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호정
ⓒphoto 김호정

신석기시대에 한반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토기로 알려진 빗살무늬토기. 계란형 토기의 겉면에 빗살, 동그라미, 점 등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다. 편의성에 미적감각을 더한 신석기시대 대표 유물 중 하나다. 오래전 한반도의 인류가 사용했던 이 토기에 현대적 해석을 더하는 도예가가 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김호정이다. 한반도 빗살무늬토기 특유의 길고 완만한 곡선을 모티브로 삼아 그 위에 다양한 색깔과 질감을 얹는다. 말 그대로 가장 한국적인 것과 가장 현대적인 것의 조화다.

세계 도예시장은 작품의 가치를 빠르게 알아봤다. 지난 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재 전시회 ‘암비엔테(Ambiente)’에 ‘주목할 만한 신진작가(Fresh)’로 선정돼 참가했다. 암비엔테는 한 해의 제품 트렌드를 미리 점쳐볼 수 있는 자리로, 전 세계 개인 및 그룹, 기업 등의 제품이나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김 작가는 ‘신진작가’와 ‘트렌드’ 분야에 이름을 올렸다. 주최 측 역시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고유함(uniqueness)과 다양성(diversity)에 주목했다. 이에 앞서 독일 뮌헨에서 열린 ‘2020 수공예 디자인 박람회(Handwerkskunst und Design auf der)’와 2019년 영국도자기비엔날레에도 초청을 받았다. 2016년 홍익대에서 산업도자 전공으로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28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영국 유학을 시작해 거둔 결실이었다.

“대학생 시절 1990년대 이전 시대의 물건 중 하나를 골라 형태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했었다. 그때 처음 빗살무늬토기에 ‘꽂히게’ 됐다. 고대(古代) 유물의 형태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늦깎이 유학길에 오르며 영국을 선택한 것도 ‘고대 유물’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이 작용했다. 영국은 방대한 양의 고대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18세기 산업혁명에 반해 일어난 ‘미술 공예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의 진원지인 만큼 공예산업에 대한 전통 역시 강한 나라다. 김 작가는 “스스로에게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가’를 물었을 때 ‘도자기의 기원에 대한 탐구’가 궁극적인 답이었다”며 “영국 특유의 ‘앤티크 문화’ 때문인지 영국에서 작품 전시를 하고 나면 이메일 등을 통해 관객 피드백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그는 ‘자연’이라는 주제의식에 집중하고 있다. 작품 안에서 자연의 재료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혹은 작품 그 자체가 자연이 되는 작업들이다. 빗살무늬토기의 원형을 따온 토기라는 매개물 위에 색과 질감으로 자연을 드러내려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국 서머싯의 공예전문전시관인 ‘메이크 하우저 앤드 워스 서머싯(Make Hauser & Wirth Somerset)’에서 열린 ‘핸드 앤드 랜드(Hand and Land)’ 전시(9월 12일~11월 14일)는 그가 해온 작업의 결과물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핸드 앤드 랜드’라는 주제의 전시회가 잡힌 뒤 ‘흙’이란 재료 본연에 조금 더 집중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전시를 준비했는데, 오롯이 질감과 색감만으로 표현하기 위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다.”

얼마 전 귀국한 김 작가는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개인적 영감을 얻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분간 어스(earth)란 주제의식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저 작은 도자기 하나일 뿐이지만, 이것을 바라보며 자연의 풍경이나 정서를 느꼈으면 한다. 팬데믹으로 답답한 실내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 내 작품이 ‘작은 자연’을 만나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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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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