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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5호] 20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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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책]재난이 낳은 광신적 숭배, 대통령 권력 팽창의 역사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pcsun21@daum.net

요즘 대통령 지지율은 코로나19가 진정되면 떨어지고 코로나19가 고조되면 덩달아 올라간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이런 재난 앞에서 대중은 그런 신뢰에 더욱 기댈 수밖에 없다. 만약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대통령은 곧바로 ‘전시’ 사령관이 된다. 이처럼 전시 또는 그에 준하는 비상 상황은 대통령의 권력을 대폭 확대시킨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려 민주주의를 위협할 우려가 있다.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 진 힐리의 ‘대통령의 컬트’(The Cult of the Presidency·2008)이다. ‘cult’는 숭배, 추종, 광신적 사이비 종교집단 등을 두루 의미한다. 또한 ‘presidency’는 대통령 개인보다 자리나 직(職)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대통령직에 대한 광신적 숭배’가 제목이 암시하는 이 책의 주제인 것이다.
   
   저자는 조지 워싱턴부터 조지 부시 2세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의 권력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에 따르면, 19세기까지 비교적 억제되던 대통령의 권력은 20세기에 들어서 극적으로 확대되었다. 무엇보다 권력은 스스로 증식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일반 시민들도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전능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도한 기대 심리 역시 대통령의 권력 팽창을 부추기는 배경이 되고 있다.
   
   전제왕정을 혐오한 건국의 설계자들은 대통령을 ‘최소한의 지도자(minimum leader)’로 규정했다. 그들에게 국정의 중심은 의회였다. 대통령은 의회의 결정을 집행하는 책임자일 뿐이다. 특히 그들은 대통령이 포퓰리스트나 선동가가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래서 초기의 대통령은 사람들을 상대로 연설도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 토머스 제퍼슨은 의회에서 연두연설조차 왕의 연설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문서로 대체했다.
   
   물론 다소 예외인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링컨이다. 그는 내전을 지휘하며 연설도 자주 하고 반역자들의 투옥, 노예해방 선언, 남부에 대한 군사적 점령정책 등 상당히 독자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것은 추세라기보다 그의 개인 역량에 힘입은 바가 크다. 실제로 후임자 앤드루 존슨은 의회에 의해 탄핵 공세를 받았다. 이처럼 대략 19세기까지 대통령의 권력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대통령은 여전히 의회를 절대적으로 존중했다.
   
   이런 추세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 시오도르 루스벨트였다. 그는 자신이야말로 진보 시대를 이끄는 강력한 향도자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에게 의회는 신속한 개혁을 방해하는 성가신 존재였다. 그는 사회악 척결을 명분으로 권력을 확대했다. 뒤이어 우드로 윌슨도 전쟁을 수행하며 대통령의 권력을 더욱 팽창시켰다. 이런 추세는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얼마 후 대공황 시대에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통령의 권력을 결정적으로 강화했다. 그는 대통령실에 가해진 제한을 제거하고 보좌진을 대폭 늘려 방대한 관료조직을 만들었다. 또한 법원을 압박하고 의회를 겁박하며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했다. 특히 라디오를 통한 그의 노변 담화(爐邊 談話)는 유명하다. 심지어 그는 임금과 가격을 규제하고 국내 사찰을 강화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점점 발전해가는 미디어의 기능이다. 의회나 법원은 한 사람을 통해 한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반면 행정부는 대통령 한 사람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만큼 대통령은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며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기가 유리하다. 이처럼 미디어의 발전도 대통령에 대한 컬트를 부추기는 배경적 요소가 되었다.
   
   그 이후로 대통령들은 자신을 대중의 호민관으로 여기고 의회와 법원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바야흐로 대통령은 전쟁, 재난, 실업, 빈곤, 건강, 안전, 심지어 도덕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전능한 존재로 여겨졌다. ‘살아있는 신’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후보)도 그렇게 주장하고 유권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말 그대로 대통령의 컬트가 완성되었다.
   
   이처럼 확대일로를 걷던 대통령의 권력은 커다란 암초를 만났다. 첫 번째는 베트남전쟁이다. 이 전쟁의 실패로 인해 대통령은 신뢰를 잃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타격은 워터게이트사건이다. 닉슨이 탄핵 위기에 몰려 사퇴하면서 대통령은 불신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이로 인해 포드, 카터, 클린턴 등은 다소 약화된 권위에 만족해야 했다.
   
   물론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대통령에 대한 대중적 신뢰는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대통령의 권력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9·11테러가 발생하자 ‘인기 없었던’ 부시는 국가안보를 내세워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국내 사찰을 강화하고 기본권을 제한하는 강력한 조치를 연달아 내놓았다. 그는 ‘전시’ 대통령의 권한을 유감없이 휘둘렀다.
   
   이로써 베트남전쟁과 워터게이트사건 이후 다소 움츠러들던 대통령의 권력은 9·11테러를 계기로 고삐가 풀려 도리어 한층 더 강화된 모양새가 되었다. 한마디로 대통령은 ‘돌아온 슈퍼맨’이 되었다. 더구나 “미국인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지만, 정부가 더 많은 것을 해주기를 (여전히) 원한다”. 이래저래 대통령의 권력은 줄어들기 어려운 노릇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대통령의 권력이 극적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있다. 바로 전시이거나, 또는 그에 비견되는 비상국면이다. 링컨은 내전을 지휘했다. 시오도르 루스벨트는 진보 시대에 사회악과 대결했다. 윌슨은 1차 세계대전을 치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공황과 싸웠다. 2차 세계대전도 발발했다.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내걸었다. 이라크도 침공했다.
   
   전시나 그에 준하는 비상 상황에서는 불가피하게 민주적 과정보다 즉각적 효율이 선호된다. 그로 인해 대통령의 권력은 순식간에 확장되고 민주주의는 위축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전쟁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상 상황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목전의 코로나19 사태도 그중 하나다. 문제는 ‘비상’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지극히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가짜 우상’(False Idol·2012)을 통해 오바마도 가짜 우상 행세를 한다고 비판한다. 오늘날 트럼프의 전횡도 세계적 관심거리다. 그러나 미국은 의회와 법원의 입지가 비교적 견고하다. 더구나 국가권력이 주(州)로 상당히 분산되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회와 법원의 독립성이 취약하다. 무엇보다 국가권력이 대통령 일점으로 집중되어 있다. 또한 대통령에 대한 대중적 기대심리도 강하다. 대통령의 권력이 폭주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의료인들이 의료 현장을 떠난다는 것은 전시 상황에서 군인들이 전장을 이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질타했다. 이처럼 대통령(들)은 호시탐탐 ‘전시’ 사령관으로서 전권(全權)을 욕망한다. 아울러 최근에 대통령에 대한 팬덤이 생겨나더니 지금은 아예 컬트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대통령교(敎)가 만들어졌다.
   
   이런 과도한 기대는 필연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을 초래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제왕을 쫓아내고 탄생한 제도다. 오늘날 한껏 방만해진 대통령의 권력은 아무리 견제받아도 부족하다. 당장 필요한 것이 코로나19 사태를 전시 상황에 빗대려는 유혹을 최대한 경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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