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도 독특한 식재료로 만든 ‘엽기음식’들이 많다. 오리 심장, 소 고환, 새끼 양의 뇌, 돼지 주둥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를 이용한 요리도 있다.
프랑스에도 독특한 식재료로 만든 ‘엽기음식’들이 많다. 오리 심장, 소 고환, 새끼 양의 뇌, 돼지 주둥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를 이용한 요리도 있다.

“한국에서는 개를 먹는다는데 사실이냐?”

외국에 가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과거에는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놓곤 했지만 지금은 아예 무시하거나 “독특한 식문화가 없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반격을 가하기도 한다. 중국이야 “다리가 넷 달린 것은 책상을 제외하고 다 먹는다”라는 유명한 표현이 있을 정도로 엽기적 식문화로 소문나 있고, 일본만 해도 ‘바사시미(말회)’와 같은 독특한 식재료가 존재한다.

엽기적 식문화는 서유럽도 마찬가지다. 스위스 일부에서는 비록 ‘자가용’이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고양이 도축과 식이 섭취가 허용되는 곳이 아직 있다. 스페인은 ‘코치니요(cochinillo)’라는 새끼돼지 통구이 요리가 있다. 세계 각국의 엽기음식들을 조사해 보면 꽤 많은 자료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식문화도 만만치 않다. 엽기음식으로 분류될 만한 자격(?)을 갖춘 요리들이 꽤 많다. 필자가 나름대로 선정한 프랑스의 대표 엽기음식 10가지를 소개한다. 독특한 식재료를 사용한 엽기음식들은 특정 국가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식재료의 비윤리적 처리가 가장 중요한 초점이지, 어떤 재료를 식용으로 삼느냐의 문제는 또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빵에 발라 먹는 푸아그라 요리.
빵에 발라 먹는 푸아그라 요리.

01 푸아그라

푸아그라는 이론의 여지없이 프랑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식이면서 엄청난 논란이 진행 중인 식재료이다.

프랑스어로 ‘기름진 간’이란 뜻의 ‘푸아그라(Foie Gras)’의 기원은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잡아먹은 야생 기러기의 간이 고기보다 훨씬 맛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사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야생 기러기를 잡아 사료를 먹이고 지방간을 얻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런 장면을 담은 그림이 벽화로도 생생하게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런 고대의 방법이 로마와 중세 유럽을 거치면서 프랑스에서 정립된 것이 가바주(gavage)에 의한 푸아그라 제조법이다. 그 사이에 야생 기러기는 집 거위가 되었고 지금은 사육의 편의상 오리를 사용하여 만들어지고 있다. 문제는 바로 가바주라는 방법에 있다. 가바주는 거대한 지방간을 만들기 위해 오리를 좁은 상자에 가두고 목에 호스를 꽂아 강제로 먹이를 집어넣는다. 보통 보름에서 한 달 동안 매일 2~3차례씩 먹이를 주입한 후 도살하는데 간이 정상보다 5~10배, 평균 8배 정도 커진다고 한다.

잔인한 사육 방식 때문에 많은 국가가 푸아그라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생산업자들의 필사적인 반격과 전통 고수론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최대 시장의 하나인 미국만 하더라도 뉴욕시가 2022년부터 푸아그라 수입 금지 대열에 합류했지만, 캘리포니아주는 반대로 여태껏 금지했던 푸아그라 유통을 다시 허용하는 법이 발표됐다.

프랑스에서 푸아그라의 위상은 굳건하다. 대형 슈퍼에는 다양한 푸아그라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전문적인 상점들도 적지 않다. 푸아그라는 보통 주식보다는 코스 요리에서 샐러드와 함께 전채 요리로 먹는 경우가 많다. 빵에 발라 먹는 용도로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워낙 종류가 다양해 당황스럽지만 기본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어렵지 않다. 우선 원재료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블록 드 푸아그라(Bloc de Foie Gras)’ ‘푸아그라(Foie Gras)’ ‘푸아그라 앙티에(Foie Gras Entier)’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푸아그라 앙티에’는 최고급 제품이다. 오리나 거위 한 마리의 간이거나 두 마리에서 나온 간엽(간은 두 개의 엽으로 나누어진다)으로만 만들어진 것이다. 그냥 ‘푸아그라’로만 표시되어 있는 것들은 전체 간은 아니지만 20g이 넘는 큰 덩어리 세 개 이하로 만든 제품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블록 드 푸아그라’는 여러 개체의 간에서 나온 재료들을 다져서 마치 스팸과 같은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값도 가장 싸다. ‘푸아그라 앙티에’와 ‘푸아그라’ 제품은 보통 보칼(bocal)이라고 부르는 유리병에 담아서 판매되고, ‘블록 드 푸아그라’는 통조림 모양이다.

열처리를 하는 방법에 따라서도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100도에서 살균하여 보관성을 높인 것으로 통조림 제품으로 활용된다. 두 번째는 ‘미퀴(mi cuit)’라고 부르는 종류인데 저온처리를 한 제품으로 보관 기간이 1~4개월 정도로 줄어드는 대신 신선한 맛이 살아있다. 주로 전문점에서 판매한다. 마지막으로 ‘크뤼(cru)’는 생푸아그라라는 뜻이다. 일반 소비자들은 구경하기도 어렵다.

달팽이 요리
달팽이 요리

02 달팽이 요리

프랑스의 달팽이 요리(에스카르고·Escargot)와 우리나라의 골뱅이 요리는 서로 엽기요리라고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만 사실 비슷하다. 달팽이와 골뱅이는 육지와 물에서 산다는 차이가 있을 뿐 모양이나 계통학적으로는 유사성이 아주 많다. 달팽이 요리는 그 기원이 명쾌하게 밝혀져 있다. 프랑스 루이 18세 시대 외무장관이었던 탈레랑(Talleyrant·1754~1838)은 그의 소유였던 상플로렌틴(Saint-Florentine)호텔에서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1세를 위한 만찬을 열었다. 그는 부르고뉴 출신의 요리장 카렘(Marie-Antoine Carême)에게 특별한 요리를 주문하였다. 당시 ‘셰프 중의 왕이자 왕들의 셰프’로 불리던 카렘이 만든 요리가 바로 부르고뉴식 달팽이 요리(Escargots de Bourgogne, Escargots à la Bourguignonne)였다. 전형적인 에피타이저인 달팽이 요리의 핵심은 달팽이 껍데기 속에 달팽이와 함께 파슬리, 마늘, 버터를 넣고 오븐에 굽는 것이다. 마늘은 맛과 향을, 파슬리는 향과 함께 아름다운 초록색을, 그리고 버터는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을 만들어준다.

파슬리를 곁들인 개구리 다리 요리.
파슬리를 곁들인 개구리 다리 요리.

03 개구리 다리 요리

개구리 다리 요리(Cuisse de Grenouille)는 푸아그라, 달팽이 요리와 함께 ‘엽기 3총사’라고 할 수 있다. 영어권에서 프랑스인을 놀릴 때 흔히 ‘개구리’라고 표현하는 배경에는 개구리 식용 습관도 큰 몫을 차지한다. 2017년 통계에 의하면 프랑스에서는 연 4000t의 개구리 고기가 소비됐다. 수천만 마리에 해당하는데 이 중 99%가 수입에 의존한다. 프랑스에서는 식용 목적의 개구리 포획을 법으로 금하고 있고, 소규모 사육 농장이 있다고는 하나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개구리 최대 수출국은 인도네시아로 세계 개구리 고기 소비량의 약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 외 베트남과 알바니아, 터키, 불가리아 등 일부 유럽국가가 공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무절제한 대량 포획으로 자연환경의 생태 교란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논란과 관계없이 요리로서의 개구리 다리는 독특하면서 뛰어난 맛을 지니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흔히들 닭고기 맛과 비슷하다고 하나 식감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부드러운 맛이 도드라져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고기들과는 직접 비교가 힘들다. 생개구리 다리의 경우 값도 다른 고기에 비해 훨씬 비싸다.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에서 개구리 고기는 생선의 일종으로 취급되어 정육점이 아니라 생선가게에서 판매한다.

송아지 흉선 요리
송아지 흉선 요리

04 송아지 흉선 요리

프랑스어로 ‘리 드 보(Ris de Veau)’로 불리는 송아지 흉선 요리는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리 드 보’는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레스토랑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흉선(가슴샘·thymus)은 가슴뼈 바로 뒤쪽에 위치한 림프계 장기로 성장기 면역계의 완성에 기여를 하는 기관이다. 소나 양뿐만 아니라 사람도 있는데 사춘기까지 크게 자라다가 그 후 점차 퇴화하여 성인이 되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다.

특유의 농밀하면서도 크리미한 식감이 일품인데 송아지에서만 얻을 수 있는 데다 신선한 상태의 재료는 더욱 구하기가 어려워 당연히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송아지 도축이 아예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산 수입 냉동 제품 외에는 구경할 수도 없다.

송아지 콩팥 요리
송아지 콩팥 요리

05 송아지 콩팥 요리

송아지 흉선 요리와 더불어 송아지 장기로 만드는 양대 요리로 ‘로그농 드 보(Rognon de Veau)’가 있다. 송아지의 콩팥으로 만든다. 흉선에 비해서는 구하기가 비교적 쉬워 값은 약간 싸지만 소변을 처리하는 장기이니만큼 특유의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뚜렷이 갈린다. 굳이 송아지를 사용하는 것도 어른 소의 콩팥은 냄새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요리의 포인트는 어떻게 콩팥 냄새를 잘 잡는가에 있다. 다행히 잘 만든 콩팥 요리는 거북하지 않을 정도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충분히 식감을 즐길 수가 있다. 대개는 콩팥을 통으로 내놓는 것이 보통이고, 미리 충분히 익혀서 나오거나 테이블에서 직접 불꽃을 일으켜 콩팥을 순식간에 익히는 요리법을 선보이기도 한다. 필자는 두 방식 모두 경험하였는데 아무래도 시각적 효과는 후자가 낫다.

타르타르 드 버프
타르타르 드 버프

06 타르타르

타르타르(tartare)는 프랑스식 육회다. 우리에게는 육회가 엽기음식이 아니지만 구미 국가 관광객들이 대표적으로 꼽는 프랑스 엽기음식에 속한다. 음식명은 몽골계 타르타르족의 음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일반적이다. 타르타르는 계란 노른자를 함께 제공하는 등 우리 육회와 닮은 점도 있지만 차이점이 더 많다.

먼저 모양이 다르다. 한국의 육회는 가늘고 긴 형태지만 프랑스에서는 다진 느낌의 육회로 모양을 낸다. 노른자는 육회 위에 얹기도 하고 별도의 작은 종지에 담아 나오기도 한다.

맛도 당연히 다르다. 고소한 맛의 우리 육회와 달리 타르타르는 새콤한 맛이 느껴진다. 양념으로 코니숑이라는 프랑스식 피클, 케이퍼, 겨자, 염교, 파슬리 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레스토랑에서 보편적으로 취급하는 메뉴이다. 재료만 연어를 사용한 ‘연어 타르타르(tartare de saumon)’도 꽤 인기가 있기 때문에 육회는 보통 ‘타르타르 드 버프(tartare de boeuf)’로 구별하여 부른다.

토끼 다리 요리
토끼 다리 요리

07 토끼 요리

우리나라는 토끼(Lapin) 고기를 잘 먹지 않지만 중국은 세계 토끼 고기 소비량의 3분의1을 차지하고 있고, 북한도 꽤 소비량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에서는 소비량에서 프랑스가 단연 돋보이고 그 외에는 이탈리아와 몰타 정도가 있다. 프랑스 정육점에서는 토끼 고기가 적나라하게 진열돼 있다. 잘라서 팔기도 하지만 통째 파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토끼 간은 그 강렬한 색깔 때문에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토끼 머리는 따로 판매되기도 하는데 별미로 취급된다고 한다. 토끼 고기는 특별한 경우에 먹는 별식으로 레스토랑에서는 정식 메뉴로 다루는 경우가 흔치 않다. 그보다는 시장에서 ‘토끼 다리 요리(Cuisse de Lapin)’ ‘토끼 파테(pâté de lapin)’ 등 완제품으로 파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돼지 주둥이로 만든 ‘뮈조’.
돼지 주둥이로 만든 ‘뮈조’.

08 돼지 주둥이

‘뮈조 드 포르크(Museau de Porc)’는 돼지 주둥이라는 뜻의 요리이다. 우리나라도 다양한 부위를 먹지만 돼지 주둥이는 들어본 적이 없다. ‘뮈조’는 잘게 썰어 식초와 겨자로 양념한 제품이 슈퍼에서 주로 판매된다. 웬만한 곳에는 다 있을 정도로 인기 요리이다.

주로 샐러드용으로 활용하는데 야채와 조화가 잘 어우러져 소스가 필요 없다. 새콤한 식초와 함께 겨자 맛이 강해 단독으로 즐기기에는 약간 부담이 된다. 돼지 편육과 비슷한 맛이다.

돼지 혀
돼지 혀

09 돼지 혀

‘돼지 혀(Langue de porc)’ 요리를 접하고 ‘엽기음식이냐 아니냐’가 얼마나 미묘한 인식의 차이로 갈라지는가를 다시 한번 절감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우설’이라고 해서 우리가 즐기고 있는 소 혀와 특별히 다를 것이 없지만, 실제 느낌은 전혀 달랐다. 기본적으로 우설과 맛이 비슷했으나 풍미에서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돼지는 혀를 파는 집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소모네트의 재료인 작은 상어 고기.
소모네트의 재료인 작은 상어 고기.

10 소모네트

‘소모네트(saumonette)’는 장어의 일종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상어 고기로 만든 요리이다. 어원이 재미있다. 원래 이 상어는 지중해에 사는 길이 80㎝ 정도의 소형 상어 종류인 ‘로제트(rossette)’다. 그런데 상어가 식용으로 주는 이미지가 좋지 않다 보니 머리 부분과 껍질을 제거하고 선홍빛 속살만을 강조하며 연골째 상품으로 내놓았다. 이름도 ‘연어(프랑스어로 소몽·saumon)’ 색깔과 흡사하다고 하여 ‘소모네트’로 바꾼 것이다. 페루에서도 상어 고기라는 이미지가 판매에 불리하다고 생각한 수산업자들이 이름을 ‘톨로(tollo)’라는 귀여운 느낌의 이름으로 바꾸어 팔고 있다. 이래저래 엽기음식이 그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과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번외 후보들

필자가 선정한 10대 엽기음식에 아깝게 탈락한 음식들이 여럿 있다. 그중 대부분은 다른 외국인들에게 엽기음식으로 거론되지만 한국인에게는 요리 방법이 다를 뿐이지 식재료나 형태가 특별할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소의 위장 관련 음식들이다. 특히 관광객들이 손꼽는 단골 엽기음식은 한국인에게는 너무 익숙한 돼지 족발, 소머리, 피순대 같은 것들이다. 반면 너무 엽기적이어서 탈락한 경우도 있다. 소 고환, 소나 양의 뇌가 여기에 속한다.

김원곤 서울대 흉부외과 명예교수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