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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5호]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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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원조 ‘오빠부대’ 몰고 다닌 청룡기의 전설들

최홍섭  자유기고가 idfchoi@naver.com 2021-07-06 오전 10:52:24

▲ (왼쪽부터 시계방향) 경남고 투수 고 최동원. 경북고 투수 남우식. 부산고 투수 양상문. 광주일고 투수 선동열. 선린상고 투수 박노준.
지금부터 50년 전인 1971년 6월 9일. 제2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경북고와 경남고가 맞붙었다. 경남고는 전날 김영삼 동문이, 경북고는 그날 김수한 동문이 야구장을 찾아 응원했다. 훗날 대통령과 국회의장을 지낸 사람들이 직접 찾을 정도로 열기는 대단했다. 고교야구는 예나 지금이나 기본기가 생명이다. 경남고는 8회 말 실책 2개로 1점을 허용, 결국 경북고가 1대0으로 우승했다.
   
   그해 청룡기·황금사자기·대통령배 ·봉황대기 등 중앙 4개 대회를 비롯, 지방에서 열린 쌍룡기(화랑대기로 개명)와 문교부장관기까지 6개 대회를 모조리 휩쓴 언터처블 괴물팀이 바로 ‘1971년 경북고’다.
   
   경북고는 11월 일본 규슈 원정에서도 6전6승을 기록, 일본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30득점, 4실점, 2완봉승. 야구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일본을 누른 적이 또 있을까.
   
   당시 경북고는 1대0 승리가 많았는데, 그만큼 투수 남우식이 잘 던져 이겼다는 말이다. 경북고 유격수로 1번 타자였던 천보성 전 LG트윈즈 감독은 “왼팔을 치켜드는 시원한 폼으로 시속 150㎞를 웃도는 남우식의 공은 천하무적이었다. 경남고 김성관, 중앙고 윤몽룡 정도나 간신히 쳤을까. 그런 고교 투수는 지금까지 없다”고 회고했다. 워낙 폼이 좋아 프로야구 원년스타 박철순도 군대에서 남우식에게 배웠다고 했다.
   
   
   천하무적 남우식 영업맨 거쳐 CEO로 변신
   
   세상에 고교야구만을 위해 태어난 듯한 사나이. 고1 때부터 에이스 역할을 했던 남우식은 고3 때 5개 대회에서 186이닝을 던져 19승1패 방어율 0.34를 기록했다. 봉황대기에서는 혼자 54이닝을 던져 2점밖에 주지 않았는데, 특히 군산상고와는 연장 14회까지 던져 1대0으로 이겼다. 요즘이라면 ‘혹사’라고 난리 나겠지만 그때는 ‘상식’이었다.
   
   하지만 어깨와 팔꿈치에 가해진 과부하는 한양대에 진학하면서 문제를 드러냈다. 고교 시절의 빠른 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평범한 강속구 투수로 평가절하됐고, 나이 서른도 안 돼 실업팀 롯데에서 야구공을 놓았다.
   
   대신 그는 롯데햄우유의 영업사원 길을 택했다. 그는 “처음엔 자존심 상했지만, 낮에는 영업사원으로 그라운드가 아닌 마케팅에서 경쟁했고 밤에는 일본어 공부에다 경영대학원도 다니며 실력을 쌓았다”라며 “후배들에게 야구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야구도 하는 사람이 되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마침내 그는 푸르밀(롯데햄우유에서 개명)의 CEO까지 올라 수년간 회사를 경영했다. 스포츠 스타가 경영계 스타까지 된 희귀 사례다.
   
   흔히 ‘70년대 고교야구’(봉황대기가 신설돼 전국 4개 대회가 완성된 1971년부터 프로야구 출범 직전인 1981년까지 11년간)는 문화코드로 통한다. 최고 인기 스포츠였고 사회적 신드롬이었다.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 인구이동이 잦던 시절, 애향심(愛鄕心)과 애교심(愛校心)을 자극하는 파토스(pathos)를 지녔다.
   
   50~60대는 기억한다. 결승전날 저녁이면 상가는 문을 닫고 교통량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지방팀이 금의환향하면 군부대 제공으로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것도 관례였다. 경북고가 너무 자주 우승하자 대구 소재 2군 사령부에서 매번 15대의 지프를 계속 제공하는 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1980년대 신(新)군부는 고교야구의 인기를 프로야구로 연결시키고자 했다. 경북고와 대구상고는 삼성라이온즈, 광주일고와 군산상고는 해태타이거즈, 경남고와 부산고는 롯데자이언츠 식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다.
   
   

   경북고 잡은 중앙고 윤몽룡
   
   고교야구 중에도 선수권(選手權), 즉 ‘챔피언십(championship)’ 대회인 청룡기는 1946년 시작돼 가장 역사가 길고 권위가 있다. 1973년 대통령배 등 3개 대회를 우승한 대구상고의 강태정 감독은 청룡기에서 예선 탈락해 무척 애석해했다. 장효조·김한근·석주옥을 주축으로 ‘주자가 나가면 무조건 도루’라는 기동력 야구를 했던 강 감독은 “청룡기에 나갔다면 우승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만큼 청룡기는 고교야구 최고 아이콘이었다.
   
   경북고는 남우식이 졸업하고 황규봉과 이선희가 던진 1972년에도 첫 대회인 대통령배를 가져가자 “또 경북고냐”며 짜증이 번지는 분위기였다. 청룡기에서는 중앙고의 기교파 투수이자 홈런 타자인 윤몽룡이 경북고를 4대1로 틀어막고 우승했다. 황규봉과 윤몽룡은 대학 1학년인 1973년 아시아야구대회에 둘 다 국가대표로 뽑혔다. 하지만 황규봉은 필리핀 마닐라의 숙소 호텔 3층에서 화재를 피하려다 추락, 허리 부상에다 늑막염, 고소공포증까지 겹쳐 우여곡절의 야구인생을 겪었다. 두 사람은 지금 세상에 없다. ‘윤도령’ ‘짱구’ 등으로 불리던 윤몽룡은 31세인 1984년 혈액암으로, 황규봉은 63세인 2016년 대장암으로 야구와 이별하고 말았다.
   
   1972년 우승팀 중앙고는 1973년에는 경남고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경남고는 좌완 천창호의 제구력에다 188㎝ 유격수 김용희의 장타를 앞세워 청룡기를 우승했고, 3년 뒤 최동원이 등장하면서 다시 청룡기를 거머쥐었다. 최동원은 금테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눈빛과 발을 높이 치켜드는 다이내믹한 폼으로 총알 강속구와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드롭을 곁들여 일약 한국 최고 투수로 떠올랐다.
   
   패자부활전 제도가 있던 1976년, 최동원은 대형 강속구 투수 김용남이 이끄는 군산상고와 승자결승전에서 스트라이크아웃 20개를 잡아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치욕을 안겨 주었다. 37이닝 동안 단 2점만 내줬으니, 남우식과 견줄 만하다.
   
   고교 이후 최동원의 활약상이야 5060세대에게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시즌마다 200이닝씩 던지며 혹사한 탓일까. 아쉽게도 2011년 53세 나이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작고하기 두 달 전 부쩍 마른 상태에서 경남고 유니폼을 입고 나왔는데, 투구를 부탁받자 “저도 한다면 악으로 깡으로 하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못 하겠다”라고 거절했다. 늘 “마, 한번 해보입시더”라던 최동원이 처음으로 “못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인간의 약함이기도 하지만, 온 힘을 쏟아 멋진 인생을 살아온 거인의 한마디는 울림이 컸다.
   
   
   투수가 아닌 포수 스카우트 경쟁
   
   대구상고는 1973년 청룡기만 놓쳤던 아쉬움을 1977년 가서야 풀었는데, 패자부활전 제도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4강전에서 동산고에 1대2로 패했으나 패자부활전을 통해 결승에 진출, 1차전에서 3대1, 2차전에서 7대2로 연거푸 동산고를 꺾었다. ‘헐크’ 포수 이만수는 4관왕에 올랐고, 연말엔 최고 타율 고교생에게 주는 이영민타격상도 받았다. 당시 경향신문은 ‘이만수를 놓고 대학팀들이 1000만원대의 스카우트 혜택을 제시했다고 한다. 슈퍼스타 최동원이 1000만원, 김용남이 500만원대로 알려졌으나 투수가 아닌 포수를 놓고 치열한 스카우트 쟁탈전이 벌어지기는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1978년 청룡기에서 우승한 부산고는 초고교급 좌완투수 양상문을 앞세워 출전한 대회마다 우승했다. 대통령배에서 대구상고를, 청룡기에서 경북고를 각각 꺾으면서 1970년대 대구세(勢)에 맞선 부산의 자존심을 지켰다.
   
   요즘 SPOTV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는 양상문을 기교파 투수로 아는 사람이 있지만, 부산고 시절엔 자로 잰 듯 묵직하고 날카로운 강속구를 포수 김호근의 미트에 찔러 넣는 초고교급 에이스였다. 청룡기 5경기에서 41이닝 2실점으로 방어율 0.44의 괴력을 과시했다. 당시 ‘고교야구 3개 대회 이상 출전 제한’ 규정이 생겼는데, 그런 게 없었다면 ‘1971년 경북고’와 비슷한 성적을 냈을 것이다.
   
   양상문은 수업을 빼먹지 않는 학구파였는데, 훗날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다만 일찍 혹사당한 탓인지 대학과 프로에선 고교 시절 같은 공을 뿌리진 못했다.
   
   ‘70년대 고교야구’의 황제였던 경북고는 1981년 마지막 기염을 토했다. 청룡기를 필두로 4개 대회를 휩쓸었다. 지금도 성준·최무영 등 당시 멤버들은 사관회(四冠會)란 이름으로 만나고 있다.
   
   사실 그해 청룡기 우승 예상팀은 단연 선린상고였다. 좌완 야구천재 박노준과 우완 강속구 김건우는 1학년 때 팀을 청룡기 준우승에 올렸고, 2학년 때는 결승전에서 마산상고를 5대0으로 꺾고 우승했다. 그러니 3학년 때 선린상고가 우승하리라는 건 당연한 예상. 야구토토가 있었다면 100% 선린상고에 베팅했겠지.
   
   하지만 1981년 청룡기 결승전에서 선린상고는 실책을 연발했고, 결국 연장 11회 박노준은 홍순호에게 결승타를 맞고 만다. 비 내리는 속에 3루 주자 김윤영이 두 손 들고 홈인하는 장면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재연되고 있다. 조선일보 1981년 6월 23일 자 기사를 보니, 청룡기 대회 평균 게임당 에러가 3.3개였으나 경북고는 4경기 동안 총 3개만을 기록했고 그나마 결승전에서는 에러가 없었다. 호화멤버의 선린상고는 에러로 자멸하고 말았다.
   
   
▲ 1981년 청룡기에서 경북고가 결승점을 올린 장면을 보도한 신문 사진.

   ‘원조 오빠부대’ 몰고 다닌 박노준
   
   이후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양 팀은 박노준이 1회 말 홈인하다가 발목을 접질리는 대형사고를 당해 한국병원으로 이송되면서 결국 또다시 경북고가 이겼다. 박노준은 “1981년 8월 26일. 생일은 까먹어도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이후 선린상고는 다시 실책을 연발했고, 기본기 탄탄한 경북고에 또 고배를 마셨다.
   
   당시 박노준의 인기는 연예인급이어서, 9시뉴스에서 ‘원조 오빠부대’ 여고생들이 문병하는 모습을 보도할 정도였다. 그런 박노준은 경영학에 관심이 많아 고교시절부터 CEO 자서전을 즐겨 읽었고 대학도 고려대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고교 시절 혹사당한 스타의 공통점일까. 학구적 노력을 더한 끝에 지금은 안양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박노준 역시 야구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야구도 하는 사람이었다.
   
   1970년대 청룡기 우승과는 인연이 없지만, 호남 야구는 갈수록 빛을 발했다. 홈런 치는 투수 김봉연, 도루왕 김일권, 마운드에서 늘 웃는 표정의 ‘스마일 투수’ 송상복 등의 군산상고는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부산고에 9회 말 5대4로 역전승했다. ‘역전의 명수’라는 붙박이 타이틀을 획득했고, 군산 시민 12만명 중 7만명이 거리로 나와 선수단을 환영했다. 지금도 군산상고를 가보면 곳곳에 ‘역전의 명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군산상고는 1976년과 1981년 대통령배를 비롯, 꾸준히 트로피를 가져갔다. ‘오리궁둥이’ 김성한과 ‘싸움닭’ 조계현은 군산상고 야구천재들. 조계현은 연세대 경영학과 시절 가능하면 수업에 참여했고, 지금 기아타이거즈 단장으로서 경영학을 실전에 써먹고 있다.
   
   광주일고는 1975년 대통령배 결승전에서 미남 4번 타자 김윤환이 경북고 성낙수를 상대로 3연타석 홈런을 치면서 ‘호남 야구의 완전한 부활’을 선언했다.
   
   1980년 대통령배 결승전에선 아예 광주팀끼리 붙었다. 선동열의 광주일고와 이순철(SBS스포츠 해설위원)의 광주상고가 붙었는데, 결과는 선동열의 승리. 이순철은 고1 때 선동열에게 홈런을 친 적이 있다는데, 둘은 대학도 고려대와 연세대로 라이벌이었다가 해태타이거즈에서 한 팀이 되었다. 국보급 투수 선동열은 좋은 기록이 워낙 많다 보니 1980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선린상고 박노준에게 홈런 맞고 패한 기록이 종종 언급되고 있다.
   
   선동열은 고교 시절에 혹사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1년 후배인 수준급의 차동철이 많은 경기에 대신 등판했다. 그런 덕분인지 대학과 프로에서 싱싱한 어깨로 대기록을 많이 남겼다고 하면 지나친 분석일까.
   
   올해 제76회 청룡기대회(겸 주말리그 왕중왕전)는 7월 6일부터 19일까지 목동야구장과 신월야구장에서 열린다. 지난해 우승팀 장충고를 비롯, 47개 학교가 자웅을 겨룬다. 5060세대가 여기에서 남우식 같은 스타를 발견할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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