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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로아티아 살아보기]  자그레브 벼룩시장의 ‘메이드인 유고슬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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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28호]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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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살아보기]자그레브 벼룩시장의 ‘메이드인 유고슬라비아’

▲ 자그레브 근교 공터에 펼쳐진 벼룩시장에서 만난 사람. photo 이경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근교에선 일요일 아침마다 벼룩시장이 열린다. 흐옐리치 중고차 시장 옆 널찍한 공터에 열리는 이 시장은 말 그대로 벼룩시장이다. 크로아티아 곳곳에서 차 한가득 물건을 싣고 와 널찍하게 펼쳐놓은 물건들을 구경하노라면 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누군가의 손을 탄 물건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다보면 가끔씩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스테인레스글라스를 박아 넣은 스탠드부터 구식 라디오, 꽃 그림 가득한 액자, 누군가의 침대 위에 놓였을 곰인형까지. 그러다 문득 제품 뒷면에 찍힌 ‘메이드 인 유고슬라비아’라는 문구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 흐옐리치 벼룩시장의 풍경 photo 이경민

▲ 흐옐리치 벼룩시장의 풍경 photo 이경민

   유고슬라비아는 1918년부터 2006년까지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에 연이어 존재했던 세 개의 국가를 말한다. ‘유고슬라비아’란 이름은 1929년 이 국가의 전신인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 왕국이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개칭하면서 처음 쓰였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민주 연방(1945), 유고슬라비아 인민공화국(1946),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1963)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1991년부터 2006년에 걸쳐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북마케도니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세르비아·몬테네그로 등이 해체·독립하며 개별 국가들로 분리됐다. 크로아티아는 1991년 6월 슬로베니아와 함께 연방으로부터 독립했다.
   
   크로아티아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유고슬라비아 시절,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티토 정권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가끔 건물이나 화장실 벽의 작은 낙서들 속에서 ‘miss Yugoslavia’‘miss Tito’ 라고 쓰인 낙서들을 볼 수 있었다. 궁금함에 현지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니 나이든 노인들뿐만 아니라 젊은 친구들 중에서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가 적지 않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 시절의 부강함과 부유함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세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를 통일시킨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스탈린에게 저항하면서 독자적인 공산주의 노선을 수립했다. 그의 공산주의는 다민족 국가의 연방 체제로 이뤄졌다. 연방에 권력의 근간을 둔 티토는 중앙 집권적인 권력 강화보다 개별 민족들의 상호 평등을 약속하고 6개 공화국과 2개의 자치주에게 고도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보장하는 민주적 중앙 집권화의 원칙을 천명했다. 이와 더불어 ‘노동자자주관리제’를 도입해 소비 활성화를 통한 생산 동기 부여를 추구했다.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노후 연금 보장,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의 선심성 정책도 이뤄졌다.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이들이 ‘그 시절의 부강함과 부유함을 그리워하는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고도 경제 성장이 이뤄졌던 박정희 정권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어쩌면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 크로아티아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불만이 과거에 대한 향수로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유고슬라비아 시절에 대한 그림움은 대체로 나이 든 분들 사이의 일이지만, 때때로 젊은 층에서도 이 시절에 대한 동경을 드러내곤 한다. 크로아티아의 역사와 삶을 살아간 당사자가 아니기에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유고슬라비아’란 단어가 크로아티아 인들 사이에서 어떤 묘한 정서를 불러 일으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 흐옐리치 벼룩시장에 나온 물건들 photo 이경민

▲ 벼룩시장에서 찾은 유고슬라비아 제품. 냄비 하단에 ‘made in Yugoslavia’가 찍혀 있다. photo 이경민

   벼룩시장에서 ‘메이드 인 유고슬라비아’ 제품을 찾는 재미에 빠져 한 동안 매주 이곳을 찾았다. 지금은 사라진 국가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그 자체로 뭔가 특별함이 깃들어 있다. 운이 좋던 어떤 날은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 시절에 만들어진 크리스탈 모양이 새겨진 램프를 샀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작동엔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수집가들이 유고슬라비아 시절에 만들어진 물건들을 수집하러 많이들 벼룩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괜찮은 물건을 건지지 못하더라도 뭐 어쩌랴. 사실 쓸모 있는 물건보단 버려도 무방한 물건들이 더 많아 보이긴 하지만 물건마다 느껴지는 시간의 흔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 아닌가.
   
   자주 벼룩시장을 찾은 탓에 이내 몇몇 현지 상인들과 얼굴을 익히게 됐다. 10년이 넘게 매주 이곳을 찾아 물건을 팔고 있다는 밀란 씨로부터 유고슬라비아 시절에 만들어진 핸드페인팅 앤틱 접시를 하나 샀다. 우리 돈으로 1000원도 채 되지 않는 금액. 내가 목에 걸고 있는 커다란 카메라를 궁금해 하기에 기념으로 그의 사진을 찍어준 후 다음 번 벼룩시장을 찾았을 때 그의 사진을 작게 인화해 선물했다. 밀란씨는 그에 대한 답례로 유고슬라비아 시절에 만들어진 애나멜 그릇을 주었다. 내가 유고슬라비아 제품을 찾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누군가에겐 황금기로 기억되는 그 시절이, 이젠 앤티크 그릇 뒷면의 “made in Yugoslavia”란 문구로만 남아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 흐옐리치 시장에서 만난 마음 따뜻한 상인, 밀란. photo 이경민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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