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떤 친여 시민단체 대표는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 변호인을 무고(誣告) 혐의로 고발했다. 달이 바뀌어도 다양한 형태의 2차 가해가 그치지 않고 있다. 이런 세태에 분노한 젊은이들이 요즘 새삼스럽게 꺼내든 책이 있다. 바로 김지은의 ‘김지은입니다’(2020)이다. 알다시피 저자는 안희정 성폭력의 피해자다. 부제는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이다.

저자는 미투 고발부터 대법원 판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겪은 경험을 힘들여 한 땀 한 땀 적고 있다. 이 고통스러운 사연을 대하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러나 일단 읽기 시작하면 곧바로 ‘어?’ 하고 놀라며 저자의 호소에 녹아든다. 등장인물들만 다를 뿐, 이것이 안희정사건인지 박원순사건인지 헷갈린다. 이런 공통점이 바로 성범죄의 전형적 속성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안희정사건을 고발한 이 책을 통해 박원순사건을 읽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동안 안희정에게 수차례 성폭력을 당해 왔습니다.” 저자는 2018년 3월 5일 TV를 통해 충격적 폭로를 했다. 당시에는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미투가 한창 화두였다. 그런 와중인 2월 25일 안희정은 저자를 불러 미투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는, 그 자리에서 또다시 성폭행을 저질렀다. 그리고는 버젓이 “미투를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동안 안희정은 몇 차례 성폭행을 저지를 때마다 말로는 “잘못했다. 잊어라”라고 했다. 그때마다 마지막이기를 바랐으나 번번이 헛된 기대였다. 저자는 더 이상 성폭력을 당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분을 보호받으며’ 고발하려고 했지만, 상대가 유명인이라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공개적인 폭로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폭로 및 고발 움직임을 보이자, 안희정 측의 2차 가해가 시작되었다. 비서실은 재빠르게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발표했다. 안희정은 소셜미디어에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다. 모두 제 잘못이다”라고 적고는 곧바로 지사직을 사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거물급 변호사들을 고용하고는 갑자기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강변하기 시작했다.

안희정 측의 조직적인 2차 가해는 고스란히 변호인의 변호 논리로 쓰였다. 부부 침실에 들어왔다느니, 지사를 좋아했다느니 등등이다. 그중에 단골 메뉴는 “왜 참았느냐?”다. 대학원까지 나온 엘리트 여성이 즉시 문제 삼지 않은 것이 수상하다고 했다. 더구나 피해를 당했다면서도 ‘웃으면서’ 비서직을 수행했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피해자답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은장도(銀粧刀) 서사다. 이 서사에 따르면, 남자가 침해하려고 할 때 여자는 물어뜯고 문을 박차고 뛰쳐나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한다. 그것이 어려우면 머리를 벽에 짓찧고 흉기로 자신을 찔러 최소한 자해라도 시도해야 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봉건적 열녀(烈女) 이미지가 지금도 모든 피해자들을 괴롭힌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사건마다 조건이 다르다. 또한 어떤 절박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사람은 평소 생각대로 반응하지 못한다. 따라서 반응은 개인에 따라 다르고, 같은 사람도 환경에 따라 다르다. 더구나 권력관계로 짜인 인간관계에서는 또 다르다. 그런데도 유독 성범죄 피해자에게는 ‘틀에 박힌’ 반응, 즉 피해자다움이 부당하게 강요되고 있다.

저자는 넉넉지 못한 집안의 장녀로서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노동자였다. 어렵사리 대학을 나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의 자리를 얻기 위해 야간에 대학원을 다녔다. 그래서 계약직 연구원이 되었다. 마침 계약기간이 끝날 무렵, 지인의 권유로 안희정 당내 대선후보 캠프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생계와 이상을 위해 악착같이 일을 했다.

2017년 7월 저자는 수행비서로 발탁되었다. 여성 수행비서는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외국 방문 수행 중 첫 성폭행을 당했다. 이를 악물고 남은 일정을 차질 없이 소화했는데, 이것도 나중에 “피해자답지 않았다”는 빌미가 되었다. 그 이후로 성폭행과 추행이 지속되다가, 4개월 만에 갑자기 수행비서직에서 경질되었다. 발탁도 경질도 오로지 안희정의 뜻이었다. 그러고도 이듬해 2월 미투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 또다시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1심 법정에서 16시간 동안 질문은 오로지 저자에게만 집중되었다. 반면 안희정에게는 아무런 질문도 없었다. 더구나 안희정 측 변호인의 변호 내용은 선정적인 가십으로 가공되어 요란하게 언론을 장식했다. 비록 지사직은 내려놓았어도 안희정의 위력은 여전했다. 1심 재판부는 “위력은 있었으나 행사되지 않았다”는 해괴한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 사이에 저자는 심신의 고통으로 병원을 드나들며 약을 먹어야 했다. 몸이 엉망으로 망가졌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또한 무채색 옷으로 몸을 감싸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다. 다행히 2심, 3심을 통해 안희정의 유죄가 확정되었다. 저자는 사법적으로 승리했지만, 아직 정상적인 삶은 요원하다. 물론 많은 사람의 연대와 응원으로 용기를 얻고 있다.

안희정은 전지적(全知的) 지도자로 군림했다. 조직은 그의 언행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했다. 자연히 비서의 핵심 업무는 ‘지사님 기분 관리’였다. 더구나 “여자가 있으면 지사님의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말이 거리낌 없이 회자되었다. 그러니 ‘여성’ 수행비서의 역할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투였다. 고충을 호소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안희정은 저자에게는 하늘 같은 ‘지사님’이었다. 이런 엄청난 위력 속에서 성폭행이 벌어지고 성추행이 일상화되었다. 흔히 이런 성범죄는 한 차례 또는 한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 역시 자신뿐만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가 존재한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피해를 호소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침묵하고 만다. 그런 와중에 범죄는 더욱 상습화된다.

저자가 어렵사리 미투를 하자, 안희정의 ‘조직’이 총동원되어 ‘2차 가해’를 벌였다. 박원순사건의 경우에는 아예 ‘진영’이 통째로 움직였다. 직접적인 2차 가해뿐만 아니라 망자에 대한 우상화, 요란한 장례, 화려한 여성운동 출신 정치인들의 노골적 침묵 등 간접적인 2차 가해가 속출했다. 이런 다양한 2차 가해가 피해자의 심신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안희정과 박원순의 잘못은 닮은꼴이다. 그들은 성범죄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피해자들을 2차 피해의 난장(亂場)으로 몰아넣었다. 저자는 절규한다. “성폭력이 비공개적 살인이라면, 2차 가해는 공개적 살인이다.” 심지어 박원순은 생을 마감하면서도 가족과 ‘내 삶을 함께해준 모든 분들’만 챙기고, 끝내 피해자를 외면했다.

저자는 모두가 그의 호소를 외면했지만, 한 선배가 “돕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고발할 용기를 얻었다. 또한 지금도 주변의 응원과 지원으로 더디지만 정상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만큼 피해자에게는 연대와 응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김지은입니다’를 읽다 보면 성범죄와 2차 가해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분노하며, 이 세상의 ‘모든 김지은들’에게 진심으로 연대와 응원을 보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젊은이들이 지난봄에 나온 이 책에 새삼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물론 젊은이들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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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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