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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8호]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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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통신]가수 헬렌 레디를 영화로 살려낸 문은주 감독

LA=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photo 뉴시스
문은주(56) 감독은 가슴 아래까지 내려오는 검은 긴 머리에 미소를 지으며 단정한 자세로 앉아 질문에 대답했다. 나이답지 않게 소녀 같은 인상이었다. 호주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 감독은 역시 호주 태생의 가수로 지난 9월 29일 78세로 사망한 헬렌 레디의 삶을 다룬 ‘아이 엠 우먼(I am woman)’을 연출했다. 이 작품으로 장편 극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문 감독은 최근 LA의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아이 엠 우먼’은 1970년대 ‘이츠 낫 이지(It’s not easy)’와 ‘아이 돈트 노 하우 투 러브 힘(I don’t know how to love him)’ 등 많은 히트송을 부른 헬렌 레디(틸다 코브햄-허비 분)의 대표곡으로 여권운동의 간판 노래였다. 문 감독은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했는데 매우 총명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남편은 호주 태생으로 ‘게이샤의 추억’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촬영감독 디온 비비다. 이번 ‘아이 엠 우먼’도 그가 찍었다.
   
   
   - 당신은 가수 토니 베넷에 관한 기록영화 ‘베넷의 선(The Zen of Bennett)’을 만들어 칭찬을 받았고 이번에도 가수에 관한 영화 ‘아이 엠 우먼’을 만들었는데 감독으로서 팝송 가수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는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성장한 시대가 달랐다면 난 아마도 음악계에 종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나처럼 생긴 사람이 무대에 선 것을 본 적도 없고 감독이 된다는 것은 더더욱 생각할 수도 없던 때였다. 난 얘기하기를 좋아했는데 음악 얘기에 마음이 쏠리곤 했다. 음악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다 어떤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를 기억한다고 믿는다. 나도 이 영화를 위해 헬렌을 만났을 때 내가 처음으로 ‘아이 엠 우먼’을 들었던 때가 기억났다.”
   
   - 한국계인데 K팝 그룹에 대한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는가. “재미있는 질문이다. 많은 사람이 내게 그런 얘기를 했는데 아주 흥미 있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아이 엠 우먼’을 위해 부산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몇 명의 K팝 가수를 만났고 그들의 녹음시설도 둘러봤는데 매우 흥미 있었다.”
   
   - 이 영화가 한국에서 언제 개봉하는가. “11월에 개봉할 것이다. 원래는 그보다 이전에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지연됐다. 한국의 훌륭한 배급사가 11월 개봉을 잘 이행해주리라 믿는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내가 개봉에 맞춰 참석할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 촬영감독인 남편과 함께 일할 때 호흡은 잘 맞는가. “우리 둘이 화목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 영화 제작에도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우린 젊었을 때 영화학교에서 만났는데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우린 늘 같이 일했다.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며 취미도 매우 비슷하다. 이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우린 오랫동안 각자 서로의 경력에 도움이 되어왔다. 나는 그와 함께 일하기를 좋아한다. 평상시보다 영화를 만들 때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는 초저예산 작품이어서 만반의 준비를 하기 위해 우린 하루 24시간 함께 있었다. 그런데도 그와 함께 그렇게 있는 것이 즐거웠다. 가엾은 디온은 날 피해 달아날 길이 없었으니 어떤 기분이었을지 모르겠다. 우린 이 영화를 함께 만드는 것을 정말로 즐겼다. 남편과 내가 소통이 원만한 것이 영화 제작에 큰 도움이 됐다.”
   
   - 아시안 부모들은 자식이 변호사나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데 당신이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부모에게 말했을 때 반응은 어땠는가. “내 세대의 여자들처럼 나도 부모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었다. 자라면서 연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때만 해도 나 닮은 사람들 중에 본받을 만한 연기자가 없었다. 그래서 부모 뜻대로 명문 법대에 들어갔는데 거기 간 이유는 교양과목으로 연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연극을 연출했다. 이어 어머니에게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말했더니 어머니는 크게 실망했다. 나는 어머니가 실망한 이유가 영화에 관해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영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그 결과 어머니가 영화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 후로는 나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 지난 9월 29일 78세로 사망한 가수 헬렌 레디. 왼쪽은 전성기 때 노래하는 모습. photo 뉴시스

   - 왜 헬렌 레디의 삶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는가. “소녀 시절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의 라디오에서 헬렌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받은 감동이 충격적이었다. 그때 우린 호주에서 산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머니의 영어도 서툴렀다. 당시는 1970년대로 여성을 위한 여러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그런 때에 헬렌의 노래가 나온 것이다. 차에서 헬렌의 노래가 나오면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는 차창을 열고 머리를 바람에 날리곤 했다. 난 늘 헬렌의 노래가 여성을 보다 대담하고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헬렌을 만나 대화하면서 그에 대해 좀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여성들에게도 큰 영감을 준 헬렌의 얘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 호주 여성 가수의 개척자와도 같은 헬렌은 호주에서 잊힌 사람이 됐는데 이 영화가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게 되리라고 보는가. “헬렌이 호주에서 잊힌 여성이 된 것은 맞는다. 헬렌은 빅 스타였을 때 호주 언론과의 관계가 아주 안 좋았다. 그가 당시의 전형적인 팝 가수들과 비슷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헬렌이 호주 시민이 되기를 포기하고 미국 시민이 되자 언론은 그가 호주 시민을 업신여기기 때문이라고 썼는데 헬렌이 미국 여권을 가지기로 결심한 까닭은 미국 시민인 자기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이중국적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호주에선 여성이 음악과 연예계에 종사하는 것을 몰가치하게 생각했다. 난 호주에서 흥행이 잘된 이 영화가 새삼 헬렌에게 매우 중요한 빛을 비추어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 다시 남편과 같이 일할 것인가. “다음 작품에서도 같이 일하고 싶지만 지금으로선 둘이 각기 다른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다음 영화도 역시 실화로 다섯 여자에 관한 것이다.”
   
   - 모두들 당신 이름을 ‘은주’가 아닌 ‘언주’라고 발음한다.(문 감독의 이름의 영어 표기가 Unjoo Moon이다.) “평생 사람들이 내 이름을 서로 다르게 발음하는 것을 들으며 살아와 그냥 부르는 대로 대답한다.”
   
   - 당신 영화에 대해 여성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받았는가. “이 영화는 원래 작년 9월 토론토영화제 개막작이었으나 이제야 개봉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적당한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모두들 영감이 필요하고 또 마음을 북돋아주는 것이 필요한 때다. 또 매우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이런 때에 이 영화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현명한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매우 신경이 쓰인다. 얼마 전 이 영화가 호주에서 개봉했을 때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하는 것이 금지되었는데도 모두들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천 개의 글을 받고 있는데 모두 영화를 찬양하면서 개인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얘기한다. 특히 젊은 여성들로부터 자기들이 몰랐던 세대의 여성이 한 일을 알려주어서 고맙다는 글이 많다.”
   
   - 다른 동료 아시안 감독들과 교류가 있나. “나는 모든 아시안 감독들의 팬이다. ‘기생충’을 비롯해 그들의 영화도 다 본다. 특히 한국 영화를 많이 본다. 운 좋게 앙리 감독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그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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