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군 ‘요일 식당 모여라땡땡땡’을 만든 9명의 귀촌 여성들. 오른쪽부터 키키(이선영), 로제(정소라), 햇살(윤경희), 하하(김드보라), 바비(최수원), 별나(최세연), 수작(이금월), 시루(권애자), 슨배(이현경). ⓒphoto 소일
전북 완주군 ‘요일 식당 모여라땡땡땡’을 만든 9명의 귀촌 여성들. 오른쪽부터 키키(이선영), 로제(정소라), 햇살(윤경희), 하하(김드보라), 바비(최수원), 별나(최세연), 수작(이금월), 시루(권애자), 슨배(이현경). ⓒphoto 소일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는 ‘공동경비구역’, 아니 ‘공동경비부엌’이 있다. 철모가 아니라 앞치마로 무장한 9명의 여전사들이 이곳을 지킨다. ‘공동경비부엌’의 여전사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이름도 정체도 수상한 ‘요일식당 모여라땡땡땡’을 운영하는 것이다. 9명이 모두 사장이자 셰프이다. 이들은 1~3명씩 팀을 이뤄 특정 요일을 맡아 각자 방식대로 하루씩 운영한다.

9명의 본캐(본캐릭터)는 따로 있다. 농부, 전업주부, 지역활동가, 방과후강사, 일러스트레이터, 편집자 등 하는 일도 다르고 살던 곳도 달랐다. 연령대도 30~50대까지 다양하다. 다둥이 엄마도 있고 비혼도 있고 무자녀도 있다. 서로 알던 사이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모였다. 공통점은 도시에서 살다 귀촌한 여성들로 식당 운영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2016년 오픈, 6년 가까이 ‘요일식당’을 이끌어온 초보 사장, 초보 셰프들의 분투기가 최근 ‘공동경비부엌 모여라땡땡땡’이라는 책으로 나와 화제다. 9명이 각자의 시점에서 쓰고, 멤버 중 2명이 속한 출판사 ‘소일’에서 만든 책이다.

매주 하루씩 운영하지만 돈 받고 밥 파는 일이 녹록지는 않다. 가격은 6000원, 스파게티, 한식 등 메뉴도 맛도 요일마다 다르다 보니 매상 경쟁은 은근히 스트레스이다. 낯선 이들은 금방 눈에 띄는 시골에서 대박 식당을 바랄 수도 없다. 개성 넘치는 9명이 마음을 모으는 일은 더더구나 쉽지 않다. 그럼에도 식당을 운영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완주군은 전북에서 귀촌 1번지로 꼽힌다. 40~64세 중장년층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고 그 비중이 40%를 넘는다. 귀농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은 9명의 여자들이 낯선 시골에서 만나 지지고 볶은 6년의 시간에서 희망의 레시피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공동경비부엌 9명의 여전사들

공동경비부엌을 지키는 9명은 키키(이선영), 별나(최세연), 시루(권애자), 바비(최수원), 수작(이금월), 햇살(윤경희), 슨배(이현경), 로제(정소라), 하하(김드보라)다. 서로 실명보다 별칭으로 통한다. 작당모의의 시작은 키키였다. 키키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도시와는 다른 속도로 살고 싶어 8년 전 이곳으로 귀촌했다. 남편 토리(김주영)까지 불러내려 문화예술 플랫폼인 씨앗문화예술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지역공동체들과 연대, 다양한 실험을 벌이며 이곳을 귀촌 핫플레이스로 만들고 있다. 일 벌이는 데는 선수인 키키가 처음 구상한 것은 ‘씨앗’에서 운영하는 ‘삼삼오오게스트하우스’ 손님을 위한 식당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만 하면 된다” “외부 손님은 못 찾는 숨은 식당이니 바쁘지도 않을 거다” “단순한 밥장사가 아니라 문화운동이다”…. 키키의 감언이설에 처음 넘어간 사람은 금요셰프인 바비와 수작이다.

‘연장 쓰는 언니’ 바비는 남편의 은퇴 후를 대비해 서울에서 혼자 완주에 내려와 퍼머컬처대학에 다니고, 집을 구하고, 네트워크를 다지면서 귀촌 준비를 끝냈다. ‘씨앗’이 벌인 토요 문화장터인 ‘꽁냥마켓’에 도시락을 팔러 나왔다가 키키의 레이더에 걸렸다. ‘요일식당’의 작업반장인 바비의 집 창고는 샌딩기부터 시작해 웬만한 마트의 공구 코너 못지않다.

공예강사로 활동하던 ‘수작’도 ‘꽁냥마켓’에서 캐스팅됐다. 캘리그래퍼, 목공, 아동요리조리사 등 최다 자격증 보유자로 아토피가 심한 아들 때문에 건강한 삶,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다. 이들을 시작으로 다단계처럼 줄줄이 멤버들이 엮여 들어왔다. 바비가 로제와 종란(현재는 영농조합법인에 전념)을, 로제가 하하를, 슨배가 직장 후배 별나를, 별나가 이모인 시루의 옆구리를 찔렀다.

자급자족을 꿈꾸며 텃밭강사를 하는 목요셰프 햇살은 ‘요일식당’을 계기로 2017년 귀촌했다. 도시에 살 때는 봄이 와도 서글펐지만 이곳에서는 새싹을 보면 설렌다. 화요셰프 로제는 경기도에서 살다 2014년 귀촌했다.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는 남편의 제안에 귀농학교에 다니고 정착할 곳을 찾아 헤매던 중 이곳에 안착했다. 좋은 먹거리에 대한 갈증으로 욕심껏 농사짓다 몸에 무리가 생겨 지금은 400평(1322㎡)의 텃밭으로 만족하고 있다. 텃밭에서 키운 바질과 양파로 스파게티를 만드는 화요일은 고산면의 주민들이 장사진을 친다.

네 아이의 엄마로 ‘독박육아’에 몸과 영혼이 탈탈 털렸던 화요셰프 하하는 육아공동체인 ‘숟가락공동육아’ 소문을 듣고 고산으로 이사를 왔다. 끈끈한 공동체의 힘 덕분에 독박육아에서 해방된 하하는 물 만난 고기처럼 동네의 마당발이 됐다. 악기도 배우고 동네 중창단 활동을 하면서 춤판, 책 모임에 얼굴을 내밀고 쌀농사까지 지어 2년째 자급자족을 실현했다.

별나는 서울의 종합일간지 기자 출신이다. 잦은 야근에 몸이 망가져 신문사 탈출을 꿈꾸면서 ‘밭 한 뙈기’의 욕망을 키웠다. 휴일이면 남원, 장성 등 정착할 곳을 찾아다니다 먼저 귀촌한 ‘슨배’로부터 ‘요일식당’ 이야기를 들었다. 귀촌에 도움을 받을까 싶어 매주 한 번 식당 보조로 간을 보다 아예 집을 짓고 전업주부인 이모 ‘시루’까지 집 밖으로 끄집어내 수요셰프 자리를 꿰찼다. 요리는 한사코 싫다던 ‘슨배’는 후배인 ‘별나’를 끌어들인 죄로 보조 셰프로 일하다 별나와 함께 출판사 ‘소일’을 차리고 자기 길을 찾았다.

“우리 목표는 매출이 아니라 지속가능성”

본격적인 식당은 아니지만 9명의 공동 부엌은 치열하다. 모든 의사결정은 ‘만장일치제’다. 다수결로 했을 경우 남을 수 있는 갈등을 아예 차단한다. 종이컵 사용 여부까지도 하나로 의견이 모아질 때까지 소통한다. 인터넷 채팅방에서는 수시로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협업이다. 뛰어난 재주꾼보다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위생, 청결은 기본, 예리한 백종원이 와도 자신 있다. 레시피는 달라도 지역에서 나는 제철 재료를 사용하고 최대한 환경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요리하는 것이 공통된 방향이다. 낮 영업이 기본이지만 특별한 이벤트나 지역 행사가 있을 땐 헤쳐모여 출장요리를 나선다. 레시피 개발을 위한 워크숍을 핑계로 매년 1~2회 국내외를 누볐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식당의 손익 구조다. 회계와 실무를 담당하는 키키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다. 키키는 “요일별 편차도 있고 매출의 20%만 적립하다 보니 운영비로도 빠듯하다. 애초에 목적이 ‘매출’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이었다”고 말한다. 즐겁게 일하고, 환경을 살리고, 건강한 먹거리를 나누는 기쁨은 돈보다 가치 있다는 것이 만장일치 9명의 뜻이다. 그동안 식당은 삼례면을 거쳐 3번의 이사를 거쳤다. 못 하나 박는 것도 서툴던 멤버들이 드릴 들고 샌딩기 돌리며 웬만한 공사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여벤저스’들이 됐다. 주민들은 농사지은 식재료를 수시로 갖다주는 응원군이 됐다. 식당은 현재 휴업 중이다. 3년 가꾼 건물이 헐리면서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역 단체들과 연대해 건물을 마련하고 내년 봄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성장 스토리’이다. 식당을 중심으로 이들의 삶은 지역에 더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확장 중이다.

키워드

#문화
황은순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