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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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롤링스톤스는 멤버들 간 소통법이 음악만큼이나 화끈했다. 지난해 사망한 드러머 찰리 왓츠와 믹 재거는 종종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는 싸움을 벌였다. 밴드가 해체될 법한데도 그들은 60년을 함께했다. 지난 11월 8일 대전지법은 정치 성향이 안 맞는다며 말다툼을 벌이다 친구에게 흉기를 휘두른 50대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우리는 왜 ‘다른 의견’에 발끈할까

두 경우는 비슷한 갈등 상황에서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 그 이유는 뭘까. 극단적으로 다른 의견들이 서로를 물어뜯는 장면을 매일 목격하는 시대이다. 특히 디지털 세상은 이쪽과 저쪽으로 나뉜 무리들이 분노를 쏟아내는 싸움터가 됐다. 실리콘밸리의 창업자 폴 그레이엄이 “인터넷은 태생적으로 의견 충돌을 만들어내는 매체”라고 말한 것처럼 갈등의 시대라면 갈등을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반대 의견은 왜 말하는 것도 불편하고, 듣는 것은 더 불쾌할까? 관계를 망치지 않고 ‘다른 의견’을 주고받는 방법은 뭘까? 매일 부딪히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영국의 조직문화 컨설턴트 이언 레슬리의 ‘다른 의견’(어크로스)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의견’은 전문 번역가가 아닌 엄윤미 씨프로그램(C Program) 대표가 번역했다. 씨프로그램은 다음 세대의 성장을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벤처 기부 펀드이다. ‘다른 의견’은 ‘리부트’(제리 콜로나)에 이은 엄 대표의 두 번째 번역 작품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씨프로그램의 실험 공간에서 만난 엄 대표는 ‘다른 의견’이라는 주제에 혹해 번역에 나섰다고 말했다.

‘다른 의견’은 인질협상가, 외교관, 이혼중재자, 중독상담사와 같은 의사소통 전문가의 실제 사례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소모적 의견 대립을 생산적으로 바꿔주는 방법을 보여준다. 이언 레슬리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도 망하는 이유, 항상 같은 패턴으로 싸우는 이유, 실수를 만회할 타이밍을 놓치는 이유 모두 ‘다른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이나 기술의 문제”라고 말한다.

책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의견 대립에 부딪힐 때 인간의 뇌는 실제로 공격받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뇌 영상을 보면 신체적 위협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뇌 영역이 활성화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동물들이 싸우거나 도망치는 두 가지 전략으로 위협에 대응하는 것처럼 인간도 마찬가지다. 의견 충돌 상황에서 대부분 공격적이 되어 맹렬히 비난을 퍼붓거나, 뒤로 물러나 의견을 속으로 삼키며 갈등을 피한다. 온라인상의 대립도 두 집단 사이의 충돌이라기보다는 같은 진영에서 분노를 공유하며 결속을 다지고 있다는 점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도망치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인 ‘바로잡기 반사(righting reflex)’는 대화의 적이다. 다른 사람을 ‘고치려는’ 본능으로 대화와 관계를 장악하려는 욕망이다. 말로 상대를 설득하고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이유로 맞는 말을 하고 밀어붙일수록 상대는 강하게 거부하게 돼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믿고 있는 정보만 선택한다. 이는 ‘정체성 보호 인지’ 현상으로 설명이 된다. 예를 들어 백신 반대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행동일 수 있다. 의학적 치료를 거부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어느 집단에 소속될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논쟁은 정체성 충돌이 된다. 자신의 정체성이 공격당한다고 느끼면 방어 본능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해법은 ‘다른 의견’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갈등과 불화는 다르다. 이언 레슬리는 논쟁을 꼭 이겨야 하는 싸움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만들어내는 춤 공연으로 상상해보라고 말한다. 의견 대립이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보를 알려주고, 다른 관점을 발견하게 해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논쟁은 더 이상 스트레스 받는 불쾌한 경험이 아니라 흥미로운 자극을 주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갈등을 통해 우리는 더 똑똑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리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조직 내의 갈등은 나쁜 것이고 최소화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고개를 끄덕이고 불편한 질문을 삼키게 만든다. 이런 조직은 의견 대립을 막고 옹졸한 사내정치, 의사결정의 실책, 권력 남용에 취약한 조직이 되기 쉽다고 경고한다. 최근 연구 결과들도 갈등의 건설적인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청소년 시기 부모와 의견 대립이 많을수록 성공적인 학교생활을 하고 격렬한 논쟁을 하는 부부가 갈등을 회피하는 부부보다 문제 해결 진전이 빨랐다. 위키피디아의 편집팀 중에서 가장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낸 팀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보다 정치적으로 정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갈등을 막는 가장 큰 무기는 호기심

엄 대표는 번역을 하면서 머리를 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호기심”이라고 말했다. 상대가 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하면 상대도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정보가 틀렸다고 지적받으면 오히려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신념을 강화하는 ‘역화 효과(backfire effect)’가 발동한다. 이럴 때 방어체계를 무너뜨리는 최고의 무기가 호기심이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조금 더 이야기해주시겠어요?”라는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후자는 내가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내가 모든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다는 것을 전하고 상대도 스스로의 생각에 호기심을 갖고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엄 대표는 “생산적 의견 대립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류가 다 못한다. 얼마나 못하면 딱 떨어지는 단어가 없다”고 했다. ‘토론’은 승자와 패자의 경쟁을 전제로 하고, ‘논쟁’은 적대감이 깔려 있다. ‘대화’는 무미건조하고 ‘변증법’은 애매모호하다. 책의 원제목은 ‘갈등을 겪는(conflicted)’이다. 엄 대표는 “큰 사회적 갈등보다 매일 생활 속에서 접하는 다른 의견이 훨씬 많다. 역설적으로 공적인 관계에서는 의식적으로 갈등에 대응하는 훈련이 돼 있지만 개인적인 관계에서 오히려 실수가 잦다”고 말했다. 엄 대표는 다국적 컨설팅전문회사 맥킨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항상 다른 의견을 말하라는 트레이닝을 받아서 공적인 관계에서는 익숙한데, 사회적 가면을 벗은 개인적 관계에서는 오히려 어렵더라. 번역하면서 많이 반성했다”고 말했다. 갈등 상황에서 사람마다 분노하는 지점이 있다. 엄 대표는 “내 버튼이 눌러졌구나 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여유와 상대의 감정에 호기심을 갖는 것이 생산적 의견 대립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이 엄 대표의 생각이다.

‘다른 의견’의 궁극적 목적은 상대가 나에게 동의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생각을 통해 더 나은 의견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한다. 이언 레슬리는 대화를 ‘무한 게임’에 비유했다. 무한 게임은 승패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목적이다. 상대편 네트에 공을 꽂아 넣는 테니스가 아니라 함께 비치볼을 공중에 띄우는 것이다. 분노, 편견, 대립으로 소모적인 논쟁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대화의 새로운 규칙을 찾아야 한다.

생산적인 대화를 위한 원칙

유대를 만들어라. 의견 대립의 내용을 다루기 전에 먼저 신뢰 관계를 쌓아라.

줄을 놓아주라. 상대를 조종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체면을 세워주라. 상대가 기분 좋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나의 이상한 점을 먼저 보라. 의견 대립 뒤에는 서로에게 낯선 문화의 충돌이 있다.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호기심을 가져라. 먼저 판단하면 배울 수 없다. 이기려 하지 말고 흥미를 가져라. 상대에게도 흥미로운 존재가 돼라.

실수를 기회로 만들어라. 빠르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실수는 긍정적인 계기가 된다. 겸손한 모습을 보이면 대화가 훨씬 수월하게 풀릴 것이다.

대본에서 벗어나라. 적대적인 논쟁은 예측 가능한 패턴에 갇혀버린다. 새로움과 변주가 필요하다. 의외의 놀라움을 주라.

제약 조건을 공유하라. 규칙과 범위가 있을 때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다. 규칙이 자유를 준다.

목적 없이 화내지 마라. 아무리 이론으로 무장해도 감정에 완벽하게 대비할 수 없다. 가장 큰 적은 자신이다.

자료: 다른 의견(어크로스)

‘다른 의견’이 제시한 더 나은 대화를 위한 생각 도구

의견 대립을 정의하라. 오해나 숨겨진 반감은 아닌가? 비생산적인 대립이 이어질 땐 잠시 물러나 질문해보라. 정확히 무엇에 대해 의견 대립을 하고 있는 건가.

의견 대립의 좋은 상대를 찾아라.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소셜미디어 담벼락도 열어라? 더 중요한 것은 존중하고 좋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는 상대를 찾는 것이다.

뜨겁게 데어보라. 본성이 대립각을 세우기 어려운 사람은 갈등에서 항상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운동 후 근육통이 강해지듯, 의견 대립의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법도 배울 수 있다.

상대를 긍정적인 프레임으로 바라보라.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모든 대화를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당신이 그 사람을 싫어한다는 걸 느끼는 순간, 그들은 당신의 말을 무시한다.

심리적 저항에 유의하라. 대화 도중 상대를 바로잡으려 한다면, 그 어떤 시도든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관계의 신호에 집중하고 내용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올바른 신호를 보내기 위해 노력하라.

의견 대립을 미리 알려라. 상대의 위협 모드가 가동되지 않도록 반대 의견을 낼 것임을 미리 알려줘라. 내가 틀리고 상대가 맞을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하라.

똑같이 되돌려주려는 마음을 눌러라. 상대가 공격적이거나 비아냥거리는 태도를 보일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똑같이 되돌려주려 한다. 누군가 이 순환고리를 끊어주어야 한다.

긍정적인 논쟁 문화를 만들어라. 일터에서건 집에서건 의심스러운 부분에 목소리를 내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도록 하라. 이런 식으로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다 보면 큰 문제가 생겨도 팀이 와해될 우려가 적다.

반대하는 사람에게 보상하라. 리더는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반대 의견에 동의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라도 말이다.

무엇을 하라거나 어떻게 느끼라고 말하지 마라. 역효과만 가져온다. 상대의 입장과 논쟁을 벌이고 있는지, 상대의 감정과 논쟁을 벌이고 있는지 그 아래 깔린 감정부터 인정해야 한다.

당신이라는 말을 조심하라. 논쟁 중에 ‘당신’이라는 말을 쓰는 순간 상대는 정체성에 위협을 받는다고 느낀다.

‘그러나’라는 말을 피하라. 상대로 하여금 방어벽을 치게 만든다. ‘그런데’로 바꾸기만 해도 문장이 덜 뾰족해질 것이다.

뜨거운 감자를 건드려라. 아무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 주제를 회피하면 갈등이 곪을 뿐이다. 리더는 갈등을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약점을 드러내며 리드하라. 당신이 먼저 무장을 해제하는 것은 상대의 방어벽을 낮출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될 것이다.

항상 옳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라. 논쟁에서 이기려는 충동은 배울 기회를 놓친다. 옳다는 이야기를 먼저 전한다면, 상대는 당신의 관점에 마음을 열 가능성이 높아진다. 내가 옳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옳은 것이 중요하다.

지는 연습을 하라. 논쟁에서 지는 것은 아주 중요한 민주주의의 기술이다. 설득에 실패하면서 살아가는 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비법은 없다. 연습이 필요하다.

바로잡는 데서 멈추지 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라. 당신의 관점을 강요하지 말고, 타협에도 만족하지 말라. 대신 융합의 길을 모색하라.

자료: 다른 의견(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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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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