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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7호] 202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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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터뷰]日 대표 사회학자의 분석... 완간 ‘진격의 거인’의 의미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silkroad100@gmail.com

▲ 일본의 사회학자 오사와 마사치.
‘진격의 거인(進撃の巨人)’이 마침내 종결됐다. 34권 최종호를 발간하면서 2009년 이래 무려 11년간 지속돼왔던 139개 에피소드가 지난 6월 종결됐다. 곧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하지만, 종결 이후에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진격의 거인’에 대한 분석과 기억이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반일 토착왜구 죽창가’를 외치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진격의 거인’은 21세기 한국 젊은이들의 필독 목록 중 하나다. 구글에 들어가 한글로 ‘진격의 거인’이란 키워드를 쳐보자. 무려 680만개의 정보가 뜬다. 한 권에 5000원 하는 ‘진격의 거인’ 시리즈 34권은 초등학생은 물론, 한국의 10대 나아가 2030세대의 애독서로 떠오른 지 오래다. 한국에서 22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귀멸의 칼날(鬼滅の刃)’이 그러하듯, 한국 내에서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뿌리는 상상 이상이다.
   
   ‘진격의 거인’은 인간을 산 채로 씹어먹는 거인의 잔인한 만행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가 거인 입속으로 들어간 것을 보면서 복수를 다짐하는 15살 주인공 에렌(エレン)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하(大河) 만화다. 11년 연륜이 말해주듯 여러 각도에서의 얘깃거리가 만화 속에 들어가 있다.
   
   오사와 마사치(大澤眞幸) 박사는 ‘서브컬처(Subculture)’, 즉 만화·영화·패션·음악을 통해 사회와 세계의 흐름을 분석, 평가하는 일본의 대표 사회학자다. 영화 ‘귀멸의 칼날’을 ‘내셔널리즘’이란 키워드를 통해 분석한 것을 비롯해 NHK와 아사히(朝日)신문을 통한 사회 분석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만화 ‘진격의 거인’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식의 분석이 가능할지, 오사와 박사의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1시간15분에 걸쳐 줌(Zoom)을 통해 일본어로 이뤄졌다.
   
   - 전체적으로 ‘진격의 거인’ 작품 완성도가 어느 정도라 보는가. “2009년 초기 수년간 거의 완벽한 수준에 달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개인적 평가지만, 1% 부족한 만화였다. 처음부터 작가가 스토리를 전부 구체적으로 구상한 뒤 연차적으로 발표했을 테지만, 독자가 보면 전반과 후반의 스토리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 전반, 후반이 어떻게 다르다는 말인가. “전반의 얘기는 거인의 공격과 삼중 성(城)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환경에서 시작된다. 21세기 현재 인류에 밀어닥친 불확실한 불안, 공포, 고립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한 모순된 상황 속에서 인간들이 생존해나가는 얘기가 전반부의 핵심이다. 그러나 후반 들어 전반부의 기본 전제 자체를 부정하는 스토리가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악의 상징인 거인 자체가 적이 아닌, 나 자신의 분신이자 창조물이란 것이 드러난다. 거인의 세계가 다른 곳에도 있고, 생존에 매달리는 자신의 땅이 전 세계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친구와 적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고, 좁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다.”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의 혼란인가. “진격의 거인은 만화지만, 정치·역사 문제에 대한 얘기를 곳곳에 심어놓고 있다. 주인공 에렌과 그의 조상인 유미루(ユミル)를 연결하는 2000년 역사를 통해 그동안 가려져왔던 여러 가지 정치 상황과 역사가 드러난다. 에드리아제국과 마레제국, 두 나라 모두 거인을 동원해 우위에 서려는 잔인한 역사가 펼쳐진다. 자랑스러운 것만이 아닌, 거인을 통해 서로를 공격하고 증오해온 과거다. 현재 볼 수 있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라고나 할까? 일본인이라면 만화를 보면서 과거 2차대전 당시의 한국, 중국, 나아가 아시아 전체에 대한 불행한 역사를 떠올릴 듯하다. 인간을 산 채로 잡아먹는 거인이 적만이 아닌, 나의 분신이란 점에서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진격의 거인’의 큰 줄거리는 만화 속에 등장하는 적대관계 국가인 ‘에르디아 vs 마레’를 통해 분석해볼 수 있다. 에르디아제국 초대 왕은 거인을 이용해 전 세계를 지배한다. 주인공 에렌은 에르디아 초대왕의 145대손에 해당한다. 초대왕 이후 2000년이 흐른 뒤의 에르디아 역사가 시대 배경인 셈이다. 마레제국은 에르디아 거인의 공격에 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 보다 진화된 전투용 거인들을 양산해 마침내 에르디아를 붕괴시킨다. 이후 살아남은 에르디아 국민은 마레가 보낸 거인 공격을 피해 50m 두께의 삼중 성을 구축해 살아간다. 성을 만들 당시 거인을 활용한다. 그러나 성 안에 들어오지 못한 에르디아 국민은 마레로부터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살아간다.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가던 중 에렌을 비롯한 에르디아 국민 일부가 마레가 보유한 거인화 능력을 갖게 된다. 따라서 거인은 한 나라에 독점된 병기가 아니라, 에르디아와 마레 모두가 사용하는 첨단 무기가 된다. ‘거인=악’이라 규정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 내용상 적과 친구에 대한 구별이 모호한데. “1990년대 만화 ‘에반게리온(エヴァンゲリオン)’에서 보면 인류를 공격하는 침략자 악당이 시종일관 존재한다. 악당을 격퇴하는 것이 선이자 정의다. ‘진격의 거인’은 다르다. 얘기가 진행될수록 친구와 적이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 바로 ‘진격의 거인’이란 작품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수작(秀作)이란 평가를 받을 근거도 바로 거기에 있다. 작품의 초기에는 ‘인간(선) 대 거인(악)’이란 구도하의 흑백 구별이 가능하다. 그러나 얘기가 진행되는 동안 인간도 악이 되고 거인도 선이 되는 상황으로 변해간다. 물론 인간이 거인으로, 거인이 인간으로 변하고, 믿었던 친구가 적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주인공 에렌이 속한 에르디아제국의 입장만이 아닌, 에렌을 적으로 한 마레제국의 시각도 나타난다는 점에서 총체적·전지적 세계관이 작품 속에 투영돼 있다. 선악과 정의가 영원불멸이 아니라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진격의 거인’이 갖는 매력 중 하나지만, 천편일률 스토리가 아니다. 예를 들어 서로 싸우던 존재라도 결국에는 화해를 하고 대망의 평화로 나아가는 것이 기존 판타지 스토리의 정석이다. 상대가 악일 경우 전부 초토화시키는 것이 정의다. ‘진격의 거인’은 다르다. 상대가 악인지 여부도 모호하고, 둘이 만나 결국에는 대화로 풀어나간다는 식의 결론도 없다. 아무리 평화를 외쳐도 말이 안 통하는 상대가 존재하고, 내가 악일 수도 있으며, 악을 처벌한다 해도 정의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가 곳곳에 넘친다.
   
▲ 2009년부터 시작해 지난 6월 11년 만에 종결된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 국내에도 번역 출간돼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 기존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에는 롤모델이 반드시 존재한다. 에렌이 영웅으로서 롤모델이 될 수 있는가. “에렌의 캐릭터는 수시로 변한다. 마지막 34권에서의 캐릭터는 학살자로 변한 거인이다. 특이한 자기희생을 통해 죽어간다. 앞서 어머니를 잃은 뒤 복수를 다짐하던 정의의 칼이 아니다. 반대로 정의의 칼에 맞아 죽은 악당이 에렌의 마지막 초상화다. 그 같은 캐릭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격의 거인’은 롤모델, 영웅, 히어로를 찾기 어려운 만화다. 독자들 가운데 에렌처럼 되길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에렌이 아닌, 조연급 인물들이 오히려 롤모델이 될 수 있다.”
   
   - ‘진격의 거인’의 결론은 악당으로 변한 에렌의 죽음, 그리고 뒤이은 인류 평화로 귀결된다. 일본인 입장에서 어떤 식의 해석이 가능한가. “당연하지만, 2차대전 당시 역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에르디아가 주변을 침략한 얘기와, 마레로부터 에르디아를 지키기 위한 에렌의 극적인 변화가 20세기 전반기 역사로 연결될 수 있다. 일본의 현 세대들에게는 이미 잊힌 역사지만, ‘진격의 거인’을 통해 100여년 전 아시아의 어두운 과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현재 목격하고 있지만 일·한, 일·중, 일·북 관계는 여러 측면에서 부딪치고 있다. ‘진격의 거인’은 2000년 전 역사 속에 묻어온 모순과 비극을 되새기면서 이어지는 스토리지만, 결론은 세계 평화다. 한 세기 전 벌어진 비극적 역사를 21세기에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을지? 그 같은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이 ‘진격의 거인’의 주제일지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에도 거인이 곳곳에 등장한다. 제우스와 올림픽 12신과 맞서 싸운 타이탄 거인군단, 10년에 걸친 지중해 여행기인 ‘오디세이아’에 나타난 외눈박이 거인 사이클롭스(Cyclops)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거인=악’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생각이 아니라, 크기 면에서 인간과 다를 경우 무조건 악이다.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평화와 정의에 어긋난다. 피그미족에서 보듯, 인간보다 작을 경우 조롱과 학대의 대상으로 바뀐다. 18세기 초 탄생한 ‘걸리버 여행기’는 기존의 거인 소인관에서 벗어난 획기적인 작품에 해당한다.
   
   - 일본발 거인이나 초대형 생명체를 서방과 비교하면. “일본에서 초대형 생명체가 등장한 것은 1945년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이란 거대강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패한 뒤 약하고 왜소한 존재로 추락한다. 미국, 구소련, 중국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거인세계가 일본을 에워싼다. 그 같은 공포는 만화 속에 등장하는 초대형 괴수나 외계인을 통해 일본인에게 ‘시각적’으로 분명히 전달된다. 초강대국 미국의 경우 거인 해결사가 필요 없다. 슈퍼맨, 배트맨처럼 인간과 동일한 크기의 영웅만으로도 악에 맞서 싸울 수 있다.
   
   일본은 다르다. 주변의 거대강국에 맞설 만한 만능 거인이 필요하게 된다. 운이 좋게도, 일본은 냉전을 이용해 초대형 거인국가 미국을 끌어들여 살아남게 된다. 1960년대 탄생한 초대형 슈퍼맨에 해당하는 ‘울트라맨(ウルトラマン)’은 그 같은 배경과 과정하에서 탄생한 만화다. ‘울트라맨=미국’인 셈이다. 일본의 거인이나 초대형 생명체는 악만이 아닌, 인류를 도와주고 평화를 실현해주는 정의의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초대형 괴수도 있지만, 울트라맨도 동시에 존재한다.”
   
   - 거인이나 초대형 생명체라고 하면 ‘고질라(ゴジラ)’가 떠오른다. 고질라가 원폭의 분신이라고 할 때 진격의 거인은 어떤 배경하의 산물이라 볼 수 있을까. “고질라는 1950년대 냉전 당시 탄생한 원폭의 부산물이다. 21세기 탄생한 ‘진격의 거인’은 원폭에서 발전된, 대량살상무기(WMD)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WMD, 즉 생물무기, 화학무기, 핵무기, 방사능무기가 ‘진격의 거인’을 통해 은유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화 속에서 거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다. 결국 엄청난 파워와 함께, 다른 거인들을 지배하고 지능까지 보유한 최첨단 9명의 거인이 등장한다. 세계 최강의 조건이 바로 9명의 거인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 바로 WMD를 의미한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중국은 WMD 능력을 갖춘 진격의 거인 중 하나로 비칠지 모르겠다. 아니 WMD 이상의 통제 불가능한 괴물로 급성장한 것이 2021년 ‘진격의 거인’으로서의 중국이란 생각이 든다. 신장웨이우얼자치구, 홍콩에 이어 대만까지 삼키려는 중국의 무력 일방통행이 신판 WMD로 비친다.
   
   - 캐릭터라는 관점에서 보면 1950년대 ‘고질라’, 21세기 ‘진격의 거인’이 서로 다를 듯하다. “‘고질라’의 경우 적이 누구인지 분명하다는 점에서 ‘진격의 거인’과 다르다. 냉전의 결과지만, 당시 소련은 미국의 적이자 악이다. ‘고질라’는 그 같은 상황하에 탄생한 결과물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같은 개념은 사라진다. ‘진격의 거인’이 적인지 친구인지, 선인지 악인지 모르는 존재라는 점은 글로벌 시대 세계관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진격의 거인’만이 아닌, ‘귀멸의 칼날’을 봐도 애매한 세계관이 드러나 있다. 귀신이 원래 인간이었다는 점에서 동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진격의 거인’은 ‘귀멸의 칼날’에 비해 한층 더 애매하고 복잡하다.”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내셔널리즘이 강화되고 있다. 애매하게 그려진 ‘진격의 거인’도 선과 악, 어딘가에서 확실히 서야 할 때가 온 듯한데. “‘고질라’와 ‘진격의 거인’의 분기점에 서 있는 것이 코로나19 이후 세계다. 코로나19 이후 백신 확보 과정을 보면 내셔널리즘의 극치에 달한 듯하다. 그러나 21세기는 한 나라만이 지배하는 일방통행 시대가 아니다. 코로나19 방역 하나만 봐도, 싫든 좋든 글로벌 차원의 협력과 연계가 필수적이다. 환경문제 CO2, 지속가능한 발전(SDG) 문제 등 전부 마찬가지다. 인류 모두가 공유하는 부분을 없애는 것과, 나라별로 드리워진 내셔널리즘을 극복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간단하고 가치가 있다고 보는가? ‘진격의 거인’은 내셔널리즘과 글로벌리즘의 분기점에 선 2021년 인류의 초상화라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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