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읽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값어치와 가치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 값어치는 세상이 나를 재단해 임의로 매길 수 있는 것이지만, 가치는 내 안에 있는 고유한 것이라 측정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세상이 내 값어치를 얼마로 평가하든, 중요한 건 내게 내재한 가치라는 말에 적잖이 위로를 받았다. 지금은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책의 이 대목을 떠올린 건 영화 ‘워스’를 보고 나서였다.

워스는 9·11테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국가가 보상금을 지급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전례 없는 테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돈이라는 ‘현실적인’ 위로를 건네는 것은 어찌 보면 폭력적일 수 있지만, 사실상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소득과 나이 등에 따라 보상금을 차등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정부는 선제적 지원을 통해 유가족을 위로하려는 듯 행동했지만, 기실 피해자들이 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설 경우 미국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73억달러 규모의 이 보상 기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24개월 안에 지급 대상자의 80% 이상이 서명해야 한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반발한다. 가족의 목숨을 흥정 대상쯤으로 치부하는 현실에 분개한 것이다. 테러 희생자 중에는 소방관, 스튜어디스, 기업 최고경영자, 건물의 수위까지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의 생전 수입은 모두 달랐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도, 세상이 생각하는 희생자의 ‘값어치’와 가족들이 생각하는 ‘가치’ 역시 같지 않았다.

처음 이 보상 기금의 위원장으로 나선 것은 민사소송 전문가인 케네스 파인버그(마이클 키튼 분)였다. 켄(케네스)은 승산이 높지 않고 오래 걸리는 민사소송에 비해 정부 보상금은 지급이 빠르고, 전액 비과세라는 점을 내세우면 유족들을 쉽게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그는 보험사 기준표를 참고해 청구액 산출 공식을 만들고 희생자의 나이, 소득, 부양가족 수에 따라 보상 금액을 정했다. 차등 지급은 평소 그의 ‘철학’이기도 했다. 강단에 선 그는 이런 지급 방식이 법적으로 모범답안에 가깝다고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공정이 목표가 아니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들의 원성이 커지자 켄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우연히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를 듣게 된 그는 유족들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켄은 9·11 추모 공연에서 현대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는데, 이 공연은 모든 희생자의 가치가 동등하다는 사실을 은유하는 듯 보인다. 영화는 켄이 무대를 응시하다가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듯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조용히 담는다. 그는 그제야 깨달은 것 같다. 자신이 피해자의 가치를 산술적으로만 판단해왔다는 걸. 유족들이 원한 건 보상금이 아니라 진심 어린 위로였다는 걸.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본가에서 독립한 이후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우리는 집에서 맡은 역할이 서로 다르다. 회사에 다니며 일정한 보수를 받는 언니와 프리랜서로 살며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는 나. 큰 틀에서 우리집은 언니의 소득을 지붕 삼아 돌아가고, 시간 여유가 없는 언니 대신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내가 맡는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중 한 사람이 죽는다면? 누구도 서로의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없는데, 목숨값으로 국가가 계산한 만큼만 보상을 받아야 한다면? 돈은 필시 현실적 대안이 될 테지만, 서로의 빈자리를 돈으로 메우는 상황은 우리 둘 모두 원치 않을 것이다.

희생자의 가치를 국가가 ‘공식’에 넣어 ‘계산’하겠다는 발상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피해자의 목숨값을 산술적으로 계산해 그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희생자를 두 번 죽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기금은 말 그대로 피해자의 남은 가족을 위한 것인데, 가족에게 피해자의 가치가 단순히 그들의 ‘소득’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더욱이 ‘현재’를 기준으로 한 판단은 희생자들의 앞으로의 가능성을 모두 뭉갠 것일 수밖에 없다.

만일 산술적 계산이 꼭 필요하다면, 그 계산엔 이런 것도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희생자가 평소 얼마나 멋진 딸이었는지, 아이들에게 얼마나 다정다감한 아빠였는지.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독일 줄 아는 사려 깊은 친구였는지, 또 누군가에겐 롤모델이 되는 인생 선배였는지. 이 모든 것을 수치로 정확히 환산할 수 없다면, 희생자의 가치 역시 (오로지 소득만을 따져서) 임의로 환산해선 안 될 것이다.

켄에게는 애시당초 정부가 설계한 보상 기준을 바꿀 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이제라도 상황을 바로잡으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생전 많은 수입을 올렸던 희생자의 유족 측이 더 많은 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말한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도 없는 켄은 결국 유족을 개별적으로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기로 한다.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켄은 마감일까지 유족 97%의 동의를 받아냈다. 물론 마지막까지 피해자들이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합의점을 찾은 것일 뿐 해답을 찾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재난이나 재해보상금 지급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데에는 의의가 있다.(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케네스 파인버그’는 실존인물로, 9·11테러 이후 현재까지 수많은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돕고 있다.)

9·11테러는 올해로 20주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 사고가 그저 ‘과거의 일’이 아닌 이유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리 중 누구도 희생자가 될 수 있고, 희생자의 가족이 될 수 있으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이름은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계산기를 두드려 그들의 ‘값어치’를 매길 것이다. 그들이 고유한 ‘가치’로, 제대로 대우받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개봉 2021년 7월

감독 사라 코랑겔로

주연 마이클 키튼, 스탠리 투치

조연 에이미 라이언, 테이트 도노반, 수노리 라마나단, 로라 베난티, 탈리아 발삼, 크리스 타디오

등급 12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국가 미국

러닝타임 117분

박수영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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