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7일 오후 5시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한 카페의 안뜰. 한 발레리나가 소나기에 젖은 바닥을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춘다.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는 관객은 단 1명이다. 이윽고 슬픔에 잠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 로미오. 당신은 왜 로미오인가요?” 청년 예술인들의 연극 공연 ‘HERE IS (,) THEATER’의 풍경이다.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한 카페에서 한 청년 예술인이 공연하고 있다. ⓒphoto 이휘원다니엘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한 카페에서 한 청년 예술인이 공연하고 있다. ⓒphoto 이휘원다니엘

“당신은 왜 로미오인가요?”

청년 예술인들에게 코로나19는 절망 그 자체다. 공연은 대다수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그나마 운 좋게 취소되지 않은 공연은 경력이 부족한 청년 예술인들에게 자리를 주려 하지 않았다. 이날 공연은 그런 젊은 예술인들을 위해 마련됐다.

총괄 기획자 박한결(31) 배우는 “서울문화재단에서 기획한 ‘Art Must Go On’ 지원 사업의 일환”이라며 “코로나19로 위축된 청년 공연계에 활기를 주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실험적 기획”이라고 말했다. 지원 사업에 선정된 공연은 실내공연장이 아닌 배우들이 직접 찾은 야외 장소에서 열린다. 관객은 1명만 받는다. 코로나19 확산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문화예술인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공연계에 공연장 대관료 60억 원, 제작비 153억 원, 온라인 생중계 비용 4억 원, 공연예술 특성화 극장 운영비 50억 원 등이 지원됐다.

그러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 예술인들에게 이러한 지원은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안무가 이예지(26·여) 씨는 “이제 경력을 쌓기 시작한 젊은 예술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무대를 가질 기회”라며 “정부나 재단 차원의 지원은 기성 공연계의 현상 유지나 온라인 공연으로의 전환에만 집중돼 청년 예술인들의 무대 경험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 이씨는 “온라인 공연을 하더라도 무대에서처럼 관객과 소통할 수도 없고 영상화를 위한 장비 등은 아무나 갖추기 쉽지 않아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무대”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여기서도 발레를 할만한 곳은 없었어요. 무용은 몸이 굳지 않는 게 중요한데 몇 개월을 집에서 가만히 보내는 수밖에 없었죠.” 발레리나 박소연(여·24) 씨는 2020년 5월 독일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독일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씨는 어렵게 구한 장소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연습할 수 있었고 나중에는 연습실조차 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각자 집에서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호흡을 맞추는데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라고 했다. 그마저도 충분한 관객 수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첫 공연 하루 전 무대가 취소됐다. “열심히 연습했는데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하니 너무 무기력해져요.”

서울문화재단 추수연(여·31) PD는 “현재 공연계 지원의 주된 방향이 온라인화·영상화에 집중되어 있다”면서 “청년 예술인에 대한 지원도 이전보다 늘었지만, 이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기반이 없는 청년 예술인들은 영상화 작업에 필요한 기술이나 장비에 대해 접근성이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청년 예술인 지원 문제가 코로나19로 인해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김건중 성균관대 무용과 겸임 교수는 청년 예술인들의 위기가 이제껏 고쳐지지 않은 성과주의·결과주의 지원 체계가 해결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지원 사업은 젊은 예술인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지원한 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는가에 목적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주간조선 대학생 기사 공모' 기사입니다.

이휘원다니엘 성균관대 철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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