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의학의 초점은 ‘뇌(腦)’, 21세기 의학의 초점은 ‘장(腸)’이라는 말이 있다. ‘똑똑한 장, 바보 뇌’라는 표현도 있듯, 20세기의 의학은 우리 몸에서 제일 중요하고 복잡한 기능은 뇌가 맡고, 장은 그저 먹은 음식 소화나 해주는 기관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요즘엔 달라졌다. 장도 뇌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사실 그렇다. 뇌의 기능을 이끌어가는 뇌호르몬도 장에서 지시를 내리고 원료 물질을 만들어서 보내주어야 만들어진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미개한 생물체도 뇌는 없어도 음식물을 소화하는 장의 기능을 하는 기관은 있다. 뇌와 장이 하나가 되어 있는 상태다. 고등동물이 되어 뇌가 분화했다 해도, 본부는 장에 있는 것이다.

장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가 진행중이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로만 보아도 그 역할은 엄청나다. 그 중에서 요즘 가장 조명을 받는 부분이 바로 ‘면역기능’이다.

장의 면역기능은 무엇보다도 장내 공생 미생물의 ‘해독(解毒)’, 즉 디톡스 능력에서 온다.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라는 유명한 책의 저자인 영국 의학자 랜돌프 네스와 죠지 윌리엄스는 현대인이 병에 걸리는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했다. “환경 속에 너무 많은 유해 요인(독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물론 인간은 진화의 정점에 선 고등동물인지라 각종 유해 요인에 대응해서 우리 몸을 건강하게 지켜가는 기능, 즉 면역기능을 몸에 갖추고 있다. 하지만 유해 요인이 많아지고, 우리 몸의 면역기능이 무력해지면 병에 걸리고 만다.

거꾸로 말하면 환경 속 독성이 웬만큼 많다 해도 우리의 면역기능만 충분히 강하다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장(腸)에 주목해야 한다.

장이야말로 우리 몸의 면역기능 중 컨트롤 타워인 동시에 최정예, 최대 규모 행동대원들을 담고 있는 본부다. (여기서 말하는 장은 위장·소장·대장을 합친 부분을 말한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100조 개가 넘는다. 그 중 단 10%만이 우리 몸 자체를 이루는 구성 요소이고, 나머지 90%인 90조 개가 넘는 세포는 단세포 생물인 공생 미생물이다. 이 미생물들은 우리의 장, 점막, 피부에 분포하고 있는데, 그 97% 이상이 장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장은 90조 개체나 되는 생명체들이 사는 거대 공동체나 다름 없다.

이 미생물들은 외부에서 음식물을 통해서, 그리고 피부와 혈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물질 중 우리 몸에서 받아들여 사용하지 않는 물질을 분해한다. 대개 분자 규모가 커서 원소로 쉽게 전환되지 않는 물질들인데, 장내 미생물들은 그 고분자 화합물을 분해할 때 나오는 에너지로 살아간다. 미생물에 의해 잘게 쪼개진 외부 물질 구성 성분 중에 우리 몸에 필요한 것은 혈관으로 들여보내고, 불필요한 것, 특히 해로운 것은 콩팥·직장·지라·방광 등 처리 기관에 보내서 대소변으로 외부에 배출시킨다.

그런데 이 미생물들도 생명체인지라, 우리와 비슷하게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독성이 강한 물질을 만나면 죽고, 심리적으로 기분이 나빠지면 미생물들도 무기력해진다. 반대로 긍정적인 마음 상태가 되면 미생물도 활기를 띤다. 워낙 개체수가 많으니까 일부 미생물이 타격을 입어도 웬만하면 그 규모가 회복되지만, 계속 강한 타격이 오면 장이 무너지게 된다. 장 생태계가 회복 불능으로 파괴된다면 건강한 삶을 기대하긴 힘들어진다.

요컨대, 코로나19 바이러스 등 외부 유해요인이 판치는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장에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좀 더 자세한 팁은 앞으로 차차 알아갈 예정이다. 우리의 면역력을 높이는 첫 걸음은 장의 중요성을 이해하하는 일에서 시작한다는 사실, 꼭 기억해두자.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왕림 가정의학과전문의. 대한생활습관의학교육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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