를 보는 아저씨와 대화를 하게 됐다. 그는 내게 “여행을 마치면 어디로 돌아가냐”고 물었고 나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돌아간다”고 대답했다. 그때 그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가 아는 바로는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어쩌면 게으르다 생각할 정도로 시간이 느리고 더디게 흘러가는 곳이라고 들었어. 프랑스도 한국보다는 느린 템포를 가진 곳이지만 크로아티아는 더 그렇다고 하더라. 내가 며칠간 지켜보니 너의 시간은 상당히 느리게 가는 것 같은데. 어쩌면 그래서 네가 한국을 떠나 크로아티아에서 지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자그레브에 조성된 인공호수 공원 분덱 공원. ⓒphoto 이경민
자그레브에 조성된 인공호수 공원 분덱 공원. ⓒphoto 이경민

분덱공원에서 여름행사로 오페라 공연을 하고 있다. ⓒphoto 이경민
분덱공원에서 여름행사로 오페라 공연을 하고 있다. ⓒphoto 이경민

여름을 맞아 날씨가 좋아진 만큼 거리나 공원에서 보는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시원한 야외를 찾아 나선 사람들도 늘었다. 다시 높아지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로 인해 크로아티아 정부는 대중교통과 상점 등을 이용할 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예전처럼 맘 놓고 공원과 바다를 즐기기엔 다소 제약이 있지만,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재를 즐기고 있다. 모든 불행 뒤에도 긍정의 면이 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활동의 제약은 늘었지만, 질병의 창궐로 인간의 소비 생활이 줄며 자연 환경은 본연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있지 않은가. 예년보다 관광객이 줄어 수입이 대폭 줄었지만,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힘든 일보다 그로 인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행복’을 찾아내고 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경민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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