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62호]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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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소울푸드] 이승우 군장대학교 총장의 봉골레 파스타

호숫가 작은 레스토랑서 만난 젊은 프로들

이승우  군장대학교 총장  

봉골레(Vongole)는 조개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이다. 조개 국물로 만들어내는 소스와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인상적인 봉골레 파스타는 이탈리아에서 인기 있는 파스타 중 하나다. 이탈리아에서도 해안지역인 베네치아 지방에서 유명한 봉골레 파스타는 백합, 바지락, 모시조개 등 바다에서 채취되는 다양한 조개를 이용하여 만든다. 나는 봉골레 파스타를 먹으면서 내 고향 군산과 바다를 생각한다.
   
   나는 여러 가지의 공직을 거친 후에 지금은 고향의 조그만 사립 전문대학의 총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나의 가족과 살림집은 서울에 있으므로, 주말에는 서울에 있고 주중에는 고향의 어머니 댁에서 지내며 학교로 출퇴근하고 있다. 90대 중반이신 어머님은 내가 주중에 근무하러 내려오면 너무도 기뻐하신다. 아직도 정신이 또렷하신 어머님은 60이 넘은 아들에게 지나간 TV 드라마의 줄거리를 들려주시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서 나는 웬만한 드라마는 보지 않고도 그 내용을 대부분 알고 있다.
   
   어머니 댁은 군산의 아름다운 호수인 은파호숫가에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엔 산골의 아름다운 호수였던 은파호수가 이제는 아파트 단지들로 둘러싸인 호수가 되었다. 은파호수 주변도로는 봄이 되면 눈부시게 피는 벚꽃으로도 유명하지만, 역대 시장들께서 역점을 두고 산책로와 다리를 만들고 아름다운 화초와 나무로 공원을 잘 조성해서 지금은 군산 시민들이 아침저녁으로 산보하며 심신을 달래는 좋은 공원이 되었다.
   
   ‘봉골레’가 나의 소울푸드가 된 것은 은파호숫가의 산책로에 위치한 조그만 이탈리안 레스토랑과의 인연 때문이다. 레스토랑의 이름도 ‘파라디소 페르두또(실낙원)’라는 만만치 않은 이름이라서 흥미가 끌렸지만, 레스토랑의 주인이 서울의 예술의전당 앞에서 멀쩡히 잘 운영하던 식당을 접고 내려왔다는 사실이 호기심을 상당히 자극했다. 그 레스토랑의 주인도 고향이 군산이었는데, 고향 방문 중에 은파호수를 산책하다가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서울의 가게를 정리하고 내려왔다고 한다.
   
   서울 예술의전당 앞에 사시는 은사님께서 당신께서 즐겨 다니시던 단골집이 군산으로 이전했으니 찾아보라는 말씀이 이 레스토랑과의 첫 인연이다. 저녁 무렵에 찾아간 이 레스토랑은 인테리어부터가 달랐다. 실내는 주방이 오픈되어 있었고, 외부의 테라스가 석양의 호수를 바라보며 은은한 재즈 음악과 함께 와인을 마시기에 너무 좋았다. 은파호수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인테리어에 대한 주인의 식견도 놀라웠지만, 시험 삼아 주문한 봉골레 파스타가 환상적이었다. 내 고향에서 많이 잡히고 저렴한 재료인 바지락을 가지고 국물을 제대로 내고 있었으며, 면발도 약간 쫄깃쫄깃하면서 설익지 않은 식감을 주었다. 서울의 제대로 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이런 식감은 기본이지만 군산에서는 지금까지 먹어 본 적이 없는 봉골레 파스타였다.
   
   인구 30만 정도의 중소도시에 내려와 근무하면서, 제대로 된 파스타나 스테이크를 먹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날 무척이나 행복했다. 군산은 인구가 적다 보니 특1급 호텔도 없고 백화점도 없으며 제대로 된 서양식당이 없다. 횟집·간장게장·해물짬뽕과 같은 맛집이 많아서 관광객은 많이 오고 있지만, 제대로 된 파스타나 스테이크, 스시, 디저트 등을 제공하는 식당은 없다. 정말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들려면 특급호텔에 근무할 정도의 셰프급 요리사가 있어야 하지만 군산에서의 영업수입을 가지고 이런 셰프를 고용하기는 어렵다.
   
   이런 영업여건 속에서도 과감히 서울의 가게를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준 주인이 너무도 고마웠다. 또한 고향이 아닌데도 함께 따라와준 요리사들과 소믈리에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나이들은 많지 않았지만, 요리할 때의 진지한 모습과 제대로 된 맛을 내주고,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손님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골라주는 전문가다움이 너무 좋았다.
   
   전문대학은 전문가(professional)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이런 전문대학을 운영하는 나는 학생들에게 프로의 자질을 강조하고 있다. 아마추어로서의 직업인이 아니라,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실력과 자질로 살아남을 수 있는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프로의 자질은 비단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행복과 가치를 느끼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학벌보다는 능력이 중요한 요리·미용·용접·기계·음악·예술 분야에서 프로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하여 자신의 능력과 자질을 완성해 나갈 때 성취감과 행복을 느낀다.
   
   은파호숫가의 조그만 레스토랑인 ‘파라디소 페르두또’에서 봉골레 파스타를 먹으며 나는 프로들의 맛을 느끼는 즐거움을 찾는다. 평범한 재료들을 쓰면서도 서울 일류호텔의 백합 등 고급재료로 만든 봉골레 파스타보다 더 맛있는 봉골레 파스타를 만드는 젊은 프로들을 보면서 한국의 미래를 본다. 또한 서울의 목 좋은 장소를 버리고, 조그만 중소도시에서 자신만의 맛과 멋을 추구하는 레스토랑의 주인을 보면서 지방 중소도시의 살길을 본다. 이탈리아로 음악 공부하러 갔다가 요리를 배워 와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주인은 음악에 대한 미련에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소음악회를 열고 있다. 벌써 20회가 넘었다. 전인권, 웅산, 나윤선 등 개성 있고 뛰어난 뮤지션의 공연을 은파호수를 배경으로 단풍나무와 벚꽃 등이 어우러진 야외에서 와인과 함께 들을 수 있다니! 서울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문화적 호사를 느끼게 해준 주인에게, 또 맛있는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어주는 젊은 프로들에게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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