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를 가론강이 관통하고 있다.
툴루즈를 가론강이 관통하고 있다.

‘장미빛 도시’ 툴루즈를 상징하는 색깔이 붉은색만은 아니다. 한때 푸른 금이라고도 불리며 경제를 윤택하게 만들었던 천연 쪽빛 염료의 재료 파스텔이 툴루즈를 대표하는 색깔이다. 파스텔(pastel)은 우리말로 대청(大靑)이라고 불리는 노란 꽃의 십자화과 식물로 그 잎에서 질 좋은 청색 염료가 얻어진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이런 특성이 알려져 있던 파스텔은 역사적으로는 옛날 브리튼, 즉 켈트족 전사들이 출정할 때 얼굴에 바르는 안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툴루즈의 경우 자연조건이 적합한 남동쪽의 로라게 지역에서 12세기부터 이미 많이 재배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주민들은 파스텔의 잎을 잘 가공하면 아름다운 쪽빛 염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잘 지워지지 않는 물감 특성이 장점이었다. 파스텔에서 염료를 추출하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애초 무게의 7%만 염료로 추출되는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만큼 수익도 높았다.

마침 영국과 플랑드르(벨기에, 네덜란드 남부, 프랑스 북부에 걸친 중세 유럽의 나라) 지역에서 섬유산업의 발전으로 염료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자 14세기경 툴루즈의 파스텔 산업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파스텔 산업의 황금기로 불린 15~16세기 중엽에는 돈이 넘쳐흘렀고 시내 곳곳에 르네상스식 큰 저택들이 세워졌다. 그 흔적은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당시 툴루즈와 근교의 알비와 카르카손으로 이어지는 삼각지대는 ‘지상낙원(Pays de Cocagne)’으로 불리면서 부와 풍요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모든 좋은 일에는 끝이 있듯이 파스텔도 예외는 아니었다. 1560년 무렵부터 값싼 합성염료가 등장하면서 치명타를 맞게 된다. 전성기 시절에 재배기술에 대한 연구나 생산시설 투자를 게을리한 것도 몰락의 한 원인이었다. 18세기에 들어 뒤늦게 부흥운동을 벌였으나 시대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근래에 들어 파스텔의 씨앗에서 추출한 오일로 스킨케어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등 새로운 영역에서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2017년에 관련 상품이 정식으로 론칭되어 들어왔다고 한다.

파스텔 산업이 툴루즈의 과거의 영광이라면 오늘날 툴루즈의 경제를 찬란히 빛나게 하고 있는 것은 단연 항공우주산업이다. 실리콘밸리와 견주어 흔히들 ‘아에로스페이스(항공우주)밸리’로 불릴 만큼 툴루즈는 유럽 항공우주산업의 메카이다. 역사는 세계 제1차대전 때 시작됐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툴루즈의 지역 사업가 라테코에르(Pierre-Georges Latécoère·1883~1943)에게 비행기 개발을 부탁했다. 전쟁 후 라테코에르는 비행기들을 활용하여 툴루즈에서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당시로는 획기적인 항공우편 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훗날 합병되어 현재의 에어프랑스가 되었지만 그 바탕이 오늘날 항공우주산업의 기틀이 되었다.

현재 툴루즈에는 크고 작은 항공우주산업 관련 기업이 500여개에 이르고 종업원은 12만여명에 달한다. 무엇보다 미국의 보잉사와 함께 세계 항공산업을 양분하고 있는 에어버스 본사가 있다. 툴루즈 국제공항 근처에 있는 에어버스 본사에는 항공기 생산라인이 같이 있는데 바로 이곳에서 A320, A350XWB, A330, A380 기종들이 최종 조립되고 있다. ‘에어버스 디펜스 앤 스페이스’도 이곳에서 통신위성, 지구관측위성, 우주탐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이 밖에 유럽우주국(European Space Agency)과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Centre National d’Études Spatiale)도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유럽의 항공우주 전문 인력 중 4분의 1이 툴루즈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김원곤 서울대 흉부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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