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조용헌의 영지 순례]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달마산 도솔암으로
  • facebook네이버 밴드youtubekakao 플러스친구
  • 검색
  1. 문화/생활
[2656호] 2021.05.03
관련 연재물

[조용헌의 영지 순례]용서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달마산 도솔암으로

글·사진 조용헌  강호동양학자  2021-05-06 오전 8:38:31

▲ 전남 해남 달마산 정상에 있는 도솔암의 낙조는 마음을 치유해준다.
사람은 조명(照明)을 받을 때 존재감을 느낀다. 조명도 여러 종류가 있다. 전기 불빛으로 내는 스튜디오 조명도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조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해와 달, 그리고 별이 하늘에 떠 있는 조명이다. 시인 윤동주는 별빛의 조명을 느낄 때 시상이 떠올랐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다.
   
   나는 태양의 조명, 즉 장엄한 낙조를 볼 때마다 위로를 받는다. 보름달은 떠오르기 시작하는 단계가 장엄한 조명이라고 한다면, 태양은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단계에서 충만감을 준다. 낙조를 볼 때마다 위로받는 대목이 이것이다.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한 세상 다 간 것 아닌가’ 하는 한탄에 석양은 답변을 해준다. ‘아니다. 그만하면 된 것이다. 뭘 더 이상 바라느냐. 지금부터라도 붙잡지 말고 유유자적하게 살다 가면 된다’고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석양의 붉은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는 여러 군데가 있다. 나의 주관적인 포인트는 전라남도 해남의 미황사(美黃寺)이다. 미황사 응진전에서 저 멀리 여러 개의 섬 사이로 사라지는 낙조는 천하 일품이다. 낙조는 육지의 지평선보다는 바다의 수평선 사이로 사라지는 게 훨씬 난이도가 높다. 바다에 노을이 비치기 때문이다. 바다도 밋밋한 바다가 아니고 섬이 여러 개 놓여 있는 게 훨씬 극적인 연출감을 준다.
   
   섬들은 바다의 등장인물 격이다. 미황사 응진전에서 바라다보이는 낙조가 그렇다. 절 이름을 미황사라 한 것도 낙조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다울 미(美)에 누런 황(黃)이다. 여기에서 ‘황’은 석양의 색깔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석양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미황사 낙조보다 난이도가 더 높은 뷰 포인트가 있다. 거기가 도솔암 낙조이다. 미황사는 달마산 아래에 있고 도솔암은 같은 달마산의 정상 부근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이가 높다. 200~300m 더 높은 곳에서 감상하는 낙조는 훨씬 웅장하다. 그래서 나는 진이 빠졌다고 느낄 때나, 인생이 허하다고 느낄 때는 도솔암 낙조를 보러 간다.
   
   
   공룡 갈기 같은 바위 기운이 뼛속으로
   
   도솔암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달마산의 끄트머리쯤의 바위 절벽 위에 걸터앉아 있는 암자이다. 달마산은 정상이 489m이다.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그러나 산 전체는 암봉이다. 공룡의 등짝처럼 울퉁불퉁, 공룡의 갈기처럼 날카로운 바위들이 솟아 있는 산이다. 달마산의 정상 부위 능선 길이만 대강 잰다면 5㎞나 될까. 10리가 조금 넘을 것 같은 크기를 가진 거대한 공룡 느낌의 산이다.
   
   설악산에도 공룡능선이 있지만 해남의 달마산도 공룡능선의 느낌을 준다. 산의 골수는 바위에 있지만, 어떤 바위냐에 따라 그 기운도 각기 차이가 있다. 바위가 단단할수록 기운도 강하고 인체의 뼛속 깊이까지 침투한다. 바위가 물렁하면 기운도 물렁하다. UFC(종합격투기대회)의 하드펀처는 단단한 바위산에서 양성된다고나 할까.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가보니 히말라야 산들의 바위는 한옥의 구들장을 놓을 때 사용하는 장판돌과 비슷하게 생겼다. 기운이 강하다는 뜻이다. 히말라야 바윗돌은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을 모두 자극한다.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에 있는 벨록이라는 산을 가보니 이쪽 산들은 모두 불그스름한 사암(砂岩)으로 되어 있다. 바위가 단단하지는 않은데, 문제는 붉은색이다. 붉은색은 철분 함량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기에너지는 철분으로 전도된다. 세도나는 철분 함량이 많은 사암이었다. 강도는 약한데 전기에너지는 빵빵한 산이었다. 이렇게 되면 기도발이 풍부해진다.
   
   중국의 오악(五岳) 중에서 북악인 항산(恒山)을 가보고 조금은 실망하였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바위가 푸석돌이었기 때문이다. 푸석푸석한 강도였다. 이렇게 되면 별것이 없다. 그런데도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에 포함되었다는 점이 약간 의문이었다. 항산은 아마도 산이 차지한 위치가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전략·전술적인 측면에서 중요했을 것이다. 북쪽의 유목민들 공격을 막아낸다는 군사적인 의미가 강했다. 영발 자체는 크게 대수로운 산이 아니었다.
   
   해남 달마산의 돌은 어떤 돌인가? 규암(硅岩)이었다. 약간 흰빛을 띠는 바위이다. 사암이 열과 압력을 받아 변성 작용을 거치면 규암이 된다고 사전에는 나온다. 모래로 이루어진 사암의 표면은 거칠지만 규암은 변성작용으로 성질이 변하여 표면이 매끈하다. 이 규암에서 유리를 뽑아낸다. 유리 성분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용광로의 쇠를 녹이는 고로의 내화벽돌도 규암으로 만든다고 한다. 규암은 매끌매끌하고 단단하니까 바위에 글자를 새길 수가 없다. 마애불도 새길 수 없다. 멀리서 달마산을 바라다보면 곳곳에 선 바위들이 날카롭게 보인다. 창검을 든 무사처럼 보일 수도 있고, 기도발을 주는 신장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규암 바위들은 그 안에 유리 성분이 들어 있어서 그 어떤 치유의 효과가 있지 않나 싶다. 유리는 투명하다. 사람의 마음을 투명하게 해주는 효과이다. 마음이 투명해진다는 것은 마음이 밝아진다는 의미 아닌가.
   
   도솔암은 정유재란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진도 앞바다인 울둘목에서 명량해전이 벌어졌고, 여기에서 패한 일본 수군의 패잔병들이 달마산으로 올라왔다. 왜군들이 달마산으로 피신하면서 여기에 있던 도솔암에 불을 질렀다. 도솔암 터는 날카로운 바위 틈에 자리 잡고 있다. 공룡의 이빨 사이에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절을 짓기 쉬운 터가 아니었다. 왜군들이 불을 지르고 수백 년 동안 이 터는 비어 있었다. 그 빈터는 무속인들의 기도터가 되었다. 정유재란 이후로 수많은 무속인이 이 터에 와서 굿을 하고 공을 들였다.
   
   
▲ 공룡능선 같은 바위 사이 도솔암에 이르는 돌계단.

   꿈속에 나타난 계시
   
   2003년 무렵 오대산의 월정사에서 기도를 하던 법조(法照·62) 스님이 신비한 꿈을 꾸었다. 꿈에 스님이 칡넝쿨이 엉켜 있는 절벽에서 잠복근무를 하는 군인처럼 엎드려 있는데, 절벽 밑의 호수에서 살던 시커먼 이무기가 올라와 스님의 어깨에 턱 걸치는 꿈이었다. 이 꿈을 꾸고 월정사에 있던 법조 스님은 도솔암 터에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바위 절벽 사이 축대가 쌓여 있는 빈터에 법당을 짓기 시작하였다. 법당을 짓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새벽예불을 끝내고 돌계단을 내려오는데, 돌계단에서 웅크리고 있던 커다란 뱀이 계단 밑의 돌축대 사이로 사라지는 장면을 보았다. 새벽의 여명 속에서 본 그 뱀은 귀가 달려 있었다고 한다. 뱀이 귀가 달리려면 수백 년은 묵은 뱀이어야 한다. “이렇게 귀가 달린 뱀이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아마도 수백 년 동안 이 돌축대 밑에서 살던 뱀이었을 겁니다. 법당에서 예불 소리를 듣고 비로소 뱀의 허물을 벗었을 겁니다. 축생(畜生)의 과보를 벗어난 것이죠. 아마 수백 년 동안 예불 소리 듣기를 기다렸을 겁니다.”
   
   법조는 달마산 남쪽 봉우리 끄트머리에 법당을 짓고 춥고 배고프게 살았다. 전라도 불교 사찰은 배가 고프다. 경상도는 불심이 깊어서 불교 신도가 많지만 전라도는 기독교도들이 많다. 경상도 불교 신도들이 전라도 사찰까지 원정 와서 밥을 주고 간다. 전라도에는 시주할 만한 불교 신도가 드물다. 더군다나 경치는 좋지만 먹을 것은 없는 황량한 달마산 끄트머리의 신생 암자 도솔암에는 이렇다 할 신도도 없었다. 겨울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으니 얼음을 깨고 찬물에 세수를 해야만 하는 생활이었다.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 했던가! 춥고 배고파야만 도심이 생긴다고, 춥고 배고픈 상태에서 약 5년 동안 열심히 법당에 마지를 올리고 기도를 하니까 어느 날 또 꿈을 꿨다. 법당 앞의 마당에는 새끼를 꼬아서 만든 오방색의 줄이 쳐 있었는데, 흰색 소복을 입은 남녀가 나타나 이 오색 새끼줄을 걷어가는 꿈이었다. “이 꿈은 어떤 의미였던 겁니까?” “이 터가 수백 년 동안 무속인들의 터였습니다. 수백 년 동안 허공에 쌓여 있던 무속의 기운이 걷혔다는 의미인 거죠. 불교 승려인 저는 법당에 새벽 예불을 올릴 때 찬물 한 그릇을 놓고 예불을 했습니다. 오직 찬물 한 그릇이었죠. 정성스러운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강력한 조명발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도솔암을 보면 법당 오른쪽으로는 완도가 지척에 보인다. 암자 밑으로 가면 해남의 땅끝마을이 나타나는 형국이다. 왼쪽으로는 멀리 섬들이 여러 개 보이고 거기에 진도가 보인다. 완도는 동쪽이고 진도는 서쪽이다. 아침에는 완도 쪽에서 올라오는 일출을 볼 수 있고, 저녁에는 진도 쪽으로 저물어가는 석양을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달도 뜬다. 보름달은 완도 쪽에서 뜬다. 완도 쪽은 월출을 감상하고 진도 쪽은 일몰을 감상하는 구조이다. 두 개의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는 위치이다.
   
   월출과 일몰이라는 가장 강력한 두 개의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으면 어떤 상태가 될까? 아무리 둔감한 인간일지라도 어떤 변화가 있지 않을까. 강력한 조명발은 사람을 변화시키고야 만다. 불교의 ‘관무량수경’에 의하면 인간은 일몰관(日沒觀)을 많이 해야 평화가 온다고 설파한다. 저녁 석양을 많이 보면 그 자체로 수행이 된다. 어떤 수행? 분노조절장애가 어느 정도 극복된다. 섬 사이의 바다로 떨어지는 붉은 노을을 보면서 어떻게 분노가 일겠는가. 그 노을 앞에서 붙들어 잡아야 할 것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느끼고야 말 것이다. 그 붉은 노을 앞에서 용서 못 할 인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눈부신 태양도 결국은 저 바다 밑으로 사라져가는 것 아닌가. 인간사에 영원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저녁 석양의 장엄함은 인간을 치유해 준다. 그 포인트가 달마산 도솔암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트업 프론티어
나는 체인지메이커다
할리우드통신
우리들병원
6대 온라인 커뮤니티
과학연구의 최전선
신협 어부바 콘텐츠 공모전
마감을 하며
아무도 못 가본 ‘위드코로나’ 정장열 편집장

사람들의 인내를 시험이나 하듯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확진자가 이미 사상 최대치를 기록...

주간조선 대학생 기사 공모
주간조선 칼럼마당
기업소식
네이버 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