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광물교환시장과 제련소가 있었던 쿨테페 유적지. 4000년 전 ‘주석의 제국’ 아카드에 생긴 비즈니스 도시였다.
인류 최초의 광물교환시장과 제련소가 있었던 쿨테페 유적지. 4000년 전 ‘주석의 제국’ 아카드에 생긴 비즈니스 도시였다.

리튬(Lithium)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10월 들어 1t당 약 3만달러로, 8월 초의 1만4000달러 선에 비해 2배 이상이나 급등했다. ‘하얀 석유’라는 별명을 가진 광물 리튬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의 핵심 원료다. 수십~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전기자동차(EV)용 배터리 공장 신설이 가격상승의 근본 원인일 듯하다. 전기자동차의 장점은 환경문제 개선에만 그치지 않는다. 값싼 배터리 등장과 함께 대량생산 전자제품 같은 초저가 자동차가 탄생할 것이다. 중국 우링자동차(五菱汽车)의 홍광 미니 EV(宏光 MINI EV)는 중국은 물론 전 세계 판매 1위에 오른 제품이다. 인기의 가장 큰 이유는 가격으로, 대당 5000달러 정도다. 1000달러짜리 전기자동차도 이미 개발된 상태다. 그러나 리튬 가격이 급등할 경우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테슬라 모델X에 필요한 리튬의 양은 아이폰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의 1만배 이상에 달한다. 리튬 가격이 전기자동차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귀자원 리튬의 주 생산국은 호주다.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호주 광산이 세계 리튬 시장의 나침반이라 할 수 있고 칠레·중국·아르헨티나가 뒤를 잇는다. 흔히들 희소자원 대국이라고 하면 희토류 제재로 악명 높은 중국부터 떠올릴 듯하다. 리튬은 다르다. 중국의 리튬 생산규모는 호주의 3분의1 정도에 그친다. 전기자동차 공장이 난립하면서 중국이 호주 리튬의 최대 수입국으로 부상한 상태다. 2010년에도 중국은 희토류 제재를 통해 일본을 괴롭혔다. 미·중 디커플링 시대를 맞아 중국이 또다시 희토류 카드를 사용할 것이란 보도도 있지만 11년 전 같은 힘 자랑은 어려울 것이다. 미국·호주·일본·인도로 구성된 쿼드(Quad)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희토류 제재가 일본·미국과 같은 쿼드 회원국에 가해질 경우 4개 나라가 합심해서 대중 보복에 나설 전망이다.

미국산 원자력 잠수함 수주에서 보듯 호주는 미국과 함께 대중 디커플링에 적극 진입한 상태다. 희토류 제재가 벌어지는 즉시 대중 리튬 제재가 시작될 수 있다. 중국의 명운이 달린 전기자동차 산업이 일시에 중단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 9월부터 나타난 현상이지만 청명한 가을하늘이 한반도 전역에 부활했다. 중국에서 터진 에너지 비상사태가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 호주산 석탄 수출이 끊어지면서 중국 내 화력발전소 운행도 부분 중단된 것이다. 호주의 반중 정책에 대한 보복성 석탄수입 금지 이후 나타난 반작용이다. 결국 피해는 중국이 입게 된 셈이다. 힘자랑에 정신이 없다가 자기 주먹에 자기 얼굴을 때린 격이라 볼 수 있다. 희토류만이 첨단산업의 전부는 아니다. 여차하면 중국 산업 전체를 정지시킬 카드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현재 쿼드에 진행되고 있다. 리튬은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아카드 사르곤 대왕의 업적

아카드의 사르곤(Sargon of Akkad) 대왕은 리튬·희토류와 같은 자원전쟁 관련 뉴스를 들으며 떠올린 인물이다. 아카드는 기원전 2334년에 탄생한 인류 최초의 대제국(Empire)이다. 로마가 그러했듯이 영토 확장만이 아니라 다민족·다인종·다문화에 기초한 연합국가가 대제국의 기본조건이다. 티베트·위구르족 탄압과 중화사상 일방통행에 광분하는 중국은 대제국과 ‘전혀’ 무관한 나라다.

아카드는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기반으로 한 나라로, 수메르 지역과 지중해 동부 레반트(Levant)를 장악한 대제국이었다. 강·산맥·바다·평야를 전부 지배했다. 180여년간 지속된 아카드는 이후 전 세계에 창궐한 수많은 나라의 대제국 모델로 정착한다. 사르곤은 그 같은 역사를 일궈낸 인류 최초의 대왕이었다. 놀랍게도 4300여년 전 왕의 위용은 인류 모두의 가슴속에 확실히 남아 있다. 이라크 바그다드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사르곤 청동 두상이 주인공이다.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인류 최초의 청동 두상으로, 보는 즉시 빨려들어갈 만한 신비로운 걸작품이다. 그러나 사르곤 대왕에 관한 기억은 18년 전인 2003년을 기점으로 슬프게 변해간다. 이라크전쟁 중 바그다드박물관에서 벌어진 약탈사건 때문이다. 2021년 지금까지 사르곤 청동 두상은 행방불명 상태다. 현재 전시 중인 두상은 모조품이다.

주석(Tin)은 아카드의 사르곤 대왕과 21세기 자원전쟁을 연결해주는 공통분모다. 화학이나 역사 공부에 관심이 있다면 인류 문명사에서 주석의 의미와 가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 것이다. 기원전 3300년부터 1200년까지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청동기시대의 꽃이 바로 주석이기 때문이다. 구리로 된 동(銅) 제품은 인류가 최초로 제작해 활용한 도구다. 자연상태에서 마음대로 구부리고 펼 수 있기 때문에 작은 그릇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약하고 무르며 쉽게 닳는 것이 구리다. 농기구나 무기로 활용하기 어렵다. 이랬던 동이 주석이 등장하면서 한순간 변한다. 21세기 아이폰 발명에 준하는 극적 변화가 나타난다. 구리에다 주석을 5~10% 정도 섞으면 강도·유연성·내구성 모두 엄청 강화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합금용 비등점도 섭씨 약 1000도 정도로 낮기 때문에 나무 연료를 통한 반지하 제련소 활용이 가능했다. 점토나 석재가 아닌 청동 합금을 활용한 농기구·무기·장신구가 인류 문명의 핵심 도구로 등장한 것이다. 우연히 얻은 합금 기술은 이후 다른 자원으로도 확대된다. 메소포타미아와 주변 지역이 철기는 물론 금 장신구와 보석 가공의 원조가 된 것도 청동 합금에서 터득한 학습 효과의 결과라 볼 수 있다.

무른 동을 단단하게 만든 주석 합금술

2021년 10월 기준으로 주석의 가격은 t당 1만7242달러에 달한다. 올해 1월에 비해 무려 85%나 올랐다고 한다. 디커플링의 영향은 리튬·희토류만이 아닌 지구 지하자원 전체에 미치고 있다. 4300년 전 사르곤 대왕 당시 주석의 가치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메소포타미아 역사를 공부하면서 내린 결론이지만, 21세기 리튬·희토류·주석 전체 가격을 합친 것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석 생산지가 극히 일부 지역에 그쳤기 때문이다. 구리는 메소포타미아 곳곳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원이었다. 그러나 주석은 아주 귀했다. 당시 자원 채굴은 간단한 돌 하나로 이뤄진 가내수공업 수준에 그쳤다. 지하에 깊이 들어갈 수도 없고 반지하 상태의 지표면 채굴이 전부였다. 청동기시대에 등장한 도구나 장식물의 대부분은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의 예산과 지원을 필요로 했다. 외교를 맺을 경우 상대방 왕에게 보내는 선물이 바로 청동제 단검이었다. 청동제 거울은 보통 사람은 꿈도 꿀 수 없는 비싸고도 아름다운 물건이었다. 주석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카드의 사르곤 대왕은 청동기시대에 등장한 인물이다. 대제국은 영토·사람·언어·문화만이 아닌 자원도 하나로 묶는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산된 희귀한 자원이 아카드 대제국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전체로 확산됐다. 약탈된 아르곤 대왕의 두상도 주석과 구리의 합금 비율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21세기 현대 예술가들도 창조해내기 어려운 미적 감각과 더불어 수천년이 흘렀는데도 양호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 비밀 중 하나가 바로 주석에 있다.

청동과 철기시대의 기원이자 인류 최초의 대제국 탄생지, 나아가 문자 발명 출발점이 된 곳이 바로 메소포타미아다. 하나만 이룩해도 엄청나지만 무려 3개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겠지만 ‘비즈니스’가 수많은 이유 중 핵심에 속할 듯하다. ‘장사를 통한 이익의 극대화’야말로 21세기만이 아닌 인류 전체를 관통하는 문명·문화의 동력에 해당한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그 같은 ‘속(俗)의 본능’을 갖고 있다.

아카드제국의 사르곤 대왕 청동 두상.(왼쪽) 기원전 1800년 쿨테페 유물들. 청동 합금 기술에서 체득한 학습효과를 통해 철기·유리·금 장신구 개발도 이뤄졌다.(가운데) 주석을 통한 청동 합금은 농기구·무기·장신구는 물론 신(神)의 형상화도 성공시킨다. 주석과 청동 합금 기술은 인류 문명·문화의 발전을 가속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아카드제국의 사르곤 대왕 청동 두상.(왼쪽) 기원전 1800년 쿨테페 유물들. 청동 합금 기술에서 체득한 학습효과를 통해 철기·유리·금 장신구 개발도 이뤄졌다.(가운데) 주석을 통한 청동 합금은 농기구·무기·장신구는 물론 신(神)의 형상화도 성공시킨다. 주석과 청동 합금 기술은 인류 문명·문화의 발전을 가속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인류 최초의 광물교환시장

그렇다면 왜 한반도가 아닌 메소포타미아가 인류 문명사의 핵심으로 등장했는가라고 되물을 듯하다. 환경이 가장 큰 이유다. ‘식량·기후·운송’은 가장 중요한 환경적 요소에 들어간다. 풍부한 식량과 생존에 적절한 기후, 물건과 사람의 이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운송로가 메소포타미아문명의 기반이 된 최적의 3대 요소다. 그 같은 증거는 무려 4000년 전에 등장한 비즈니스 도시 ‘쿨테페(Kultepe)’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광물교환시장이자 원시 제련소가 들어선 곳으로, 21세기 전 세계 최대 규모의 금속거래시장 런던(London Metal Exchange)에 비견될 고대 유적지가 바로 쿨테페다.

쿨테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과거의 지명(地名)을 알면서부터다. 원래 ‘검게 탄 마을(Kara Eyuk)’이나 ‘불에 탄 언덕(Gyul Tepé)’으로 불렸던 곳이 쿨테페란 지명의 기원이라고 한다. 듣는 순간 뭔가 광물과 관련한 유적지라 판단했다. 장소는 지중해 동부 레반트해협에서 북쪽으로 300㎞ 들어간 내륙이다. 고대 지도로 보면 메소포타미아와 터키 내륙 아나톨리아를 연결하는 관문에 해당한다. 자동차를 타고 곧바로 달려갔다. 고급 시계나 보석에는 무심하지만 4000년 전 인류 최고 최대의 귀중품을 다루던 현장이 과연 어떤 곳이었는지 너무도 궁금했다. 쿨테페로 가는 길은 2300여년 전 알렉산더 대왕의 흔적과 일치한다. 레반트해협에서 쿨테페로 가는 고대의 유일한 통로가 44㎞에 달하는 실리시안 게이트(Cilician Gates)이기 때문이다. 바로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당시 북쪽에서 내려온 길이기도 하다. 알렉산더가 통과하기 이미 1700년 전에 동서의 광물 장사꾼들이 통과했던 길이 쿨테페로 이어지는 협곡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메소포타미아의 유물·유적의 현장은 소박하다. 표지판이 없다면 고고학 현장에 왔다는 것도 모를 정도다. 필자가 메소포타미아에 빠진 가장 큰 이유지만 글로벌 시대 관광객 모두를 만족시켜 줄 공간과 ‘전혀’ 무관한 곳이다. 자세한 설명도 없기에 스스로 탐험 탐사에 나서면서 하나씩 축적해 나가야만 한다. 길게 보면 이미 10여년째 접어들었지만, 메소포타미아 문명사에 관한 한 ‘나침반 없는 길’에 들어선 듯하다.

높이 10m 정도의 언덕이 눈앞에 나타났다. 메소포타미아 특유의 도시 구도다. 한순간 몰려오는 주기적인 홍수로 고생해야만 했던 곳이 메소포타미아다. 평지보다 높은 언덕이거나 아예 인공적으로 건설된 언덕이 도시 탄생의 기본조건이다. 도시가 언덕 차원이 아닌 높은 산꼭대기로 올라간 것은 대략 3000년 전부터다. 갑자기 나타난 지중해의 약탈자, 페니키안(Phoenician)이 등장하면서 모두 산꼭대기로 피신하게 된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인류의 초기 문명에서는 대규모 약탈이나 학살이 없었다. 인구가 늘고 재산도 축척되면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한 것이다. 쿨테페는 그 같은 대규모 약탈 학살 대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탄생한 도시다.

쿨테페의 자연산 제련소

2021년의 쿨테페는 고대의 흔적이 99% 사라진 평야 그 자체로 느껴진다. 자연산 제련소로 활용된 화로가 곳곳에 남아 있지만 대부분은 최근 복원된 상상 속의 유적에 불과하다. 주석·철·구리 같은 광물들이 유적지 곳곳에서 발굴됐다고 한다. 청동기시대 당시 최고가 귀중품이었던 주석은 현재의 이란 남부인 엘람(Elam·현재 Ilam)에서 채굴한 것이다. 멀리 아프가니스탄에서 채굴된 것도 있지만 무려 1700㎞ 떨어진 엘람의 주석이 쿨테페 비즈니스의 하이라이트였다. 4000년 전 고대 무역이라고 하면 단출한 차림의 개인 비즈니스를 연상하기 쉽지만 당대 광물 무역의 경우 낙타 수십 마리를 통한 카라반 행렬로 이뤄졌다. 기원전 2000년 주석 비즈니스가 7세기 당나라로 연결되는 실크로드 카라반 행렬의 출발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쿨테페 북쪽에는 엄청난 산림지대가 이어져 있다. 한 달에 500원의 육성회비를 필요로 했던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기억이지만 교정 한복판에 ‘히말라야 시타’라는 초대형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뒷받침한 화력의 원동력이 된 나무 ‘시더(Cedar)’의 변종이다. 보통 지름 2~3m에다 수직으로 20~30m까지 자라는 초대형 소나무다. 풍부한 목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청동기·철기·귀금속의 출발점이 된 이유 중 하나다. 연료로 활용될 엄청난 나무가 있었기에 원시 제련소도 활성화될 수 있었다. 물론 초대형 나무를 옮길 만한 수상운송로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작은 시냇물로 변한 쿨테페 주변이지만 4000년 전에는 초대형 나무도 옮길 만한 수상운송로로 활용됐을 것이다.

언젠가 터질 글로벌 브레이킹 뉴스 하나를 기다리고 있다. 약탈당한 사르곤 대왕의 청동 두상 관련 뉴스다. 하루라도 빨리 바그다드박물관의 중심을 지킬 사르곤 대왕을 만나고 싶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21세기 광물자원에 관한 대왕의 혜안에도 귀 기울이고 싶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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