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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특집 2]  ‘집콕’ 연휴, 딱 4권의 책을 꼽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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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27호]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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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2]‘집콕’ 연휴, 딱 4권의 책을 꼽는다면?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pcsun21@daum.net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꼰대다
   아거
   꼰대의 발견
   
   “라떼 라떼 라떼 라떼는 말이야.” 가수 영탁의 ‘꼰대 라떼’는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꼰대질을 흥겹게 풍자한다. 이처럼 풍자가 흥겨울수록 현실은 그만큼 더 서글픈 것이다. 결국 영탁은 “제발 (꼰대질을) 그만 그만 그만해”라고 숨가쁘게 외친다. 이런 절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꼰대질을 조금 유별난 개인적인 일탈로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꼰대질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을 촘촘히 속박하는 사회적·정치적 악습이라고 주장하는 논쟁적인 비평이 있다. 바로 아거(필명)의 ‘꼰대의 발견’(2017)이다. 저자는 마흔을 넘기면서 어느새 자신도 꼰대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하며, 이런 ‘발견’이 꼰대를 ‘탈출’하는 출발점이라고 역설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꼰대 탈출 프로젝트’라는 부제도 붙었다.
   
   오늘날 꼰대란, 남보다 서열이나 신분이 높다고 여기고, 자기가 옳다는 생각으로 남에게 충고하는 것을, 또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꼰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을 내뱉고, 항상 자신에 찬 모습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탓에 자신이 꼰대라고 자각하기란 쉽지 않다.
   
   “나 때에는…” 이것이 바로 ‘꼰대 라떼’의 어원이다. 자신의 과거 경험을 통해 상대를 바라보고 재단하려는 것이 꼰대의 대표적 특징이다. 꼰대는 나이가 많으면, 직위가 높으면, 권력이 많으면, 당연히 어른 대접, 선배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한 살(학년) 차이라도 꼰대질을 벌인다. 이로 인해 젊은 꼰대가 양산되고, 꼰대의 조로현상이 만연한다.
   
   “내가 누군지 알아? 어디서 감히?” 꼰대는 무턱대고 인정욕구에 목말라한다. 자신의 지위가 우월하여 대우도 무조건 우월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사회는 평등주의가 강하다. 그런데 남에게 지기 싫은 평등 심리는 동시에 남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차별 심리를 낳는다. 살벌한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차별과 서열을 당연시하는 꼰대가 된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철저한 서열의식과 귀천 관념,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짓밟으면서 쾌감을 느끼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이런 환경에서 꼰대는 상대에 대한 모욕을 자신의 인정욕구 충족이나 존재감의 확인 수단으로 이용한다. 특히 반말은 나이가 많거나 권력이 많거나 서열이 높다는 것을 과시하는 특권이다. 모욕과 반말이야말로 꼰대의 전형적 증표다.
   
   꼰대는 사생활에 관련된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특히 자신의 화려한(?) 과거를 들먹이며 상대를 타박하기도 한다. 충고를 가장한 무례다. 그러면서 무례한 줄도 모른다.
   
   또한 우리 사회는 순종과 복종에 길들여져 있다. 이런 환경에서 꼰대는 무오류의 존재가 된다. 그래서 회의에서는 높은 분의 말을 죽어라 받아적는다. 대통령 주재 회의가 압권이다.
   
   꼰대질은 결코 개인적인 일탈만이 아니다. 그것은 서열과 신분, 권위주의 등이 합쳐진 오랜 습속의 결과다. 즉 사회적 악습이다. 나이가 들면, 돈을 벌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누구나 저절로 꼰대의식에 물들게 마련이다. 따라서 “나는 절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꼰대 탈출은 절망적이다. “나도 꼰대다”라고 깨달아야 비로소 희미하나마 희망적이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김희경
   이상한 정상 가족
   
   요즘 아동 방치, 학대, 폭력에 관한 뉴스가 부쩍 늘었다. 얼마 전에도 인천의 불우한 한부모 가정에서 초등학생 형제가 라면을 끓이다가 화재가 발생해 중태에 빠졌다. 이른바 ‘라면 형제 사건’이다. 이러한 불행은 비정상(?) 가정에서나 발생할까. 정상(?) 가정의 아이들은 모두 행복할까. 더구나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이런 심각한 질문들을 날카롭게 파고든 문제작이 바로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 가족’(2017)이다. 이 도발적 제목은 우리가 가족에 대해 당연하다고 여기는 관념들이 도리어 이상한 것이라는 함의를 담고 있다. 이런 일그러진 풍토로 인해 가정 내에서는 아동 방치, 학대, 과보호, 폭력 등이 발생한다. 동시에 가정 밖으로는 차별과 혐오 등이 대수롭지 않게 벌어진다.
   
   우리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오로지 훈육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나아가 자식을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로 여기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인해 자식에 대한 과보호가 광범위하다. 반대로 방임도 적지 않다. 우리는 흔히 과보호에는 관대하고 방임에는 민감하다. 하지만 과보호나 방임은 속성상 다를 바 없다.
   
   과보호란 부모의 과잉 교육열과 지나친 간섭이 정서적·신체적 학대의 양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심지어 ‘방문을 떼어버리고’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는 일도 벌어진다. 반면 방임이란 말 그대로 자녀를 보살피지 않고 방치하는 현상이다. 그러다가 툭하면 자녀를 스트레스와 화풀이 대상으로 삼기 일쑤다. 결국 과보호나 방임은 모두 학대요, 폭력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는 가족을 공동운명체로 여기고, 부모는 자식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박이 만연되어 있다. 심지어 가족동반자살도 빈번하다. 그것은 냉정히 말해 자녀 살해다. 대개 부모는 자신과 자식의 자아를 분리하지 못하고, 자식의 인생이 따로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타인에게조차 ‘자식 같아서’라며 꼰대질을 벌이기도 한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강고한 가족주의 탓이다. 우리 사회의 가족은 압축적 근대화가 낳은 온갖 부작용의 해결사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근대화와 개인주의의 발달로 가족주의가 완화되기는커녕 도리어 더욱 강화되었다. 여기서 가족이란 법적으로 결혼한 부부와 그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가리킨다. 이런 가족이 이른바 정상 가족인 것이다.
   
   사회적 인식과 제도와 법은 오로지 이런 가족만 정상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비정상이다. 혼외출산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이 그렇다. ‘라면 형제 사건’도 이런 부조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아(棄兒)나 해외입양도 마찬가지다. 요즘에는 혈통이 달라도 비정상이다. 다문화 가족이나 이주 가족이 그렇다. 비정상은 가차 없이 차별과 불이익을 받는다.
   
   우리 사회는 강고한 가족주의, 과보호와 방치, 학대, 완고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차별과 혐오 등으로 얼룩져 있다. 이제는 아이를(심지어 장성한 자식까지도) 소유물로 대하는 생각이나, ‘정상’의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차별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아울러 사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족의 짐을 덜어주는 일도 매우 절실하다.
   
   

   두 바퀴로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김미영
   332일 자전거 여행
   
   우리는 ‘인생이란 기나긴 여행’이라는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여행은 인생 속의 또 다른 인생인 셈이다. 그러나 오늘날 여행을 그렇게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실제로 여행도 상업화를 피하지 못하고, 틀에 박힌 경험을 제공하는 소비재가 되고 말았다. 즉 여행이 관광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코로나19로 인해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간혹 이런 세태를 외면하고 도전적인 여행을 통해 아예 인생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반항자도 없지는 않다. 그중에는 직장도 그만두고 신혼여행 대신에 거의 1년 동안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8000㎞를 달려온 한국인 아내와 프랑스인 남편 커플도 있다. 이 젊은 부부의 도발적인 여행 이야기가 바로 김미영의 ‘332일 자전거 여행’(2015)이다.
   
   여자는 유학을 갔다가 남자를 만났다. 여자가 물었다. “브놔(이름)는 꼭 하고 싶은 게 있어?” 남자는 대답했다. “실크로드 오토바이 여행!” 그들은 결혼과 동시에 실크로드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1년 동안 꼼꼼히 준비를 했다. 오토바이로는 국경 통과가 쉽지 않다는 점을 알고는 자전거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남편은 5년간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었다.
   
   한 달여 동안 프랑스 동남쪽 엑상프로방스의 남편 친가에 머물면서 최종적인 준비를 마쳤다. 가족 중 누구도 그들의 결정에 간섭하지 않았다. 2013년 1월 14일, 쌀쌀한 날씨 속에 시집 식구들의 축하와 배웅을 받으며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스탄,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들은 허름한 호텔에서 묵기도 하고, 자기 집을 숙소로 제공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을 만나 신세를 지기도 했다. 또한 낯선 나라의 낯선 길을 달리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길 옆에서 그냥 텐트를 치고 잤다. 그것은 낭만적이면서도 아슬아슬했다. 더구나 먹거리가 떨어졌는데 한동안 식당이나 가게를 만나지 못해 극심한 허기에 시달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와 터키의 고도(古都)들을 둘러보고 이란에 입국했다. 특히 이란 사람들의 환대문화는 남달랐다. 부부는 여러 번의 초대를 받아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거기서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얻는 데 실패했다. 로망이던 실크로드 여행이 좌절되자 절망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곧바로 기운을 차려 동남아를 거쳐 중국으로 가기로 계획을 바꿨다.
   
   싱가포르, 태국, 라오스를 여행했다. 무더위와 모기떼에 시달렸다. 가도 가도 가게나 식당이나 인가가 나오지 않는 낯선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드디어 중국을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다시 기차로 목포까지 가서 남해안을 돌아, 12월 11일 경남 밀양의 친가에서 그리운 가족과 해후했다. 여행을 시작한 지 332일 만이다. 그들은 한동안 가족과 지낸 후 돌아갔다.
   
   부부는 이 모험적인 도전에 그들의 삶을 몽땅 쏟아부었다. 거기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일을 겪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두려웠지만, 여행을 하면서 그런 두려움은 사라졌다. 지금 그들은 또 다른 여행과도 같은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틀림없이 실크로드 여행도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인생이 여행이고 여행이 인생인 셈이다.
   
   

   오로지 두 발로 실크로드를 가로지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332일 자전거 여행’의 저자 김미영의 남편은 ‘실크로드 오토바이 여행’이 꿈이었다. 비록 이동수단이 자전거로 바뀌었고, 실크로드 대신에 동남아로 우회했지만, 젊은 커플의 정열적 도전이 마냥 부럽다. 하지만 그런 도전과 모험은 결코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60대의 어느 프랑스 전직 언론인은 오로지 두 발로 걸어서 이스탄불에서 시안(西安)까지 실크로드를 가로질렀다. 그 거리가 무려 1만2000㎞다. 이 엄청난 도보 여행 이야기가 바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대장정’ 제1권(2000), 제2권(2001), 제3권(2003)이다. 우리말로는 ‘나는 걷는다’ 제1·2·3권(2003)으로 소개되었다. 이 두툼한 3부작에는 그 흔한 풍경사진 한 장 없다. 오로지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적은 글로만 빼곡히 채워져 있다.
   
   저자는 반드시 ‘걸어서’ 실크로드를 횡단한다는 대원칙을 세웠다. 그는 1999년 5월에 시작하여 모두 네 차례에 나누어 실크로드를 완주했다. 겨울철에 산악지역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 재충전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질병으로 인해 부득이 요양을 하기도 했다. 휴식과 요양이 끝나면 어김없이 중단 지점을 찾아가 다시 이어서 걸었다.
   
   그는 옛날에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隊商)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그러다 보니 대로가 아닌 소로를 걸어야 했고, 도시가 아닌 시골마을을 거쳐야 했다. 이런 곳일수록 전통적 체취와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거기서 그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물론 때로는 적대적인 사람들도 있었고, 경찰이나 군인들로부터 심한 문초를 받기도 했다.
   
   그는 여름에는 더위에 시달렸고 겨울에는 추위로 떨어야 했다. 인도도 없는 긴 터널을 통과할 때는 대형차의 굉음에 고막이 터질 듯했다. 또한 인적조차 없는 외진 곳을 혼자 걷는 이방인을 발견하고는 많은 운전자가 멈춰 서서 동승을 강권했다. 그런 호의를 물리치느라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그의 도보 여행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장 큰 난관은 한여름에 사막을 통과해야 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많은 양의 물을 소지해야 했다. 그는 낙타를 구입할까 하는 생각도 하다가, 결국에는 자전거를 사서 그것을 분해하여 손수레를 만들었다. 그는 거기에 물과 짐을 싣고 사막을 통과했다. 그 고난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1099일 동안 1만2000㎞를 걸어 마침내 중국 시안에 도착했다.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순례자들은 아주 긴 도보 여행을 마친 후엔 거의 예외 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스스로를 직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영원히) 발견할 수 없었을 자신의 일부를 만났기 때문이다.”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젊어서 안 해본 일이 없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1938년 프랑스 망슈 지방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열여섯 살에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외판원, 항만 노동자, 토목공, 체육교사, 웨이터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1964년 독학으로 대입 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프랑스 기자협회 공인을 받은 저널리즘 부문의 그랑제콜을 졸업하고 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30여년간 ‘파리마치’ ‘르마탱’ ‘르피가로’ 등 유수한 신문, 잡지사에서 활동하다 은퇴했다.
   
   저자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오로지 두 발로 걸어서 실크로드 풀코스를 횡단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긴 여행이다. 저자나 ‘332일 자전거 여행’의 주인공들은 여행을 통해 그동안 자신에게 쌓여 있던 먼지를 걷어내고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경험을 했다. 그들이 한 것은 떠들썩한 관광이 아니라 고단한 여행이었다. 그 자체가 인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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