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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33호]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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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짱 의사의 4개국 어학연수 도전기]아디오스 리마! 다음 도전은 프랑스어 연수

리마= 글·사진 김원곤  서울대 흉부외과 명예교수 

▲ 리마 앞바다의 석양.
한바탕 긴 꿈을 꾼 것 같다. 지난 3월 8일, 3개월간의 스페인어 연수를 목적으로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할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11월이 돼서도 리마에서 이런 글을 쓸 줄은 몰랐다. 원래 계획은 4개국 어학연수, 일명 ‘3·3 프로젝트’였다. 서울대 흉부외과 교수로 명예퇴직을 하고 2020년 3월부터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의 순서로 3개월 현지 어학연수, 3개월 재충전을 반복하는 총 2년간의 일정을 계획했다. 15년 동안 4개 외국어를 포기하지 않고 이어왔던 노력에 대한 내 나름의 ‘체면을 살리는 일’이었다. 그 과정은 주간조선을 통해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이 계획대로라면 6월 초에 귀국을 하고 3개월 휴식을 취한 후 9월에는 다시 프랑스어 연수를 떠나야 했다.
   
   
   일주일 만에 돌변한 상황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지만 남미는 청정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필자가 남미로 연수를 간다고 하자 적지 않은 지인들은 이제 감염의 위험에서 벗어나 마음 편하게 일상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실제 리마에 도착해 미리 계약된 어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왔다고 코로나19 걱정을 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일 정도였다.
   
   그런데 어학원 공부를 시작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상황이 돌변했다. 페루 정부는 대통령 담화를 통해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육·해·공 전 국경의 즉각 폐쇄와 생존에 필요한 필수 업무 이외의 모든 통행을 제한하는 초강경 조처였다. 총 환자수가 70명을 갓 넘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던 전격적인 발표였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빨리 비상사태를 선포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매일 환자 발생 현황을 직접 브리핑했다. 발 빠른 조치에 대통령 지지도는 90%를 상회했다. 그만큼 코로나19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으리라는 기대도 컸다.
   
   당시 필자의 입장에서는 어학원 수업이 더 큰 문제였다. 현장 수업은 비상사태 조처의 일차 타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발표 내용을 듣고 얼마나 난감했는지 모른다. 이곳 페루까지 비상사태 훈련을 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밤새 뒤척이다 그 다음 날 아침에 학원으로 달려갔다. 당황하기는 학원 측도 마찬가지였다. 궁리 끝에 나온 답은 온라인 수업이었다. 한평생 대학에 몸담고 있었다고는 하나 아날로그 친화형인 필자로서는 온라인 강좌에 대한 사전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달리 대안도 없었던 터라 다음 날부터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다. 시작은 어수선했지만 온라인 수업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1 대 1 온라인 수업은 실제 현장 수업과 큰 차이가 없었다. 페루에 오기 전에는 단체 수업을 하고 싶었지만 필자의 학습 레벨이 높아 학생 모집이 힘들다는 이유로 학원 측은 1 대 1 수업을 제안했다. 그땐 아쉽게 생각했는데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 리마 미라플로레스의 야경.

   3·3 프로젝트의 포기
   
   비상사태가 거듭 연장되면서 사람과의 접촉을 통한 실전 생활 회화를 익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온라인 1 대 1 수업은 잡념 없이 공부에만 매진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예정했던 3개월 연수 기간의 시한이 다가왔다. ‘3·3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귀국을 서둘러야 했다. 공식적으로 국경이 폐쇄되었다고는 하나 이른바 ‘인도주의적 항공(vuelo humanitario)’이라고 해서 부정기적으로 미국, 유럽 등지로 한 달에 5~6차례 이상 꾸준히 비행기가 있었다. 실제 많은 한국인은 이들 항공편을 이용해 귀국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정기적이었고 미국, 유럽을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가는 항공편을 구해야 했다. 이왕이면 조금 기다렸다가 올 때 예약한 항공편으로 편안하게 돌아가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이럴 경우 프랑스 연수가 걸렸다. 고심을 거듭한 결과 ‘3·3 프로젝트’ 강행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프랑스어 연수를 내년으로 미루는 대신에 그 기간만큼 스페인어 연수를 더 하자 싶었다. 어학원도 한 달 더 연장했다. 그러다 보니 페루 정부의 단계적 사회 정상화 조치가 이뤄지면서 각종 사회 활동들이 재개됐다. 현지인들과의 대화 기회도 많이 생겼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 훈련했던 내용들을 실전에서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점점 더 많이 알아듣고 더 많이 말할 수 있는 재미가 쏠쏠했다. 예정대로 귀국했더라면 이렇게 스페인어 실력이 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생의 법칙 같았다. 한 가지를 포기하면 한 가지를 얻게 돼 있다.
   
   그렇게 한 달 한 달 늦춰진 것이 9월이 됐다. 귀국 준비를 하기 위해 항공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미국, 유럽 등의 비정기 항공편은 그 숫자가 조금 더 늘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귀국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페루 정부가 10월부터 국경을 열어 정기 국제항공편을 재개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왕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한 달만 더 기다렸다 예약된 항공편으로 편안하게 귀국하자’ 싶었다. 그런데 뒤이은 정부 발표는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국제항공편을 재개는 하되 인근 국가부터 하고 순차적으로 노선을 추가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오랜 기다림 끝에 11월 5일 리마를 출발하는 비행편이 확정됐다.
   
   3개월 예정이 8개월이 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무엇일까. 얻은 것은 당연히 회화 실력이다. 리마로 오기 전에 제대로 된 시니어 어학연수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목표 달성은 페루에 도착해 주간조선에 보낸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과분할 정도의 칭찬이 포함된 어학원의 성적표로 증명이 됐다. 이제는 “영어보다 스페인어로 부탁한다”라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잃은 것은 뭘까. 필자는 평생을 통해 그 어떤 시험에서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 1년에 4개 외국어 능력 시험에 3개월 간격으로 도전해 중국어 HSK 6급 합격, 일본어 JLPT N1 합격, 프랑스어 DELF B1을 합격하고 마지막으로 2012년 5월 스페인어 DELE B2 합격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모범생’으로만 생각하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안 해 본 운동이 없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 몸 쓰는 것을 좋아했다. 학창시절 폭력서클의 유혹도 있었다. 당연히 성적도 들쭉날쭉했다. 그런 가운데 필자의 중심을 끝까지 잡아준 것은 약속에 대한 이행이었다. 남과의 약속은 물론이고, 남들은 모르는 스스로와의 약속도 ‘굳이 저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지켰다. 이번에도 2년 동안 ‘4개국 어학연수’는 내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정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3개월의 마지막에는 갈등이 심했다. 어떻게 해서든 귀국을 해서 정해진 스케줄을 지켜나갈 것인지 아닌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장고 끝에 발상의 전환을 했다. ‘꼭 정해진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어떠냐. 정해진 시간의 틀에 연연하지 말자. 약속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유연해지자. 프랑스어 연수를 내년으로 미루고 스페인어 연수를 더 하자. 그만큼 스페인어 연수가 더 충실해질 것이고 이어지는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연수도 필요하면 연수 기간을 늘려도 상관없는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세상에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생각에 겸허한 마음도 들었다. 이 결정이 훗날 ‘신의 한 수’가 되어 있길 바랄 뿐이다.
   
   
   세계 1위의 코로나19 사망 국가
   
   최근 들어 페루의 상황은 그런대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사망률은 여전히 좋지 않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10월 8일 코로나19로 인한 페루의 사망률은 인구 100만명당 정확하게 1000명이 되었다. 지난 8월 27일부터 도시국가를 제외하고 세계 제1위 자리에 오른 이후 불명예스러운 선두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국민 1000명당 1명이 코로나19로 사망한 것은 페루의 참담한 의료 현실을 반영한 결과이다. 11월 3일 현재는 인구 100만명당 1044명의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총환자 발생 수에서 세계 11위까지 떨어졌다. 페루 정부의 피나는 노력도 있었고 유럽과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 무서운 속도로 환자 수가 늘어난 탓도 있다.
   
   어쨌든 최근에는 일일 환자 발생 수가 2000명대에서 안정세를 유지하다가 11월 2일에는 1634명까지 기록하면서 오랜만에 1000명대의 일일 환자 발생 수를 기록했다. 필자는 최근 리마 남쪽의 한 지방도시에 다녀왔는데 공항에 내리자마자 모든 승객에 대해 전수로 혈액 검사를 통한 코로나19 감염 여부 진단 검사를 시행하는 것을 보고 은근히 놀란 적이 있다. 필자의 검사결과는 음성이었다. 8개월간 세계적인 코로나19 창궐지역에 있으면서 나름대로 선방한 것이다. 부디 페루가 무사히 이 위기를 넘기기를 기원한다. 팬데믹의 와중에 4개국 어학연수 일정의 4분의 1을 마쳤다. 이 글이 나갈 때쯤엔 한국에 돌아가 있을 것이다. 아디오스 리마! 나의 다음 도전은 프랑스어 어학연수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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