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에 물든 타르수스의 클레오파트라 성벽. ⓒphoto 셔터스톡
석양에 물든 타르수스의 클레오파트라 성벽. ⓒphoto 셔터스톡

21세기 타르수스는 인구 30만 정도의 중규모 도시다. 클레오파트라 성벽은 도시 입구에 서 있는 타르수스의 아이콘이다. 타르수스 기념물에 반드시 등장하는, 고대 로마 당시 세워진 성벽의 일부다. 서울 남대문보다 작은 성으로, 군사용이라기보다 전시용 건물로 느껴진다. 바울이 탄생한 성(聖)의 도시가 로마 당시 속(俗)의 상징으로 통하는 클레오파트라와 공존하는 셈이다.

타르수스의 전설이지만, 기원전 41년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당시 실세이던 로마의 장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를 만나기 위해 성벽 근처에 왔다고 한다. 걸어서가 아니라 배를 타고 왔다. 지금은 육지지만 당시 타르수스는 강을 통해 지중해로 이어진 운하도시였다. 로마 당시 지중해 대도시의 공통점이지만, 바다로 연결되는 강이 반드시 드리워져 있다.

자동차가 인류의 운송수단으로 등장한 것은 100년도 채 안 된다. 배를 기본으로 하면서 중간중간 동물을 활용한 이동이나 무역이 행해졌다.성벽을 지나 타르수스 안으로 들어가자, 지역 내 특산물로 통하는 살감(Salgam) 판매상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살감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반길 타르수스 특산 음료수다. 간단히 말해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라 보면 된다. 그러나 차갑지 않다. 지중해 햇살에 데워진 따뜻한 동치미다. 색상은 핏빛 붉은색이다. 붉은 당근을 주원료로 한 천연 음료수로, 5L 단위로 판다. 한 통에 3000원 정도로 냉장고에 보관하면 1주일간 즐길 수 있다. 타르수스에 갈 때마다 살감 4통, 즉 20L를 ‘왕창’ 구입한다. 그냥 마셔도 속이 시원하지만, 매운 고춧가루를 첨가해서 먹는 것이 타르수스 스타일이다.

타르수스폭포 ⓒphoto 셔터스톡
타르수스폭포 ⓒphoto 셔터스톡

21세기지만 타르수스에는 터키인보다 아랍권 소수민족 인구가 더 많다. 유대인 바울을 포함해 시리아·요르단·레바논·이집트 출신자들이 거주한 코스모폴리탄 도시가 타르수스의 역사다. 과거의 행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타르수스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바울의 생가다. 기독교 신자들의 성지 순례지로, 우물 하나만이 2000여년 전 바울의 생가를 지키고 있다. 바울의 아버지는 천막과 같은 천 장사를 해 돈을 모은 지역 내 부자였다. 추측건대 시민권 획득도 ‘아빠 찬스’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타르수스에서 필자의 관심을 끈 인물은 바울에 그치지 않는다. 기독교 성인이자 유대교의 대표적 선지자가 주인공이다. 유럽 박물관에 전시된 명화 중 하나로, 수많은 사자에 둘러싸인 채 거의 벌거벗은 몸으로 기도를 하는 장면의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원전 597년 유대인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당시의 선지자 다니엘(Daniel)의 모습이다. 사자 우리가 우상숭배를 거부한 다니엘의 처형 장소다. 굶주린 사자들의 밥이 될 줄 알았지만, 거꾸로 사자들 모두가 선지자를 보호한다. 기적이다. 이후 다니엘은 예언서를 통해 바빌론 포로로 간 유대인의 이스라엘 귀환과 메시야 예수의 출현을 알린다.

유대 선지자와 타르수스의 연결점은 다니엘 무덤에 있다. 타르수스 한복판에 ‘다니엘사원’이란 독립 건물 하나가 들어서 있다. 로마 당시 유물·유적을 배경으로 한, 초록색 휘장으로 장식된 무덤이 지하 바닥에 있다. 아랍어로 된 코란 구절이 크게 새겨져 있다. 곳곳에서 확인했지만, 이슬람사원 내 무덤은 초록색 천으로 장식돼 있다. 나무와 자연을 상징하는 초록색을 통한 유토피아 실현이란 의미일지 모르겠다. 다니엘 무덤은 이슬람의 관용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 중 하나다. 기독교 세계 어디엘 가도 공식적 차원의 이슬람 지도자 무덤은 ‘단 하나도’ 만날 수 없다.

선지자 다니엘의 무덤고대 도시의 특징이지만, 파도 파도 뭔가 새로운 것이 등장한다. 타르수스 폭포(Tarsus Şelalesi)는 5번째 방문을 통해 알게 된 역사의 또 다른 흔적이다. 타르수스가 왜 무역 특별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증거다. 풍부한 물을 통한 번영 발전이다. 낙차 6m, 길이 50m에 달하는 아담한 폭포가 엄청난 물을 뿜어낸다. 북쪽의 타우루스(Taurus) 산맥 만년설이 수원(水源)이다. 아직 여름이 오기도 전이지만, 폭포 주변은 수많은 어린이들로 붐빈다. 천연 다이빙 수영장인 셈이다. 아시아인을 처음 본 탓인지, 얼굴을 마주한 순간 거의 멸종 위기 동물 대하듯 응시한다. 곧이어 모두 큰소리를 치면서 따라온다.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요청이다. 바이러스 공포를 넘어, 얼굴을 마주한 채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는 사람이 지구상에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급히 마스크를 쓰고 얼떨결에 찍었지만, 아시아인 얼굴을 그대로 노출하라는 원성이 대단하다. 타르수스 폭포에 들릴지도 모를 우주인은 어린이들의 성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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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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