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closer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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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E-스트리트 밴드’에서 기타 연주자요 백업 싱어로 활약했던 스티븐 밴 잰트(70)는 다방면의 재주꾼이다. 작곡가이자 배우, 작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특히 그는 남아공 인종차별 반대운동의 기수로 유명하다. 그는 HBO-TV의 인기 범죄드라마 시리즈 ‘소프라노즈’에서 술집을 경영하는 마피아 단원 실비오 단테온으로 나와 호평과 함께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최근 펴낸 회고록(‘Unrequited Infatuations:Memoir’) 홍보차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 자택에서 영상 인터뷰에 응한 그는 자신의 상표와도 같은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가끔 미소를 지으며 활기차게 질문에 대답했다.

- 당신이 어렸을 때 매료됐던 비틀스의 인기가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는가. “어렸을 때는 인기가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저 자기 앞에 있는 것에 빠져들 뿐이다. 비틀스는 내게 생명 그 자체였다. 그들은 여러 가지로 우리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특히 내게는 하나의 생명선이었다. 사회가 내게 제공하는 조건들에 만족하지 못한 탓이었다. 당시는 나 자신을 어느 조건에 맞춰야 할지 몰랐다. 따라서 비틀스는 내게 경이로운 새 세계를 가져다주었고 그로 인해 나의 삶도 구원받았다.”

- 당신은 E-스트리트 밴드에 가담하기 10년 전부터 브루스를 알고 있었는데 왜 밴드에 합류하는 것이 그렇게 오래 걸렸는가. “처음에는 서로가 속한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같이 연주한 경험도 있다. 어떤 때는 내가 리드를 했고 또 어떤 때는 브루스가 리드를 했다. 브루스의 인기는 그의 세 번째 앨범 ‘본 투 런’이 나올 때 급상승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그는 7차례의 순회공연을 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브루스는 기타를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밴드의 리드 싱어로 발돋움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그때 나는 밴드를 갖고 있었는데 그 밴드 생활이 지루했다. 또 잠시 바깥 구경을 하고 싶어 브루스의 요청에 따라 그의 순회공연에 참여하게 됐다. 7차례의 공연에만 참여하기로 한 것이 7년간 계속됐다.”

젊은 시절 남아공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벌이는 스티븐 밴 잰트. ⓒphoto Africasacountry.com
젊은 시절 남아공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벌이는 스티븐 밴 잰트. ⓒphoto Africasacountry.com

- 회고록을 쓸 때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대로 썼는가, 아니면 적어둔 일기라도 참조했는가. “일기를 썼더라면 그 자체가 좋은 책이 됐을 텐데 일기는 없고 그저 시간여행을 해 과거로 갔을 뿐이다. 난 별로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아니다. 책을 쓰면서 어려웠던 것은 1990년대였다. 그 10년은 잃어버린 시간대였다. 어떤 계획도 임무도 없는 세월이었다. 다행히 공연 스케줄과 약력을 적은 것들이 있어 큰 도움이 됐다. 내 회고록이 단순히 음악인들만을 위한 음악책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책의 전반부는 동네 꼬마가 로큰롤의 정상에 이른 얘기이고, 후반부는 E-스트리트 밴드를 떠나면서 미래를 잃고 나락으로 빠져든 내용이다. 책의 보다 큰 주제는 자신의 정체성과 목적, 그리고 영적 각성의 추구에 관한 것이다.”

- 책을 쓰고 나서 정신적으로 카타르시스라도 느꼈는가. “책을 쓰다 보니 내가 그동안 몰랐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난 평생 E-스트리트 밴드를 떠나지 않고서도 뭔가를 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E-스트리트 밴드를 떠난 것은 단순히 직업을 바꾼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끝장이었다. 10여년간 단 하나의 목적이었던 로큰롤을 떠났다는 사실만으로 갑자기 내 인생이 끝이 났다. 흥미 있는 사실은 내가 성취한 모든 것은 내 삶이 끝난 줄 알았던 이후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나는 회고록이 삶에 실망한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밴드를 떠난 뒤 술과 마약과 자살까지도 생각했지만 그 비극을 견디어냈다. 이렇게 운명은 당신을 놀라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인기 범죄드라마 시리즈 ‘소프라노즈’에 마피아 단원으로 출연한 스티븐 밴 잰트(왼쪽). ⓒphoto Vanityfair.com
인기 범죄드라마 시리즈 ‘소프라노즈’에 마피아 단원으로 출연한 스티븐 밴 잰트(왼쪽). ⓒphoto Vanityfair.com

- 배우로서 연기를 하면서 새 정체성이라도 발견했는가. “내 삶이란 대부분 계획하지 않은 경이로 이뤄졌다고 하겠다. 배우가 바로 그 대표적인 것이다. 나는 배우도 아니었고 또 될 생각도 없었다. 각본을 한두 편 쓴 것은 있었고 감독이 될 생각도 있었지만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소프라노즈’의 각본이 제공되면서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40대에 첫 연기란 대단한 일이다. 나는 하는 일에 나를 100% 던져야 직성이 풀린다. 하는 일의 수준도 최고여야 한다. 모든 것의 부흥기인 1960년대 자란 탓이다. 앞으로도 배우 생활을 할 수 있다.”

- 당신이 보는 미국의 정치적 상황은 어떤가. “내가 한 가장 자랑스러운 정치적 업적은 남아공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선 시티 프로젝트’였다. 요즘 같으면 이런 일을 못할 것이다. 요즘은 모든 정치적 상황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다소 걸림돌이 있긴 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세계는 보다 나은 곳이 되는 길로 걸음을 디뎌왔다. 5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갑자기 난생처음 세상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무너진 벽이 다시 세워졌고, 세상이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극단적인 길을 가고 있다. 2017년과 2018년 그리고 2019년 세 차례에 걸쳐 세계 순회공연을 하면서 이런 상황을 목격했다. 공연의 목적은 음악을 통해 조화를 이루면서 잘 살아보자는 것이었으나 그것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은 조화 대신 분열로 치닫고 있다. 지금처럼 분열된 세상을 보기도 힘들다. 그래도 서로 대화를 나누고 다시 세운 장벽을 거두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잃기 일보 직전이다. 선한 측은 함께 잘살아보자고 말하면서 투쟁을 안 하는 반면, 악한 측은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이러다 보면 선한 측이 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해 사람들을 계몽해야 한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공연하는 스티븐 밴 잰트(오른쪽). ⓒphoto foxnews.com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공연하는 스티븐 밴 잰트(오른쪽). ⓒphoto foxnews.com

- 과거나 현재의 유명 가수들 중 함께 공연했으면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제 더 이상 음악에 대해 할 얘기가 많지 않다. 음악은 내가 하고 싶은 일 중 한 부분이지만 그것보다는 더욱 큰일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한 일 중 가장 흥분되는 것은 브로드웨이 쇼다. 음악을 작곡하고 가사를 쓰고 배우들을 선택하고 무용과 무대 디자인에까지 관여한 후 이를 무대에서 날것으로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나를 자극하는 작업이다. 음악은 내 삶의 요소 중 일부분인 것은 확실하지만 수년 전부터 음악만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 영화나 TV 작품에서 어떤 역이 주어지면 선뜻 맡겠다고 하겠는가. “그보다 더 좋은 역을 찾을 수 없는 ‘소프라노즈’를 거쳐 맡은 역이 노르웨이를 무대로 한 킬러 시리즈 ‘릴리해머’다. ‘릴리해머’에는 주연 외에 각본과 제작에도 공동으로 참여했고 음악도 작곡했다. 마지막 몇 편의 에피소드는 감독까지 했다.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TV 시리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이 주어질지 모르겠으나 TV로 돌아가고 싶다. TV 작품 각본을 써놓은 것이 몇 편 있어 내일이라도 만들 아이디어가 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지는 않는다. 창조적 과정에 동참할 수 있어야 출연할 것이다. 연기나 음악공연은 재미일 뿐이다. 내 삶의 재미있는 부분이요 휴가인 셈이다. 만족할 만한 일은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먼저 작가요 제작자로 생각한다. 그다음이 배우나 가수다.”

- 기타는 몇 개나 소유하고 있는가. “나는 수집가가 아니다. 내 음반조차도 다 갖고 있지 않다. 기타는 한 열댓 개 있지만 수집가용은 아닌 평범한 것들이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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