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신자의 5대 의무 중 하나인 라마단(Ramadan) 시즌이다. 한 달간 이뤄지는 금식 행사로, 올해는 4월 13일부터 5월 12일까지 진행된다. 라마단은 이슬람 달력의 9월을 의미한다. ‘뜨거운 열기’라는 아랍어 ‘라미하(Ramidha)’를 어원으로 한 말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보면 낯선 해외토픽으로 와 닿지만, 라마단 소식은 매년 때가 되면 등장하는 중동발 고정 뉴스로 정착된 듯하다. 이슬람권 나라를 찾을 때마다 과연 라마단 금식의 기율이 신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달 내내 지켜보며 생활 속에서의 라마단을 느끼고 싶었다. 부분적으로 참가하는 것은 물론 이슬람 신자들의 얘기도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터키에서 맞이한 코로나19 장기 망명생활 덕분이지만, 라마단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가능하면 유서 깊은 도시에서 지켜보려는 의도에서 라마단 1주일 전부터 타르수스(Tarsus)로 달려갔다. 기독교 성인 바울(Paul)이 태어난 곳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사는 물론 이슬람 역사 그 자체를 간직한 6000년 고도(古都)다. 중동 주변을 돌아다닌 결과 이슬람 역사의 대부분은 600여년 전 앞서 등장한 기독교의 흔적과 일치한다.
코로나19 확산 속 모스크 오픈
라마단을 구체적으로 관찰·체험하기 위해 모스크 바로 옆에 붙은 호텔을 거주지로 잡았다. 5층 방에서 모스크 주변을 살펴보고 틈만 나면 현지인들과 만났다. 전염병 이후 나타난 상황이지만 지난해 라마단은 가정·개인 차원에서만 이뤄졌다. 집단 예배가 전면 중단되면서 전 세계 이슬람 역사상 처음으로 모스크 내 라마단 행사가 전부 취소됐다. 올해는 거리두기를 전제로 모스크 내에서 라마단 행사가 열리고 있다.
모스크 오픈이 기쁜 소식이기는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증하는 전염병 확산 속도를 감안하면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4월 27일 하루, 터키에서의 코로나19 신규 감염자는 4만6000여명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3000여명에 비해 15배나 많다. 중동 전체의 전염병 확산 속도는 수직상승하고 있지만, 이슬람권 모두가 모스크를 열기로 결정했다.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수록 신의 도움을 갈구하는 목소리도 한층 더해지는 듯하다.
호텔에서 내려다보니까 라마단 이전에 비해 모스크 예배 참가자의 수가 늘어났다. 그러나 몇 배로 늘어난 정도는 아니고 평상시보다 대략 30% 정도 많은 듯하다. 전염병 이전의 라마단 때도 평소보다 약간 많을 뿐 갑자기 급증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신자에 비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장사꾼들이다. 라마단 시행과 함께 모스크 주변이 간이 시장으로 변했다. 모스크 출입구를 지키는 과일·음식·생필품을 파는 장사꾼들이 엄청 늘었다. 라마단 기간 중 문을 닫는 가게도 많고, 전염병 기간이란 점 때문에 모스크 주변이 특수(特需) 현장으로 변한 듯하다. 파는 물건의 대부분은 금식 시간 외에 곧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다. 땅콩·해바라기씨·피스타치오를 비롯한 견과류에서부터 꿀·올리브오일·석류진액, 나아가 빵·육류·생선까지 다양하다.
장사꾼 가운데 가장 바쁜 사람은 스위트 디저트 판매상이다. 터키의 스위트 디저트는 입에 넣는 순간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달다. 평소에도 즐기지만 라마단 기간 중에 터키인들이 가장 즐기는 음식이 스위트 디저트라고 한다. 대략 1000원 정도만 주면 1인분 정도의 스위트 디저트를 먹을 수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금식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평소 설탕도 멀리 한다. 따라서 라마단과 스위트 디저트와의 함수관계가 묘하게 느껴졌다. 터키인에게 물어보니 답이 나왔다. 금식을 본격적으로 할 경우 혈당이 급속히 떨어진다고 한다. 꿀과 설탕으로 범벅이 된 스위트 디저트가 만병통치약으로 부상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스위트 디저트는 라마단의 만병통치약?
모스크가 가장 붐비는 시기는 금요일 대낮이다. 일요일 예배를 보는 기독교와 달리 이슬람의 성일(聖日)은 금요일이다. 따라서 금요일에 모스크 주변은 특히 장사꾼으로 터져나간다. 이슬람권 문화의 특성이지만 여성이 아닌 남성이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구입한다. 터키는 다른 이슬람권 여성에 비해 사회활동 참여도 활발하고 옷차림도 자유롭다. 그러나 모스크 주변만 보면 장사꾼과 접하는 사람의 100%가 남성이다.
시장 풍경을 보면서 기독교 예수의 ‘전혀 다른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예수의 성전(聖殿) 청소에 관련한 얘기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 주변에서 소·양·비둘기를 팔던 장사꾼과 환전을 하던 사람들을 내쫓으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외친다. 장사꾼들의 물건과 돈을 바닥에 팽개친다. 필자가 아는 한, 예수의 메시지 가운데 무력이 등장하는 유일한 장면일 듯하다. 신성한 성전에서 욕(欲)의 상징인 돈에 관련한 일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세계 곳곳의 모스크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이슬람은 기독교와 다르다. 어디를 가도 ‘예외 없이’ 모스크가 재래식 시장의 중심이다. 과일·고기·생선은 물론, 신발과 속옷도 판다. 예수가 화를 낸 소·양·비둘기 장사꾼도 볼 수 있다. 라마단 기간 중 확인했지만 모스크의 경우 바깥쪽만이 아닌 예배 장소 안에서도 장사를 허용하고 있다. 로마 바티칸 예배당 안에서 빵과 음료를 파는 식이다.
예수가 화를 낸 이유는 ‘머리’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어떨까? 가롯 유다 같은 생각이겠지만, 생존을 위해 교회 안에서 장사를 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예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스크 안에서조차 장사를 허용하는 이슬람이 보통 사람들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