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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전설의 왕국이 남긴 오지의 유적지, 넴루트의 석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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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27호]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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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설의 왕국이 남긴 오지의 유적지, 넴루트의 석상들

▲ 넴루트의 신전은 야외에 들어선 오픈형 성지다. 고대 그리스 신전의 대부분이 폐쇄형 신전인 데 비해 넴루트는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다. 겨울에는 눈이 1m 이상 쌓이는 고산지대로 접근 자체가 어려워진다.
“히밀라야는 세상 사람을 두 영역으로 나눌 수 있는 경계선이다. 히말라야를 경험하고 직접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두 영역이다.”
   
   최근 일본 친구로부터 받은 메일 내용이다. 25년 전 일본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로, 지금은 지방 작은 마을의 촌장으로 일하고 있다. 기억에도 없지만, 필자가 25년 전 어떤 자리에서 말한 내용이라고 한다. 인도 여행 도중 필자가 한 말이 생각나 메일을 보내게 됐다고 한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친구가 보낸 메일의 내용은 아마도 마쓰시타정경숙 조회 때 발표한 내용이었을 듯하다. 당시 필자가 공부했던 마쓰시타정경숙은 아침 6시 체조에 이어 조회가 시작됐다. ‘아침 소감’이란 주제로 매일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5분 정도의 짧은 스피치를 했다. 서툰 일본어였지만, 막 다녀온 히말라야 방문기를 아침 소감으로 꺼낸 듯하다. 인도에 들러 마더 테레사와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도쿄로 돌아온 직후였다.
   
   히말라야는 달라이 라마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들른 곳이다. 인도 북부 다람살라(Dharamshala)라는 곳으로, 티베트 임시정부가 들어선 땅이 바로 히말라야 중턱이다. 환생 성인(聖人) 달라이 라마를 기다리는 동안 히말라야 곳곳을 주유했다. 갖고 온 모든 옷을 꺼내 입고 자야만 하는 추운 호텔방이었지만, 히말라야가 티베트인과 인도인 나아가 인류 모두를 보듬는 ‘신의 공간’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 달라이 라마가 히말라야 중턱에 둥지를 튼 것도 이해가 됐다. 티베트인의 자유와 평화는 티베트란 나라 하나만이 아니라, 인류 모두의 양심과 정의에 관련된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됐다. 히말라야를 통해 티베트를, 티베트를 통해 신과 정의 그리고 인류의 양심을 발견, 인식하게 됐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25년 전 마쓰시타정경숙 동료들 모두에게 이분법적 세계관을 역설했다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게 생각된다. 항상 그렇지만, 어제를 생각하면 얼굴을 들기가 어렵다.
   
   
   다람살라에서 만난 달라이 라마의 추억
   
   넴루트(Mount Nemrut)는 30대 초반에 히말라야를 방문한 이후 다시 마주친 신선한 발견이자 충격이다. 쌓을수록 깊어지고 세월이 흐를수록, 나이가 들수록 맛이 더해가는 것이 여행이다. 터키 넴루트는 해발 2134m 산꼭대기에 들어선, 신화와 전설이 배어 있는 지구의 오지 유적지 중 하나다. 기원전 70년부터 39년간 주변 지역을 통치한 콤마게네 왕국(Kingdom of Commagene) 안티오쿠스1세(Antiochus I)의 무덤이자, 신들을 모신 신전이 모여 있는 곳이다. 뾰족한 산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으로 거대한 석상들이 들어서 있다. 안티오쿠스는 물론 제우스, 아폴로, 헤라클레스를 비롯해 콤마게네 수호신과 사자·독수리 석상이 일렬로 들어서 있다. 예수가 태어나기 62년 전에 건립된 조형물로, 19세기 말 우연히 발견돼 1987년 이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지다.
   
   
   19세기 말 발견된 지구 오지의 유적지
   
   넴루트를 처음 만난 것은 15년 전이다. 워싱턴에 있는 백인 친구 집에 갔다가 이슬람권 화보집들을 발견했다. 이 친구가 젊을 때 이슬람권을 오가며 영어 자원봉사를 했기 때문인지, 중동 각지의 여행서들이 즐비했다. 넴루트는 그중 하나다. 낡은 흑백 화보집이지만, 보는 순간 눈과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됐다. 산꼭대기에 들어선 신전에다 필자가 알고 있던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신들의 형상이 빼곡했다.
   
   넴루트는 터키에 갈 때마다 기억에 새긴 유적지다. 이스탄불 공항에 내리는 즉시 넴루트 유적지에 관한 광고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계속 미뤄왔다. 물리적으로 워낙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로 날아가서 근처에 내린 뒤 곧바로 들를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여행 취향이 아니다. 커피의 매력은 커피 한잔을 위한 준비와 시간에 있다. 원두를 선택하고 곱게 간 뒤 필터를 준비한다. 마음에 드는 찻잔을 앞에 두고 섭씨 90도 물과 함께 천천히 ‘O’ 자 모양으로 내리는 과정을 통해 커피의 맛과 멋이 새롭게 창조된다. 구두쇠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피치 못할 상황 외에는 커피점을 멀리한다. 직접 내린 커피를 들고 다니는 식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가고 싶고 아름다운 곳일수록 천천히 둘러 가는 것이 좋다. 풍경, 기후, 음식, 꽃,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씩 새겨가면서 외곽에서부터 중심으로 느리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기억과 감동도 더해진다.
   
   
▲ 독일 고고학자들은 넴루트를 세상에 선보인 주역이다. 독일이 자랑하는 특수 엔지니어링 방식에 의해 대리석 조각에 파묻힌 유적들을 발굴해냈다.

   3개의 유적지가 연결된 성좌 유적지
   
   넴루트는 아나톨리아의 관문인 이즈미르(Izmir)에서 동쪽으로 1300㎞ 떨어진 곳에 있다. 하루 20달러 선의 최저가 렌트카를 타고, 최소한 왕복 10일은 잡아야 가볼 수 있는 유적지다. 그러나 넴루트를 자세히 이해하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넴루트는 고고학계가 인정하는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히에로테시온(Hierothesion·성스러운 안식처)’ 유적지로 분류된다. 히에로테시온은 그리스어로 ‘성좌(聖座)’를 의미한다. 넴루트를 시작으로 남서쪽으로 일직선으로 이어진, 3개의 유적지가 히에로테시온, 즉 성좌의 무대다. 넴루트에서 남서쪽으로 12㎞ 떨어진 아르사메이아(Arsameia), 이어 아르사메이아에서 남서쪽으로 14㎞ 바깥쪽에 위치한 카라쿠스(Karakus)로 연결된 3개의 고대 유적지가 성좌의 주인공들이다.
   
   넴루트 성좌는 고대 유물 유적에 빠진 고고학 매니아의 관심 영역이다. 외국 관광객을 위한, 사진 몇 장을 찍기 위해 들를 만한 장소가 아니다. 오지의 산꼭대기 유적지 하나만을 위해 며칠간 소비하는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일직선으로 이어진 오지의 3개 성좌를 전부 찾아다니는 외국 관광객은 극히 드물다. 코로나 19 망명생활 덕분이기도 하지만, 3개 성좌 전부를 꼼꼼히 살펴볼 요량으로 넴루트 탐방에 나섰다. 계절적 요인은, 작심을 하고 나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여름에 가야만 하는 곳이 넴루트다. 제주도 한라산보다 높은 곳이기 때문에 대략 11월부터 3월까지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다. 주변 전체가 산악 고지대라서 찬바람이 부는 순간 설국으로 변한다. 대낮의 기온도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다. 도로도 1차선에 불과하기 때문에 폭설을 뚫을 만한 육중한 차량이 아닌 한 입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세르믹(Cermik)’이란 작은 마을이 3개 성좌 유적지 답사를 위한 베이스캠프다. 넴루트 동쪽에 위치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의 시골이다. 넴루트에서 멀다면 멀지만, 가깝다면 가깝다. 넴루트가 자리 잡은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은 인류 문화·문명의 원점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더불어 청동기, 철기시대로 이어지는 히타이트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넴루트에서 왕복 4시간이나 걸린 곳을 숙소로 잡았지만, 인류의 어제를 보듬은 역사와 자연풍광으로 인해 오가는 길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넴루트 두상을 만나러 2000m 고지로
   
   세르믹 지역은 천연 온천으로도 유명하다. 곳곳에 널린 온천도 즐길 겸, 35m 길이의 실내 온천풀장을 갖춘 호텔에 1주일간 머물렀다. 넴루트로 가는 길은 기암절벽으로 채워져 있다. 돌로 채워져 있기는 하지만, 바짝 마른 산이 아니라 푸른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곳이다. 넴루트는 가끔 뉴스에 등장하는 쿠르드족의 거주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벌인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잠잠하다. 실제 터키인과 쿠르드인은 민족 구별 없이 친하게 지낸다. 이슬람 종교를 통한 통합이다. 서로를 갈라 세운 뒤 증오로 몰아가는 정치는 세계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다. 쿠르드와 더불어 시리아 난민으로 뒤덮인 곳이라고 하지만, 터키는 필자가 다녀본 그 어떤 나라보다도 안전하고 따뜻하다.
   
   넴루트 유적지 산 정상은 수십㎞ 떨어진 곳에서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여느 산들과 다른 특이한 모습이기에 차로 달리다가도 간단히 찾아낼 수 있다. 자로 잰 듯 각이 세워진 꼭대기와, 유난히 흰 정상의 색상이 눈에 띈다. 이유는 넴루트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인공 조형물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로 ‘산을 움직일 만한 신앙’에 대한 얘기가 있다.(마태복음 17장 20절) 진짜 신앙이 있다면 산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예수의 말이다. 넴루트는 예수의 말을 증명해낼 만한 인간 신앙의 결정판이다. 차이는 신을 향한 신앙이 아니라 콤마게네 왕국의 안티오쿠스에 맞춰진 인간을 향한 신앙이란 점에 있다.
   
   넴루트 산 아래 계곡에서 정상으로 향한 것은 오후 4시쯤이다. 7시로 예정된 일몰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산 아래 계곡에서 정상까지는 약 40분 정도 걸린다. 경주 불국사 길처럼 꼬불꼬불 산길이다. 낭떠러지 절벽으로 이어지는 좁은 1차선 도로이기 때문에 운전에 신경을 써야만 한다. ‘엄청난 무게의 돌들을 어떻게 옮겨서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 터키인들의 삶과 세계관이 투영된 넴루트의 일몰. 한여름에도 추위가 몰려오기 때문에 두툼한 옷은 필수품이다.

   메소포타미아 고깔모자를 씌운 그리스 신들
   
   정상으로 올라가자 넴루트를 배경으로 한 작은 기념관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 주차한 뒤 셔틀버스를 타고 산 아래까지 가야 하지만, 올해는 곧바로 넴루트 근처까지 차로 갈 수 있다. 전부 코로나19 전염병 때문이다. 관광객도 드물고, 셔틀버스 안에서 서로를 경계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넴루트 주변은 최하 30도 급경사 지형이다. 차가 굴러가지 않도록 주차 브레이크를 일직선으로 세우고, 뒷바퀴에 큰 돌을 걸쳐 둬야만 한다. 넴루트 아래 주차장에서 넴루트 석상까지는 걸어서 가야만 한다. 넴루트는 입구에서부터 동쪽과 서쪽으로 나눠서 올라간다. 죽음이 드리워진 서쪽보다 삶의 환희가 시작되는 동쪽을 선택해 올라갔다. 대략 500m 정도 거리다. 짧은 거리지만, 60대 이상 장년자에게는 부담이 간다. 급경사에다 해발 2000m 고지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얘기지만, 이사에 관한 기억이 많다. 1970년대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러했듯이, 일자리를 찾아 사글세를 전전하는 생활이었다. 가난하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가난병의 대명사인 결핵은 피할 수 없었다. 이사 간 집의 주인으로부터 전염됐기 때문이다. 급성폐결핵으로 거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다. 그러나 아직도 허파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다.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도 숨이 차고, 달리기는 항상 꼴찌였다. 겨우 2000m 높이의 산이지만, 숨쉬기도 곤란하고 고산병인지 두통까지 덮쳤다. 500m 거리지만, 적응하면서 천천히 올라가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올라가는데 바람이 엄청 드세다. 네덜란드제 초강력 양산을 들고 갔지만, 강풍에 밀려 부러졌다.
   
   넴루트는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오후 5시쯤이라 동쪽은 이미 짙은 그림자로 뒤덮인 상태다. 고깔모자를 쓴 안티오쿠스와 신들의 두상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머리 하나에 대략 2m 높이로, 원래 앉은 상태에서 인공산 바로 아래에 일렬로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세월의 부침과 함께 머리 부분이 땅에 떨어지고 의자로 활용됐던 돌들도 파열된 채 곳곳에 흩어져 있다. 넴루트는 세계에서 유일한 건설기법에 기초한 인공산이다. 대리석을 20~30㎝ 크기로 자르거나 부순 뒤 쌓아올린 구도다. 고급 장신구를 노리고 무덤이 있을 만한 지점을 찾아 뚫고 들어갈 수도 없다. 파는 즉시 위에서 대리석 조각들이 밀려 내려오기 때문이다. 고산지대라는 점도 있지만, 넴루트가 2000여년간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존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고깔모자는 넴루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하늘로 치솟은 삼각형 고깔모자는 아나톨리아와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상징이다. 박물관에서 고깔모자를 쓴 고대 조형물을 발견한다면, 메소포타미아 주변 유물이라 단정해도 좋다. 피라미드 삼각형도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한 고깔 모양의 연장선에서 분석해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는 고깔 모양을 야만시했다. 긴 콧수염과 고깔모자는 당시 노예의 상징이었다. 제우스, 아폴로,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의 대명사다. 원형으로 따진다면 메소포타미아까지 이어지겠지만, 넴루트가 세워진 기원전 1세기라면 이미 그리스 신들이 정착한 시기였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의 상징인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왜일까?
   
   콤마게네 왕국의 통치이념이 배어 있는 신전이기 때문이다. 콤마게네는 기원전 163년에 건립돼 서기 72년까지 235년간 지속된 소왕국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문화가 왕성하던 시기에 세워진 나라로, 이후 로마에 흡수될 때까지 부자 나라로 군림했다.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로마를 잇는 중개무역이 번영에 이른 이유다. 서로 다른 제국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융합문화가 탄생한다. 고깔모자를 쓴 그리스 신들의 모습은 그 같은 융합문화의 결과다. 알렉산더의 헬레니즘은 그리스를 원점으로 하면서 페르시아를 덧씌운 문화다. 콤마게네는 반대로 페르시아를 원점으로 하면서 그리스를 보충한 문화다. 콤마게네 지배층이 페르시아인들이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헬레니즘 문화지만, 그리스를 주(主)로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리스인이 와서 본다면 조롱할 유적이지만, 양쪽 문화권에 끼여 번영을 누린 콤마게네 왕국의 생존전략이 넴루트산 전체에 드리워져 있다.
   
   
   자연은 신의 또 다른 모습
   
   인류가 만든 그 어떤 위대한 유물·유적이라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용에 필적할 수 없다. 자연은 신의 또 다른 모습이다. 넴루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손으로 쌓은 인공산도, 수십㎞ 떨어진 곳에서 옮겨 온 무거운 대리석 조각도 아닌 자연 그 자체에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연출되는, 넴루트를 배경으로 한 일몰과 일출이 주인공이다. 지상 최대 쇼를 위해 24시간 개방된 곳이 넴루트다. 일몰 시간이 가까워지자 일시에 사람들이 몰려 왔다. 가족 단위로 찾은 터키인들이 대부분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때문이 아니라, 멀리 지평선 끝에 연출될 석양을 지켜보기 위해 모였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기온도 뚝 떨어진다. 털옷은 물론 초대형 이불로 무장한 사람도 보인다. 넴루트는 주변 산을 전부 아래로 내려다보는, 왕 중의 왕에 해당하는 산이다. 멀리 해가 넘어가면서 뾰족한 삼각형의 넴루트 실루엣이 아래 산에 드리워진다. 고깔모자가 상징하는 삼각형 구도는 자연에 배어 있는 파워의 중심이자 세상의 정점으로 해석된다. 피라미드의 삼각형 구도와 똑같다.
   
   자세히 보니 석양에 접한 서쪽 석상들의 방향이 이상하다. 일몰 해를 정면으로 보지 않고, 15도 왼쪽으로 비껴난 상태로 세워져 있다. 넴루트의 일출과 일몰을 보기 위해 이후 두 번 더 들르는 과정에서 알아낸 사실이지만, 정답은 ‘반포지효(反哺之孝)’로 모아진다. 어릴 때 먹이를 입에 넣어준 정과 사랑을 생각하며 늙은 부모를 마지막까지 공양하는 까마귀의 효행을 일컫는 말이다. 넴루트 서쪽 석상이 쳐다보는 곳은, 일직선으로 연결된 다른 2개의 조형물이다. 히에로테시온, 즉 성좌의 연장선인 아르사메이아와 카라쿠스가 시선의 방향이다. 아르사메이아는 안티오쿠스 왕의 아버지, 카라쿠스는 안티오쿠스 왕의 어머니와 아들을 기리는 무덤이자 신전이다. 넴루트 서쪽 신전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해당하는 성지다. 죽어서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을 지키겠다는 결의가 15도 비껴난 석상들의 의미다.
   
   수십 명의 터키인과 함께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바람 소리만이 울려퍼질 뿐 모두 일몰에 빠져든다. 핏빛으로 느껴질 만한 검붉은 석양이 넴루트 전체에 넘실댄다. 욕으로 들끓는 인간의 추한 모습을 모두 씻겨줄 성스러운 신의 손길이 온몸에 퍼져나간다. 어둠으로 빠져드는 넴루트를 뒤로하면서 시골 촌장 일본인 친구에게 보낼 메일 하나를 준비했다. “히말라야나 넴루트가 아니다. 세상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일몰과 일출을 지켜볼 여유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두 개의 세계로 나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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