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아나톨리아 트로드 지방에 있는 아킬레스의 무덤. ‘아킬레이온’이라 불리는 유적지로 조잡한 조각판 하나만 서 있다.
터키 아나톨리아 트로드 지방에 있는 아킬레스의 무덤. ‘아킬레이온’이라 불리는 유적지로 조잡한 조각판 하나만 서 있다.

청춘(青春)에 대응되는 ‘적추(赤秋)’라는 말이 있다. 반짝, 찬란한 봄의 활기에 맞서는, 수확을 기다리며 무르익어가는 가을을 의미한다. 인생의 성숙기라는 뜻이다. 봄에 맞는 옷과 꽃이 있듯이, 가을에 어울리는 장식과 품격이 있다. 나만이 아니라 모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앞이 아닌 뒤를 보면서도 살아가는 삶이 적추에 펼쳐진다.

바그너 오페라가 상기시킨 아킬레스

오페라의 두 거인, 베르디와 바그너는 청춘과 적추를 구별하게 만드는 기준점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예외도 있겠지만, 필자는 물론 주변의 취향을 살펴보면 ‘베르디=청춘, 바그너=적추’다. 물론 70대라도 청춘, 30대라도 적추의 삶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대체로 보면 인생의 봄에는 베르디, 가을에는 바그너의 오페라에 빠지게 된다. 베르디 오페라의 주된 소재와 주제는 속(俗)이나 욕(欲)으로 집약할 수 있다. 사랑·죽음·영광·배신·분노·정열·음모와 같은 인간만사 희로애락이 대부분이다. 군신·부모·부부 간의 배신, 나아가 살인도 다반사다. 스토리는 물론 음악도 피를 끓게 만든다. 전부 25개에 이르는 오페라 속의 캐릭터들을 보자. 선악은 물론, 누가 옳고 그른지 명확히 보여준다. 이기고 지는, 현실세계 거울로서의 오페라다. 바그너는 어떨까? 성(聖)과 영(靈)이 주된 테마다. 뜨거운 피가 아니라, 제3자적 관점에서의 이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오페라다. 배신, 음모, 살인이 아니라 신, 우주, 운명, 자유를 둘러싼 대서사시로서의 세계관이다. 옳고 틀리고를 규명하고 승패를 확실히 나누기보다, 승패 자체가 무의미한 평화와 안식의 세계에 주목한다.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는 바그너가 무려 26년간에 걸쳐 완성한 4부작 오페라다. 공연시간이 전부 25시간에 달하는 대작이다. 바그너 최고 걸작인 동시에 필자를 청춘에서 적추의 시대에 접어들도록 도와준 오페라이기도 하다. 척박하고도 충혈된 속(俗)의 세상에 지치면서, 안식과 평화로서의 성(聖)의 세계로 옮겨갔다고나 할까?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완결판인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이다. 오페라 속 주인공 지크프리트의 영웅적인 죽음과 희생을 다루고 있다. 워낙 좋은 곡들이 많지만, ‘신들의 황혼’에서 최대 하이라이트는 ‘지크프리트를 위한 진혼곡(Siegfried’s funeral march)’이다. 노래가 아닌 연주곡이다. 지크프리트의 죽음을 통한 라인강의 평화와 사랑의 부활이 바그너가 던지는 메시지다. 욕에 찌든 삶이 아닌, 성으로 승화된 인간의 ‘위대한 품격’이 느껴지는 명곡이다. 기독교 신자가 본다면 ‘지크프리트=예수’라 해석할 정도의 감동이 밀려올 듯하다.

‘신들의 황혼’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6년 1월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다. 영하 15도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극장에 달려간 탓인지, 빈 오페라에 대한 기억이 선명히 남아 있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이성, 감성을 통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당시 ‘지크프리트를 위한 진혼곡’을 듣던 중 뜻밖의 인물 하나가 떠올랐다. 기원전 13세기 트로이전쟁의 영웅이자 호메로스(Homer)의 대서사시 일리아드(Iliad)의 주인공이기도 한 아킬레스(Achilles)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킬레스를 연상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첫째 지크프리트의 유일한 급소인 등에 관한 대목이다. 지크프리트는 악의 상징인 용을 처단한 뒤 용의 피로 온몸을 씻는다. 화살, 칼, 창이 뚫지 못하는 불사신의 몸으로 변한다. 그러나 용의 피로 목욕을 할 때, 지크프리트 등에 나뭇잎 하나가 걸쳐져 있었다. 백전백승 불사신 지크프리트지만, 배신자가 내려친 칼이 등에 꽂히면서 숨지게 된다. 아킬레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른바 아킬레스 건(腱)과 비슷한 발상이다. 불사(不死)의 강 스틱스(Styx)에서 목욕할 당시 아킬레스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발뒤꿈치를 잡는 과정에서 생긴 유일한 약점이 바로 아킬레스건이다. 둘째는 오페라 속 진혼곡 그 자체에 있다. 지크프리트만이 아니라 아킬레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청춘을 위한 레퀴엠(Requiem)’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차르트나 베르디의 레퀴엠 같은, 장년·노년의 죽음에 관한 진혼곡이 아니다. 비장·엄숙·슬픔으로 채워져 있지만, 20대 중반 아킬레스의 고독한 청춘이 바그너의 곡에서도 느껴진다. 바그너의 진혼곡은 ‘청춘의 죽음’을 달래는 서사시다.

지난해 연말부터 에게해(Aegean Sea)로 옮겨 생활하고 있다. 바다를 보려고, 아니 정확하게는 바다를 오감으로 느끼는 연말연시를 맞이하기 위해서다.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다. 생명이 뿌리는 냄새, 생명이 만들어내는 파도 소리와 함께 신성한 신년을 맞이하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예감을 믿고 따르게 됐다. 우연이라 볼 수도 있지만, 작은 계기 하나만으로도 뭔가를 짐작하게 된다. 호텔 베란다에 접해 있는 에게해의 석양을 보다가 오페라가 듣고 싶었다. 유튜브에 ‘바그너 오페라’를 치자 곧바로 지크프리트 진혼곡으로 연결됐다. 빈 오페라의 기억과 함께 아킬레스가 떠올랐다. 역사의 비극, 아니 희극이라고 할까? 아킬레스를 쓰러뜨린 인물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Paris)다. 트로이전쟁의 원인이 된, 유부녀 헬레네(Helen)를 납치한 장본인이다. 아무리 사랑이라지만,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반인륜 파렴치 잡범에 불과하다. 영웅의 적은 상대 진영 영웅에 국한되지 않는다. 파리스의 화살이 아킬레스건을 관통하는 순간 아킬레스는 비명과 함께 쓰러진다.

‘아킬레이온’은 트로이의 아킬레스라는 의미다. 아킬레스가 죽은 트로이에서 서쪽으로 15㎞ 떨어진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
‘아킬레이온’은 트로이의 아킬레스라는 의미다. 아킬레스가 죽은 트로이에서 서쪽으로 15㎞ 떨어진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

아킬레스 무덤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 천국

트로이전쟁 당시 풍습이지만, 숨진 전사들은 몸이 썩기 전에 화장을 한다. 나무를 제단처럼 높게 쌓은 뒤 그 위에 시신을 올리고 불을 지핀다. ‘아킬레스도 화장을 했다면 그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아킬레스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봤다. 예감이라고나 할까? 하루 900㎞를 달리면서까지 굳이 에게해로 거처를 옮긴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의 이유’를 발견해냈다. 놀랍게도 아킬레스 무덤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호텔에서 불과 100㎞ 정도 북쪽이 현장이다. 아킬레스 무덤이란 표현보다 ‘아킬레이온(Achilleion)’으로 통하는 곳이다. 관광지와 무관한, 현지인만이 아는 작은 고대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아킬레이온은 ‘트로이의 아킬레스’라는 의미다. 아킬레스가 죽은 트로이에서 서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에게해 바닷가가 현장이다. 곧바로 아킬레이온으로 달렸다. 가는 길 주변 전체가 소나무로 빽빽이 채워져 있다. 에게해 주변은 소나무 천국이다. 한때 소나무를 망국의 나무라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제대로 된 목재가 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한말 우리 국토의 흑백사진을 보면 굵은 소나무가 거의 없다. 그러나 에게해 주변 소나무는 다르다. 굵고 높고 강하다. 울창하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진 솔방울과 잔가지도 엄청 많다. 한말 소나무 망국론의 근본은 소나무 자체가 아니라 수탈과 가난에 있었을지 모른다. 수탈당한 민초의 생계를 보장할 몇 안 되는 밥벌이가 땔감 수집이었다. 소나무가 굵어지기도 전에 전부 잘라서 시장에 팔았다. 멀리 에게해에 인접한 아킬레이온이 눈에 들어온다. 터키 현지인을 위한 유원지 시설이 아킬레이온 주변에 들어서 있다. 전염병 때문이지만, 인적 하나 없다.

아킬레스는 서방 역사에 등장한 인류 최초의 영웅이다.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Gilgamesh)나 북구의 영웅들도 있지만, 아킬레스에 비하면 ‘변방의 스타’ 정도에 그친다. 고대 그리스 문명·문화에 기초한 지중해와 유럽 전체의 영웅 제1호는 누가 뭐래도 아킬레스다. 반신반인(半神半人) 헤라클레스를 최초의 영웅으로 추앙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와 무관한 신화 속 인물이란 점에서 거리가 있다. 호메로스 구전 속의 캐릭터지만, 고대 역사에 등장하는 백전백승 인류 최초의 영웅으로 아킬레스를 능가할 인물은 없다. 흥미로운 것은 ‘영웅의 조건’이다. 오해하기 쉬운데, 불사신 무용담이 영웅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싸움에 지더라도 영웅이 될 수 있고, 전쟁에서 전부 이긴다고 해도 영웅에서 멀어질 수 있다. 유일한 약점 하나로 인해 세상을 떠난 지크프리트와 아킬레스는 최고의 본보기다. 지크프리트와 아킬레스 모두 약점 하나 없는 완벽한 전사(戰士)로 장수를 누리다 숨졌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영웅으로 기릴 수 있을까?

지크프리트와 아킬레스가 영웅으로 추앙된 이유는 그들이 남긴 고결한 흔적에 있다. 바그너 오페라 속의 지크프리트는 용맹의 화신인 동시에 자유와 사랑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신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투명한 영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성스러운 존재다. 아킬레스는 어떨까? 필자가 보는 일리아드 속 아킬레스의 이미지는 ‘눈물’ 하나로 집약된다. ‘아킬레스=눈물장군’이다. 친구 파트로클로스(Patroclus)가 트로이 왕자 헥토르(Hector)에게 살해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눈물로 날밤을 세운다. 이후 헥토르를 보복 살해하고 나서도 파트로클로스를 생각하며 불면의 밤을 지샌다. 트로이 왕 프리암(Priam)은 그 같은 상황하에서 아킬레스와 만난다. 제우스의 도움으로 그리스군의 눈을 피해 아킬레스에게 다가간 것이다. 프리암은 아킬레스를 만나는 순간 무릎을 꿇고 자식인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애원한다. 왕이 아니라 자식을 잃은 늙은 아버지의 소원이라면서 아킬레스의 아버지 얘기도 꺼낸다. 아킬레스는 자신도 전쟁 중 죽을 운명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접할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프리암의 애원에 귀를 기울인다. 호메로스는 아킬레스와 프리암이 밤새 눈물을 흘리며 얘기를 나눴다고 기록했다.

고대 ‘아킬레이온’을 상상한 동판화. ⓒphoto 위키피디아
고대 ‘아킬레이온’을 상상한 동판화. ⓒphoto 위키피디아

그는 왜 자주 눈물을 흘렸을까

눈물이야말로 아킬레스가 일리아드의 중심이자 주인공이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일지 모르겠다. 맞서는 트로이군 모두를 한칼에 끝내는 불사신 전사가 전부는 아니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고독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약한 인간의 모습이 아킬레스를 영웅으로 끌어올리는 근본적인 배경일 듯하다. 바그너의 진혼곡은 한국인 대부분에게도 익숙한 곡이다. 청춘의 눈물장군 아킬레스에게 잘 어울리는 레퀴엠이라고 말해도 ‘결코’ 반대하지 않을 듯하다. 확신컨대, 바그너 그 자신도 아킬레스를 생각하며 작곡한 진혼곡이었을 것이다.

아킬레스의 무덤은 해안 방파제 역할을 하는 보리밭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 높이 20m 정도의 낮은 언덕으로, 경주 왕릉보다 배 정도 크고 높다. 찾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따로 없다. 새순이 파랗게 돋은 보리밭을 타넘으며 무덤으로 향했다. 간과하기 쉬운데, 퇴적이나 침식은 고대 유적지에 들를 때 고려해야 할 기본 상식이다. 필자의 기준이지만 비, 바람으로 인해 대략 1년에 1㎝ 정도 쌓이거나 깎여나간다. 무시할 수준처럼 보이지만, 1000년이면 10m가 된다. 고대 그리스 유적지는 대략 20m 아래 묻혀 있거나, 위에 들어서 있었다고 보면 된다. 추정컨대 약 3200여년 전 아킬레스 무덤 주변은 바다에 인접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에게해에서 300m 정도 떨어져 있지만, 해안 언덕에 들어선 무덤이었을 듯하다.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의 전쟁이 역사인지 허구인지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킬레이온과 아킬레스의 무덤이 트로이전쟁 당시 아킬레스와 직접 관계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믿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믿는다고 했던가? 필자의 경우 믿지 않아도 볼 수 있고, 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필자는 트로이전쟁이 있었다고 120% 확신한다. 아킬레스란 존재도 믿는다. 이유는 호메로스를 비롯한 그리스 문명·문화의 기초가 트로이전쟁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리스 연합군의 승전 무대인 트로이를 무시한다는 것은 그리스 헬레니즘과 로마의 역사를 백지로 돌리는 것과 똑같다. 아킬레스는 동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의 롤모델이었다. 기원전 334년, 동방원정에 나선 알렉산더는 아킬레스 무덤에 들러 자신의 롤모델을 기리는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마차 경주와 나체 달리기와 같은, 고대 그리스 당시 영웅을 추앙하는 스포츠 의식도 열었다. 당시 22살 알렉산더도 이런 의식에 전부 참가했다. 이후 로마 황제 카라칼라(Caracalla), 터키의 술탄도 아킬레이온에 들러 영웅을 찬미했다고 한다.

불사신으로 만드는 강 ‘스틱스’에서 전신 목욕을 하는 아킬레스를 묘사한 그림. ⓒphoto 위키피디아
불사신으로 만드는 강 ‘스틱스’에서 전신 목욕을 하는 아킬레스를 묘사한 그림. ⓒphoto 위키피디아

에게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무덤

예의에 어긋나지만, 아킬레스 무덤 위로 올라갔다. 영웅을 기리는 장식이나 기념비 하나 없다. 방금 세워진 듯한 조잡한 아킬레스 조각판 하나가 바다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접해본 수많은 위인과 영웅의 흔적 가운데 최고·최상의 성스러운 무덤으로 느껴진다. 에게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대략 270도의 넓은 시야가 바다로 열린 파노라마 풍경이기 때문이다. 바다 냄새와 파도도 아킬레스 무덤만을 위해 넘실대는 듯하다. 에게해에서 밀려오는 바람이 강하다. 눈물장군 아킬레스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무덤 전체를 감싸는 느낌이다. 추측건대 아킬레스가 사랑했던 동성애 친구 파트로클로스도 무덤을 지키고 있을 듯하다.

오렌지색 태양이 서서히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신이 하루도 빠짐없이 세상에 내리는 최고급 선물, 바로 일몰의 시간이다. 적추 인생이기 때문이겠지만, 일출보다는 일몰에 빠져든다. 삶을 다시 한번 가다듬게 만드는 고마운 순간이 수평선 끝에 퍼져나간다. 트로이전쟁 후 320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진, 신비스럽고도 아름다운 에게해의 일상이 아킬레스 무덤을 지키고 있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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