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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78호] 2021.10.11

승자독식 ‘오징어게임’과 한국 OTT의 생존게임

▲ ‘오징어게임’의 한 장면. photo 넷플릭스
“특정한 한국 전통놀이가 전 세계 시청자에게 낯설긴 했겠지만, 자본주의와 경쟁적인 사회의 보편적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었다.”(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구슬치기’와 같은 단순한 한국적 놀이에 서바이벌을 가미하면 ‘오징어게임’과 같은 드라마가 나온다. 추억을 머금은 ‘데스 서바이벌’이 놀이를 입은 채 탄생했다.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건 지난 9월 17일. 그 이후 전 세계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한 건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해외의 반응이 뜨거워서인지 나스닥이 하락하는 가운데서도 넷플릭스의 주가는 오르고 앱 다운로드 숫자도 급증했다. 이 모두를 두고 ‘오징어게임’ 효과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다 보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오징어게임’은 이제 유력한 에미상 후보가 됐다. 미국 영화계에 ‘기생충’이 점령한 오스카상이 있다면 방송계에는 에미상이 있다. 방송계에서는 최고라고 불리는 상이다.
   
   
   넷플릭스가 바꾼 드라마 시장
   
   ‘오징어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이야기꾼 기질이 강한 영화감독이다.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보면 꽤나 위트 넘치는 사람인데 짧은 말 한마디로도 사람을 쉽게 웃긴다. 하지만 이야기꾼으로 갖는 그의 강점은 말보다 글에서 발휘된다. 작품에 돌입하기 위해 글을 이해하고 뜯으며 재구성하는 데 힘을 많이 쏟는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장편영화 네 편 중 두 편은 우리가 익히 아는 무게감 가득한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각본은 ‘오징어게임’처럼 모두 스스로 썼다. 10여번 각색했다는 ‘도가니’는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소재로 삼은 동명의 소설이 주는 무게감, 그리고 그 메시지가 정말 ‘센’ 작품이다. 소설가 김훈의 작품을 옮긴 ‘남한산성’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말의 향연을 영화로 잘 구현해 놓은 수작이다.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분)과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분) 사이에 벌어지는 처절하고 치열한 논쟁을 영화로 옮기고 관객을 따라오게 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을 거다.
   
   그런 점에서 ‘오징어게임’은 그의 전작들과 꽤 간극이 큰 작품이다. ‘도가니’와 ‘남한산성’을 만들었던 감독 스타일 그대로 만들었다면 거리감이 상당했을 거다. 일부는 ‘오징어게임’의 이야기가 감독의 전작과 어울리지 않게 도식적이란 지적도 한다. 이 정도로 뜰 작품인가라는 의문도 있다.
   
   ‘오징어게임’에는 한국의 어떤 작품에서든 한 번쯤 봤을 법한 사연의 인물들이 456억원이라는 참가자들의 목숨값을 차지하기 위해 등장한다. 주인공인 성기훈(이정재 분)은 자동차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희망퇴직을 당한 뒤 자영업에 내리 실패하고 빚을 진 채 대리기사를 뛰고 있다. 주인공의 동네 후배인 조상우(박해수 분)는 서울대를 졸업한 수재이고 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어머니의 가장 큰 자랑거리이지만 회삿돈을 선물에 투자하고 수십억원의 빚을 진 뒤 경찰에 쫓기고 있다. 탈북민 강새벽(정호연 분)은 보육원에 있는 동생과 북에 남은 가족을 데려와 함께 살기 위해 게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여기에 신파도 더했다. 능력이 부족하고 어수룩한 주인공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도 이타심을 발휘한다. 탈북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한 뒤 남쪽에서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 탈북민 새벽도 마지막에는 그에게 동생을 부탁하며 눈을 감는다. 친구에서 원수로 돌변한 성기훈과 조상우가 마지막에는 과거를 떠올리며 눈물로 화해하는 장면도 어딘가에서 봤을 법한 장면이다. 그런데 이런 신파적 요소조차 글로벌 시장에서 먹혔다는 얘기도 된다.
   
   로컬 플랫폼이라면 한국인들에 의해 ‘한국적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았을 이야기였다. 하지만 글로벌 플랫폼을 타면서 반응이 확 달라졌다. 그들은 황 감독이 전작부터 가지고 있던 무게감에 더욱 주목했다. 무한경쟁에서 파생되는 부조리와 부작용은 원래 스스로 고발할수록 불편한 법이다. CNN은 “승자독식의 사회를 보여준다”고 ‘오징어게임’을 평가했는데 한국 사회의 고발 영화를 보는 외국인들은 각자의 현실을 한국에서 벌어지는 게임을 통해 투영했고, 그래서 전 세계에서 감정이입이 쉽게 됐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돌풍 덕에 드라마 속 게임으로 등장했던 ‘달고나 뽑기’도 인기를 끌고 있다. photo 뉴시스

   한국의 싸고 똑똑한 콘텐츠 노동자들
   
   지상파 드라마PD A씨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 이제 현실이 된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한다. 이미 비영어권 콘텐츠가 넷플릭스에서 1위를 차지하기 시작한 때부터 이런 일은 어느 정도 예고돼 있었다는 얘기였다. “영어권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1위를 하는 건 그렇게 놀랍지 않다. 하지만 스페인 드라마인 ‘종이의 집’이 글로벌 1위를 한 건 비영어권 드라마란 점에서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 비영어권 드라마들이 한 번씩 킬러타이틀이 되는 일들이 슬슬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다음 수순이 우리나라였던 거라고 본다.”
   
   그 배경에는 우수한 창작노동자가 있다. A씨는 “과거 제조업에서 발휘된 싸고 질 좋은 노동력이라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문화 콘텐츠 시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콘텐츠 업계는 폐쇄적인 곳이었다. 한 국가 내에서 만든 건 대부분 자국 내에서 소비됐다. 그런데 지금은 열린 생태계가 됐다. 심지어 생산기지를 다른 나라에 둘 수도 있다. 유럽이나 영미권에 비하면 여전히 우리네 콘텐츠 생산자들은 저렴하고 우수한 노동력이다.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투자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난 뒤 최근 드라마 시장에는 변화가 생겼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작품 제작을 위해 직접 사람을 ‘포획’하는 작업에 나섰다. 과거에는 넷플릭스가 계약을 맺는 상대가 제작사였다. 넷플릭스가 제작사와 계약을 하면 그 제작사에서 연출자나 작가, 배우를 캐스팅해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흥행작인 ‘킹덤’은 김은희 작가와 넷플릭스의 만남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넷플릭스가 계약을 맺은 당사자는 김 작가가 아니라 그녀의 소속사인 에이스토리였다. 이런 흐름 탓에 일부 실력 있는 PD나 작가가 제작사에 둥지를 틀기보다 자기 법인을 차리는 경우가 생기고 있는 것도 넷플릭스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적어도 방송만은 노동유연성이 훨씬 큰 시장 형태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노동 시장이 유연해진다는 게 반드시 박한 대우로 연결되진 않는다. 오히려 단가가 오를 거라는 전망이 많다. 채널이 늘어날수록 사람은 귀해진다. 과거 사례를 보면 그랬다. SBS가 등장하면서 드라마 스태프들의 대우는 상향됐다. CJ ENM이 출범했을 때도 그랬다.
   
   지금은 지상파급으로 성장했지만 CJ그룹의 5개 미디어 회사가 합병해 방송 콘텐츠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게 불과 10년 전 일이다. 대표 채널인 tvN에 힘을 주기 위해 CJ ENM에서 한 것이 사람에 대한 투자였다. 일단 지상파에서 PD들을 데리고 왔다. 연차에 따라 계약금을 줬고 연봉도 크게 인상해 모셔왔다.
   
   방송 스태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상파의 퀄리티를 뽑기 위해서는 지상파에서 활동하는 스태프들을 데리고 오는 게 급선무였고, 보다 나은 대우를 보장하며 그들을 연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이 회사를 이끌던 이미경 부회장은 콘텐츠업이 ‘사람 싸움’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뽑아오는 데 드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직접 계약에 뛰어드는 것 역시 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게다가 넷플릭스 입장에서 한국에 드는 인건비는 여전히 저예산이다.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 에이전시 실장인 B씨는 ‘오징어게임’을 ‘KO펀치’라고 했다. 배우와 그 에이전시 사이에서도 ‘오징어게임’은 화제다. 그는 “이렇게 히트할 작품인가라는 의견도 많은데 오히려 그렇게 갸웃하는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히트치는 걸 보면서 거꾸로 넷플릭스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이미 지상파 이상”
   
   콘텐츠 창작자들에게는 기회일지 몰라도 그들이 한때 직장으로 삼았던 레거시 미디어란 조직은 이미 드라마 시장에서 힘겹다. 지상파에서는 최근 평일 미니시리즈가 없어지고 있다. 코바코(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때문에 광고료의 상한선이 있는 지상파의 경우 광고 완판을 하더라도 이제는 투자 대비 회수를 하기 힘든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힘겨운 상황 탓에 과거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긴다. B씨는 “최근 한 지상파에서 10월 수목드라마로 편성된 작품이 있는데 워낙 수목 시청률이 안 나오다 보니 11월 시작으로 한 달 미뤄지고 금토로 편성도 바뀌었다. 원래 지상파는 편성이 잡히면 그걸 거스르는 경우가 절대 없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소속 배우들이 아직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에 출연하지 못한 걸 아쉬워한다. “이미 넷플릭스는 이쪽에서는 지상파 이상이다.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가 깡패란 걸 증명한 작품”이라고 그는 말했다.
   
   국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관계자 C씨는 “‘오징어게임’ 때문에 방송국도, 국내 OTT도 자본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간 국내 OTT들은 넷플릭스와 경쟁하겠다고 공언해왔다. C씨는 “그건 대외용 발언일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OTT 여러 개가 있는 게 아니라, 글로벌 OTT 하나와 한국 시장을 놓고 다투는 로컬 OTT 여러 개가 있을 뿐이다”라고 한탄했다.
   
   그는 몇몇 국내 작품들이 착각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본다. “‘오징어게임’ 제작비가 200억원이다. tvN에서 방영했던 ‘미스터 션샤인’ 제작비가 400억원이 넘었다. 액수만 보면 국내에서도 넷플릭스와 충분히 싸워볼 수 있을 것 같지만 감당하는 리스크가 다르다. ‘미스터 션샤인’은 김은숙이라는 스타작가에 이병헌·김태리 등이 출연했고 여기에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 팔 수 있으니 과감하게 400억원을 선택한 거다. 안 망할 것 같은 작품에 투자한 거다.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가 보유한 엄청난 시드머니 중에 일부를 투자한 거다. 넷플릭스는 투자하거나 앞으로 투자해야 할 제2, 제3의 ‘오징어게임’ 같은 작품이 꽤 될 건데, 그중 하나에 200억원을 넣었고 그게 대박이 터진 거다.”
   
   ‘오징어게임’은 우리 콘텐츠의 힘을 보여준 대신, 우리 플랫폼의 허약함도 동시에 보여주는 사건이다. 문제는 ‘오징어게임’만으로 끝날 리가 없다는 점이다. 드라마 현장에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중 ‘D.P.’와 ‘오징어게임’보다 앞으로 공개할 작품들의 평가가 더 좋다는 소문이 떠돈다. 11월에 론칭할 ‘디즈니플러스’에서도 또 다른 ‘오징어게임’이 나올 수 있다. ‘디즈니플러스’는 이미 만화가 강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무빙’에 500억원 정도를 투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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