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 면역력이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구인들 모두의 명제가 된 생각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유효한 백신(vaccine)이 개발되면 이 사태가 극복될 거라는 믿음 역시 비슷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백신이란 기본적으로 아직 특정 질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증대시켜, 앞으로도 그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특정 질병에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면역 전략을 ‘적응적 면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에게는 이런 적응적 면역 이전에 더 기본적이고 포괄적인 면역 전략이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아무리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종이 생겨난다 해도 다 막을 수 있는 전략이다. 이 전략을 통틀어서 ‘내재적 면역’라고 한다.

내재적 면역이란 생물이 외부로부터 오는 병원체로부터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춘 능력을 말한다. 인간의 경우엔 피부나 점막과 같은 방어벽, 체액 농도 조절 등 병원체 퇴치 환경을 조성하고 병원체를 흡입‧분해하는 포식 면역세포의 활약, 그밖에도 무수한 면역세포와 면역물질의 합동작용으로 체내에 들어온 병원체를 제거하는 등의 면역과정이 있다.

이 모든 내재적 면역과정의 컨트롤 타워가 바로 장이다. 20세기까지는 인간의 면역력을 조절하는 기능은 ‘뇌’에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뇌가 활성화되면 면역세포가 갑자기 증가하고 면역물질 분비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20세기 말, 21세기 초부터 ‘장’의 기능이 재조명되면서, 뇌는 장의 지시를 받는 하부기관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뇌는 마치 임산부의 태반처럼 폐쇄적이어서, 어떤 물질도 함부로 들여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장으로부터 오는 신호물질은 항상 프리 패스다. 이렇게 뇌와 장은 ‘핫 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어 몸 전체로서 내재적 면역기능이 발휘되게 하는데, 그 과정을 일으키는 원초 물질이 장에서 만들어진다. 이런 장-뇌의 복합 체계를 ‘장-뇌 축(gut-brain axis)’라고 한다.

장-뇌 축과 면역계 요소들의 상호작용
장-뇌 축과 면역계 요소들의 상호작용

장과 뇌가 합동해서 일하는 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미시 세계(micro-world)의 대서사시이며 믿음직스럽다. 바이러스의 침입 등 외부의 자극은 일차적으로 장으로 수렴되어 장 점막에 분포하는 면역시스템을 자극하고, 교감신경 및 부교감 신경의 구심성 섬유를 통해 뇌로 정보가 전달된다.

이 정보는 뇌의 여러 부위로 전달된다. 뇌는 인지영역, 감각영역에서 정보를 통합 해석하고 원심성 자율신경을 통해 신경내분비계를 거치면서 필요한 호르몬을 분비한다. 온 몸의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고 면역물질을 분비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일어난 변화 상황에 대한 정보가 뇌에서 수집되어 다시 장으로 간다.

모든 신호와 정보의 전달은 생체 전기 시스템으로 연결되므로, 불과 수십분의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한 사이클을 돌 수 있다. 이런 사이클이 일상적으로 무수히 반복되면서 우리 몸은 외부로부터 오는 바이러스 등 병원체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능력은 생명체로서 출발한 이래 수십억 년의 진화 과정을 통해 더욱 정교하고 효율적인 것으로 강화되어 온 것이고, 인간은 그런 능력이 가장 발달한 생명체다.

이렇게 믿음직하게 갖추어져 있는 능력이 항상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작용에 따라, 이런 내재적 면역기능이 거의 발휘되지 않도록 억제되어 있는 상태와, 엄청난 잠재력을 폭발시키면서 활성화되는 상태가 교대로 진행된다.

교감신경, 즉 외부 자극에 대해 긴장해서 예민하게 반응할 때 활성화되는 체계에서 내재적 면역력은 최대한 억제된다. 부교감신경, 즉 외부와 나 자신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고 행복한 일체감을 느끼는 체계에서는 최대한 활성화된다.

계속 길어지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해야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을지, 방향을 잡아 나가는데 참고로 삼아야 할 기본적인 생리학적 지식이다. 내재적 면역체계를 활성화시키려면 장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21세기에 들어 추가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첨단의 생리학 정보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왕림 가정의학과전문의·대한생활습관의학교육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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