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르 시(43)는 “하하하” 크게 웃으면서 악센트가 있는 영어로 질문에 활기차게 대답했다. 호인다워 보였다. 프랑스 배우이자 코미디언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마르 시는 넷플릭스의 미스터리스릴러 시리즈 ‘뤼팽’에서 프랑스의 신사도둑 아산 디옵으로 나온다. 아산 디옵은 모리스 르블랑의 소설 주인공 아르센 뤼팽을 모델로 한 것. 뤼팽은 변장의 천재인 쾌도이다. 거구의 오마르 시는 LA의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했는데 시종일관 인터뷰가 즐겁다는 듯이 신이 나서 질문에 대답했다. 그의 부모는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프랑스로 건너왔다.

- 과거 많은 배우가 뤼팽 역을 했는데 다 백인이었다. 흑인 뤼팽은 시대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흑인 제임스 본드와 흑인 프랑스 대통령도 나올 수 있다고 보는가. “흑인 제임스 본드와 흑인 프랑스 대통령은 큰 문제가 아니다. 논리적으로도 당연히 일어날 일이다. 유기적 현상과도 같다. 그래서 내가 뤼팽도 된 것이며, 따라서 흑인 제임스 본드도 나오리라고 본다. 아르센 뤼팽은 프랑스가 낳은 최고의 남자여서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뤼팽 이미지를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갖고 있는 뤼팽의 이미지는 바로 이 시리즈의 아산 디옵이다. 그리고 배우란 남자가 여자 노릇도 할 수 있는 것이어서 흑인 배우가 백인 역을 하는 것은 하나의 작업일 뿐이다. 세계는 변하고 있는데 이미 일어난 큰 변화들에 비하면 내가 뤼팽 역을 하는 것은 별로 대단한 변화도 아니다.”

- 미술관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미술품을 훔친다면 무엇을 훔치겠는가. “‘모나리자’ 초상화이다. 이 시리즈를 찍으면서 모나리자의 초상화가 걸린 방에서 혼자 15분을 있었는데 참으로 대단한 특혜였다.”

‘뤼팽’의 한 장면.
‘뤼팽’의 한 장면.

- 시리즈에서는 뤼팽과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데 당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떤지. “나는 아버지와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대화를 많이 한다. 아버지는 내게 가치와 윤리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는 세네갈 태생으로 그곳의 구술 전통에 따라 책보다 얘기로 나를 가르쳤다. 그를 통해 나는 아버지의 여러 가지를 내 것으로 물려받았다. 입으로 얘기한다는 것은 어떤 주제에 대한 해설을 뜻하는데 이로 인해 내가 배우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학교와 선생님으로부터 배웠지만 내가 부모로부터 배운 것은 다 상호 대화로 얻은 것들이다.”

- 시리즈에서 당신이 자전거를 탄 메신저로 파리의 뤽상부르 공원을 누비며 쏜살같이 도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몇 번이나 찍었는가. “그 장면은 재미있으면서도 위험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정원들로 꾸며진 뤽상부르 공원에서는 자전거를 속도 내서 타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나는 특별 허가를 받아 달렸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 장면의 10% 정도만 자전거를 몰았고 나머지는 스턴트맨들이 했다.”

- 연말쯤 두 번째 시즌이 나올 모양인데 그 내용에 대해 조금이나마 말할 수 있는가.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밖에는 더 이상 밝힐 수가 없다. 여하튼 첫 시즌보다 더 재미있고 긴장감도 더 강한 내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새 인물들도 등장한다. 첫 시즌의 끝부분과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새 시즌이 시작될 때까지 참고 기대해 주기 바란다.”

- 뤼팽은 매우 여유 있고 침착한 사람인데 당신은 어떤가. “뤼팽이 나보다 훨씬 더 차분하다. 나는 그보다 훨씬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스타일이다. 나는 멋진 삶을 살고 있어 꽤나 여유가 있고 쾌활한 편이나 뤼팽의 긍정적인 스타일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 뤼팽이 도둑질을 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겪은 부당한 처우에 대한 일종의 보복 행위인데 도둑질과 보복 행위 중 어느 것이 더 흥미 있는가. “둘 다 흥미 있는 일이다. 시리즈에서 뤼팽은 불의의 피해자로 살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보복을 시도한다. 아울러 그는 매우 총명하고 신속해 사람들을 속이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그리고 액션도 즐긴다. 또 뤼팽은 아들 노릇과 함께 아버지 노릇도 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역과 일을 한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래서 나는 늘 ‘뤼팽은 배우들에게 최고의 장난감’이라고 말해왔다.”

- 미국 LA와 프랑스 두 곳 중 어디서 더 많이 지내는가. “나는 LA에 살고 있으며 촬영이 있을 때만 프랑스에 간다. 그 밖에 가족과 친구들을 보러 프랑스에 가지만 내 근거지는 10년째 살고 있는 LA이다.”

- 당신의 다섯 아이를 어떻게 지도하는가. “그 명예는 전적으로 내 아내 엘렌에게 돌아가야 한다.”

- 아르센 뤼팽 소설의 팬이었는가. “난 자라면서 소설보다는 일본 만화와 프랑스 만화에 심취했었다.”

- 그런 만화의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에 나올 생각은 없는가.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못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 아이들에게 프랑스어로 말하는가. “아이들은 영어로 말하지만 난 그들이 프랑스어를 잊지 않도록 프랑스어로 말한다. 어렵겠지만 아이들이 프랑스어로 쓰고 읽기를 원하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숙지하도록 매년 두세 권의 프랑스어 책을 나눠준다. 우리 가정 문화는 프랑스 문화여서 아이들은 진짜 미국 사람은 아니다. 그들은 미국인 친구들과 사귀지만 조부모는 세네갈 사람이다. 미국인만이 아닌 다국적 사람이라고 해도 좋다.”

- 아이들을 보고 당신과 달라 놀라는 일이라도 있는가. “종종 나와 유머 감각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아이들은 웃는데 난 우습지 않을 때가 있고, 또 나는 웃는데 아이들은 웃지 않는 경우를 본다.”

- 아이들이 아버지를 따라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아이들은 아직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라서 두고 봐야 할 일이다.”

- LA에 살면서 프랑스의 무엇이 그리운가. “가족과 친구들이다. 그리고 좋은 치즈다. LA에서는 좋은 빵과 치즈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또 프랑스에 가면 LA의 활력과 하늘을 그리워하곤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겐 LA의 하늘이 프랑스의 하늘보다 높게 느껴진다.”

- LA와 프랑스 두 곳 중 어느 곳에서 더 많은 배역이 주어지는가. “양은 같지 않지만 지난 10년간 LA에 살면서 ‘쥬라기공원’ 시리즈와 해리슨 포드가 나오는 ‘콜 오브 더 와일드’ 등에 나왔다. 훌륭한 기회들을 많이 만났다. 이런 영화와 배우들 그리고 극중인물 등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 같은 경험이 바탕이 돼 ‘뤼팽’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두 나라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기쁘고 행복하다. 두 나라에서 일하면서 개방적인 마음을 갖게 됐고 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융통성도 얻었다. 많은 것을 배웠고 그에 매우 감사한다.”

- 당신은 아내 엘렌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오래 유지하고 있다. 영화에서 로맨틱하고 매력적인 남자로 나와 새 여자를 애인으로 삼을 수 있는 것과 오랜 결혼 생활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그것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다. 평생 한 아내와 산다는 것은 평생 아내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매일 새 여자이기 때문에 나는 늘 매력적인 남자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 뤼팽 역을 하기 위해 영화나 TV에서 모델로 삼은 신사도둑이 있는가. “뤼팽이 나오는 옛 영화와 TV 프로는 다 봤는데 그중에서도 조르지 드크리에레가 뤼팽으로 나온 TV 프로가 큰 도움이 됐다. 그의 뤼팽은 사뿐하고 매력적이며 장난기가 짙다. 그 밖에 ‘미션임파서블’과 제임스 본드의 영화, 그리고 ‘오션스11’도 참고가 됐다. 이들을 섞은 뒤 나만의 뤼팽을 만들어냈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