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집, 쌀집, 미용실, 안경점, 동물병원 등 동네 가게들이 미디어아트를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잡곡 가마니가 쌓여 있는 쌀집의 낡은 유리창 한가운데 영상 예술 작품이 담긴 모니터가 걸려 있고, 카페 한쪽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도, 안경점 안에서도 다양한 미디어 작가의 영상 작품이 전시돼 있다. 코로나19로 외출도 쉽지 않고, 더구나 예술을 즐기는 일은 더 어려워진 때 동네 산책하면서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공공예술로 기획한 ‘마을가게미술관’ 프로젝트다. 지난해 12월 시범적으로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아 새로운 작품을 들고 ‘시즌2’로 주민들을 찾아왔다. 장소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대학교 인근이다. 프로젝트에는 마을가게 20여곳이 참여했고 미디어아티스트, 대안영상예술가, 영화감독 등 28명의 예술가가 참여해 5월 27일부터 6월 26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곳은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미술관이 아니라 동네 골목으로 걸어 나온 예술이 새로 유입된 주민과 원주민, 지역 소상공인과 주민을 연결하기 위해 새로운 소통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가게 한편을 기꺼이 전시 공간으로 내준 마을가게 주인들에게는 ‘우리 동네 관장님’이라는 호칭이 주어졌다. ‘마을가게미술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들의 인터뷰집도 발간됐다. 인터뷰집에서 ‘씨엘 안경점의’ 나진수씨는 “좋은 안경을 해드리는 기술은 곧 손님의 마음을 보는 기술이다”라고 말하고, 17살 때 일을 시작해 40년 동안 한 길을 걸은 구두장인 고준규씨(‘슈혼’)는 “신발도 진심을 갖고 만들어야 멋진 작품이 나온다”고 말한다. “대충이란 없다. 옷 수선이 인생 수선”이라는 ‘왕수선집’ 김화자씨는 “40년 수선 일을 했는데도 싫증이 안 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진 안에는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그림 그리는 사진관’의 최차랑씨 등 이들의 ‘장사의 기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장사와 예술이 바라보는 곳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주민과 작가가 함께 만들어낸 마을가게미술관을 보기 위해 찾아온 외지인의 발길도 심심치 않게 이어지고 있다.

마을가게미술관에 참가한 작품들은 ‘디지털미술관DB’(www.altmuma.kr)를 통해서도 무료로 온라인 감상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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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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