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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1호] 202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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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27 대 6… 한·일 금메달 숫자가 남긴 것

김수인  스포츠칼럼니스트 si8004@naver.com 2021-08-13 오전 11:54:58

▲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태권도 국가대표 인교돈 선수가 지난 7월 27일 남자 태권도 80㎏ 초과급 슬로베니아 트라이코비치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발차기 공격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7 대 6. 핸드볼 경기 스코어가 아니다. 지난 8월 8일 폐막한 도쿄올림픽에서 일본과 한국이 따낸 금메달 숫자다. 한국과 일본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넘게 선의의 경쟁을 벌여 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번 대회에서 하프 스코어도 훨씬 넘는 엄청난 격차가 벌어졌을까. 한국이 기록한 금 6, 은 4, 동메달 10개, 종합 16위는 45년 만에 가장 나쁜 성적이다.
   
   물론 도쿄올림픽은 일본에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크게 작용했다. 일본은 2013년 6월 도쿄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자 ‘부흥 올림픽’을 기치로 내세웠다. 성공적인 ‘인류 대제전’을 완성해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아픔을 깨끗이 씻어내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일본 스포츠청(廳)은 2021년도 올림픽 강화예산을 103억엔(약 1079억원)으로 2015년보다 40% 늘렸다. 이 예산은 각 경기단체에 분배돼 해외원정 경비와 경기력 강화를 위한 합숙에 사용됐고 대표선수들의 전력은 크게 향상됐다.
   
   이에 반해 한국의 지원과 준비는 소홀했다. 도쿄올림픽은 여느 올림픽과 달랐다. 한·일 간의 역사적인 감정이 깊게 패어 있어 금메달 수에서 일본에 크게 밀려도 안 되며 특히 각 종목의 한·일 맞대결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했다.
   
   하지만 올림픽을 주관하는 대한체육회는 정부로부터 특별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런 탓에 산하 경기단체와 기업체의 협조, 그리고 선수들 개개인의 분발에 잔뜩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금메달 7개를 획득해 10위 내 진입을 하겠다’는 다소 막연한 목표가 허술한 준비를 잘 말해주고 있다. 금메달 9개 이상은 따야 10위 진입이 가능하다는 것은 체육 관계자들의 상식인데, 어떻게 7개로 10위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목표였다.
   
   모 대학 스포츠부 교수의 말이 와닿는다. “지난 정권 ‘정유라 파동’ 이후 현 정부의 체육 관련 지원과 기업체의 협찬이 끊기다시피 하고 있다. 양궁, 체조 등 일부 종목만 오래전부터 연결된 기업체로부터 혜택을 받는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한체육회가 마스터플랜을 짜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정부 지원이 없자 대한체육회가 손을 놓았던 셈이다.
   
   
   첫 ‘노골드’, 태권도협회는 내분 중
   
   일본은 총 금메달의 3분의1인 9개를 유도에서 따내 ‘유도 종주국’의 위세를 여전히 과시했다. 일본이 유도 종주국이면 한국은 태권도의 종주국이다.
   
   일본이 유도 남녀 27개 체급에서 9개 금메달을 땄으면 한국은 태권도 전체 8체급에서 2개는 땄어야 했다. 그나마 2개 체급은 예선 탈락해 전 종목 출전이 무산됐다. 한국은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3개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매 대회 1~4개의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도쿄에서는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에 그쳤다. 왜 그럴까?
   
   속사정을 알아보면 기가 찬다. 태권도는 전자호구 채점 방식인데, 이 방식이 한국 선수에게 매우 불리하다. 우리 선수는 3~5점짜리 큰 기술에 승부를 거는데 현재의 전자호구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1득점이 돼 다리가 긴 유럽 선수들에게 굉장히 유리하다.
   
   극단적인 사례가 +80㎏급 인교돈(31)이다. 그는 데얀 게오르기예프스키(북마케도니아)와의 4강전에서 상대 선수의 헤드기어까지 날리는 완벽한 5점짜리 발차기 공격을 성공했으나 전자호구 센서가 반응하지 않아 0점 처리됐다. 결국 인교돈은 6 대 12로 져 결승 진출이 좌절됐으며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이 종주국인 만큼 전자호구 채점방식을 한국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세계태권도연맹과 대한태권도협회의 소통 및 협력 부족으로 ‘노 골드’의 수모를 당하게 된 것이다. 태권도인들은 정부가 나서 해결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금메달 소식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협회 내 내분, 법적 소송으로 일사불란한 행정력도 갖추지 못했다. 또 학연·지연이 작용하는 투명하지 못한 대표선수 선발로 경쟁력이 약화된 측면도 있다. 대표 최종 선발전까지 엄격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견지하는 양궁협회를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지난 4월 양궁 최종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3위 턱걸이를 한 안산(20)과 김제덕(17)이 3관왕, 2관왕에 오른 사실은 태권도뿐 아니라 전 종목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물론 21개국이 총 32개의 메달을 나눠 가져 태권도의 세계화에 크게 이바지한 측면은 있다. 그러나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은 약화돼 안타깝다.
   
   
▲ 지난 8월 7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동메달 결정전인 도미니카공화국과 대한민국의 경기에서 10-6으로 패하며 4위를 차지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아쉬운 표정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레슬링은 코로나19 확진 결정타
   
   1976년 몬트리올대회에서 대한민국 첫 금메달을 선사한 이래 전통의 효자 종목으로 군림해온 레슬링은 1972년 뮌헨대회 이래 49년 만에 처음으로 메달을 하나도 못 건졌다.
   
   해외 대회에 참가한 대표선수들이 집단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바람에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단 두 장만 확보한 게 결정타였다. 우승이 유력시되던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현우(33)의 불참이 가장 가슴 아팠다.
   
   야구의 ‘노 메달’ 스토리는 더욱 한심하다. 야구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참가국 숫자가 6개에 불과한 데다 일본을 제외한 4개국은 ‘마이너리그 수준’이어서 ‘프로야구 올스타팀’인 한국의 메달 획득은 ‘물 반 고기 반’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그런데도 일본, 미국전 패배에 이어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6 대 10으로 지는 수모를 당했다.
   
   한국은 평소 일본과 대등한 실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대회를 통해 ‘우물 안 개구리’임이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특히 투수력이 두드러진 약점으로 꼽혀 2028년 LA올림픽에 대비, 중·고교 선수들을 집중 육성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2024년 파리올림픽에는 야구종목이 없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가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특성과도 연관이 깊다. 풍요로운 시절에 태어나고 자란 MZ세대는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지녔으나 힘든 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엄청난 훈련과 경쟁을 견뎌야 하는 레슬링, 유도, 태권도, 복싱 등 격투 종목은 물론 탁구, 배구, 농구, 배드민턴 등 구기 종목은 어린 유망주를 구하기가 사실 쉽지 않다.
   
   복싱은 88올림픽 금메달 2개 이후 33년째 ‘금맥’이 끊기고 있다. 한때 ‘금메달 밭’이었던 배드민턴과 탁구는 잘해야 동메달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국민들에게 엄청난 감동과 환희를 안겨줬던 여자배구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월드클래스’ 김연경(33)의 대표선수 은퇴로 크나큰 위기를 맞고 있다. 김연경급 공격수가 한 명 더 있어야 최소 동메달을 바라보는데 ‘있는 김연경’마저 태극 유니폼을 벗어 ‘시청률 38%(방송 3사)의 각본 없는 드라마’는 당분간 보기 힘들게 됐다.
   
   김연경은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배구협회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대표팀에 복귀할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설사 대표 유니폼을 다시 입더라도 3년 후까지 현재의 기량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럴 경우 지역 예선 통과도 장담하기 힘든 실정이다. 어렵게 올림픽에 나갔으나 예선 리그에서 3전패를 한 여자농구의 전철을 밟을 우려도 있다.
   
   
   “생활체육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
   
   물론 금메달이 선수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예전처럼 금메달 못 땄다고 우는 선수는 이제 거의 없다. 금욕의 생활을 견디며 피와 땀, 온 정성을 바쳐 올림픽을 준비해 온 선수들은 은메달과 동메달의 값어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시상대에서 환하게 웃는다.
   
   결선에서 5위를 했지만 한국·아시아 신기록을 갈아치운 수영의 황선우, 옥상에서 이불 깔고 공중제비 훈련을 해 마루운동 4위를 차지한 류성현 등, 메달과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투혼을 발휘한 선수들에게 우리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윤수 단국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실패한 선수’라는 이미지가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성적보다는 도전이나 과정을 더 높이 평가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를 가리는 인류 최대 스포츠 제전이라는 올림픽의 본질은 결국 경쟁이다. 선진, 중진,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모든 나라가 올림픽에 심혈을 쏟는 이유는 세계 최고 무대에서 스포츠가 지닌 국민 통합, 국민 자긍심 고취 기능을 높이 평가해서다.
   
   금메달 수의 감소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에 적색 경보등이 켜졌음을 의미한다. 박태환(수영), 김연아(피겨스케이팅) 등 간판스타들이 은퇴한 뒤 전 종목을 통틀어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새 얼굴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또 힘으로 겨뤘던 격투 종목은 위기 탈출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숙제를 안았다.
   
   올림픽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변화하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관계자, 전문가들과 청문회를 갖고 근본 문제를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장인화 단장은 “선진 훈련 시스템과 과학적 훈련 방식 도입”을 주장했고, 신치용 진천 선수촌장은 “준비만 잘하면 3년 후 좋은 경기력을 되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두 근원적인 해결책이 부족한 상투적인 소리들이다. 이는 정부와 대기업들이 적극 나서지 않으면 전 국민을 감동시킬 금메달 낭보는 남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포스코그룹은 불모지인 체조 종목에 37년간 200억원을 지원해 2008년 양학선에 이어 이번 올림픽에서 신재환(23)이 금메달을 수확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현대차그룹 역시 37년간 양궁 기술과 인력육성 투자에 500억원을 쏟아부어 1988년 이후 총 26명의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땀과 투혼을 뒷받침할 ‘제2의 포스코’ ‘제2의 현대차’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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