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첫 회에는 연회 장면에서 월병 등 중국풍 음식들이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photo SBS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첫 회에는 연회 장면에서 월병 등 중국풍 음식들이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photo SBS

SBS 판타지사극 ‘조선구마사’는 지난 3월 22일 첫 방송을 내보냈고, 그 주가 채 지나기도 전인 26일 폐지가 결정됐다. 겨우 단 5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역사왜곡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원인이었지만, 지금껏 이 논란은 퓨전사극에서는 부지기수로 벌어지던 일들이었다. 물론 그런 역사왜곡이 논란과 비판을 불러일으키게 하긴 했지만 이번처럼 폐지라는 초유의 사태로까지 이어진 적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단 5일 만에 320억 대작드라마의 발목을 잡은 걸까.

불안한 전조는 방영 전부터 있었다. ‘조선구마사’가 그리려는 세계관 때문이었다. 조선에 생시(악령에 씐 좀비 형태)가 창궐해 국가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되고, 바티칸에서 온 구마사제의 도움을 받아 태종과 양녕대군, 충녕대군이 이들과 싸우는 세계관이 그것이다. 판타지사극이라고는 하지만 실존인물들이 버젓이 들어가 있는 데다, 이들이 조선을 구하는 게 자력이 아닌 외부의 힘(바티칸)에 의한 것이라는 설정이 자칫 오해의 소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작진은 이런 우려 섞인 목소리에 문제의 소지를 없앴다고 밝혔지만, 첫 방송된 1회 결과물은 얘기와는 달랐다.

첫 회는 역사왜곡의 소지들을 잔뜩 담고 있었다. 태종이 환시를 보며 양민을 학살하는 장면은 이 역사적 인물을 ‘폭군’처럼 묘사했고, 구마사제를 맞이하러 변방으로 간 충녕대군은 사제와 통역사에 하대를 받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심지어 충녕대군의 “6대조인 목조께서도 기생 때문에 삼척으로 야반도주를 하셨던 분인데 그 피가 어디 가겠느냐”는 대사는 선조들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뉘앙스가 담겼다. 판타지사극이라고 해도 엄연히 실존인물을 극에 쓴다면 극히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드라마는 여기에 둔감했다.

‘조선구마사’를 쓴 박계옥 작가는 이미 tvN 판타지사극 ‘철인왕후’에서도 “조선왕조실록도 지라시네”라는 대사로 인해 논란을 겪은 바 있다. 그러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로서는 연달아 우리네 역사와 역사적 인물들을 폄훼하는 내용에서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지 않은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조선구마사’ 2회에는 한 놀이패의 입을 통해 최영 장군을 비하하는 대사 역시 들어갔다. “충신? 하이고, 충신이 다 얼어죽어 자빠졌다니? 그 고려 개갈라 새끼들이 부처님 읊어대면서 우리한테 소, 돼지 잡게 해놓고서리… 개, 백정 새끼라고 했지비아니?”

역사왜곡을 넘어 문화왜곡의 빌미

그런데 이번 ‘조선구마사’ 논란에는 그간의 역사왜곡 논란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역사만이 아닌 ‘문화왜곡 논란’ 또한 파장이 만만찮게 컸다는 사실이다. 첫 회에 등장한 기생집 장면에서 소품으로 등장한 음식들은 월병, 중국식 왕만두, 피단(중국식 삭혀 먹는 오리알)이었고, 마시는 술이나 술동이도 중국풍 일색이었다. 어째서 조선 땅에서 식사를 하는데 중국 음식들이 올라와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되자, 제작진은 그곳이 변방이고 “명나라 국경에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중국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력을 가미하여 소품을 준비했다”며 “이는 극중 한양과 멀리 떨어진 변방에 있는 인물들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한 설정이었을 뿐, 어떤 특별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역사적 사실을 간과한 해명은 오히려 더 큰 역효과를 불렀다. 당시는 아직 만주가 중국 문명이 아닌 만주 문명에 속했던 시기라 의주는 중국이 아닌 만주와 경계를 한 곳이었다는 것. 이후 네티즌 수사대들은 ‘조선구마사’에서 갖가지 중국풍 소품들을 찾아냈다. 무녀가 입고 나온 의상도 양녕대군이 들고 있던 칼도 또 심지어 OST에 들어간 악기조차 중국 악기라는 게 밝혀졌다.

소품들이 엄청난 논란의 불씨가 된 건 다름 아닌 최근 중국의 문화공정(전파공정) 때문이다. 중화문명을 전 세계에 전파한다는 미명하에 인플루언서와 댓글부대는 물론이고 관영매체, 외교공관까지 합세해 조직적으로 갖가지 가짜뉴스를 생산해내는 문화공정으로 인해 우리네 대중들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김치도 한복도 모두 중국이 원조라고 주장하는 가짜뉴스들을 저들이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 ‘조선구마사’의 중국풍 소품들은 그저 실수나 고증 부족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심각한 사안이 되었다. 그것들이 모두 중국의 문화공정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소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라는 배경 설정이 버젓한 상황에서 중국 음식을 먹고, 중국풍 의상을 입고, 중국식 칼을 쓰며, 음악까지도 저들의 전통악기로 채워진다는 건, 자칫 저들의 문화공정이 더해지면 조선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 애매해질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데 대중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이는 실제 현실로 드러났다. 중국의 최대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 ‘조선구마사’의 중국풍 소품들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이 쏟아진 것. “한국은 민족 뿌리가 없는 국가인가, 왜 다른 나라 문화를 훔치나” “한국 고전 드라마 의상은 모두 중국 것을 베낀 것이다. (드라마) 안의 음식 모두가 중국 것이다” “한국 역사 자체가 중국의 역사 아닌가” 같은 조롱 일색의 글들은 우리네 대중들을 더욱 자극했다.

‘조선구마사’ 포스터 ⓒphoto SBS
‘조선구마사’ 포스터 ⓒphoto SBS

중국의 문화공정이 만든 새로운 감수성

중국의 동북공정이 역사왜곡의 문제로 우리네 대중들을 분노하게 했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화공정은 최근 글로벌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K콘텐츠 속 이른바 ‘중국향’ 소품이나 설정 등에 대한 반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조선구마사’에서 그 감정이 폭발한 것이지만, 사실 이전부터 반감은 다른 콘텐츠들 속에서도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게다가 문화공정은 역사만이 아니라 문화 자체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극에서만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최근 벌어졌던 tvN 드라마 ‘빈센조’의 중국 비빔밥 PPL 논란은 대표적인 사례다.

본래 PPL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악으로서 시청자들에게 암묵적 동의(죄송하지만 제작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를 요구하는 일이다. 결국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일 수 있어서다. 따라서 실제로 우리네 거리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중국 광고나 편의점에서 살 수 없는 중국 제품이 PPL로 들어간다는 건 제아무리 필요악이라 해도 동의를 얻기 어려운 무리한 PPL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방영됐던 tvN 드라마 ‘여신강림’에는 버스정류장에 중국어로 쓰인 광고가 등장한 데 이어, 우리 편의점에는 없는 훠궈 컵라면이 PPL로 나왔다. 물론 이것은 중국 PPL까지 들어오게 된 K콘텐츠의 글로벌한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청자들로서는 몰입을 방해해 보기 불편하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 PPL이 ‘문화공정’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건 ‘빈센조’에 뜬금없이 등장한 중국 비빔밥 PPL로 현실이 됐다. 극 중 ‘차돌박이 돌솥비빔밥’이라는 한글이 들어간 중국 컵밥을 먹는 장면이 만들어낸 후폭풍은 의외로 컸다. 이 장면이 나간 후 한 네티즌이 중국에는 ‘한국식 김치 돌솥비빔밥’이라고 적힌 제품도 판매되고 있다고 밝혔고, 시청자들은 더욱 공분했다. 그 문구는 김치나 비빔밥이라는 우리 고유의 음식 앞에 ‘한국식’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식어를 붙여 그것이 마치 우리 것이 아닌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표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우리 비빔밥을 흉내 낸 짝퉁 중국 인스턴트 컵밥을 우리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맛있다며 먹는 장면은 자칫 문화공정의 빌미가 될 수 있었다. 비빔밥도 자신들 것이라 주장하는 저들의 문화공정 속에서 우리 드라마 속 인물들조차 저들이 만든 비빔밥을 먹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즉 문화공정은 이처럼 역사만이 아닌 우리네 문화 전체를 건드리고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사극만이 아닌 현대극에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빈센조’ PPL 논란은 보여줬다.

‘조선구마사’ 사태는 중국의 문화공정을 전제하지 않고는 그 역대급 파장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중국 PPL 하나에도 문화공정의 빌미가 되는 현실 속에서, 조선시대라는 특정 시공간을 담은 사극에서 중국풍 소품들과 음식 등이 곳곳에 등장한다는 건 그 시대의 문화들을 왜곡하는 일이 될 수 있어서다.

tvN 드라마 ‘빈센조’에도 중국 비빔밥이 등장해 누리꾼들의 지적을 받았다. ⓒphoto tvN
tvN 드라마 ‘빈센조’에도 중국 비빔밥이 등장해 누리꾼들의 지적을 받았다. ⓒphoto tvN

‘조선구마사’ 사태를 통해 배워야 할 것들

혹자는 판타지사극, 퓨전사극이라고 하면 고증이 불필요한 ‘상상력으로 만든 허구’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판타지든 퓨전이든 특정 시대를 빌려 쓰는 사극이라면 적어도 그 시대의 문화에 대한 고증은 반드시 있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게 없다면 우리 사극으로서의 정체성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중국 사극이라고 해도 뭐라 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조선구마사’는 심지어 태종, 양녕대군, 충녕대군 같은 조선시대 실존인물들까지 등장시켰다. 이야기는 판타지사극으로서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물론 실존인물이 들어갈 때는 상상력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조선시대의 풍경이나 문화, 관습 같은 것들은 제대로 된 고증을 따라야 한다.

되돌아보면 ‘조선구마사’를 쓴 박계옥 작가의 전작이었던 ‘철인왕후’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이미 존재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현재에서 조선시대로 날아간 남성이 왕후의 몸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판타지사극이지만, 거기에도 조선시대라는 엄연한 시공간이 있고 실존인물인 철종이 등장한다. 코미디로 풀어낸 면이 있어서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왕후가 왕에게 시종일관 반말로 일관하고, 그걸 받아주는 왕의 모습은 제아무리 판타지에 코미디라고 해도 조선시대의 문화와 관습을 깨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설정은 17.3%(닐슨코리아)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게 했고, 시청률은 이 드라마에 초반부터 불거졌던 역사왜곡 논란을 둔감하게 만든 게 사실이다. 온전히 시청률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최소한의 역사의식이나 책임감 없이 작품을 만드는 건 이제 위험한 일이 되고 있다. 특히 지금 같은 문화공정이 자행되는 시대에 적어도 시대를 빌려 작품을 만드는 제작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키워드

#기고
정덕현 대중문화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