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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74호] 202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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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최악의 폭군 카라칼라 암살 현장을 찾아

▲ 로마 카라칼라 황제가 암살된 곳으로 추정되는 터키 하란(고대명 카르헤) 인근 소그마타르의 ‘달의 신전’ 유적지.
‘권력을 둘러싼 인간들의 막장극’.
   
   아마 로마 황제들의 역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와 같을 것이다. 칼과 독약으로 범벅이 된 살벌한 흑역사 속에서 늘 생사의 분기점에 섰던 피의 검투사들이 로마 황제들이었다. 무려 500여년에 걸쳐 추하고 살벌한 욕망의 결투가 벌어졌다. 물론 5현제로 불린 ‘착한’ 로마 황제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황제는 잔인하고도 살벌한 권력자 그 자체였다. 원래부터 악의 화신으로 출발한 황제도 있지만, 대부분은 권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폭군으로 변해갔다. 원한을 산 사람들로부터의 복수를 피하려는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감옥으로 몰아넣는 악순환이다. 역사가 증명하지만 영원한 권력은 없다. 이는 한국 정치사를 통해서도 재확인할 수 있다. 남에게 피해를 준 만큼 자신도 언젠가 당하기 마련이다. 시간문제일 뿐, 뿌린 만큼 거두게 된다.
   
   

   72명의 로마 황제 중 27명이 암살
   
   로마 황제 카라칼라(Cracalla·재임 198~217)는 막장 정치에 드리워진 인과응보(因果應報) 법칙을 증명해 줄 최적의 본보기다. 18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이 ‘인류 공통의 적’으로 규정한 인물로,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던 끝에 결국 암살된 폭군의 대명사다.
   
   사실 암살은 로마 정치의 일상사였다. 72명에 이르는 로마 황제 중 무려 27명이 암살로 사라졌다. 제명대로 살다 자연사한 황제는 20명에 불과하다. 죽음에 이르기 직전 자살한 황제 4명을 포함할 경우, 72명 황제 가운데 31명이 비명횡사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암살된 황제의 수가 실제로는 더 많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원인도 모른 채 병으로 죽어간 15명의 황제들도 있기 때문이다. 병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독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보면, 대략 로마 황제 2명 중 1명은 타자의 손에 의해 저세상으로 갔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카라칼라를 알게 된 것은 반세기 전 로마에 처음 들렀을 때다. 당시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야외 오페라 티켓을 끊었는데 베르디의 ‘아이다(Aida)’를 공연하는 무대가 바로 카라칼라욕장(Terme di Caracalla)이었다. 로마가 대중목욕탕의 천국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페라 무대로 재활용할 정도의 초대형 크기라는 사실에 놀랐다.
   
   황제의 유산이 아닌, 인간 카라칼라와 만난 것은 이후 몇 년 뒤다. 장소는 이탈리아의 나폴리 국립 고고학박물관 황제 전시관이었다. 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한 30여 황제의 조각상이 길게 늘어서 있는 전시관에서 카라칼라 두상과 처음 만났다. 보는 순간 뇌리에 박혔다. 눈이 마주치는 즉시 돌로 변한다는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를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 차갑고도 잔인한 이미지가 표류했다. 나폴리 박물관에는 10살 정도로 짐작되는 유년기 카라칼라의 조각상도 함께 전시돼 있다. 착한 눈과 순진한 미소의 미소년 두상이다. 아직도 기억하지만, 나폴리 박물관은 미소년 조각상에 특별한 설명문 하나를 덧붙여놓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미소년과 이후 엄청난 폭군으로 변한 카라칼라가 동일 인물이란 사실을 그 누구가 믿을 수 있을까?’
   
   
   미소년과 폭군이 동일 인물이라니
   
   당시의 선명한 기억 때문이겠지만, 카라칼라는 72명 로마 황제 가운데 가장 먼저 필자의 머릿속에 새겨진 인물이다. 이제는 그의 조각상을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후 다른 박물관에서도 확인했지만, 카라칼라 두상은 전부 똑같은 구도와 표정으로 표현된다는 것도 알아냈다. 정면이 아니라 고개를 왼쪽으로 15도 정도 돌려 레이저 빔을 쏘는 듯한 차가운 시선으로 어딘가를 쳐다본다. 짧은 머리카락과 수염으로 장식된, 당장이라도 상대를 짓누를 듯한 공포가 넘실댄다. 내면의 미를 강조하는, 제정로마 초기 조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권위, 평화, 신비가 아니라 권력, 긴장, 공포로서의 카라칼라 두상이다.
   
   로마사에서 암살이라고 하면 공화정 말기 독재자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부터 떠올릴 듯하다. 브루투스를 포함해 10여명의 원로원 의원에 둘러싸여 무려 23번 난자당한 뒤 죽었다. 피로 점철된 황제의 암살 장면은 로마를 소재로 한 영화의 주된 얘깃거리로 활용돼 왔다. 극(極)적이고도 극(劇)적이기 때문이다. 카라칼라의 암살은 어떨까? 영화로 찍을 경우 따분한 장면에 그칠 듯하다. 급히 볼일을 보던 중 한순간에 당한, 어이없고도 황당한 죽음이었다. 카라칼라는 아침에 먹은 음식으로 인해 속이 거북해 말에서 내려 숲속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던 중 암살됐다. 217년 4월 8일 벌어진 또 하나의 일상적 로마 역사다.
   
   당시 카라칼라는 자신의 심복이던 수십 명의 황제 경비대와 함께 있었다. 황제로부터 특별 대접을 받는, 일편단심 호위무사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충성심에 불탄다 해도 뒤가 급한 황제까지 따라갈 호위무사는 없었을 것이다. 카라칼라가 볼일을 보러 숲속으로 들어가는 동안 모두 외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암살자는 그 틈을 비집고 숲속으로 몰래 따라 들어가 황제의 목을 쳤다.
   
   항상 적은 바로 옆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암살자는 핵심 호위무사 중 한 명인 율리우스 마르티아리스(Julius Martialis)였다. 카라칼라에게 특별한 자리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한 데 대한 불만으로 암살했다고 한다. 상대의 약점을 잡은 뒤 자리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뒤에서 칼로 찌른 것이다. 로마만이 아니라 한국과 전 세계 어디에도 통용될 너무도 뻔한 얘기다. 마르티아리스 역시 암살 직후 도망가다가 살해됐다.
   
   
   숲에서 볼일 보다 호위무사에 암살당해
   
   악취미라 불릴 듯하지만 암살과 처형이 이뤄진 역사적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필자의 관심사 중 하나다. 생의 마지막 장소가 어디였는지 정확히 살피면서 주변의 공기와 지리, 지형, 지질을 함께 관찰하면 나름 재미가 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주변 환경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감, 육감, 직감’을 곤두세울 경우 비극의 자리 주변에 떠도는 ‘특별한’ 뭔가를 발견해낼 수 있다. 카이사르에서부터 마리 앙투아네트, 간디, 마틴 루터 킹에 이르는 인물들의 영(靈)과 혼(魂)을 피부로 절감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카라칼라 암살 현장은 로마에서 3000㎞ 떨어진 메소포타미아 상류 어딘가로 알려져 있다. 정확하게 어디에서 암살이 이뤄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카라칼라는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지배하던 파르티아(Parthia·현재의 이란)제국을 물리치기 위해 출정했다. 기록에 따르면, 217년 4월 8일 메소포타미아 최전선 도시 카르헤(Carrhae·현재의 하란, Harran)에서 ‘달의 신전’으로 향하던 도중에 암살됐다고 한다. 달의 신전이 어디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없다. ‘카르헤와 달의 신전’이란 두 개의 키워드만이 암살 현장에 관련된 단서다. 카르헤는 고대 역사 곳곳에 등장하는 인류의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다. 카라칼라 당시의 상황이지만, 하류의 바그다드에 버금가는 메소포타미아 상류의 대도시가 카르헤다.
   
   변방 정복의 실적은 로마 황제의 중요한 스펙에 해당한다. 자신의 권위와 파워를 확장해나가는 최대의 증거가 변방 정복이다. 현재의 독일·프랑스·스페인 지역이 정복의 주된 대상지로 여겨질 듯하지만, 그 같은 지역들은 제정로마 초기의 상황에 그친다.
   
   로마 중기 이후부터는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지역이 황제의 무용담이 펼쳐지는 현장으로 부상한다. 카라칼라는 이탈리아 본토 라틴계가 아닌 리비아와 시리아 피를 이어받은 황제다. 로마의 관용이라 표현하지만, 직계가 아닌 방계가 황제에 오른 셈이다. 쿠데타로 황제에 오른 아프리카 출신 아버지 세베루스(Lucius Septimius Severus) 덕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율리아 돔나(Julia Domna)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카라칼라는 불과 10살 때 황제에 오른다. 아버지와 함께 권력을 나눈 공동황제였다. 암살당할 것을 고려해 보험 차원에서 아들을 공동황제로 삼았을 듯하다. 세베루스는 죽기 전 카라칼라와 더불어 차남인 게타(Geta)도 공동황제로 임명한다.
   
   한 살 차이인 두 형제는 물과 불의 관계였다. 카라칼라 최대의 악행이지만,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공동황제이자 동생인 게타를 처형한다. 동생을 살해한 뒤 “게타의 암살 공격으로부터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놨다. 211년 12월 26일, 아버지가 죽은 지 불과 10개월 만에 벌어진 만행이다. 이후 게타와 관련된 로마시민 2만명도 잔인하게 처형한다.
   
   그 과정에서 장인도 반역자로 처단한다. 부인은 멀리 망명을 보내지만, 결국 카라칼라의 명령으로 살해된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방문 때는 자신을 비난하는 얘기를 들은 뒤 현장에서 주민 2만명을 살해한다. 메소포타미아 출정은 카라칼라가 28살 때이던 216년 이뤄졌다. 자신의 악행을 감출 무용담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도 출정 1년 뒤 암살됐다.
   
   
▲ 사상 최대의 폭군으로 평가받는 로마 카라칼라 황제 두상(왼쪽), 카라칼라 황제의 아버지인 세베루스 황제와 어머니 율리아 돔나. 세베루스 황제는 아프리카, 율리아 돔나는 시리아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동생과 부인, 장인까지 죽인 악행
   
   달의 신 난나르(Nannar·그리스어로 셀레네, Selene)를 모시는 신전 방문은 카라칼라 최후의 행적에 해당한다. 당시 로마에서 난나르는 변방의 잡신 정도로 여겨졌다. 제우스나 아폴로가 일류 신으로 취급되던 시대에, 카라칼라는 왜 이류 난나르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아마도 어머니인 율리아 돔나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원래 시리아 출신으로 메소포타미아 권역의 신들을 숭배하던 신관(神官)의 딸이 카라칼라의 어머니다. 어릴 때부터 변방의 신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동서고금 통하는 얘기지만, 폭군과 독재자는 불안하고도 외롭다. 눈앞에서는 머리를 숙이지만, 언제 누가 어디에서 칼을 뽑을지 알 수 없다. 추측건대 어머니를 통해 들었던 난나르를 경배하면서 카라칼라 자신의 불안과 고독을 토로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기록을 뒤진 결과, 카르헤 주변에서 난나르 신전 세 군데를 찾아냈다. 카르헤 성곽 바로 옆에 붙은 언덕, 카르헤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25㎞ 떨어진 술탄테페(Sultantepe)와 동쪽으로 40㎞ 떨어진 소그마타르(Sogmatar)란 곳이다. 폭군의 마음을 움직였을 달의 신전이 어떤 곳이었는지 실감하고 싶었다. 폭염으로 들끓는 한여름의 신전을 하루 종일 훑었다. 세 곳 모두 황량한 평원을 배경으로 한, 높이 50m 정도의 언덕 위에 들어서 있다. 1800년 전 신전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로마가 아닌 비잔틴시대와 이슬람 지배 당시의 유물, 유적만이 흩어져 있다. 난나르 신전 세 곳 가운데 필자의 ‘오감·육감·직감’ 속에 들어온 곳은 소그마타르이다. 현장에 도착한 순간, 카라칼라 인생 최후의 목적지가 소그마타르였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다른 두 곳에 비해 규모가 크다. 황제가 직접 찾으려 했던 곳인 만큼 어느 정도의 규모는 필수다. 둘째는 동굴이다. 소그마타르 주변에 동굴이 많다. 전부 인공 동굴이다. 그리스 신화 속의 엔디미온(Endymion) 스토리를 알고 있다면 ‘동굴=달의 신의 상징’으로 이해할 것이다. 동굴은 영원한 젊음에 빠진 목동과 그리스 달의 여신 셀레네가 사랑을 나눈 공간이다. 신과 인간 사이에 벌어진 사랑의 결과, 무려 50명의 자식이 생긴다. 밤에 펼쳐지는 달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마지막 행적지는 ‘달의 신전’
   
   셋째 이유는 갑자기 몰아닥친 한여름의 비바람에 있다. 지중해 주변을 비롯한 메소포타미아의 여름 강우량은 거의 제로라고 보면 된다. 눈과 비는 겨울과 봄에만 내린다. 놀랍게도 소그마타르에 도착한 순간 검은 구름들이 한꺼번에 뭉쳐지면서 모래바람이 밀려왔다. 메소포타미아 하늘의 크기는 한국의 2~3배가 될 만큼 넓고도 깊다. 언덕 밖은 섭씨 40도로 불타는 맑은 하늘이지만, 높이 50m, 길이 100m 정도의 소그마타르 주변만 검은 구름으로 채워졌다. 곧이어 폭우가 몰아쳤다. 언덕에 올라가던 중 갑자기 만나 전신이 비에 젖었다. 한여름의 폭우는 불과 10여분 만에 그쳤다. 언덕 위의 검은 구름도 멀리 날아갔다. 필자의 인생을 통틀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꼬리 9개가 달린 여우 같은 날씨였다.
   
   비가 뿌려진 언덕 지표면은 흰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했다. 모래와 먼지 아래 숨겨진 메소포타미아 토지의 진짜 얼굴이다. 비에 젖은 검붉은 땅을 보면서 카라칼라의 피가 떠올랐다.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카라칼라 최후가 소그마타르 주변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그마타르를 지키던 난나르가 카라칼라를 기억하는 의식으로서, 청천 하늘의 햇볕을 가리고 붉은 빛깔의 토지를 필자에게 보여줬을 것이란 상상도 해봤다.
   
   로마 황제의 개선행렬 마차 바로 옆에는 ‘항상’ 어린이나 노예가 따라붙었다. 열광하는 환영 인파를 헤집고, 황제의 귀에 특별한 메시지 하나를 전하기 위해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거의 1분 단위로 황제의 귀에 반복 전달된 메시지다. ‘언젠가 당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부패한 권력의 특징이지만, 자신만은 불사신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 확신한다. 궁지에 몰릴수록 억지 논리와 얄팍한 꼼수를 통해 연명해 나간다. 2021년 한국에서도 그 같은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카라칼라(Memento mori, Momento Caracalla).’ 재삼 재사 반복해서 전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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