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때 어두운 밤하늘에 관한 기억이 많다. 미확인 비행체, 즉 UFO 때문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혼자에게만 다가올 듯한, 뭔가 비밀스럽고 신비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21세기 스마트폰 확산과 함께 UFO 얘기는 한순간 사라져버렸다.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세계 곳곳에 꼭꼭 숨어 있을 UFO 얘기가 한층 더 많아질 듯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UFO는 20세기에 탄생한 인류 최대의 호기심 거리 중 하나다.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최대의 수혜주로 떠오른 것이 UFO다. 사진 자체가 귀하던 시절, 전문가나 매니아가 독점하던 것이 UFO 관련 영상이나 자료다. 스웨덴 하늘 어딘가에 떴다는 접시형 비행체는 곧바로 전 세계 신문·방송의 해외토픽감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20세기의 호기심과 꿈을 ‘페이크뉴스’ 코너로 쫓아낸다. 스마트폰 등장 초기에는 UFO 영상도 폭증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자체 제작된 UFO 관련 사진과 비디오들이다. 뒷동산에 떴다는 그럴듯한 UFO 영상과 사진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확산한다. 폭발적 반응이 있었지만, 곧바로 시들해진다. UFO 영상이 뜨는 순간, 진짜가 아닌 가짜라는 믿음하에 증거 찾기 경연대회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디지털 검증을 통해 20세기에 등장했던 UFO 영상물과 사진의 대부분이 가짜라는 것도 알게 된다. 20세기 UFO 스토리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기반으로 한 아날로그 신화라는 견해다. 21세기 UFO 스토리는 가짜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디지털 포렌식 과제물로 전락한다.

21세기의 UFO 아라베스크

필자의 생각이지만, UFO가 눈앞에 나타나느냐 마느냐가 전부는 아니다. 순간 전환기능을 갖춘 마하10 속도의 비행체로서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이 UFO가 갖는 진짜 의미이자 가치다. 주기적으로 나타났던 영국 네스호의 괴물, 히말라야 깊은 산속 어딘가에 숨어 산다는 설인, 미국 네바다 사막에 추락해 부검됐다는 우주인…. 21세기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비춰 보면 페이크뉴스의 사례들에 불과하겠지만, 유년기와 청년기를 20세기에 보낸 사람이라면 ‘아날로그 시대의 꿈과 로망’으로 남아 있는 기억들이다. 디지털 모바일 문화는 그 같은 황당한 세계 속의 맛과 멋을 뿌리째 없앤 주범이다. 백두산 천지에 나타났다는 괴물 얘기도 단 하루 만에 사라졌다. UFO나 괴물 네스는 20세기의 화석으로 굳어지고 있다.

‘아라베스크(Arabesque)’는 50대 필자가 발견한 21세기 UFO에 비견될 수 있다. 디지털 모바일이 아니라 공간이동 타임슬립 시대에 접어든다고 해도 결코 페이크뉴스로 추락하지 않을, 아날로그 로망으로서의 아라베스크다. 50대 이상 장년층에 해당하겠지만, 아라베스크라고 하면 1980년대 독일 가수들부터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40여년 전 디스코 열풍의 주인공인 ‘헬로 미스터 몽키’의 여성 그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의 대표적 예술로서의 아라베스크가 필자의 새로운 발견이다. 선지자 무함마드에서 시작된, 유일신 알라를 찬미하는 이슬람 모스크의 장식용 문양이 아라베스크의 원래 의미다. 2020년이라면 목이 달아날 만한 사안이지만, 40년 전 8등신 여성 그룹의 이름은 ‘이슬람 무함마드 모스크’로 이어지는 종교적 상징물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라베스크는 이탈리아어 아라베스코(Arabesco)에서 유래된 프랑스어다. ‘아랍 스타일(Arabic style)’이란 것이 원어적 의미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전(위)과 궁전 내부 천장의 아라베스크 문양. ⓒphoto 뉴시스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전(위)과 궁전 내부 천장의 아라베스크 문양. ⓒphoto 뉴시스

‘청빈, 소박, 간단’의 메시지

좁은 의미의 아라베스크는 동식물을 모티브로 해 모스크에 장식된 기하학적 문양으로 집약된다. 질서, 평화, 안정으로 표현된 신의 세계와 신의 존재 그 자체가 아라베스크로 표현된다. 이슬람은 우상으로 활용될 만한 초상화나 조각, 장식을 금지한다. 아이콘(Icon)의 가톨릭 교회, 불상의 불교 사원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모스크 안에 들어가도 눈에 띌 만한 특별한 뭔가가 없다. 이슬람 성지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중앙 제단을 기준으로, 카펫으로 채워진 휑한 공간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알라는 물론, 무함마드나 이슬람 성인(Imam)에 관한 조형물이나 장식물도 전무하다. 십자군은 십자가를 통해 가톨릭 전사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강조했다. 이슬람은 어떨까? 아예 없다. 이슬람은 십자가와 같은 상징물도 우상으로 본다. 가톨릭 교회는 신과 만나는 기도의 공간만이 아니라, 신을 찬미하는 무대로도 활용된다. 화려하고 크고 높은 교회일수록 신을 기쁘게 만들고 신에게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본다.

이슬람은 어떨까? 화려하고 크고 높은 모스크보다 알라와의 시간과 기도를 한층 더 중요하게 여긴다. 알라와의 직선 교감이 핵심이다. 알라 외의 우상화는 알라에 대한 신앙심을 가로막는 불경스러운 것으로 규정된다. ‘청빈, 소박, 간단’이 모스크와 이슬람 세계라 볼 수 있다. 아라베스크는 그 같은 무함마드의 메시지에 근거해 탄생한 이슬람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예술세계라 할 수 있다.

아라베스크에 관심을 가진 것은 대략 15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소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의 알람브라(Alhambra)궁전이다. 알람브라는 이슬람이 스페인 이베리아반도에 진입한 9세기부터 순차적으로 건설된 아라베스크의 보고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스페인 관광에 나선 한국인이라면 예외 없이 들르는, 720m 높이의 언덕 위에 들어선 성곽 요새이자 궁전이다. 1492년 1월 2일 가톨릭에 의해 함락될 때까지 600여년간 활용된 이슬람 건축의 정수다. 당시 인상 깊게 본 것은 궁전 중앙의 사자 정원과 천장 장식이다. 알람브라 주인은 모로코와 튀니지를 기반으로 한 북아프리카 무어(Moore)족이다. 아프리카, 아랍의 이슬람 문화란 점에서 정원 내 사자 석상을 허용한 듯했다. 우상 금지와 같은 원리주의 교리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축이 된 수니파의 생각이다.

알람브라궁전의 아라베스크 추억

알람브라 우주 천장은 아라베스크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 첫 번째 계기다. 이전까지만 해도 눈에 스쳐 지나가던 장식이었지만, 당시 주의 깊게 살펴봤다. 타원형 대리석 천장으로, 하늘의 별을 상징하는 입체적 장식이 압권이다. 기하학적 문양은 어떤 각도에서 봐도 질서정연하게 표현돼 있다. 요철형 천장 장식을 통해 우주를 느끼고, 더불어 알라를 가까이 한다는 의미로서의 아라베스크다.

알람브라 아라베스크는 이슬람이 가진 소박하고도 경건한 세계관, 우주관의 압축판이다. 그러나 알람브라 천장은 가톨릭이 보여준 일방통행 종교관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흑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15세기 말 가톨릭의 알람브라 점령 직후, 이슬람에 대한 대학살과 파괴가 시작된다. 입성한 가톨릭 전사들은 알람브라 곳곳에 십자가 문양을 새겨넣는다. 우주 천장 주변에 무질서하게 새겨진 십자가도 그중 하나다. 알람브라궁전 곳곳이 가톨릭 양식으로 개조된다. 잔인하고도 살벌한 조직으로 기독교만 한 존재도 없었을 듯하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인류 문명과 문화를 엉망으로 만든 최대의 파괴자가 기독교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시아는 종교전쟁과 무관한 곳이다. 종교가 목숨을 걸고 피의 장본인이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교과서적 사고이지만, 종교는 화합과 평화의 목적이자 수단, 그리고 상징이라 믿는다. 그러나 역사에 비친 서방의 종교는 정반대다. 피로 범벅이 된 세속적 이데올로기보다 한층 더 잔인한 것이 종교다. 유럽에서 보면 종교는 증오, 분열, 전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유럽 역사를 관통하는 수많은 종교전쟁, 종교재판, 종교대학살은 좋은 예다. 유럽뿐만 아니라 십자가전쟁을 통해 중동과 아랍 지역도 성전의 무대로 확산시켜 나간다. 신대륙 발견 후에는 이교도라는 죄명을 달아 잉카, 마야 문명을 초토화시킨다.

기독교는 유일신에 근거한 신앙체계로 유지된다. 유일신에 반하는 모든 것은 신의 이름으로 철저히 파괴된다. 고대 올림픽 경기는 394년에 폐지된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정착된 직후다. 무려 1200여년간 계속된, 에게해와 지중해 평화의 상징이 고대 올림픽이다. 그러나 그리스신 제우스에게 바치는, 유일신에 반하는 이교도의 축제라는 이유로 한순간 폐지된다.

이슬람에 대한 철저한 파괴도 마찬가지다. 오해하기 쉬운데, 원래 이슬람은 ‘코란이냐 칼이냐’와 무관한 종교다. 알라를 유일신으로 받들지만, 다른 신을 믿는다고 해서 죽여야만 한다는 식의 종교관은 아니었다. 알람브라가 가톨릭에 의해 함락될 당시 성내에는 이슬람뿐만 아니라 유대교와 가톨릭교도 공존하고 있었다. 가톨릭은 입성 후 이슬람뿐만 아니라 이들 유대교와 가톨릭교 신자들도 모두 처형한다. 이후 이슬람도 십자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일방통행 유일신 절대체제로 변해간다. 이교도에게는 죽음만이 있을 뿐 관용은 없다. 그러나 11세기 십자군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유대교, 가톨릭, 조로아스터교와 공존하던 종교가 이슬람이었다. 종교에서 비롯된 모든 갈등의 첫 단추는 가톨릭을 근간으로 한 일신교인 기독교에서 시작됐다. 알람브라 곳곳에 새겨진 수많은 십자가는 그 같은 흑역사의 증거다.

터키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는 신도들. ⓒphoto 뉴시스
터키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는 신도들. ⓒphoto 뉴시스

이슬람 문양의 백화점 터키

아라베스크는 알람브라 이후 ‘항상’ 주목하게 된 새로운 세계다. 돌이켜보면 종교로서만이 아니라, 예술적 호기심이 한층 더 강했을지 모르겠다. 필자는 현재 전염병 망명지 터키에 머무르면서 이름난 모스크 대부분을 훑었다. 곳곳에 숨어 있는 아라베스크의 흔적을 발굴, 비교하는 식의 관찰이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아라베스크에 주목한다면 터키가 가장 좋은 현장이 될 수 있다. 이란의 시아파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니파의 아라베스크 세계관을 전부 체험할 수 있는, 이슬람 문양의 백화점 같은 곳이 터키이기 때문이다. 우상화 문제에 관한 한 시아파는 수니파에 비해 다소 자유롭다. 비공식적이지만, 시아파는 무함마드 초상화도 허용한다. 이스탄불에서는 수니파의 영향이 강하지만, 이란 국경에 인접한 터키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으로 가면 시아파의 세계관이 드리워져 있다. 색상이 화려하고, 개인 상상력에 의한 창의적인 문양이 시아파 스타일의 아라베스크다.

메뉴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먹는 것은 미식의 기본이다. 항상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살피면 내면 속의 깊은 뭔가를 끄집어낼 수 있다. 아라베스크는 왜 비슷한 문양을 반복해서 끝없이 표현할까? 왜 하늘로 향하는 모스크 장식은 삼각형 고깔 모양으로 통일돼 있을까? 왜 코란의 명구가 모스크 내부를 장식하는 최대의 장식일까? 필자가 이슬람 문화권을 오가며 내린 결론이지만, 아라베스크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로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수학+공간’에 관한 학문이다. 숫자로서만이 아니라 점, 선, 면 그리고 공간 개념이 들어간 학문이다. 같은 문양을 반복해서 무한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라베스크의 기본구도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응용한 것은 물론이다. 수학과 기하학은 과학인 동시에 철학, 나아가 신학이다. 아라베스크는 수학, 과학, 신학이 일체화된 것이다. 유클리드는 원래 이집트 출신 그리스인이다. 피라미드의 원조인 이집트 출신 유클리드의 생각을 7세기 이후 이슬람 이집트가 이어가면서 아라베스크도 발전, 진화한다.

아라베스크에 담긴 ‘쿤스트볼렌’ 개념

둘째 키워드는 독일어 ‘쿤스트볼렌(Kunstwollen)’이란 개념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Will to Art’, 즉 예술에 대한 의지라고 풀이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예술사학자인 알로이스 리글(Alois Riegl)이 주창한 개념이다. ‘어느 특정 시대에 등장한 예술은 당대의 기술적·습관적 흐름과 무관한, 이미 오랫동안 축적된 예술에 대한 의지의 결과이다’라는 의미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오랜 시간 성숙된 정신의 결과물로서의 예술이라는 관점이다.

쿤스트볼렌이란 개념은 아라베스크를 둘러싼 당대의 논쟁 중에 탄생한 것이다. 양모를 재료로 한 이슬람권 카펫 문화가 아라베스크 문양 탄생의 배경이란 학설에 맞선 개념이 바로 쿤스트볼렌이다. 알로이스 리글은 카펫에 새겨진 문양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축적된 인간 고유의 예술 의지’가 아라베스크 탄생의 근거라고 강조한다. 이슬람을 통해 발전하지만, 무함마드가 나타나기 전에 세계 곳곳에 나타난 쿤스트볼렌의 결과가 아라베스크였다는 것이다.

필자는 쿤스트볼렌이란 개념이 아라베스크의 배경에 있다고 확신한다. 이유는 기원전 5000년 메소포타미아 토기, 기원전 3000년 이집트 토기, 기원전 2000년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에 있다. 대칭 구도로 반복된 기하학적 문양의 토기들이다. 한반도 빗살무늬토기도 자세히 보면 일정한 리듬과 대칭 구도로 반복된 문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쿤스트볼렌은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인 비잔틴제국과 고대 로마의 모자이크나 벽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아라베스크 문양을 통해 신과 자연의 권위와 파워를 표현하고 있다. 결국 아라베스크는 이슬람만의 문화가 아니라 인류 모두 공유하면서 수천 년간 지속된 쿤스트볼렌의 대표적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이슬람은 한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아주 멀리 떨어진 종교다. 그러나 모스크에 드리워진 아라베스크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아주 가깝게 다가올 듯하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가져다주는 평화, 조화, 질서, 쿤스트볼렌에 녹아 있는 인류 모두의 예술적 유전자가 새겨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열정이 없어도 좋다. 물론 UFO 세계를 아직도 믿고 있다면, 아라베스크에 한층 더 빠질 것이다. 꿈, 신비, 로망이 투영된 무한대의 우주, 바로 아라베스크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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