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면에 미소를 지었지만 매서운 눈매를 지닌 덴젤 워싱턴(66)은 질문에 차분하게 답했다. 평소 으스대던 태도를 고쳤는지 다소 겸손해 보였다. 하지만 질문에는 직선적으로 대답했고, 매우 진지했다. 그는 심리 스릴러 ‘더 리틀 싱스(The Little Things)’에서 LA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젊은 수사관 짐(라미 말렉 분)을 돕는 경찰관 디크로 나온다. 어두운 과거를 지닌 노련한 지방 경찰관 역이다. 워싱턴은 뉴욕의 자택에서 영상 인터뷰에 응했다.

- 영화 속 살인사건 수사 과정에서 사체실의 여자 사체에게 말을 거는 장면을 찍을 때 기분이 어땠는가. “그 장면 속의 나는 워싱턴이라는 실제의 내가 아니라 영화 속의 인물인 디크여서 철저히 디크가 느끼고 행동하는 대로 연기했다. 그런데 그 사체는 실제의 여자여서 나신을 보는 것에 대해 다소 얄궂은 죄책감을 느꼈다. 여하간 그 장면을 찍을 때 전연 개인적인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다.”

-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있으면서 TV로 어떤 프로를 보는가. “집에 원시인처럼 나만의 동굴을 지어 놓았다. 고성능 음향시설과 대형 TV를 설치했고 모든 기구를 손에 닿는 곳에 비치해 두었다. 드라마와 코미디를 보는 대신 주로 기록영화들을 보고 있다. 얼마 전에는 김정(여기서 워싱턴은 정확히 이름을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북한 김정은을 일컫는 것 같았다) 뭐라는 사람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 그의 가족사를 다룬 기록영화를 흥미있게 보았다. 쇼나 드라마 같은 것들은 보지 않는다.”

- 요즘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지금 ‘저널 포 조던(Journal for Jordan)’이라는 영화를 감독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에 2주간 캘리포니아의 사막지대에 있는 포트 어윈에서 촬영했다. 앞으로 장소를 뉴욕으로 옮겨 찍을 예정이다. 제작진은 코로나19 검사를 철저하게 받았고 나도 영화를 찍으면서 매주 다섯 번 검사를 받았다. 이 영화 전에 ‘맥베스’를 찍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촬영이 중단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우린 지금 이런 상황하에 살고 있다.”

- 당신의 맏아들 존 데이비드 워싱턴도 배우로 성공했고 그의 최신작 ‘말콤과 마리’도 호평을 받고 있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영화의 제작자는 내 장녀인 카티아다. 둘째 딸 올리비아도 뛰어난 배우로 최근에 데이비드 오이엘로와 공연한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올리비아의 쌍둥이인 둘째 아들도 영화감독이다. 그러니까 존을 비롯해 내 아이들은 모두 영화계에 종사하고 있다.”

- 디크는 가슴에 후회와 사무치는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 내적 갈등이 심한데 그가 어떻게 그런 것들을 해소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는 그런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그런 갈등을 해결하려고 거치는 여정이 영화의 주제라고 해도 되겠다. 그런 그를 생각하면 요즘의 우리가 처한 상황이 생각난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영적 닻이 없으면 바람이 부는 대로 떠다니게 마련이다. 어렵고 도전을 받는 때일수록 우리는 자신에게 우리가 무엇을 진실로 믿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런데 디크는 자신의 문제에 관한 답이 자기 안에 있는데도 그것을 자기 밖에서 찾고 있다. ‘너의 적은 네 안에 있다’는 말은 디크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 코로나19 사태를 제외하고 요즘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살고 있다고 보는지. “우리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자유의지를 가진 동물인데 지금 그 자유의지가 지나치게 팽창해 있다. 지금은 과다한 정보의 시대다. 우리는 그 많은 정보를 어떻게 수용하며 또 그것을 어떻게 진실로 받아들여 의지할 것인지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귀와 눈과 마음과 가슴을 보호해야 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문제의 답은 내 안에 있다. 우리는 모두 정신적으로 각성해야 한다.”

- 디크 역을 위해 어떤 음악을 들었는가. “디크는 구세대 사람이어서 흘러간 노래들을 좋아해 나도 옛 노래들을 들었다. 그 문제에 대해선 감독인 존 리 행콕과도 상의했다. 디크는 자기 내면의 갈등을 치유하는 한 수단으로 1950~1960년대의 노래들을 듣는다. 나도 그 당시의 노래들을 들었다.”

- 코로나19 사태 이후 영화산업의 앞날이 어떻게 변하리라고 보며 또 그것을 염려하는가. “영화보다 인간성의 앞날이 더 염려된다. 영화산업의 앞날은 두고 봐야 알겠지만 성경에서 ‘이 또한 모두 지나가리라’고 여러 차례 말했듯이 영화계도 백신을 비롯해 코로나19 대처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영화계는 과거보다 더 힘차게 돌아올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함께 뭉쳐 집단을 이루고 또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내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질병이 해결되고 나면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더 강하게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미 말렉, 덴젤 워싱턴, 크리스 바우어(왼쪽부터)가 등장한 ‘더 리틀 싱스’의 한 장면. ⓒphoto 워너브라더스
라미 말렉, 덴젤 워싱턴, 크리스 바우어(왼쪽부터)가 등장한 ‘더 리틀 싱스’의 한 장면. ⓒphoto 워너브라더스

- 디크는 과거에 갇혀 사는 사람인데 당신도 과거 어느 한 순간에 갇혀 탈출하려고 애쓴 적이 있는가. “우린 다 함정에 빠져 꼼짝달싹 못 하고 자신이 취약하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그저 스스로가 그 순간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다. 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행복하게 생각하지만 행복을 위해 일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내 힘은 내가 하는 일이나 영예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신이 내게 준 재능을 이용하고 있다는 데서 내 일에 기쁨을 느낀다.”

-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1월 마지막 주에 쓴 ‘21세기 가장 위대한 배우 25인’이라는 기사에서 사극과 액션영화 등 모든 장르를 섭렵하는 당신을 일등으로 꼽았다. 당신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스스로를 남을 돕고자 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를 문제의 한 부분이라기보다 해결의 한 부분으로 생각한다. 이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신이 내게 준 재능을 이용할 기회를 점점 더 많이 찾아내고 있다. 내 일을 통해 사람들이 잠시나마 마음속의 짐들을 내려놓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 내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신은 보상하고 인간은 그 보상을 받는다’고. 나는 이미 그 보상을 받을 대로 다 받았다. 그러나 난 행복이 그것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뉴욕타임스의 글이 고맙고 또 누가 그 명단을 작성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그런 것 때문에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내 임무는 신이 준 내 능력을 최대한 이용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막론하고 내가 알고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면서 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내 뒤에 오는 젊은 영화인들과 그런 것들을 공유하는 것도 그 하나의 예라고 하겠다.”

- 심리 스릴러 장르와 당신과의 관계는 어떤가. “나는 각본을 읽을 때 어떤 장르인지를 따지면서 읽지 않는다. 다만 글이 잘 써진 것인지를 생각할 뿐이다. 이 작품이야말로 참으로 글이 좋은 작품이다. 재능 있는 존 리 행콕이 글도 썼다. 도대체 누가 나쁜 사람인지를 알다가도 모르게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를 스릴러라는 작은 범주에 국한시키지 말아주길 바란다. 그보다 더 큰 범주에 속하는 작품이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장점이다.”

- 감독으로서 어떤 선배 감독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는가. “요즘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를 계속해 보면서 영화의 장면을 훔쳐 내 것에 쓰고 있다. 또 일종의 헌사 식으로 조너선 드미의 ‘양들의 침묵’의 장면도 훔쳐 왔다. 오래전에 내가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연출하는 것에 대해 한 수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훔쳐. 다들 훔친단 말이야. 그러나 최고의 것을 훔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스필버그의 것도 훔치고 있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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