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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감독의 두 번째 시선]  '당신은 노동자입니까?'....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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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48호]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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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독의 두 번째 시선]'당신은 노동자입니까?'....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박수영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  2021-03-07 오후 2:51:22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맨 처음 이 영화의 스틸컷을 보았을 때가 기억난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가 나란히 어딘가에 매달려 있었다. 매우 감각적인 사진이었고, 그 때문인지 나는 그들을 매단 것이 송전선로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두 사람은 송전탑을 보수하고 있었고, 뒤편으로는 파란 하늘이 깨끗하게 펼쳐졌다. 사진 속 남자는 미소 짓고 있었다.
   
   이 영화가 노동의 무거움을 말하는 영화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어쩌자고 이렇게 아름답게 그렸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나라에서, 위험천만한 노동 현장을 이렇게 아름답게 그린 이유는 뭘까. 누군가는 돈을 내고 고공을 ‘체험’하는 시대여서일까. 저 한 장의 사진이 무척이나 폭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 그곳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을 폭력이라 여긴 내가 어쩌면 아무것도 몰랐던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는 여성 노동자 ‘정은’(유다인 분)이 7년간 근무했던 원청을 떠나 하청업체로 파견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권고사직과도 같은 파견이었다. 정은은 사측의 부당한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어 분노하면서도, 파견 업무를 무사히 수행해 자신의 자리를 되찾으려 애쓴다. 하청업체 소장은 정은의 등장이 달갑지 않다. 원청은 정은을 파견 보낸 후 되레 하청업체에 할당된 인건비를 줄였다. 하청이 알아서 정은을 내쳐주길 바란 것이다.
   
   곧 나가떨어질 것 같던 정은은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면서도 주저앉지 않는다. 이때 영화가 환기하는 이미지는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듯 위태로운 불빛, 깜빡깜빡하는 책상 위 전구 같은 것들이다.
   
   꿋꿋했던 정은은 그러나 눈앞에 송전탑이 나타난 순간 극심한 공포에 빠진다. 송전탑의 거대한 몸집에 기가 눌린 듯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긴커녕 방해만 되고 만다. 이때부터 그는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동료 직원 ‘충식’(오정세 분)에게 과외수업까지 받으며 장비 쓰는 법, 탑에 오르는 법 등을 익힌다. 그리고 조금씩 송전탑에 대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한다.
   
   그런 노력 끝에 마침내 오른 탑 위의 세상은, 도처에 위험이 깔려 있을지언정,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다. 아마도 송전탑 보수 노동자들에게 송전탑이란 단순히 높고 위험하기만 한 곳은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송전탑은 세찬 바람이 불지만 하늘과 노을이 등 뒤의 배경이 되어주는 곳, 해와 구름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풍경은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만 허락된다.
   
   영화 속 충식이 정은에게 “일하는 거 재밌어요. 일반 사람들은 못 보는 이렇게 멋진 풍경도 매일 볼 수 있고”라고 말했을 때, 내가 처음 가진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그곳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곳이라 생각한 것, 그들의 삶에는 희미한 볕만이 들 거라 생각한 것, 그것은 존중을 가장한 거대한 폭력이었다. 송전탑 위는 착취와 분노, 슬픔이 있는 곳이지만 노동의 기쁨과 아름다움도 동시에 있는 곳이었다. 다시 말해 ‘노동 현장’에는 문제가 없었다.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나도록 방치하는 사회와, 사회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일 뿐.
   
   영화는 노동자들이 쉽게 연대할 수 없는 상황도 보여준다. 충식은 송전탑 보수 노동을 하는 동시에 편의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시간이 남으면 대리운전도 한다. 늘 잠이 부족한 그는 걸핏하면 사무실 한쪽 구석에 누워 잠을 잔다. 하청업체 소장은 “틈만 나면 자니까 근무평가가 좋을 수 없지 않으냐”며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즉 기존 직원들 중 성적이 가장 나쁜 충식과 파견 여성 노동자인 정은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인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은 결코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조심스레 연대의 가능성을 도모한다. 그래서일까. 충식이 “송전탑 위에서는 동료밖에 없다. 동료를 믿어야 한다”고 말할 때는 어쩐지 가슴 한편이 뜨거워진다. 물론 현실에서도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 연대는 좁은 범위에서만 이뤄지다가 금세 벽에 막히고 만다.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기사에서도 그랬다. 사측의 부당한 처우에 화가 난 노동자들이 천막농성에 들어갔다는 기사였는데, 달린 댓글이 충격적이었다. 절반 이상이 ‘노동자 요구를 들어주기 시작하면 그 기업은 망한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능력에 비해 많은 것을 요구한다’ 같은 내용이었다. 그곳 노동자들이 바란 것은 ‘사회적 합의에 맞는 최소한의 임금을 지급할 것’ ‘휴식시간을 제대로 보장할 것’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었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댓글을 단 사람도 대부분은 노동자일 텐데, 그들은 노동자보다 고용주의 입장에 이입하기를 택했다. 노동자조차 다른 노동자의 편에 서 주지 않는 현실에서 광범위한 연대를 이루는 것이 가능할까. 온전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영화 속 노동자 네 사람은 작업 현장까지 가는 차 안에서 힙합 음악을 듣는다. 노동요로서의 힙합이라니. 어쩐지 생경하면서도 이 장면과 묘하게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최근 한국에서 주로 소비되는 힙합이 자본의 중요성을 소리높여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차 안에서 힙합 음악이 나와도 듣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던 정은과 충식이, 끝내 이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다. 차가 덜컹거리며 달릴 때 정은과 충식의 몸은 그 떨림과 진동에 따라 움직인다. 이 장면이 돈과 경쟁을 말하는 사회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몸을 의탁하는, 순응하는 노동자의 자화상처럼 보였다면 과장일까.
   
   영화 속 충식은 궂은날 송전탑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도 그의 동료들은 송전탑에 올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또 사고를 당할 것이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정은이 전기재료상 앞을 지나는 영화 속 장면은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자는 전기를 공급하는 데 쓰이는 부품, 그야말로 ‘전기 재료’에 지나지 않는다고.
   
   2021년 1월 8일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정은과 충식이 일하는 곳은 5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한다. 그 누구도 이 사고에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개봉 2021년 1월 28일
   감독 이태겸
   주연 유다인, 오정세
   조연 김상규, 김도균, 박지홍
   등급 12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국가 한국
   러닝타임 1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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