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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65호]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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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통신]‘수지 웡의 세계’ 주연 낸시 콴 “아시아 배우 차별 여전하지만…”

LA=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2021-07-07 오전 9:00:16

▲ 2013년 숨진 미국의 여배우 잔 쿠퍼(오른쪽)와 함께 포즈를 취한 낸시 콴. 2012년 8월 캘리포니아 버뱅크에서 열린 ‘할리우드쇼’ 행사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photo 셔터스톡
낸시 콴(82)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미모가 여전했는데 잔잔한 웃음을 지으며 질문에 힘차고 쾌활하게 대답했다. 홍콩에서 중국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콴은 할리우드에서 아시아 배우들의 역할이 미미할 때 배우로 활약했다. 1960년 개봉한 ‘수지 웡의 세계’에서 빅스타 윌리엄 홀든의 상대역으로 나왔다. 할리우드가 아시아 배우를 중요한 역에 기용하는 데 길잡이 노릇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댄서이기도 한 콴은 모든 배역이 아시아 배우들로 짜인 뮤지컬 ‘플라워 드럼 송’에서도 주연을 맡았는데 이는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일이었다. 콴은 LA의 자택에서 영상 인터뷰에 응했다.
   
   - 당신은 댄서로 경력을 시작했는데 할리우드에 왔을 때 댄서로 활동하려고 했는가, 아니면 배우로서 성공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나. “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발레 댄서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춤을 배웠다. 12살 때 영국의 기숙학교에 입학한 뒤 로열발레학교에 지원해 입학이 허락됐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공부부터 마치고 오라고 해 학교 공부를 계속했다. 그 후 어느 여름방학을 맞아 홍콩에 돌아갔을 때 세븐아츠라는 할리우드 제작사가 내가 좋아하는 중국 배우들을 스크린 테스트한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에게 졸라 현장엘 갔다. 무대 뒤 어두운 곳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와서 스크린 테스트하려고 왔느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대답했으나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저기 있는 의자에 앉아 질문에 대답하면 된다고 해 그 말대로 했다. 내 나이를 비롯해 이것저것을 물었는데 난 시종일관 낄낄대고 웃기만 했다. 그 후 5주쯤 지나 제작사로부터 6개월짜리 계약을 맺고 싶으니 할리우드로 오라는 편지가 왔다. 아버지가 나더러 할리우드에 가고 싶으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그것이 배우 생활의 시작이었다.”
   
   - 할리우드에 왔을 때 아시아 배우들에 대한 대우에 환멸이라도 느꼈는지. “처음 왔을 때 할리우드가 아시아 배우들을 괄시하거나 홀대한다고 느끼진 않았다. 그러나 후에 할리우드에도 인종차별이 있고 아시아 배우들을 위한 역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긴 했다. 세븐아츠의 사장인 레이 스타크는 늘 나를 격려하면서 아시아 배우들이 나오는 상투적인 역이 아닌 다른 역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내겐 그런 역들이 주어졌다. 그것이 제대로 됐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겐 다른 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요즘은 아시아 배우들에게 주어지는 역이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삶이란 그런 것 아닌가. 스스로 이에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가. “열심히 운동을 한다. 무예의 일종인 태극권과 요가 수업을 받고 있다. 나는 불교신자로 명상을 하고 건강식을 먹는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닭고기도 먹고 다른 육식도 한다. 중국 사람들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아닌가. 그러나 이젠 나이가 먹어 전처럼 먹지를 못한다. 난 성형수술을 한 적이 없다. 건강한 삶을 살면 된다.”
   
   - 당신의 첫 영화에서 공연한 윌리엄 홀든에 관해 기억나는 일이라도 있는가.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내 첫 영화에서 그를 상대로 연기했다는 것이야말로 큰 행운 중의 행운이다. 그와 감독 리처드 콰인이 아니었더라면 난 그 역을 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홀든은 철두철미한 배우였다.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가 연기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안됐다.”
   
   - 홀든과 러브신을 할 때 주저하기라도 했는가. “아니다. 홀든과 난 러브신을 아주 수월하게 했다. 그가 그 장면을 아주 쉽게 처리해 주저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 당신은 오스트리아 배우로 오스카상을 탄 맥시밀리안 쉘(명배우 마리아 쉘의 동생)과 데이트를 했고 전 남편과 현 남편도 오스트리아 사람인데 오스트리아를 특별히 좋아하는가. 독일어를 할 줄 아는가. “난 오스트리아에서 매우 훌륭한 경험을 했고 또 오스트리아 사람들을 좋아한다. 전 남편 피터와는 이혼했지만 우리 사이에는 멋진 아들이 있다. 맥스와는 한동안 사귀다가 헤어졌다. 비단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어느 나라를 방문하건 거기서 늘 배울 것이 있기 마련이다. 내 독일어는 엉망이다.”
   
   - 제작자와 감독을 비롯해 할리우드의 실력자들이 여배우들을 성적으로 농락해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당신이 일할 때는 어땠는가. “다행히 난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 내가 연기한 영화를 만든 대부분의 감독은 다 철저한 직업인들이어서 날 격려하고 후원했다. 그리고 내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입을 열고 내 의사를 밝혔다. 난 그렇게 배우며 자랐다. 따라서 난 그런 문제는 순전히 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 윌리엄 홀든과 함께 출연한 ‘수지 웡의 세계’의 한 장면.

   - 지난 오스카 시상식에서 ‘노매드랜드’로 감독상을 탄 중국 태생의 클로이 자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시아 여자 감독으로서 처음 감독상을 탄 것이 참으로 기쁘다. 금상첨화 격으로 그 영화는 작품상과 여우주연상도 탔는데 난 그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앞으로 더 많은 아시아 영화인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 현재 당신은 어떤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가. “이제 나이를 먹은 생애 이 시점에서 보다 성숙한 사람이 되었기를 바란다. 난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 난 지금도 각본을 쓰고 있다. 그리고 좋은 역이 주어지면 배우로서 일하고 싶다. 난 또 그림도 그리면서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내 영적 존재를 위해 명상을 하면서 예술가로서의 존재를 만족시켜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 일부 미국인의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종차별이라는 단어가 미국에서 보편화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다민족 사회인 미국을 해치는 일이다.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는 중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들어왔다고 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범죄행위자들은 모든 아시아인에게 이 질병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좌절감을 엉뚱한 데다 풀고 있다.”
   
   - 당신은 첫 번째 영화 ‘수지 웡의 세계’와 두 번째 영화 ‘플라워 드럼 송’으로 급속도로 스타가 됐는데 그 명성이 버겁지 않았나. “그냥 자기 삶을 계속해 나갔을 뿐이다. 스타가 됐다고 해서 무얼 어떻게 하겠나. 물론 사람들이 날 과거보다 많이 알아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단단히 땅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난 그때 아주 젊었지만 내 본연의 삶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저 일하고 삶을 즐기는 것으로 명성을 다루었다.”
   
   - 각본을 쓰고 있다고 했는데 내용이 무엇인가. “아시안아메리칸에 관한 얘기로 샌프란시스코가 무대다. 샌프란시스코는 ‘플라워 드럼 송’의 무대다. 난 그곳의 차이나타운을 비롯해 여러 군데를 잘 알고 있다. 각본은 이미 완성한 상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자서전을 쓰려고 한다. 내게 일어났던 흥미 있는 일들을 메모 식으로 적어놓고 있다.”
   
   - 현재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있는 아시안아메리칸 배우 중에 특별히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 “그들 대부분이 내 친구로 그들을 모두 존경한다. 그들 중 많은 배우와 함께 일했고 또 같이 어울리기도 했다. 특별히 누구 한 사람을 골라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성 배우들 외에도 지금 재주 있는 젊은 아시안아메리칸 배우들이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이 자기 재능을 보여줄 좋은 역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 지금의 세 번째 남편과 30여년간 행복하게 살고 있는 비결은. “행복이란 마음의 상태가 아니겠는가. 결혼이란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그것은 늘 행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결혼이란 부부가 서로 싸우거나 어려운 일을 당한 후에 행복을 깨닫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같이 30여년을 늙어가며 산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관계란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기 마련인데 이제 와서 과거를 돌아보니 우리의 관계는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 당신을 보고 사람들이 명랑하고 매력적이라고 하는데 그런 성향은 부모 중 누구에게서 온 것인가. “중국 사람이지만 다분히 영국적인 아버지와 영국 사람인 어머니 두 사람으로부터 함께 물려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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