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바이올린’을 제작한 베네치아의 장인 리비오 디 마르키. ⓒphoto 이탈리아 알티자노 연맹
‘노아의 바이올린’을 제작한 베네치아의 장인 리비오 디 마르키. ⓒphoto 이탈리아 알티자노 연맹

1년9개월간 맹위를 떨친 코로나19 팬데믹이 주춤해지고 있다. 긴 동면에서 깨어나 세계 곳곳이 희망의 내일로 나아가는 움직임이다. ‘바이러스 극복기념 축하행사’라고나 할까? 만약 폭죽을 터트리는 코로나19 퇴치 기념 글로벌 이벤트가 열린다면 출발점이 될 도시는 어디가 될까? 팬데믹 진원지 중국이 유력하지만 공산당 정부의 오리발 변명을 보면 폭죽은커녕 촛불 축하도 어려울 듯하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중국을 논외로 할 경우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최적의 공간이 될 듯하다. 스스로 앞장서서 바이러스 극복 이벤트에 열심일 뿐 아니라 21세기는 물론 과거 역사를 봐도 폭죽 기념식에 가장 어울리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1000년 이상 무역으로 성장해온 도시다. ‘무역=사람의 이동’이다. 전 세계 바이러스가 글로벌 무역도시 베네치아에 몰려들었다. 실제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찾아온 도시가 베네치아다. ‘검역(檢疫·quaranteen)’의 영어 어원은 베네치아 방언 ‘콰란테나(quarantena)’에 있다. ‘40일’이란 의미로, 14세기 흑사병이 돌 당시 탄생한 말이다. 베네치아 항구에 들어온 외국 선박에 대해 40일간 무조건 선박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특례조항이 검역의 어원에 해당한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검역을 의무화하면서 전염병 퇴치에 나섰던 곳이 바로 베네치아라는 얘기다. 검역 법령은 이후 다른 지역과 나라로도 확산된다.

베네치아는 면적당 관광객으로는 전 세계 톱에 올라선 도시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무려 550만명이 베네치아에 들렀다. 과거 동대문운동장 크기 정도의 좁은 산마르코 광장 주변에 매일 평균 1만5000명의 새로운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베네치아는 곧바로 유령도시로 변해간다. 2021년 가을, 백신 보급과 함께 감염자가 급감하면서 베네치아 역시 어제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출발점은 9월 19일 전 세계 미디어를 통해 타전된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四季)’다. 베네치아 한복판을 가르는 그랜드카날(Grand Canal)에서 열린 ‘노아의 바이올린(Noah’s Violin)’ 행사가 팬데믹 극복 글로벌 기념 폭죽처럼 열렸다. 베네치아 운하에 뜬, 길이 12m 바이올린 위에서의 해상 연주가 전 세계로 울려퍼졌다.

리비오 디 마르키(Livio De Marchi)는 베네치아인은 물론 유럽 전체에 유명한 셀러브리티 예술가다. 베네치아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알티자노(Artizano·장인) 외길 인생을 달려온 인물이다. 디 마르키는 이번 ‘노아의 바이올린’ 행사 제작 총책임자였다. 베네치아에서 유일하게 자동차를 소유하고 운전을 하는 인물로도 통한다. 자동차란 디 마르키가 나무로 직접 만든 조형물 ‘페라리50’을 의미한다. 예술품이지만 그랜드카날을 오가는 해상용 자동차로 개조해 전 세계에 선보였다.

리비오 디 마르키와 줌으로 연결해 코로나19를 딛고 일어서는 베네치아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인터뷰를 가졌다. 디 마르키가 추구하는 예술세계와, 곧 관광객으로 들끓을 베네치아의 내일에 대한 심정도 물어봤다. 대화는 디 마르키에 대한 호칭에서부터 시작됐다. ‘마에스트로(대장인·Maestro)’라 부르려 했지만, 자신의 이름인 ‘리비오(Livio)’가 더 친숙하다고 말했다.

- 노아의 바이올린을 왜 만들었는가. “바이러스가 만연하면서 주변의 아주 친한 친구들이 코로나19에 희생됐다. 친구의 가족들을 위로하러 갔다가 어둠을 이겨낼 뭔가를 창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머리를 스친 것이 바이올린이다. 음악을 통한 사랑과 평화다.”

- 비디오로 봤지만 바이올린이 엄청 크다. 제작에 어느 정도 걸렸는가. “베네치아 알티자노 7명과 함께 만들었다. ‘노아의 바이올린’은 전부 20개 초대형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해 6개월 이상 걸린 작품이다. 팬데믹 상황이었기에 제작 과정도 간단치 않았다. 함께 일했던 7명의 알티자노 가운데 2명이 코로나19에 걸려 입원했다. 나중에 모두 회복했지만 야외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항상 긴장상태에 있었다.”

- 지난 9월 그랜드카날에서 첫 출항식을 가졌는데, 앞으로 바이올린을 어떻게 활용할 생각인가. “바이올린은 곧 전 세계로의 항해에 나설 것이다. 마치 바이블 창세기 노아의 방주처럼 홍수를 피해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다. 그러나 21세기 베네치아발(發) 노아의 바이올린은 창세기 방주와 다른 내용물을 싣고 출항할 것이다. 동물 한 쌍과 인간을 대신해 ‘예술·음악·사랑’이 노아의 바이올린에 실려 있다. 팬데믹하의 어두운 세상을 희망적이고도 밝게 꾸며줄 ‘예술·음악·사랑’이 노아의 바이올린이 연주할 테마다.

지난 9월 19일 베네치아 대운하에서 열린 ‘노아의 바이올린’ 행사. ⓒphoto nytimes.com
지난 9월 19일 베네치아 대운하에서 열린 ‘노아의 바이올린’ 행사. ⓒphoto nytimes.com

베네치아 산타마리아 교회(Santa Maria della Salute)는 노아의 바이올린 출항 기점이 된 곳이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보면 운하 건너 50m 밖 오른쪽에 들어서 있다. 1687년 건립된 70m 높이의 중후한 교회로 당시 만연했던 흑사병 희생자를 기리는 공간이다. 필자도 자주 들렀지만, 대리석 실내장식을 배경으로 베네치아 최전성기의 유화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틴토레토(Tintoretto)가 남긴 ‘가나의 결혼식(Le nozze di Cana)’은 최고의 명화 중 하나다. 물을 와인으로 바꾼, 예수가 처음으로 행한 기적의 무대가 가나다. 성모 마리아의 기적으로 흑사병을 물리쳤다는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다.

- 구체적으로 어디로 갈 예정인가. “이탈리아 다른 도시로부터 초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밖으로는 일단 러시아와 중국에 갈 예정이다. 전염병으로 고생한 세계 전부가 바이올린의 활동영역이다. 아시아의 경우 한국만이 아니라 북한에도 가서 남북 평화를 돕는 ‘예술·음악·사랑’의 바이올린이 되고 싶다. 팬데믹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 차원의 갈등과 모순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것이다.”

- 바닷물에 서서히 침식되듯이 ‘진짜’ 베네치아의 예술도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나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알티자노다. 역사적·전통적으로 알티자노가 활약해온 도시가 바로 베네치아다. 그러나 20세기 말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변했다. 베네치아의 경우 알티자노 수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 알티자노가 어떤 사람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 반세기 전 당신의 청년기·유년기 때와 비교해 볼 때 베네치아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베네치아라는 도시 그 자체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변한 것은 베네치아에 거주하는 이탈리아인이다. 절대인구가 급감하고 있다. 이탈리아 시민은 물론 베네치아에 사는 주민의 수 자체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베네치아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10만 이상이었다. 이 중 2000명 정도가 알티자노였다. 지금 베네치아 상주 인구는 5만에 불과하고 이 중 1000명의 알티자노가 있다. 반대로 관광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과거에는 부모 모두가 베네치아 출신인 이탈리아인이 많았다. 그러나 현재는 이탈리아인 이외의 부모를 가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렇지만 미래는 낙관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계 곳곳에 여행을 많이 다닌다. 베네치아로 돌아와서 보면 미래의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베네치아 출신 이탈리아인만이 아닌,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만들어가는 ‘이상적인’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앞으로 베네치아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 달라지든 베네치아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다. 베네치아는 ‘미래로 향하는 고대도시’다. 사람이 많든 적든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베네치아의 가치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베네치아는 고독의 의미를 이해할 최적의 도시다. 영어로 고독은 두 개의 의미로 나뉜다. 우주와 세계로 열린 혼자만의 자유로운 시간으로서의 고독(Solitude)과, 외부로부터 격리된 외롭고 쓸쓸한 시간으로서의 고독(Lonliness)이다. 집단으로 몰려다니기보다 혼자서 추구하는 자유로운 삶과 고독(Solitude)의 무대가 바로 베네치아다. 거의 15년째 이어진 관행이지만 필자는 매년 3개월 이상 베네치아 리도에 머물러왔다. 리비오에게 지난해는 가지 못했다고 하자, 베네치아에 들르는 순간 자기집에 오라는 얘기부터 했다. 베네치아로 가야만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 당신은 대리석, 청동, 나무 각각 다른 3가지 재료를 예술작품에 표현하고 있다. 재료에 따라 표현력도 다르게 나타날 듯한데. “나의 예술의 출발점은 나무다. 대리석과 청동은 그 이후다. 청동 작품은 케스트 자체만 잘 만들면 이후 별로 어렵지 않다. 나무와 대리석도 어려운 소재는 아니지만, 고유의 결을 그대로 살려야 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정성이 필요하다. 재료를 자르고 제작을 할 때 결의 위치와 조화를 항상 생각해야만 한다.”

- 노아의 바이올린도 나무다. 왜 나무인가. “나무는 살아 숨 쉬는 재료다. 오래가기 위해서는 관리에 철저해야만 한다. 노아의 바이올린의 경우 소나무, 살구나무, 호두나무, 에보니(흑단·黑檀)를 활용해 만들었다. 전부 이탈리아 목재지만, 짙은 검은 빛깔의 바이올린 뚜껑에 해당하는 부분은 아프리카산 에보니로 만들었다. 옷과 책장 같은 생활용품은 특히 내가 주목하는 나무 창작품이다. 갑자기 닥친 큰 슬픔이 계기였지만, 옷과 같은 생활용품을 통해 과거의 행복한 기억과 기쁨이 되살아났다. 자동차도 나무로 만들었다. 돈이 없어서 나무로 페라리50을 만들어 그랜드카날에서 타고 다녔다. 그랜드카날을 수많은 배로 붐비는 고속도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반면교사로서의 페라리다.”

-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어떤 교훈을 얻었나. “전염병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알게 됐다.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근본적인 차원의 의문이자 과제로 변해가고 있다. 베네치아 역사가 그러하듯 이런 재앙이 닥칠수록 인간들도 서로서로 도우며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 전염병은 베네치아의 역사 그 자체다. 팬데믹으로 고생하는 전 세계 예술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통해 성장해온 존재가 인류다. 예술의 역할은 길고 긴 터널 속에서 인간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해주는 데 있다. 일종의 희생이라 볼 수 있다. 어두운 터널이라도 빛이 통하는 최후의 마지막 통로에 가기까지 눈을 떼지 말고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예술가의 운명이자 의무다.”

이탈리아 알티자노 연맹(CNA) 총책임자 로베르토 팔라디니
이탈리아 알티자노 연맹(CNA) 총책임자 로베르토 팔라디니

이번 줌 인터뷰에는 베네치아 예술가를 지원하는 ‘이탈리아 알티자노 연맹(CNA·www.cna.it)’의 총책임자 로베르토 팔라디니(Roberto Paladini)도 참석했다. 노아의 바이올린 프로젝트를 지원한 것은 물론 이탈리아 전체를 통틀어 무려 62만명의 장인을 회원으로 둔 예술지원 단체다. 그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 이번 행사에 참가한 알티자노에 대해 어떤 지원을 했나. “금전적 지원은 아니었고, 전문 알티자노를 엮고 관련 시설을 제공하며 외부 활동과의 연결점을 찾아줬다. 마케팅과 외부 PR은 CNA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글로벌 금융사인 JP모건이 경제적으로 지원을 했고 베네치아대학과 예술가들의 간접 지원도 많았다. 노아의 바이올린 프로젝트는 디 마르키 자신은 물론 베네치아 알티자노 모두의 영혼이 밴 작품이다.”

- 현재 베네치아가 인정하는 오리지널 알티자노는 얼마나 되는가. “단체와 개인을 포함해 베네치아 안에서 일하는 알티자노는 115명에 달한다. 베네치아 밖으로 확장할 경우 전부 350명이 베네치아 오리지널 알티자노로 인정받고 있다. 베니스 오리지널(www.veniceoriginal.it)은 이들 알티자노를 외부로 연결하는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유리공예, 레이스, 가면, 보석가공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일하고 있다. 베네치아 밖, 예컨대 베네통 지역에서 이뤄지는 나무 공급, 조선, 운송과 같은 분야의 알티자노를 포함할 경우 1000명이 넘는다.”

- 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하는가. “아직 무명인 알티자노들의 육성이 베네치아대학과 CNA의 역할이다. 베네치아 알티자노 가운데 70% 정도는 1인 독립 예술가다. 이들 대부분은 자기 작품을 알릴 만한 기술적·경제적 능력이 없다. 예를 들어 알티자노 본인의 인터넷 홈페이지도 없다. CNA와 베네치아대학은 그들에게 새로운 웹 기술을 비롯해 작품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노하우를 24시간 온라인 체제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 베네치아에 관심을 갖는 한국인 예술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CNA와 베네치아대학은 여기 와서 예술에 인생을 바치려는 사람들을 위한 갖가지 워크숍을 마련하고 있다. 베네치아 알티자노들의 작품을 공부하고 그들의 지도를 받는 소규모 단위 프로그램이다. 모든 한국인에게 열려 있는 것은 물론이다. 베네치아 알티자노의 10% 정도는 외국인이다.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우리가 판단해서 참여 여부를 알려줄 것이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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