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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짱 의사의 4개국 어학연수 도전기]  에어버스의 도시 툴루즈, 최고의 야경 포인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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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3호] 202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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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짱 의사의 4개국 어학연수 도전기]에어버스의 도시 툴루즈, 최고의 야경 포인트는?

툴루즈= 김원곤  서울대 흉부외과 명예교수  2021-06-24 오전 8:57:01

▲ 툴루즈의 가론강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환상적이다.
코로나19 백신으로 숨통이 트이고 있지만 이전의 일상생활로 돌아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미국, 인도, 브라질에 이어 현재 환자 발생 수에서 세계 4위이다. 최근 빠른 속도로 하향 안정 추세를 보이고 있는 각종 지표가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부터 엄격한 이동 제한 및 사회 봉쇄령의 시행과 해제를 반복하다 지난 1월 31일부터 3차 봉쇄령을 발표했다. 골자는 EU(유럽연합) 비회원국 및 프랑스 간 비필수적 입출국 금지(이후 EU 국가에도 적용), 모든 입국 시 PCR(유전자증폭)검사 음성 결과 제출 의무화, 대형 쇼핑몰 폐쇄, 주거지에서 10㎞ 이상 이동 금지, 재택근무 강화 등이었다. 기존의 조처를 조금 더 강화하는 선에서 조정하고 외국인 입국에 대해서는 국경 봉쇄령으로 불릴 만큼 대폭 강화된 지침이었다.
   
   그 기간 동안 통금 시간은 저녁 9시에서 8시로, 다시 6시로 강화됐다. 서머타임 시행으로 6시에서 7시로 한 시간 늦춰진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필자가 툴루즈에 도착한 것도 바로 그 시점이었다. 다행히 지난 5월 19일부터 통금이 저녁 7시에서 9시로 조정되었다. 그러나 5월 툴루즈의 일몰 시간은 9시30분에 가까웠기 때문에 통금 시간에도 태양은 밝았다.
   
▲ 툴루즈 항공산업의 요람 역할을 한 몽토드랑공항의 활주로를 이용해 만든 ‘항로의 공원’.

   툴루즈는 인구 기준 프랑스의 네 번째 도시임에도 남서쪽에 치우쳐 있는 데다 주변에 관광자원이 많지 않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툴루즈의 야경은 세계 어느 곳과도 겨룰 수 있을 만큼 아름답다. 특히 퐁네프와 생피에르 두 다리 사이에서 가론강을 끼고 바라보는 야경은 유명하다. 툴루즈의 야경을 직접 볼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다. 지난 6월 9일, 마침내 통금 시간이 저녁 9시에서 11시로 늦춰졌다. 그날 일몰 시간은 9시34분. 일찌감치 8시30분 정도에 가론강가로 나갔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근처 테라스나 강가 잔디밭에서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곳곳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와 시민들의 웃음 소리는 축제를 방불케 했다. 그들 틈에서 바라본 일몰 후 야경은 그야말로 몽환적이었다. 도원명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 저절로 떠올랐다.
   
▲ 툴루즈 아에로스코피아 전시된 콩코드 여객기.

   유럽 항공우주산업의 메카
   
   툴루즈의 하늘을 봐야 하는 이유가 야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툴루즈가 자랑하는 항공우주산업이다. 미국의 보잉사와 함께 세계 항공산업을 양분하고 있는 에어버스의 본사가 있는 툴루즈는 유럽 항공우주산업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에어버스 외에도 툴루즈에는 항공우주산업 관련 기업이 500여개에 이르고 약 12만명이 일하고 있다. 유럽우주국(European Space Agency)과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Centre National d’études Spatiale)도 이곳에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유럽의 항공우주 전문인력 중 4분의1에 해당하는 인력이 툴루즈에 있다고 한다.
   
   툴루즈 항공우주산업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세 장소가 있다. 첫 번째는 항로의 공원(Jardin de la Ligne)이다. 100여년 전 툴루즈 항공산업의 요람 역할을 했던 몽토드랑(Montaudran)공항의 옛 활주로를 중심으로 2017년 조성된 공원이다. 이곳에서 남미의 칠레까지 항공우편 사업 루트를 개척했다. 당시의 항공 기술 수준으로서는 죽음을 무릅쓴 모험이었다. 공원에는 이런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항공 경로였던 스페인, 모로코, 모리타니, 세네갈,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등 8개국의 자생식물들을 구획을 나누어 심어놨다. 공원을 조성한 지가 몇 년 되지 않아서인지 조경이 잘 되어 있지는 않았다.
   
▲ 우주테마파크 ‘시테 드레스파스’에 있는 태양계 모형.

   ‘개척자들의 비상(飛翔·Envol des Pionniers)’이라는 기념관에는 당시의 항공 영웅들을 기리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주인공은 라테코에르와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소설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다.
   
   라테코에르(Pierre-Georges Latécoère·1883~1943)는 기차 차량 제작 공장을 운영하던 툴루즈의 사업가였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프랑스 국방장관으로부터 항공기 제작 공장을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몽토드랑에서 항공기 제작 사업에 뛰어든다. 1918년 5월 2인용 정찰기(Salmson 2A2)를 처음 생산하고 그해 전쟁이 끝나자마자 프랑스 정부로부터 툴루즈에서 남미까지 연결하는 항공우편 사업 허가를 받는다. 그의 구상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만큼 획기적이었다.
   
▲ ‘시테 드레스파스’에 있는 미르 우주정거장 모형.

   툴루즈 곳곳에 생텍쥐페리 흔적이
   
   그는 ‘라테코에르 항공사(La Ligne Latécoère)’라는 이름으로 1920년 툴루즈와 모로코 카사블랑카 사이를 매일 잇는 정기 항공우편 노선을, 1925년에는 세네갈의 다카르까지, 1927년에는 남미까지 항공우편 루트를 개척했다. 그러나 재정 위기로 1927년 남미에 근거를 둔 프랑스인 사업가 부이유 라퐁(Marcel Bouilloux-Lafont·1871~1944)에게 회사를 넘기고 자신은 항공기 제작 사업에만 전념하게 된다. 부이유 라퐁은 이름을 ‘항공우편사(Aéropostale)’로 바꾸고 회사를 운영했지만 그 역시 재정난에 부닥친다. 그 결과 1933년 프랑스 정부에 소유권이 넘어간다. 오늘날 에어프랑스의 전신이다.
   
   라테코에르가 항공산업의 초석을 다졌다면 그의 사업을 대중에 알린 사람은 조종사 생텍쥐페리였다.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1900~1944)는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취직해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와 세네갈의 다카르를 연결하는 정기 항공우편 조종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생텍쥐페리는 장거리 시험 비행 중 여러 차례 죽을 위기를 넘긴다. 1935년 파리와 사이공을 잇는 비행을 시도하던 중 리비아 사막의 모래 둔덕에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1938년에는 뉴욕에서 남미 남단의 티에라델푸에고로 가는 비행 도중 과테말라시티 비행장에 충돌하여 크게 다쳤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대에 동원된 그는 정찰 비행대 소속으로 활약한다. 1940년 5월에는 프랑스 북부의 아라스(Arras)에서 세운 공적으로 십자훈장을 받았다. 아라스에서의 경험은 1942년 미국에서 발간된 ‘전시조종사(Pilote de Guerre·영어명 Flight to Arras)’의 줄거리가 되었고 1943년 그 유명한 ‘어린왕자’가 발표되었다.
   
▲ 생텍쥐페리가 묵었던 그랑발콘호텔.

   툴루즈에는 곳곳에 그의 흔적이 남았다. 그의 고향 리옹이 공항 이름을 생텍쥐페리공항으로 명명하고 그와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지만 생텍쥐페리가 만들어진 데에는 툴루즈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시내에는 그가 근무할 때 묵었던 그랑발콘호텔이 여전히 영업하고 있고, 그의 이름을 딴 공원, 거리 등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두 번째 장소는 시테 드레스파스다. 1997년 공원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지역에 세워진 우주테마파크다. 이곳의 상징물은 실물 크기의 거대한 아리안 5호 발사체다. 1998년에 시험발사에 성공한 아리안 5호는 모형의 높이가 53m나 되는데 실제 발사체의 무게는 750t에 달한다고 한다. 아리안 5호는 우리나라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1992년 우리별 위성 1호를 시작으로 우리별 2호, 천리안 1호와 무궁화 6호, 무궁화 7호, 천리안 2A호, 천리안 2B호 위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남미의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아리안 5호의 도움을 받아 발사되었다.
   
▲ 항공우편 조종사로 근무한 생텍쥐페리.

   미르(Mir)우주정거장의 실물 모형도 있다. 이 모형은 실제 임무를 준비하는 우주비행사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미르우주정거장은 달 착륙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미국에 빼앗겨 잔뜩 약이 오른 구소련이 이를 만회하고자 착수한 우주정거장 사업 중 가장 성공적인 결과물이었다. 러시아와 미국의 우주 도전 역사에서 각각 기념비적 역할을 하였던 우주선인 소유즈와 아폴로의 실물 모형들도 있다.
   
▲ 당시 항공우편기의 실제 비행 사진.

   콩코드부터 A300까지
   
   세 번째 장소는 툴루즈의 블라냑공항 근처 에어버스 본사 내에 위치하고 있는 전시장 아에로스코피아(Aeroscopia)이다. 2015년 문을 연 이곳은 실제 에어버스 비행기들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세계 ‘항덕(항공덕후)’들의 성지다. 이곳에서는 전설의 여객기로 단명한 콩코드(Concorde) 내부도 볼 수 있다. 독수리 부리처럼 날카롭게 구부러진 앞코 부분을 비롯하여 화살처럼 길고 날렵한 동체의 안팎을 바로 눈앞에서 실감나게 관찰할 수 있다.
   
   콩코드는 1962년 영국·프랑스 합작으로 개발을 시작한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초음속 여객기다. 1977년, 보통 여객기들보다 2배 높이 날아올라 2배 빠른 속도로 파리~뉴욕 사이를 3시간대에 주파하면서 콩코드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초음속으로 주행하기 위해 기체를 길고 좁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몸이 큰 사람은 구겨 넣어야 할 정도로 실내가 좁았지만 당시 이코노미석 요금이 일반 여객기보다 15배 정도 비쌌다.
   
   이런 와중에 2000년 7월 25일 최악의 사고가 일어났다. 뉴욕으로 가기 위해 파리 샤를드골공항에서 이륙하던 콩코드 한 대가 갑작스럽게 폭발하면서 100명의 탑승 승객과 9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정밀조사 결과 콩코드의 타이어가 직전에 이륙한 다른 비행기가 떨어뜨린 금속 조각을 건드리면서 파열되고 이때 튀어나간 조각이 연료통에 구멍을 내면서 큰 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1년 뒤 운항을 시작했으나 좀처럼 승객 수는 회복되지 못하고 회사는 경영난에 허덕였다. 콩코드는 결국 2003년 10월 마지막 운항을 끝으로 27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1983년 팬암사에서 첫 취항을 한 이후 2005년 퇴역을 할 때까지 총 3만621시간을 운행한 A300 B4도 볼 수 있다. 에어버스사의 A300형 여객기는 세계 최초의 ‘쌍발 광동체형(two engine wide body)’ 중거리 여객기라고 한다. 1972년 10월 첫 비행에 성공하였는데 2007년 생산 중지가 될 때까지 822대가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아에로스코피아에는 다양한 항공 관련 정보와 에어버스의 과거와 현재가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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