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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61호] 202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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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인류 식량 혁명의 발상지, 터키 마시아산의 밀과 붓꽃

카라카(터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silkroad100@gmail.com 2021-06-10 오전 8:58:48

▲ 마시아산 기슭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쿠르드족 부락.
‘Tesla has 💎🙌’.
   
   지난 5월 19일 전 세계 비트코인 투자가들을 안심시킨 트위터 메시지다. 전 세계 5600만 팔로어를 가진 일론 머스크가 띄운 것이다. 테슬라 옆의 이모티콘은 무슨 의미일까? 최고가 다이아몬드를 양손으로 꽉 잡듯 ‘안 팔고 끝까지 지키겠다’는 의미의 뉴욕 월스트리트발(発) 이모티콘 은어다. 수만달러 단위의 비트코인을, 단타가 아닌 장타 투자 대상으로 삼겠다는 결의인 셈이다.
   
   ‘💎🙌’의 의미를 처음 알았을 때 느낌이지만, 월스트리트 특유의 이모티콘 표현력에 눈이 갔다. ‘안 팔고 끝까지 간다’라는 표현치고는 너무도 ‘원색적’이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를 앞세운다는 점에서, 좀 심하게 말하자면 천민자본주의의 물욕(物欲)으로 느껴진다. 피도 눈물도 없는 돈의 논리답게, 서론 없이 곧바로 본론이다. 필자 같은 아시아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 이모티콘을 다른 식으로 표현했을 듯싶다.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기본 이모티콘을 살펴봤다. 당장 서핑🏄, 록 클라이밍🧗♀, 용🐲, 샴페인🍾 등이 눈에 띈다. 높은 파도를 타고 넘는 서핑과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록 클라이밍, 그리고 하늘로 오르는 용. 이들을 샴페인과 연결하면 ‘중단 없는 전진, 그리고 최후의 승자를 위한 샴페인’이란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보다는 ‘🧗♀🐲’이 좀 더 사려 깊게 비치지 않을까?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이지만, 주기적으로 세계 각국에 흩어진 친구들과 줌(Zoom) 미팅을 갖는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토박이 파울로(Paulo)와 연결해 대화를 나누던 중 ‘💎🙌’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아시아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나 ‘🐲🍾’이 더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하자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를 대하는 서구의 생각이 필자의 판단과 다르다는 것이 파울로의 지적이었다. “다이아몬드는 ‘최고 비싼 보물’이란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강력하고 변치 않는 광물이란 점에서 볼 때 ‘💎🙌’가 천민자본가의 얄팍한 사고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래 참고 견디면 다이아몬드처럼 초강력 존재로 진화할 수 있고, 그때 양손을 벌려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다.” 30대 초반 파울로는 문화인류학 박사다. 흑백영화 하나를 봐도 필자와 전혀 다른 유럽식 관점에서 풀이한다.
   
   
   무지개를 대하는 동서의 차이
   
파울로의 지적은 이모티콘과 관련한 필자의 오랜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무지개다. 약 5년 전이지만 무지개를 대하는 동서(東西)의 감성과 느낌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인에게 물감을 주면서 무지개를 그리라고 하면 어떻게 표현할까? 십중팔구 일곱 색상의 무지개를 ‘반원형’으로 그릴 것이다. 서구는 어떨까? 반원형이 아니라 ‘4분의1 원형’의 컬러 무지개가 대세다. 스마트폰 이모티콘 🌈가 답이다. 이것이 서구 어린이 머릿속에 새겨진 무지개의 원형이다. 스마트폰은 물론 서구 이모티콘에는 한국식 반원형 무지개가 아예 없다. 있다면 동성애 지지 의미로 활용되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모티콘이다. 한국에서는 4분의1 원형 무지개를 그리는 어린이가 극히 드물 텐데, 같은 무지개를 왜 동서가 다르게 그릴까? 답은 ‘💎🙌’에 대한 필자의 착각 혹은 편견과 같은 것이다.
   
   동양에서 무지개는 아름다운 자연현상으로 풀이된다. 보통 ‘희망’이란 의미도 달지만 자연과학적·형이하학적 대상이다. 유럽이나 미국은 근본적 차원에서 다르다. 신을 매개로 한 아름다운 현상, 즉 형이상학적 관점이 기본이다. 그리스 신화 속 무지개 신, 아이리스(Iris)가 동서의 차이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아이리스는 하늘과 땅을 오가며 올림푸스 신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로 그리스 신화 곳곳에 등장한다. 보통 투명한 잠자리 날개를 단 모습으로 등장한다. 잠자리 날개에 비치는 신비롭고도 다채로운 색상이 일곱 빛깔 무지개 색상의 원형인 셈이다. 따라서 무지개가 떠 있다는 것은 잠자리 날개 아이리스가 주변 어딘가에 있다는 의미다. 서구는 아이리스가 창조해낸 세계를 4분의1 원형 무지개🌈로 표현한다. 왜 반원형이 아닌 4분의1 원형일까? 아이리스가 하늘과 땅을 오가며 사용하는 계단이자 다리이기 때문이다. 땅과 하늘을 하나로 연결하는 소통의 수단이 무지개다.
   
   
▲ 마시아산 인근은 1만년 전 인류 최초의 농업혁명이 시작된 곳이다. 재배용 알곡 밀(위 사진)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또 마시아산은 전 세계에 흩어진 300여 붓꽃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인류 최초의 재배용 알곡 밀
   
   영국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고난도 추리소설을 대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흩어져 있던 점(点)들이 하나로 모이면서 선(線)이 되고 뿔뿔이 흩어진 선을 확 잡아당기면 면(面)으로 이뤄진 구체적인 형상이 드러난다. ‘💎🙌’와 🌈를 통한 동서 세계관의 차이에 주목하던 중, 마시아산(Masia·터키명은 카라카·Karaca)에 대해 알게 됐다. 터키와 시리아 국경 근처에 있는 남북 150㎞, 동서 80㎞에 달하는 화산지대 산이 마시아다. 흥미로운 것은 마시아란 이름에 얽힌 전설이다. 전 세계 흩어진 300여 붓꽃의 원조 격인 ‘마시아(Masia) 붓꽃’이 화산 지명의 기원이라고 한다. 듣는 순간 묘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리스에서 유래했지만, 붓꽃의 영어명은 아이리스(Iris)다. 무지개 신의 이름이 붓꽃에 붙여진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특징 중 하나는 신의 모습이나 슬픈 스토리가 꽃·나무·별을 통해 세상에 ‘영원히’ 남겨진다는 점이다. 아폴로가 사랑한 미소년이 원반 던지기 게임 도중 실수로 죽게 된다. 아폴로는 저세상으로 간 미소년을 그리며 꽃 하나를 창조해낸다. 바로 히야신스(Hyacinth)다. 무지개 신 아이리스도 꽃으로 환생해 인간 주변에 항상 머문다.
   
   무지개 신, 마시아 붓꽃, 화산지대 산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마치 추리소설의 연결고리처럼 느껴졌다. 마시아산에 가면 붓꽃도 만나고 무지개도 어딘가에서 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독일 학자들이 21세기 들어 발표한 내용이지만, 인류 최초의 재배용 알곡 밀 탄생지가 바로 마시아산이라고 한다. 밀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사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다. 메소포타미아의 일상 풍경이지만, 들판 곳곳에 자연발생 밀이 산재한다. 잡초처럼 자란다. 어느 정도 자라면 곧바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가루라는 점이다. 자연발생 밀은 알곡이 아닌 분말 상태로 자란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초미세 가루로 날아간다. 재배도 못 하고 제대로 보관할 수도 없다. 열량도 낮고 수확량도 적다. 하지만 재배용 밀은 다르다. 알곡으로 자라나고 다음해 씨를 뿌리면 재생산이 가능하다.
   
   주목할 부분은 알곡 밀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돌연변이’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대략 기원전 1만년 정도의 상황이지만, 농업을 통한 인류의 정착 역사가 알곡 밀 발견에서부터 시작됐다. ‘우연히’ 마시아산 주변에서 자라던 알곡 밀이 인류의 손에 들어오면서부터 신석기 농업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수렵생활은 내일에 대한 보장을 해주지 못한다. 사냥에 실패하면 굶게 된다. 농업은 다르다. 수확기가 있고 어느 정도를 수확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도 있다. 썩는 육류와 달리 오랜 기간 보관도 가능하다.
   
   마시아산은 400만년 전 최초의 인류가 탄생한 이래 지속된 399만년 동안의 숙제를 한순간 해결해준 ‘기적의 공간’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마시아 붓꽃이 태어난 곳이란 점도 우연이 아닌 필연이란 생각이 든다. 붓꽃의 이름인 아이리스, 즉 무지개 신의 신비로운 파워가 숨 쉬는 땅이기 때문이다. 무지개 신이 하늘의 축복처럼 알곡 밀을 땅의 인류에게 연결해준 성스러운 공간이라고나 할까?
   
   
▲ 마시아산 기슭에 사는 쿠르드족. 어릴 때부터 목동 일을 한다.

   붉은 화산지대의 부엉이들
   
   마시아산까지 가는 길은 험했다. 중심도로에서 벗어난 뒤 좁은 비포장 먼지 길을 통해 화산지대로 진입했다. 대부분 휴화산이지만, 지진이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한다. 목성, 화성 어디쯤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지표면 전체가 붉다. 높이 50㎝ 정도의 잡목이나 잡초가 풍경의 전부다. 강수량이 사막에 준할 정도로 적다. 워낙 척박한 탓인지 사람의 그림자도 드물다. 많아야 다섯 가구 정도의 쿠르드족 유목민 부락이 3~4개 있을 뿐이다. 양·염소·소·닭이 곳곳에 자연방목되고 있다. 대부분의 양치기가 10살 미만 어린이라는 점이 인상 깊다.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아동 노동착취라 비난할 듯하지만, 유목민에게는 노동이 아닌 삶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태어나 걸어다니는 순간부터 양치기가 된다.
   
   거의 사막처럼 보이는 마시아산이지만, 흥미로운 동물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먼저 부엉이다. 인적과 무관한, 마시아산 깊숙이 들어가는 동안 땅바닥에 앉아 있는 동물 세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큰 쥐인가 생각했다. 자세히 보니 몸길이가 20㎝ 정도 되는 작은 부엉이 가족이다. 어미인 듯한 큰 부엉이와 새끼 두 마리다. 보통 부엉이라고 하면, 밤에 나무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동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마시아산의 부엉이는 대낮 땅바닥에서 생활한다. 사진을 찍으려 접근하는 순간 세 마리 모두 하늘로 날아올랐다. 머물던 땅을 살펴보니 먹이로 잡힌 새들의 날개가 흩어져 있다. 대낮에 땅바닥을 지키던 세 마리의 부엉이 가족. 미신일지 모르지만 무슨 메타포(Metaphor)가 아닐까 지금도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거북은 화산지대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곳곳에서 접한 동물이다. 무려 30여마리나 만났다. 예외 없이 입 주변이 바짝 말랐고 등짝은 뜨겁게 달아 있다. 그러나 물을 주면 안 된다. 10여년 전 처음 그리스 유적지에서 거북을 만났을 때 건조한 거북 등에 물을 뿌린 뒤 너무도 미안했다. 마치 기름에 덴 것 같은 고통이 거북의 움직임을 통해 느껴졌다. 바다나 강이 아닌 내륙에 사는 거북을 ‘토르토즈(Tortoise)’, 즉 땅거북이라고 부른다. 주관적인 감상이지만, 지중해 주변 내륙에서 땅거북을 만날 경우 ‘성스러운 땅’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장수 동물을 통해 인류의 희망과 기원이 느껴진다. 지중해 주변 사람들은 결코 거북을 해치지 않는다. 돌고래와 함께 성스럽고도 귀한 동물로 취급한다. 필자는 거북의 소리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거북은 침묵의 상징이다. 그러나 3~4월 초봄 해 질 녘이 되면 가야금 현(絃)과 같은 초고음을 발산한다. 교미기에 내는 소리다. 처음엔 바람소리인 줄 알았다. 지중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터득했지만, 지금은 멀리서 들어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암수가 만날 때 내는 즐거운 비명이다. 신기한 것은 암수가 과연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평소에는 멀리 떨어져 서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러나 교미기가 되면 암수가 한자리에 모인다. ‘한강 백사장 바늘 찾기’ 같은 신비한 능력이다. 서로 어떻게 찾아낼까. 답은 후각이다. 인간이 보면 암수 구별조차 어려운 동물이지만, 코를 통해 넓고 넓은 땅 어딘가에 숨은 짝을 간단히 찾아낸다.
   
   
   눈 무지개가 뜨는 풍경
   
   마시아산까지의 여정은 도중에 중단해야만 했다. 7㎞ 떨어진 지점부터 자동차 길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멀리 1957m 높이의 마시아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완전무장을 하고 산행을 하지 않으면 올라가기 어려운 곳이다. 척박한 환경을 고려할 때 보랏빛 붓꽃, 알곡 밀을 찾아낸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인류 최초의 붓꽃과 알곡 밀의 존재는 화산지대 땅속 생태계를 조사해서 밝혀낸 것들이다. 1만2000년에 걸친 기후변화를 고려하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여정이었을지 모르겠다. 원조 붓꽃과 알곡 밀이 탄생했던 시기의 마시아산은 지금과 전혀 다른 환경이었을 것이다. 들꽃 하나 없는 척박한 사막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과거 마시아산이었을 것이다.
   
   너무 허름해서 몰라봤지만 화산지대에서 벗어나던 도중에 길이 100m 정도의 스키장을 발견했다. 호텔에 돌아와 50대 매니저에게 겨울에 눈이 어느 정도 내리는지 물어봤다. 10여년 전부터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아 스키장에 인공 눈을 사용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변에 무지개가 자주 뜨는지 물어봤다. “40여년 전 기억이지만 무지개(Rainbow)가 아니라 겨울의 눈 무지개(Snowbow)를 본 적이 있다. 공중에 부유하는 눈들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풍경이다. 알라의 축복이라 생각하며 가족 모두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유치한 발상이지만, 호텔 매니저의 얘기를 듣는 순간 이모티콘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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