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53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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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맛, 음식 名家 이야기] 이조보쌈

매일 갓 잡은 생돼지고기 공수 20~30년 단골이 숨겨놓은 맛집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criscook@hanmail.net 

▲ 대표메뉴 모둠보쌈
늦은 밤, 주인장 정성택(42)씨가 ‘이조보쌈’에 들어선다. 보쌈에 술잔을 기울이던 손님들이 모두 자리를 뜨고 직원들도 퇴근한 빈 가게가 그의 일터다. 먼저 테이블이며 바닥을 꼼꼼히 닦는 일부터 시작한다. 청소를 마치면 밤새 네 포대도 넘는 무채를 썰어 절이고 보쌈김치 속과 배추를 준비한다. 우렁각시처럼 혼자 어렵고 힘 쓰는 일을 해내다 보면 어느덧 동이 튼다. 이른 아침엔 그의 누이이자 공동 대표인 정혜옥(45)씨가 교대해, 절여놓은 배추 삼십여 포기에 양념을 발라 맛깔난 보쌈김치를 담근다. 손발이 척척 맞는 오누이의 열정 덕분일까. 3년 전 어머니 이재온씨가 작고한 뒤에도 이조보쌈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창업주 이재온씨는 1980년대 초, 서울 당산역 근처에 식당을 냈다. 그때만 해도 이 동네에 공장이 많았고 음식점은 몇 곳 없던 시절이었다. 이씨는 테이블 네 개짜리 작은 식당에서 혼자 새벽시장을 보고 아침이면 해장국, 점심식사와 저녁 술안주 그리고 사이사이 음식 준비를 하면서 쉴 새 없이 가게 일에 매달렸다. 고단한 삶이었지만 솜씨가 좋아 인근 공장 직원들의 칭송을 받으며 열심히 메뉴를 개발했다. 내놓는 음식마다 인기가 좋았는데, 특히 보쌈은 계절을 타지 않고 일 년 내내 큰 인기를 끌었다. 근처 공장 근로자들의 작은 밥집으로 출발한 이곳은 1996년 창업했던 곳의 맞은편,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이조보쌈’이라는 번듯한 상호를 걸고 보쌈전문점으로 변신했다.
   
   이조보쌈은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역 4번 출구 바로 앞에 있다. 지하철 역 앞이라지만 번화가는 아니다. 조금은 인적이 뜸한 도로의 오래된 단층집인데 재미나게도 ‘닭, 호프&소주’라는 옛 간판이 아직도 붙어 있다. 통닭과 생맥주를 팔던 가게를 인수받아 미처 간판을 철거하지도 않은 채 지금까지 이어온 모양이다. 외관만 그런 게 아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인테리어와 다락방 같은 낮은 천장이 마치 30년 전쯤으로 돌아간 듯하다. 좀 고치고 싶어도 오랜 단골들의 요청에 따라 깨끗이 관리만 하고 있다. 손님이 많아지면서 5년 전 골목 건너 건물 1층에 별관을 냈지만 오랜 단골들은 아직도 본관을 고집한다.
   
   메뉴는 모둠보쌈과 겨울 한정인 굴보쌈이 있다. 모둠보쌈은 굴 대신 오징어를 살짝 데쳐 삶은 돼지고기에 곁들여준다. 꽤 푸짐하게 나오는 돼지고기는 삼겹살이 아니라 목전지 부위. 항정살 수육을 원하는 손님에게는 항정살을 넉넉히 올려준다. 이 집 돼지고기는 신기할 정도로 잡내가 전혀 없고 퍽퍽하지 않다. 부들부들 야들야들한 살코기에 향긋하고 시원한 무김치와 보쌈김치를 곁들이면 입맛이 절로 난다. 여기에 오징어까지 올리면 쫄깃함, 부드러움, 아삭함 등 즐거운 식감에 고소하고 매콤한 맛깔스러움이 입안 가득 요동친다. 겨울 굴 철에는 녹진하고 탱글한 생굴이 더해지니 또 다른 진미를 맛볼 수 있다. 보쌈에 서비스로 주는 된장찌개는 된장보다는 청국장이 더 많이 들어가 쿰쿰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이 집의 음식 맛을 쥐고 있는 성택씨는 학창 시절부터 어머니를 돕다가 11년 전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질 무렵 본격적으로 주방에 섰다. 메뉴가 단출하긴 하지만 매일같이 보쌈김치와 무김치 재료를 준비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밤늦게 출근하는 것은 주방 직원들의 동선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특별한 비법이라기보다는 어머니의 맛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2대 대표 정혜옥씨와 동생 정성택씨

   ‘여전히 맛있다’는 평 들을 때 코끝 찡해
   
   성택씨는 우선 어머니가 거래하던 기존의 거래처에서 좋은 재료를 구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돼지고기는 매일 국내산 생고기로 하루 200근 정도를 가져온다. 도축장 한 곳을 정해놓고 그곳에서 나오는 목전지 부위는 전량 이 집에서 가져다 쓰고 있다고.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 비결을 묻자 “갓 잡은 신선한 고기라서 잡내가 안 나요”라면서 마늘, 양파, 계피, 대파, 소주 등 다른 집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일반 양념을 넣고 삶는다고 한다. 좀 다른 점은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불을 끄고 잔열로 20분 정도 뜸을 들여 부드럽게 익혀낸다는 것. 그리고 고기를 미리 많이 삶아 놓지 않는다. 하루에도 조금씩 여러 차례 고기를 삶아 솥에서 바로 꺼내 상에 내기에 고기가 더 촉촉하고 윤기가 돈다.
   
   김치도 국내산 배추와 무, 충북 음성 고춧가루 등 최고의 재료로 준비해 그날그날 정성껏 담근다.
   
   “우리 집 김치엔 인공조미료가 전혀 안 들어가요.”
   
   김치 양념에 마가루와 홍삼가루, 사과, 배, 토마토, 매실청, 요구르트 등을 넣어 달달하고 향긋한 맛이 일품이다. 김치 양념을 전날 만들어 하루 숙성시키기 때문에 배추가 아삭아삭하고 싱싱한데도 겉절이 같지 않고 깊은 맛을 낸다. 많은 가게들이 무말랭이를 쓰지만 이 집에선 무를 일일이 채 썰어 소금물에 절여서 충분히 수분을 뺀 다음 역시 하루 숙성시킨 양념에 버무려 내놓는다.
   
   오징어는 냉동이지만 살짝 삶아 부들부들하고 겨울에만 제공되는 굴은 검은 빛이 도는 신선한 중간 크기로 준비해 당일 소진하고 있다.
   
   보쌈 가격은 벌써 7년째 제자리걸음으로 내용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거의 모든 재료가 국내산이기에 무, 배추 등 재료 파동이 날 때면 손해보고 장사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한번 올린 가격은 내릴 수 없기에 일시적인 재료 값 폭등으로 음식 값을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 집의 전통이다.
   
   요즘 식당 종업원 오래 데리고 있기가 쉽지 않다는데 이 집만은 예외인 것 같다. 10~20년 된 주방식구, 5년 이상 서빙을 맡아온 직원이 여럿이다. 오랜 시간 함께해 왔기에 손발이 잘 맞고 가족 같은 분위기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가게 관리를 도맡고 있는 혜옥씨는 직원들에게 일일이 지시하지 않고 재량권을 주면서 부드럽게 대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이조보쌈은 오랜 단골들이 아껴두고 가는 진짜배기 보쌈집이다. 20~30년 된 단골 등 연세 지긋한 분들이 많은 편인데, 최근에는 젊은층 손님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연예인 단골도 여럿 되지만 흔한 사인 한 장이 안 보인다. 일본의 맛집 잡지에 소개되어 일본인 손님들도 종종 찾는다.
   
   “전에는 손님이 많아도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가신 뒤에도 여전히 손님이 많고 맛있다는 평을 들을 때면 코끝이 찡해지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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