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정말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즐기기에 낮 시간이 부족한 적이 있다’ ‘퇴근 후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밀려드는 졸음을 참아가며 수면 시간을 뒤로 미룬 적이 많다’ ‘피로에 지쳐 침대에 등만 대면 바로 잠들어버릴 것 같지만 그냥 잠들긴 억울해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보며 버틴 적이 있다’….

이런 행동을 보면서 ‘어, 이거 내 얘기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하는 것도, 지금 바로 자지 않으면 내일 피곤하리라는 것도 알지만 ‘지금 잠들기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에 수면을 뒤로 미루는 현상. 바로 ‘리벤지 취침 미루기(revenge bedtime procrastination)이다. 직역하면 ’보복성으로 취침시간을 미룬다‘로, 늦게까지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며 낮 시간 동안 휴식을 충분히 취하지 못함에 대한 복수를 한다는 의미다.

‘리벤지 취침 미루기’는 2014년 한 연구 논문에서 처음 나온 개념이지만, 코로나19 발발 이후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해외 미디어에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 미주리대학 연구진이 팬데믹 이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 49개국 성인의 58%가 수면의 질이 낮아 불만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필립스가 한국인 9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한국인의 62%가 스트레스 등으로 수면 문제를 겪고 있었다.

리벤지 취침 미루기는 길고 스트레스가 심한 낮 근무 시간에 대한 반작용이다. 근무시간 동안 개인의 휴식을 위한 시간이 거의 없는 경우, 자유가 보장된 밤 시간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의료센터로 유명한 미국 로마린다대학 수면 장애 센터 라미즈 파르고 박사는 “특히 코로나19로 이후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휴식과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일상이 무너져버린 데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리벤지 취침 미루기의 형태는 다양하다. 어린 아이가 잠을 자지 않겠다고 떼쓰며 부모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부터 침대에 누워 굳이 소셜미디어로 친구들의 소식을 확인하고, 새로 나온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것 모두 리벤치 취침 미루기의 형태다. 파르고 박사는 “(리벤지 취침 미루기는) 당신이 평소 좋아하는 활동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리벤지 취침 미루기에 대한 2014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고의로 자신의 수면시간을 줄이면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 일 또는 직장에 빼앗겨버린 듯한 삶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인식을 통해 성취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성취감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악순환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수면 부족은 궁극적으로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해를 끼친다. 불규칙적이고 부족한 수면은 결국 면역 체계에서 성욕에 이르는 우리 신체 건강의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 심장병과 고혈압을 포함한 만성 질환의 위험을 높이며, 우울증상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도 알려졌다. 미국 USC 의과대학의 라지쿠마르 대스굽타 박사는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않으면 생산성의 감소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상승 등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이 같은 행위가 코로나블루를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스굽타 박사는 “평소 취침 지연으로 인해 부족한 수면시간을 주말이나 휴가 등의 시간에 몰아서 채우려 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수면 벼락치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리 효과적 방법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제 학술지 현대생물학(Current Biology)에 발표된 최근 연구에 따르면, 평소 부족한 잠은 주말의 숙면, 충분한 휴식으로도 회복하기 힘들다. 주말 수면의 질이 낮은 경우 오히려 폭식, 비만 등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리벤지 취침 미루기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취침 시간에 임박에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잠자리에 누워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삼가라고 조언한다. 매일 밤 일정한 시간에 잠드는 것도 좋은 습관이다. 하지만 리벤지 취침 미루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나 자신을 위한 자유시간의 부족인 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낮 시간 동안 충분한 휴식과 취미생활을 위한 시간을 가질 것을 권장한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