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 좋아하는 음식 제1호를 꼽으라면 단연 ‘발효식품’이다. 발효식품은 어떤 식재료를 미생물을 이용해서 분해한 상태의 식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미생물을 통한 분해 과정을 발효라고 하는데, 우리 몸의 소화 기능과 비슷한 점이 많다.

소화란 외부로부터 섭취한 음식물을 우리의 장(腸) 안에서 단순한 구조의 무기물과 에너지로 분해하는 과정이다. 우리 몸에 들어온 음식물을 소화하면서 혈관 중에 흡수해 우리 몸 곳곳에서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다.

이 때 꼭 필요한 것이 ‘장내 미생물’이다. 미생물은 기본적으로 복잡한 구조를 갖는 유기물을 분해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 장 안에 사는 미생물은 우리의 먹거리가 되는 동식물의 복잡한 성분을 분해해서 단순한 구조의 무기물로 바꾸어준다.

발효는 미생물이 우리의 장 안에서 하는 작업을 외부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먹기 전 외부 음식에서 미생물을 활용해 일차적으로 소화‧흡수되기 쉬운 형태로 만들어 놓는 게 발효인 셈이다.

그래서 발효식품을 먹으면 일단 속이 편하다. 소화하는 데 에너지가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소화력으로는 잘 분해하기 어려운 아주 복잡한 유기물까지도 분해하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식재료의 범위가 넓어진다. 예를 들어 콩만 먹으면 설사를 하는 사람이라도 콩을 발효시킨 된장을 먹으면 속이 편하다.

하지만 잘못 만든 발효식품은 외려 건강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미생물도 생물이기 때문이다. 발효식품 안에 들어 있는 무수한 미생물이 건강하고 안정된 상태라면 그 발효식품은 냄새도 좋고 맛도 좋고 우리의 소화력과 면역력을 키워줄 수 있다. 미생물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라면, 그 무수한 개체가 내는 스트레스 독성 때문에 음식의 냄새도 맛도, 건강 효과도 고약해진다.

요즘은 도시에서는 물론 시골에서도 집에서 장을 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메주를 띄우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하지만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집집이 장을 담았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메주를 쑤고 띠우고 장을 담을 때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기억이 난다.

방에서 메주를 띄울 때면 방이 식지 않도록 정성을 다했다. 메주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해가 좋은 날 장독대에 내다 말려 햇볕을 쐰다. 갑자기 비라도 뿌리면 마른 수건으로 정성껏 닦아주고, 혹여 메주 관리가 잘못돼서 검은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하면, 가느다란 붓으로 속속들이 털어내서 다시 바람 잘 통하는 데 매달아 놓고….

어렸을 때는 그런 어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게 뭐라고 저렇게 많은 시간을 쓰고 있을까?’ 지금 생각하면, 가족들의 면역력을 증진시켜줄 좋은 음식을 먹게 해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도, 우리네 어머니들은 그런 지혜로 자식들을 감싸왔다.

그냥 음식 만들어 먹기도 힘든 세상이다. 제조 단계부터 이토록 공들여야 한다면, 바쁜 현대인들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쉽게 유산균 발효를 이용할 수 있게끔 개발된 보조식품들이 다양하게 나온다. 통틀어서 ‘프로바이오틱스’라고 하는 제품들이다. 아주 효율적으로 일하는 미생물 균종을 엄선해 당질이나 단백질 식재료에서 배양하여, 분말이나 액체 상태로,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건강식품은 우리 신체의 면역기능에 도움을 주는 측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발효식품은 효과적인만큼 까다로운 부분도 있다는 점 잊어선 안 된다. 일상의 음식상태로 먹든, 간편하게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활용하든, 먹고 나서는 우리 장의 상태를 살피는 습관을 갖는 게 좋다. 장과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맞는 음식을 찾아가는 정도의 노력은 해야 팬데믹 시대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왕림 가정의학과전문의·대한생활습관의학교육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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