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 그것도 전통 보수당에 30대 당대표가 등장했다.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지만, 기대와 환호가 대세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우리의 관심이 온통 그의 나이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그가 거대 정당의 대표가 된 이상, 이제는 나이보다 그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년 전에 ‘공정한 경쟁’(2019)을 통해 자신의 이념과 비전을 거침없이 펼쳐 놓았다. 거기서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영광을 인정하면서도 더는 그 낡아져 가는 가치들로 젊은 세대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따라서 보수도 이제는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공정 사회’다. 한마디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이 보수의 핵심이라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저자는 예민한 젠더 문제도 결코 피하지 않는다. 그는 남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고 여성은 약자이기 때문에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따라서 그런 차별적 판단에 기반한 여성할당제 등에 반대한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여성해방은 제도적 특혜나 여성의 목소리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진보를 통해 이루어졌다. 피임약이 대표적이다.

최근에 일부 여성운동은 남성 혐오로까지 번지고 있다. 많은 정치인이 정치적 올바름을 표방하며 이런 전투적 페미니즘에 동조하는 것은 위선적이고 정략적이다. 정작 그들이야말로 남녀차별을 야기한 장본인 세대다. 반면 오늘날 20~30대 남성은 남성혐오적 공격을 받을 처지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남녀 차별이나 역차별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정한 경쟁이다.

새로운 정치란 무엇인가. 산업화 시대나 민주화 시대처럼 영웅이 정치를 하는 시대는 끝났다. 특히 1980년 이후 세대에게 그런 드라마틱한 영웅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격동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든 만큼 무엇보다 실력이 중요한 시대다. 그럼에도 경험과 경륜을 앞세우는 사람들은 대체로 실력 없는 사람들이다. 실력은 경험이나 경륜도 포괄한다.

특히 우리 시대에는 공학적 사유가 필요하다. 공학은 성과를 내기 위해 무엇이든 만들어야 한다.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반면 우리 정치에는 율사 출신이 많다. 일반적으로 율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공직 희망자의 소양을 측정하는 적성평가도 고려해야 한다. 청년이나 여성도 이런 과정에서 실력을 당당하게 입증하면 된다. 그래서 굳이 청년·여성 할당제를 둘 필요가 없다.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국은 역사적 전환점에 과감한 발전 전략을 채용해 세계사적 흐름에 올라탔다. 반면 북한은 그 틈에 도리어 시대착오적인 세습 체제를 굳히는 과오를 저질렀다. 현실적으로 통일은 흡수통일밖에 없다. 흡수통일이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독일의 통일이 타산지석이다. 또한 현 상태에서 남북이 상생하자는 것은 김정은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시켜 줄 뿐이다. 설사 인도적 지원을 하더라도 그 전달 과정이 투명하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성장 우선이냐, 분배 우선이냐. 저자는 여전히 성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내수만으로는 부족한 규모다. 따라서 우리는 국제적 분업에 기반한 개방경제를 강력하게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어설픈 국수주의를 과감하게 떨쳐버려야 한다. 유튜브에 대체 서비스를 만들어 대항하기보다 ‘유튜브가 만들어 놓은 틀에 방탄소년단을 실어 돈을 버는’ 것이 더 낫다.

또한 정부는 돈을 나눠 주기보다 산업에 씨를 뿌릴 궁리를 해야 한다. 돈이 안 드는 방안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KBS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모든 영상물의 저작권을 풀어 공개하면 여러모로 활용도가 크다. 현실적으로 이런 자료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수익을 올리는 것은 주로 청년층일 것이다. 굳이 돈을 나눠 주지 않아도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출산은 취업의 종속변수다. 따라서 엄청난 재정을 탕진해 가면서 출산 제고 정책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에 유·초·중등 교육은 국가 책임을 확대하고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반면 대학은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국·공립 대학은 학비를 낮추고 공공성을 강화하되, 사립대학은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대학 교육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다.

흔히 우리는 암기식 교육을 하는데 선진국은 창의적 교육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환상이다. 교육의 기본은 암기다. 창의성은 학교 홀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것은 사회가 변해야 한다. 또한 공부는 놀면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환상이다. 공부는 약간 강제적인 방법으로 시켜야 한다. 객관적 성취도 평가를 통해 성과를 측정하고 기초학력이 미달된 학생을 공부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점들을 외면하고 의무교육을 이야기하는 것은 난센스다.

우리나라 보수는 독재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외면한다. 하지만 본래 보수의 최고 가치는 자유다. 공정은 그 위에서 하는 달리기 게임이다. 자유야말로 사회·경제적으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동력이다. 물론 낙오자를 위한 안전망도 필요하다. 그러나 자유를 더욱 확대하여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고용을 늘릴 수도 있다. 이처럼 보수는 약자에게 차별적 지원을 하기보다 시장의 기능을 통해 오히려 더 큰 평등을 구현하려고 한다.

또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도덕적 굴레를 벗어던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금지 목록 이외의 행위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와중에 분쟁이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법이다. 또한 카지노나 향락산업도 성장의 동력 산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엄격한 도덕국가인 싱가포르도 그런 산업을 허용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도 이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저자는 실력 있는 소수가 자유로운 사회에서 창의력을 발휘하여 세상을 바꾼다고 역설한다. 그런 점에서 엘리트주의라는 비판도 감수하겠다고 단언한다. 여기서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공정한 경쟁이다. 약자라는 막연한 이유로 특혜나 할당을 부여하는 것은 오히려 심각한 불공정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흔히 정치인은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고 선명한 이념 제시를 꺼린다. 그래서 보수도 따뜻한 보수니 중도 보수니 하는 수사를 동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유 확대, 시장 신봉, 공정한 경쟁 등 자신의 보수적 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아울러 그런 가치에 입각하여 젠더, 정치, 경제, 교육 등에 대한 자신의 소신도 거침없이 펼쳐 보인다.

30대 당대표의 탄생이라는 열광이 사라지면 차츰 그의 나이보다 그의 생각으로 대중적 관심이 이동할 것이다. 벌써부터 그에 대해 정글 보수주의자, 극단적 능력주의자, 오만한 엘리트주의자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청년·여성·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도 논란이다.

이준석 대표가 젊다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자신이 생각하는 보수의 가치를 거침없이 밝힌 최초의 보수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그가 어떻게 진화하고 한국 정치에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그의 정치적 성패는 이미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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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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